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8화 (248/408)
  • 248화. 유적으로 (1)

    준혁이 전부 듣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유적에 대한 얘길 늘어놓던 두 사람은 한참 만에 상황을 자각했는지 헛기침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는 성문을 지키던 자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태식은 앞장서 걸으며 주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큼 흠, 제가 선배님을 모시고 잠시 정신이 팔렸군요.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그러세나.”

    “저기 보이는 큰 건물이 상점가가 시작되는 곳이고. 저곳부터는….”

    성곽 안쪽에 마련된 전왕문은 하나의 문파라기보다는 작은 규모의 성 같았다.

    태식에게 듣기로 처음엔 주운대륙에 있던 전왕문에서 뇌명숲을 건너온 문파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쉼터 역할이었지만,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점점 규모가 커진 것이라 했다.

    그리고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세력이 없던 흑석대륙이었기에,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나 혹은 거래를 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전왕문 흑석지부가 되어, 거대한 상권이 형성된 것이라 했다.

    ‘마술점(魔術占)? 저것은 무엇인가?’

    준혁은 하계에서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상점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탄성을 내뱉기도 하며 태식의 뒤를 따랐다. 특이한 이름을 보면 잠시 멈춰 서서 설명을 듣기도 했다.

    그런 준혁의 태도가 당연하다는 듯 태식은 신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영수족 부락과는 차이가 많지요? 숙소를 배정하고 나면 그 후엔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둘러보시면 됩니다.”

    “숙소 말인가? 나는 당장 뇌명숲으로 향하고 싶은데?”

    “아! 제가 그 설명을 드리지 않았군요!”

    걸음을 멈춘 태식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왕문의 공법을 익혔다고는 하나, 뇌명숲을 가로지르는 건 소천경에 이르신 사숙이나 사백분들만 가능하십니다. 영역을 부리지 못하는 저희 화신기 수사들은 숲의 3할도 건너지 못하고 힘이 다해버리니까요.”

    “흠….”

    “그래서 뇌명숲을 건너는 건 대략 오 년에 한 번입니다. 가끔 이용하는 분들이 많을 땐 이삼 년에 한 번씩 새로 출발하지만요.”

    태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은 그냥 전왕문의 도움 없이 뇌명숲으로 들어갈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요마궁에서도 날 쫓기 시작했을 테니, 결국 내가 흑마지에서 살아나온 사실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최소한 준혁이 처리했던 요마궁의 소천경 수사만큼은 복수를 하기 위해 안달 나 있을 건 분명했다.

    ‘대막리에게 소문이 들어간다면, 필히 나를 잡으려 하겠지.’

    진마정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진마정을 회수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아마도 대막리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준혁을 쫓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다 해도 혼자서 뇌명숲으로 가는 건 최악의 판단이었다.

    흑마지 같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적마도나 둔술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일.

    괜히 서두르다가는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귀원패를 비롯해 목족의 공법까지, 각종 보호 술법을 많이 보유했다고는 하나, 알지도 못하는 뇌기를 몸으로 실험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이 조금 전 엿들었던 전음에 미쳤다.

    ‘이렇게 되면 낙인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야 하는가?’

    아무리 태식의 생명의 은인이라고는 하나, 자신 한 명 때문에 수년에 한 번 운용하는 것을 당겨오진 않을 것 같았기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몸에 흔적을 남기는 술법을 새긴다는 게 꺼림칙했다.

    사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식 비슷한 술법을 강요당한 적이 몇 번 있지만, 모두 좋은 경험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전왕문이 표식을 남겼다고는 하나, 그 술법을 대막리나 다른 자들이 이용할 수도 있는 일.

    ‘절대 그런 흔적을 남길 순 없지.’

    고민에 빠진 듯 이맛살을 찌푸린 준혁의 모습에 태식이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혹시 가까운 시일 내에 이동편이 마련될 수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저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알았네. 말이라도 고맙군.”

    다시 태식의 뒤를 따라 걷던 준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고민하던 바를 입 밖으로 꺼냈다.

    “태식 수사.”

    “편히 말씀하시지요.”

    “낙인이라는 제도 말일세. 혹, 임무를 바로 지급 받으면 몸에 표식을 남기지 않아도 무방하나?”

    “보통 임무에 따라 다르긴 하나…. 그럴 수도 있습니, 아! 혹 이동편을 기다리기보다는 뇌명숲을 지나야 하는 임무가 있다면 그것을 받으시려는 것입니까?”

    “그럴 생각이네. 우리 수사들에게 이삼 년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라지만,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일세. 그러니 혹시 그런 임무가 있다면 알아봐 주게나.”

    준혁의 부탁에 태식은 고민에 싸인 표정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을 만나 뵙고 혹여나 그런 임무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잠시 후.

    상가가 밀집되어있는 곳을 지나쳐 2층 목조주택이 즐비한 곳에 이르자, 태식은 준혁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고 급히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흑석대륙에 있었던 일들을 문파에 알리고 처리해야 하기에 이삼일 정도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

    태식이 떠나고 난 뒤.

    준혁은 우두커니 기다릴 생각이 없었기에 곧장 목조주택을 벗어나 상점가로 향했다.

    ‘이 정도 규모는 드물다 했으니 여기서 구하면 되겠지.’

    대륙마다 수많은 성이 있고 그곳을 관리하는 종문들이 즐비했지만, 전왕문 흑석지부의 상점가는 웬만한 거대세력의 규모를 넘어선다고 했다.

    그랬기에 이곳을 벗어나기 전 필요한 물건들을 충당하려 했다.

    태식은 스승에게 적합한 낙인 임무가 있는지 알아본다고 했지만, 그가 사제와 나눈 전음을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자신에게도 일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우선 공야초부터.’

    잠시 후, 3층 건물이 일렬로 늘어선 상점가에 도착한 준혁은 약초 그림이 그려진 수많은 상점 중에 사람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태약소화] 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혹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실까요?”

    건물 내부는 단조로우면서도 깔끔했고, 약초를 파는 상점답게 약초 향이 코를 찌를 듯이 파고들었다.

    1층 입구엔 꼬마처럼 보이는 결단기 수사가 안내를 맡고 있었다.

    “혹, 공야초(空夜草)가 있는가?”

    “물론이죠. 요즘 잠이 안 오시나 봐요? 불면증엔 공야초도 좋지만, 저희 상점의 전속 연단사인 태무….”

    “그냥 공야초로 주시게.”

    좀 더 고급 상품을 설명하려던 결단기 꼬마는 단호한 준혁의 말에 시무룩해하며 작은 상자를 찾아 꺼냈다.

    “여기 원하시는 공야초예요. 얼마나 필요하시죠?”

    준혁은 꼬마가 꺼낸 상자를 열어 공야초라 불리는 약초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내 실망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하품이군. 풀잎이 다섯 개가 아닌 일곱 개가 달린 상품은 없는가?”

    준혁이 학고응에게 얻은 화신체 비술.

    비술을 익히기 전 원영의 근원을 자극해야 했는데, 그 일을 행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잎이 일곱 개 달린 상품 공야초였다.

    ‘요마궁의 비술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처음 준혁이 요마궁을 언급했을 때, 학고응이 깜짝 놀란 이유는 바로 그가 가지고 있던 화신체 비술이 요마궁의 비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요마궁의 화신체 비술은 마정의 껍데기를 주재료로 사용하기는 했으나, 그전에 필요한 것들도 수두룩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야초였고, 비술에 적히기론 최소한 수십 년은 공야초를 섭취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네에? 일곱 잎 공야초면…. 설마 몽야초(夢夜草)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다른 이름은 모르겠군. 혹 보유 물건이 없는 건가?”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잠시만요.”

    준혁의 물음에 호들갑을 떨던 꼬마는 짤막한 발을 놀려 2층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얼마 후 펑퍼짐한 옷으로 몸을 가린 중년 여인과 함께 나타났다.

    여인은 준혁을 보며 우아하게 인사하더니 2층 계단을 가리켰다.

    “몽야초는 귀한 물건이라 1층엔 없답니다. 2층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바람도 불지 않는데, 끼를 부리듯 요동치는 옷자락을 매만지며, 계단 방향으로 먼저 몸을 틀었다.

    ‘이자 기운이….’

    잠시 후, 2층에 도착한 여인은 준혁을 가까운 탁자로 안내했다.

    준혁이 안내에 따라 탁자 앞에 자리하자, 근처에 있던 사내를 불러 귓속말을 한 후, 한쪽에 마련된 술병과 잔을 들고 와 준혁 앞에 내려놓았다.

    “물건을 가져오라 했으니, 선주 한잔하시며 기다리시지요. 저희 상점의 자랑인 연단사 태무란께서 빚은 술입니다.”

    하지만 준혁이 별 관심 없이 술잔을 만지지도 않자, 여인이 웃는 얼굴로 눈살만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손님께선 이곳이 처음이시군요? 태무란님의 이름에도 아무 반응이 없으신 걸 보니.”

    “그렇소. 혹 내가 알아야 하는 자요?”

    싱긋 웃은 여인이 고갤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저 태무란님의 이름만으로도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넘쳐날 정도라….”

    그 순간, 달콤한 향이 준혁에게 날아들다가, 역풍을 맞은 듯 주변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 모습에 여인이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술병을 들어 준혁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랐다.

    “헌데…. 손님께선 몽야초를 어디에 쓰시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곳은 물건을 팔 때, 사용처까지 물어본단 말이오?”

    술잔에 술이 가득 차자, 여인은 술병을 내려놓고 손을 단정히 무릎에 올리더니 준혁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밤을 지워준다는 공야초와 달리, 몽야초는 마귀와 악귀를 불러온다 알려진 독초이옵니다. 그렇기에 규모가 작은 상점에선 취급조차 하지 않지요. 수사께선 혹, 몽야초가 어떻게 키워지는지 아시나요?”

    ‘키워? 채집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대부분 약초는 영기 밀도가 높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채집해 오는 것이었기에 준혁은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

    “직접 가꾼단 말이오?”

    “역시. 모르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산지에 흔하게 널린 공야초와 달리 몽야초는…. 다 자란 공야초에 요마족의 피를 주기적으로 공급해 십 년 이상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몽야초를 거래했다고 알려진 곳들은 때때로 요마궁의 공격을 당하기도 한답니다. 제가 왜 사용처를 물었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허!’

    준혁이 놀란 얼굴을 하자, 여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듣는 사람은 누구든 놀라게 되는 게 몽야초의 정체니까.

    하지만 준혁은 전혀 다른 의미로 놀라는 중이었다.

    그냥 몽야초만 생각한다면 기이한 방법으로 재배한다 생각하고 말겠지만, 화신체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몽야초로 원영의 근원을 자극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준혁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비술을 익혔다면 큰일 날뻔했구나! 이 비술은 말 그대로 요마족만을 위한 것이었어!’

    왜 화신체를 만드는 비술이 종족마다 종문마다 다르고, 그 재료 역시 천차만별인지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비술을 성급하게 익히는 건 독이다. 온전한 비술을 얻어 나에게 맞게 바꾼 후에나 익힐 수 있겠어.’

    아니면 인족들이 익힌 화신체 비술을 구하든지.

    시간이 흘러 놀란 준혁이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여인은 다시 질문했다.

    “이제 몽야초의 사용처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