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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9화 (249/408)
  • 249화. 유적으로 (2)

    “내가 익힌 공법과 관련된 것이라 상세히 알려드리긴 힘들겠소.”

    그 순간, 준혁에게서 찐득거리는 암흑마기가 흘러나와 주변을 휘감다가 사라졌다.

    마기를 확인한 여인은 두 눈을 부릅뜨다, 겨우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마족분이셨군요…. 아! 그래서 몽야초를! 전혀 예상하지 못해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태약소화는 진마족과도 거래를 하고 있어 관련 약초들이 제법 있답니다.”

    여인은 혼자서 오해하고 이해하더니 좀 전보다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준혁이 마기를 드러낸 건 몽야초가 마족과 관련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기도 했지만, 여인에게서 미약하게나마 마기의 흔적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잘됐습니다.”

    준혁은 손을 살짝 흔들어 빈 옥간을 꺼낸 후, 이마에 가져가 화신체 비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약초들을 옮겨 적었다.

    “그럼, 여기 적힌 것들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옥간을 건네받은 여인은 안의 내용을 확인하더니, 놀란 얼굴로 준혁을 한번 바라보다 다시 내용물을 세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표정이 한껏 찌그러져 있는 것이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했다.

    “몽야초에 만백령(蔓百靈)과 도후지(島朽枝)…. 거기다 각오충(角五蟲)의 날개와 후우. 솔직히 다른 몇 가지는 본 적도 없는 물건입니다.”

    준혁은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한 번에 구한다는 생각은 한 적 없으니 괘념치 마셔도 됩니다.”

    “만백령과 도후지는 하품으로 조금 있는데…. 그것이라도 보여드릴까요?”

    잠시 후, 의기소침해진 여인을 뒤로한 채 준혁은 몽야초만을 구매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백령과 도후지는 하품 중에서도 최하품이라 비술에 적혀 있는 약초와는 약효가 달라, 거래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즐거운 거래였소, 그럼.”

    그때 의기소침해 있던 여인이 옷자락을 흔들더니, 둥그런 철패 하나를 꺼내 준혁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준혁은 철패를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법기도 아닌 말 그대로 어떤 신분을 표시하는 신분패의 일종.

    “혹 천운대륙에 가실 일이 있다면 진가장을 찾아가세요. 그럼 원하시는 물건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어진 여인의 설명에 의하면 진가장은 진마족이 운영하는 상가(商家)로 천운대륙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마족 관련 수많은 상점이 있다 하지만, 그곳이 진귀한 물건이 전부 모이는 곳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귀한 것 같은데 그냥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그것은 조건을 갖춘 귀한 손님을 의미하는 패입니다. 그리고 손님께서 구하시는 것들을 보면…. 그 조건에 부합하시고 말입니다.”

    ‘남들은 구하지 않는 특별한 재료를 찾는 자들만 연결해주는 건가?’

    진마족의 상거래가 암거래 위주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처사였기에 준혁은 고민하다 감사 인사와 함께 패를 공간 팔찌에 집어넣었다.

    그때 여인이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건을 계산하실 때 패와 함께 저희 태약소화를 언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말에서 한 가지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소개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나 보군.’

    그 예상은 정확했다.

    ***

    꼬박 하루 동안 상점가를 배회한 준혁은 몽야초를 제외하곤 구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숙소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이 밝기도 전, 태식과 그의 스승으로 짐작되는 중년 도사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태식의 스승은 사람 좋은 생김새였는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제외하곤 인자한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었다.

    “그대가 내 제자를 구한 이라 했는가?”

    다짜고짜 하대였지만, 상대가 위선경 수사란 말을 들었기에, 준혁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황대륙에서 건너온 최라고 합니다.”

    “어디 영수족 출신인가? 나도 나름 그곳 영수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전왕문이 돈을 버는 방법을 생각한다면 다양한 인맥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얘기.

    준혁은 은근히 혈맥의 힘을 풍기며 대답했다.

    “말씀드려도 모를 것입니다. 외방에 위치한 폐쇄적인 부족인지라…. 부끄럽지만, 부족 내에서 흑석대륙을 벗어나 주운대륙으로 가는 건 제가 처음이라 알고 있습니다.”

    “호오. 그래? 그건 그렇고 자네 수행이….”

    푸근한 중년 사내의 인상이 찌푸려지려 할 때쯤, 준혁은 태식과 그의 사제의 전음을 떠올리며 화신기 후기급으로 수행을 맞췄다.

    ‘분명 구하는 인원들이 화신기 수사라 했지?’

    그리고는 상대방이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영력을 개방하며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하늘 같은 선배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수를 보였습니다. 부족의 술법으로 수행을 가려봐야 선배님 앞에선 의미가 없을 텐데요.”

    “큼, 흠, 그래. 당장은 모르지만 그런 술법으로 눈속임하는 건 나에게 통하지 않지. 한데 자네.”

    “하명하시지요.”

    “제자에게 들으니 급하게 뇌명숲을 건너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준혁은 자신의 계책이 들어맞아 가는 것 같아지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큼, 흠.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마침 내가 급한 임무를 배정받아 실행해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인원들이 화신기급 수사들이네. 마침 그대도 화신기 수사고 말이야. 물론 주운대륙으로 가진 않지만, 그댄 내 제자를 구한 인물.”

    사내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뒤에 서 있던 태식을 힐끔 바라보다가 눈을 마주치더니 피식 웃고 다시 말을 이었다.

    “목적지가 주운대륙과 멀지 않으니, 임무를 마치고 나면 내가 직접 그대를 주운대륙에 데려다주겠네.”

    “정말이십니까?”

    “대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해야 함은 똑같네. 어떤가? 함께할 텐가? 아니라면 2년 후 이동편이 마련될 듯하니 그때까지 이곳에 머물러도 상관없네.”

    “스승님 그 얘기도 하셔야지요.”

    그때 태식이 끼어들자, 푸근한 사내가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아 참, 그리고 얘길 들어보니 그대가 낙인을 새기는 데 꺼림이 느껴지더군.”

    “그, 그건….”

    “영수족들이 강체술로 강해졌으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네. 자네가 함께하겠다면 낙인은 내 권한으로 배제해주지. 어차피 단발로 끝날 임무이니 그 정도는 가능한 일이야.”

    준혁은 바라던 바였기에 바로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함께하겠습니다.”

    솔직히 주운대륙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준혁의 최종 목적지는 뇌명숲 중심이었기에, 임무를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에 적당한 핑계를 대고 빠지면 될 일.

    그 후의 대화는 일사천리였다.

    푸근한 사내, 태식의 스승 면교만(綿驕慢)은 이틀 뒤 출발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고, 태식은 일반적인 임무가 진행되는 가정을 상세히 설명해 준 후 떠나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이틀이 지나고, 준혁은 약속된 장소인 목조주택 단지 뒤쪽, 북쪽에 마련된 선착장으로 향했다.

    ***

    “이것 참…. 곤란하구나.”

    멀리 보이는 천장이 덮여있는 형태의 비행법기를 보며 준혁은 난감한 듯 손안에 쥔 전음부를 만지작거렸다.

    전음부는 숙소를 나서려 할 때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태식이 보낸 것이었다.

    그 내용을 보자면. 준혁에게 이번 임무에 참가하지 말고 자신과 함께 이곳에서 2년을 머물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담겨있었는데, 화신기를 모집하는 임무이기에 자신도 참가하려 스승을 설득했지만, 절대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는 것.

    그리고 스승과 사숙들을 제외하곤 전부 외부에서 영입한 화신기 수사만을 대동하는 게 꺼림칙하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의 인품으로 보아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진 않지만, 감이 좋지 않으니 준혁에게 임무에서 빠지라는 조언이었다.

    거기에 대해 임무의 중요 내용도 몇 자락 담겨 있었는데, 유적에서 찾으려고 하는 물건이 전왕문에서 오매불망 찾았던 ‘뇌력’이라는 영보급 검이라는 것.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하다고 피력하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물건을 찾으러 가는 곳에 위선경 수사 한 명과 소천경 수사 두 명을 제외하곤 전부 외부 인사, 그것도 화신기 수사들만 영입했으니까.

    “하지만 2년을 기다린다는 건 너무 위험하다.”

    결국 준혁은 자신을 걱정해준 태식에게 고마움이 담긴 전음부를 날려 보내주는 것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수상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지만, 자신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의외의 상황이 닥친다 해도, 임무지에서 도망쳐 뇌명숲으로 갈 수는 있었으나, 만에 하나 대막리나 요마궁의 강자가 자신을 찾아오면 그땐 꼼짝달싹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태식의 스승 면교만이 위선경 수사이기는 하나, 도망치는 거라면 자신 있었기에 하는 결정이기도 했다.

    잠시 후, 선착장에 마련된 비행법기 가까이 다가가자, 면교만이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시게. 마지막으로 도착했군. 자세한 내용을 안에서 일러줄 터이니, 위에 오르면 되네.”

    면교만은 준혁이 비행법기에 오르길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가자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그 뒤를 따랐다.

    ***

    쾌속 질주를 시작한 길이 30여 미터, 폭 10여 미터의 비행법기.

    천장으로 덮인 선상에 자리한 준혁은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다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태식 수사의 말대로 수상하긴 하군.’

    자신을 포함해 화신기 수사는 총 12명이었는데, 전원이 영수족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는 문제.

    더 이상한 건, 몇몇과 가벼운 대화를 나눠보니 전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약소 부족 출신이란 것이었다.

    마치 사라져도 티도 안 나는 이들만 고른 것처럼.

    ‘한 번 수상하다 여기니 모든 게 이상하긴 하군.’

    그때 선상에 놓인 단상으로 면교만과 그의 사제인 소천경 수사 두 명이 나란히 올라왔다.

    면교만은 좌중을 가볍게 훑고는 모두에게 옥간 하나씩을 날려 보냈다.

    “자세한 임무 위치와 내용이 담긴 것이다. 확인하고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도록.”

    준혁은 옥간을 직접 손대지 않고 영력으로만 끌고 와 기감으로 세밀히 살핀 후, 직접적인 접촉 없이 안의 내용을 읽어냈다.

    영력 소비는 심하지만, 의심되는 상황이었으니 사소한 것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흠…. 역시. 합류하길 잘했군.’

    옥간에 적힌 임무지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준혁은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뇌명숲의 중심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짝 북서쪽에 자리한 불타는 사막과의 경계. 그곳이 목적지였기에, 만에 하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인다면 도망치면 그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면교만이 크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집중시키더니, 중요한 소식을 알려왔다.

    “큼! 주목. 다들 확인했듯이 그대들의 역할은 유적의 입구를 여는 것이다. 그곳엔 오래전에 유실되었다는 십이진식(十二陳式)이 존재하는데 그대들이 십이진식을 발동하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설명이 이어지려는 찰나, 수사들 중 하나가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열쇠 역할이라 함은 문을 열고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희는 유적에 들어가지 못하는 겁니까?”

    “물론일세. 이제 다른 곳으로 소식을 전할 수도 없을 테니 말하는 거지만….”

    면교만은 궁금증을 유발하겠다는 듯 시간 차를 두고 말을 이어갔다.

    “유적 안엔 영보 뇌력이 잠들어있네.”

    그 순간. 준혁을 제외한 수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몇몇은 왜 굳이 화신기 수사만을 데려왔는지 궁금한 자가 있을 테지? 바로 그 이유 때문일세. 열쇠 역할을 하는데 당연히 소천경 수사가 화신기 수사보다야 도움이 될 테지.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는 일. 우린 일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기에 그대들을 따로 수소문해 임무에 참가시킨 것일세.”

    즉, 쩌리들에게 문을 여는 역할만 시키고, 혹시나 보물 쟁탈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은 피하겠다는 것.

    ‘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가는구나. 태식 수사를 참가하지 못하게 한 건. 아마 열쇠 역할을 하는 자가 받는 반작용이 치명적이기 때문인가?’

    보통 열쇠 역할을 생명체가 하는 경우 그 끝이 좋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준혁만이 아니었는지, 수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질문했다.

    “진을 버텨야 하는 열쇠 역할이라니. 진의 반서를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건 처음 약속과 다릅니다. 위험부담이 너무 큰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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