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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52화 (252/408)

252화. 면교만 (2)

사실 준혁은 적마도를 이용해 결계를 탈출할 계획이었다.

십이진식이 유지되는 동안 면교만이 움직이질 못하니, 도망가는 데 소천경 수사 따위야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여겼고, 그랬기에 지금까지 누구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곰 같은 사내의 정체를 알게 되자 계획을 일부 수정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받은 도움은 갚아야지.’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대막리와 중요한 거래까지 했다는 걸 알기에, 그녀의 동생의 죽음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마정이었다.

암흑기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마정이었듯, 화정 역시 순수한 화기만을 받아들여야 완성되는 것.

원통형 결계는 화정이 되어갈 수사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면서 동시에 다른 기운의 간섭을 막는 장치였던 것이었다.

그런 곳에서 순수한 암흑마기가 모인 마정을 폭발시킨다면?

아마 결계 자체가 오염되며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예상은 정확했다.

“막아!!”

면교만의 외침이 터진 순간, 두 명의 소천경 수사가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며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아마도 단단한 결계를 무시하고 내부에 충격을 줄 방법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

준혁은 마정 하나를 화염의 근원지인 구덩이 속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부글부글-

그리고 두 명의 수사가 근접하기도 전.

파앗-

적마도를 이용해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

콰아앙!!

구덩이로 들어간 마정과 화염의 상호작용은 준혁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구덩이 안에서 시작한 폭발은 준혁이 자리했던 결계를 순식간에 녹여버리며 먼지구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십이진식 중 하나가 폭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쇄반응으로 다른 곳의 결계들마저 요동치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결계에 금이 가자 화신기 수사들은 가진 힘을 전부 끌어와 탈출을 시도했다.

“지, 지금 탈출해야 해!”

가만히 있다가는 산목숨도 죽은 목숨도 아니란 걸 알았기에, 살아 도망갈 수 있냐 하는 것은 차후 문제가 돼버린 것.

당장은 십이진식에서 벗어나 목숨을 연명하는 게 먼저였다.

어느새 곰 같은 사내 앞으로 이동한 준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영력을 뭉쳐 쏘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조호랑.”

그 순간 곰 같은 사내가 화들짝 놀랐다.

“제 누이를 아십니까?”

“역시.”

뒷얘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는 듯,

준혁은 금이 가던 결계를 가벼운 주먹질로 파괴해버렸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날려 보낸 영기 뭉텅이가 원통형 결계들을 연달아 깨부수는 걸 보며 곰 같은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지금부터 내가 보내는 기운을 밀어내지 말게. 살고 싶다면 말이야.”

“예? 예!”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벙대던 사내는 준혁의 차가운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준혁에 목소리에서 ‘너를 꼭 구하겠다’가 아닌 ‘구할 수 있으면 구하겠다.’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지, 자신의 뒷덜미를 잡은 손을 꽉 붙들었다.

그 순간, 준혁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류가 두 사람을 감쌌고,

슈아앙- 쾅!

음속을 뚫으며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

진의 중추를 맡고 있던 면교만은 진식이 파괴되는 충격에 피를 왈칵 쏟아냈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쿨럭!”

“사형 괜찮으십니까?!”

진의 반서를 직탄으로 맞은 것도 모자라 폭발 영향권에 자리해 상태가 자못 심각했다.

폭발이 터지기 직전 몸을 보호하며 물러선 두 사제와 달리 면교만은 아무런 방어조치도 취하질 못했으니까.

“신배! 너는 저놈을 당장 잡아 오고, 반배! 너는, 쿨럭, 제기랄, 탈출하는 저것들을 전부 제압해라.”

하지만 위선경 수행을 도박으로 따낸 건 아닌 듯, 요동치던 기운은 금방 잠잠해졌고, 빠른 판단을 내렸다.

잠시 후, 신배라 불리는 소천경 수사는 번쩍 빛 꼬리를 남기며 준혁이 사라진 방향으로 날아갔고, 반배는 결계를 깨고 도망가는 화신기 수사들을 가차 없이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행동이 가식이었던 걸 증명하듯, 도망가는 화신기 수사들의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건 기본이었고, 몸통째 꺾어버리기도 했다.

“목숨만 살아있으면 된다. 그럼 다시 진식을 활성화할 수 있어.”

그 모습을 악독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면교만은 영롱한 붉은 단약 하나를 꺼내 삼키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진식이 깨져나가면서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겨우 화신기 수사들을 잡아들이는 데 무리할 필요는 없는 일.

서둘러 몸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망나니 같던 ‘최’라는 수사 놈이 잡혀 오면, 분풀이는 그때 가서 하면 될 일이었다.

그 순간, 면교만의 등 뒤에서 흐릿하게 무언가가 나타나며 섬광을 내질렀다.

슈악-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던 면교만은 화들짝 놀라며, 무리하게 영력을 움직였다.

“으윽!”

퍼걱-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고, 예상치 못한 공격이라 결국 면교만의 한쪽 어깨가 처참하게 뜯겨나가고 말았다.

찰나의 차이로 겨우 심장을 비껴간 게 다행이긴 했지만, 자신을 기습한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면교만은 분노에 휩싸이고 말았다.

“네 이놈!!”

상대는 도망쳤다고 여겼던 최.

감히 화신기 따위가 도망간 척 위장한 채 기습을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면교만은 자신이 내상을 치유 중이었단 사실도 망각한 채 전심전력으로 손바닥을 후려쳤다.

“감히! 터져라!”

퍼걱-

면교만의 손길에 대기가 꿀렁거리며 요동치는 게 눈으로도 확인될 정도.

팡-

기습에 성공한 ‘최’는 다음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단숨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면교만은 자신이 또 한 번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우웩-”

핏빛이라기엔 너무 영롱한 붉은색이 섞인 피를 한 움큼 뱉어낸 면교만.

“어찌 화신기 따위가 이런 분신을….”

산산조각이 난 ‘최’는 원영을 뱉어내지도 않고, 빛을 내며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져버렸다.

“설마?!”

그제야, 뇌리를 관통하듯 스치는 생각.

면교만이 화신기 수사들을 잡아 가두고 있던 사제에게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반배!! 당장, 신배를 따라가라!”

***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다가 갑자기 멈춰선 준혁.

준혁은 이유 모를 미소를 짓더니 손을 가볍게 훔쳤다.

어느새 그의 손엔 분광소와 식검이 소환되어 있었고, 나타나기가 무섭게 다시 몸속으로 사라졌다.

‘시간 벌이는 충분하려나?’

분광소를 이용해 면교만을 기습한 것이 생각보다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았다.

마선 법기와 달리 다른 능력을 분광소에 빌려주었다가는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깜짝 기습용으로만 운용했는데 생각보다 이득이 있었다.

‘초연단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바로 움직일 수는 없겠지.’

원래 준혁의 계획은 지금과 달랐다.

결계를 유지한 채 적마도로 도망친다면 면교만은 움직이질 못할 테고, 두 소천경 수사만 상대하면 됐었던 상황.

그때에 맞춰 소천경 수사 한 명을 견제하기 위해 분광소와 식검을 미리 소환시켜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조호랑의 동생 때문에 진을 강제로 파괴해야 했고, 결국 면교만까지 합세할 상황이 되자, 임기응변으로 분광소를 그에게 투입한 것이었다.

그때 준혁의 손에 잡힌 채 아등바등하던 조호랑의 동생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사, 왜 갑자기 멈춘 겁니까? 곧 그들이 쫓아올 텐데, 혹, 다른 계획이라도?”

‘아무리 보아도 성격은 판이하구나.’

걸걸하니 여장부 같았던 조호랑을 떠올리며 준혁은 사내를 손에서 놓아주었다.

“이곳에서 잠깐 할 일이 있어서 말이네. 그나저나 자네 이름이 어찌 되지?”

“저는 조말랑입니다. 그러는 수사께서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준혁이 너무 차분해 보이자, 조말랑도 덩달아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최준혁이라 하네. 그대의 누이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

“아! 그래서.”

“그전에, 오면서 살펴보니 아직 반초단의 기운이 강진단과 반응을 하지 않은 것 같더군. 맞나?”

“헛, 그걸 단번에? 마, 맞습니다. 수사께 말씀드렸듯이 께름직한 감이 있어서 강진단의 섭취를 늦췄더니….”

준혁은 손끝에 하얀 기운을 뭉쳐 상대에게 흘려보냈다.

“다행이군, 그럼 이걸 받아들이게, 그대가 두 약의 기운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수사!”

조말랑은 준혁의 말에 한 치 의심도 없이 하얀 기운을 날름 삼켜버렸다.

너무 쉽게 자신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모습에 준혁은 어이가 없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게 무언지 알고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들인 겐가?”

“예? 그야, 수사께서 제게 도움이 된다 했으니…. 설마 제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준혁이었다면 목숨을 살려준 건 살려준 거고, 최소한의 확인 작업은 거쳤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누이에게 많이 혼났겠군?”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당하는 게 수도계인데, 이렇게 조심성 없는 동생을 조호랑이 가만뒀을 리 없었다.

“헛! 어찌 그것을? 마, 맞습니다. 누이는 제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틈만 나면.”

하소연이 이어지려 하자 준혁은 손을 저어 조말랑을 멀리 날려버렸다.

“어? 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자, 조말랑의 동공이 확장되며 놀란 소리를 뱉어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준혁은 천천히 등을 돌리며 하려던 말을 이어 했다.

“기다리던 손님이 온 듯하니 자네는 떨어져 있게. 기다리는 동안 약 기운을 제거하는 것 잊지 말고.”

***

광활하게 펼쳐진 모래사막.

이를 바득바득 갈던 면교만과 달리, 그의 사제인 신배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의도와 달리 사고가 터지긴 했으나, 도망간 화신기 수사들을 잡아다가 다시 십이진식을 발동하면 되는 일.

처음부터 제물들의 목숨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쉽게 가자고 했던 신배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형은 너무 물렀어. 그깟 놈들 전부 죽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다시 써먹는다고? 그럼 그때 가서 또 잡아 오면 될 일인데 귀찮게 쯧.”

일이 터지기 전까진 사형의 의견을 말없이 따랐지만, 이젠 반배와 합심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할 요량이었다.

“엇?”

그때,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 멈춰선 도주자를 발견한 그는 ‘역시’하는 생각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망친 주범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끙끙대며 몸을 회복하려는 두 놈을 만날 수 있었다.

“도망가길 포기했구나? 잘 생각했다. 아무렴 도망가봐야 네놈들이 뭘 어쩌겠느냐? 뇌명숲을 건널 수도 없을 텐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도착하나 기다렸는데.”

“어?”

한껏 비아냥대던 신배는 일을 망친 화신기 놈이 태연스럽게 대꾸하자, 오히려 말을 잊고 말았다.

그러다 ‘겁을 상실하면 정신이 나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반문했다.

“나를 기다렸다고?”

“그렇습니다.”

눈빛을 보면 상대는 미친 것 같진 않았다. 기감으로 살펴도 주변에 함정도 없었고.

“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뇌명숲을 건너려는데, 제 몸이 너무 허약해서 말입니다.”

“뭐라?”

“그래서 말인데…. 수사가 익힌 뇌공지신 공법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만 익힌다면 안전하게 뇌명숲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제야 신배는 상대방이 자신을 농락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주려 했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이 미친놈이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감히 나를 놀려?”

“무슨 소리십니까? 살려고 부탁드린 거지요. 그래서 뇌공지신을 알려주실 겁니까? 말 겁니까?”

투툭-

무언가 끊어진 것 같은 감각과 함께 신배는 상대를 살려서 데려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분노에 휩싸였다.

“의식에 영향을 끼칠까 사용하지 못했거늘, 기고만장도 정도가 있다. 보여주마. 네놈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영역 선포!”

그 순간, 물웅덩이에 돌이 떨어진 듯 영기 파동이 퍼져나가며 반투명한 막이 사방으로 규모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병신으로 만들어주마!!”

하지만 신배의 영역이 상대에게 닿기 직전.

상대도 손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아? 그런 거였습니까? 멍하니 바라만 보길래 막아설 능력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만?”

그리고는 피식 웃더니 들릴 듯 말듯 읊조렸다.

“영역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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