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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7화 (247/408)
  • 247화. 다시 만난 인연 (3)

    “혹 그대 나이가 어찌 되는가?”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했는지, 태식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계산을 거듭하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딱히 계산하며 살진 않았지만…. 대략 천삼백 년 조금 넘게 살았습니다.”

    “천 삼백 년?”

    ‘천삼백? 그렇다면 시기상 맞지 않구나.’

    혹시나 오태식의 환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실망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세상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자가 셋은 존재한다더니…. 설마 그런 경우인 건가? 허나 정말 신기하구나. 얘길 나눠보니 성격이나 품성도 그와 비슷한 것 같은데.’

    허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큰 의미를 둔 건 아니었기에 준혁은 빠르게 상념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다른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는지, 태식이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하하, 제 재능이 비루하지요? 그동안 겨우 화신기 초기에 올랐으니….”

    태식의 말에 다른 질문을 하려 했던 준혁이 의문을 표했다.

    ‘재능? 빠른 것 아닌가?’

    “그 정도면 수행이 느린 것인가?”

    “느리다고 할만한 건 아니지만. 빠르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남운대륙의 어느 여 수사는 겨우 삼백 년 만에 화신기 중기에 이르렀다고 하니 말입니다.”

    준혁은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허…. 삼백 년 만에 화신기 중기라니.’

    각종 기연에 식검의 흡수능력까지. 자신만큼 빠르게 성장한 자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상을 초월할 속도였다.

    ‘이곳의 영기 밀도가 하계와는 다르다고는 하나….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 자가 흔한가?”

    “아닙니다. 거의 보기 힘듭죠. 하지만 때때로 등장하니 누구라도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스승께서도 항상 그녀를 거론하며 저를 타박하시니까요.”

    ***

    기가 죽어 말에 힘이 떨어졌던 태식은 시간이 흐르며 다시 아는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준혁은 옥간에 적힌 정보 외, 자세한 사항을 물었다.

    “나는 대황대륙에서 건너와 뇌명숲과 전왕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네. 숲을 건너기 위해선 그대가 속한 문파를 통해야 한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지. 자세한 설명 좀 해줄 수 있겠나?”

    “아! 영수족 출신 선배님이셨군요?! 어쩐지 조금 남다르다 했습니다!”

    신기한 듯 준혁을 곁눈질하며 감탄을 연발하던 태식은 자신이 아는 바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혹, 뇌명숲이 어찌 뇌명이라 불리는지. 그것도 알지 못하십니까?”

    “그렇네.”

    “아하! 그럼 그것부터 설명해 드려야겠습니다!”

    뇌명숲, 말 그대로 천둥이 쉬지 않고 울린다고 하여 뇌명숲이라 불리는 곳.

    그곳은 뢰목이라는 나무로 이루어져 있는 숲이었다.

    뢰목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뇌기를 응축해 적당한 시기가 오면 발산하기 시작하는데, 그때 숲 전체가 천둥이 치는 것처럼 울린다고 하여 뇌명숲이라 불리게 되었다.

    “보통 뇌명숲이 울기 시작하면 천 년은 간다고 합니다. 그 후엔 오백여 년간 뇌기를 품고 말입니다.”

    “그럼 지금은 뇌기가 만연한 때인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전왕문을 꼭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뇌명숲이 뇌기로 가득 차게 되면, 그 안에선 생명체가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전왕문의 특수 공법인 뇌공지신(雷共地神)을 익힌 자는 일정 공간을 뇌기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전왕문은 그 능력으로 뇌명숲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통행료를 받아 성장한 문파였다.

    “설마 영역으로도 몸을 보호할 수 없을 만큼 뇌기가 강력하단 말인가?”

    “아닙니다. 충분히 몸을 보호할 수 있지요. 하지만 뇌명숲이 얼마나 넓은데, 뇌기를 막는 데 영역을 소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대천경에 오르신 고위수사분들이 아니면 힘들다 들었습니다.”

    “흐음….”

    “게다가 그렇게 영역으로 힘을 소비하다 뇌공조(雷蚣鳥) 무리라도 만나는 날엔…. 어휴 끔찍할 겁니다.

    그 뒤로도 뇌명숲과 전왕문에 얽힌 비사부터 시작해 사내의 입에선 각종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적지주가 뇌명숲의 중심부에 있다고 했으니, 이동 중간에 빠져나와야겠군.’

    옥간에도 적지주를 만나기 위해선 전왕문을 이용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으니 사내의 말은 틀린 것이 없을 터였다.

    “저희 문에 도착하신 후, 외부인들을 위한 장소로 이동, 그곳에서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시면 됩니다.”

    “자세히 설명해 보게.”

    “우선 완영기 이하 수사들은 영석이나 그에 준하는 물건만으로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연형기 이상 수사들은 낙인을 받거나 아니면 하위 수사들처럼 대가를 내고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낙인?”

    준혁의 이맛살이 구겨지자, 태식은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오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낙인이란 수사의 손등이나 혹 다른 부위에 술법을 새겨넣는 행위로, 백 년 안에 전왕문과의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증표 같은 것입니다!”

    “증표라?”

    “간혹 선배님 중에는 영석 같은 대가를 지불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해줌으로써 그 대가를 상쇄하려는 분들이 있다 보니 생겨난 제도입니다. 그리고 수행에 비해 해야 할 일이 어렵지 않으니 많은 분들이 이용하기도 하시구요.”

    태식은 혹시나 준혁이 불쾌해하진 않는지 눈치를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선배님께선 제 목숨도 구해주셨거늘! 대가를 받거나 낙인을 새기는 건 도리에 맞지 않지요! 제가 스승님께 말씀드려 꼭 무료로 뇌명숲을 지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상대의 호기로운 외침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알겠네. 자네라면 알아서 잘해주겠지.”

    비록 오태식의 환생은 아니었지만, 과거의 인연과 닮아있는 모습에 준혁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를 끌어올렸다.

    ***

    반년이 넘게 검은 땅을 지나자 비로소 성곽 비슷한 것이 준혁의 눈에 들어왔다.

    “선배님! 저곳이 저희 전왕문이 자리한 곳입니다.”

    그동안 비행법기를 조종하는 한편 화신체를 만드는 비술의 일부가 적힌 옥간을 연구 중이던 준혁은 태식의 외침에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오묘하구나, 하루라도 빨리 완벽한 비술을 익혀야겠어. 어쩌면 이건 나에게 그 어떤 것보다 값어치가 있을지 모르겠어….’

    영역까지 사용할 수 있는 완벽한 화신체를 만드는 비술, 준혁은 학고응이 전해준 비술의 초입 부분을 연구하다 자신의 강점을 살릴 방안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는 지식, 완전한 비술을 얻어야만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비술을 얻고 난 후 위선경에 오르게 되면 남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 같았다.

    “선배님! 저부터 내리겠습니다!”

    잠시 후, 성곽 근처에 다다르자, 태식이 비행법기에서 뛰어내리며 땅에 발을 디뎠다. 그 모습에 상념을 정리한 준혁도 법기를 수거한 후 몸을 날렸다.

    성곽은 10여 미터 높이의 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딱히 감시하거나 지키는 인원이 서 있는 구조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비행을 제한하는 진법이 어깨를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성곽은 그런 제한을 가늠하는 경계선 같은 것이었다.

    “이곳부터는 비행 금지입니다. 선배님.”

    “알겠네.”

    검은 암석을 대충 쌓아 올린 듯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한 성곽 가까이 가자, 거인도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거대한 성문이 나타났고, 준혁은 천천히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수사들을 감상했다.

    그 수가 인간들이 살던 시가지를 연상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법 많은 종족들이 구별 없이 오가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인족의 모습을 한 채, 각 종족의 모습이 조금 부각될 뿐이었지만.

    ‘이곳은 인족이나 영수족이나 잘 어울려 지내나 보구나.’

    수인족인 대막리가 초 거대세력의 제자란 이야기와 그런 그와 대등하게 교류하던 영수족인 조호랑.

    준혁은 충분히 예상하던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태식의 뒤를 따랐다.

    “태식 수사. 이곳은 따로 배척하는 종족이 있거나 하진 않습니까?”

    준혁의 질문에 태식이 당연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물론 약탈을 일삼는 마족 같은 경우, 다른 종족들과 척지는 경우가 많지만, 대다수 종족은 영수족과 사이가 좋습니다. 그리고 마족 중에서도 진마족은 요마족이나 전마족과 달리 다른 종족과 교류도 활발하다 들었습니다. 아, 저는 본 적이 없지만요.”

    준혁이 영수족 출신이라 알고 있던 태식은 의도와는 다른 대답을 했다.

    하지만 태식의 설명이 이어지자, 준혁은 선계에선 종족보다는 소속되어있는 종문이나 세력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하계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개인의 수행. 사실은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절대적 신분이었다.

    ‘결국 이곳도 약육강식이라 이건가, 아니지, 어쩌면 하계보다 더….’

    잠시 후 큼직한 성문 가까이 이르자, 성문에 서서 지나가는 자들을 돋보기 비슷하게 생긴 물건으로 관찰하고 있던 자가 놀란 얼굴로 소리치며 뛰어왔다.

    “사형!!”

    “다시 보게 되니 반갑네.”

    달려온 이는 연형기 끝자락에 닿아있는 이였는데, 태식보다 몇 배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태식의 손을 붙잡고 흔드는 노인은 살아 돌아온 형제를 본 것 같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형과 함께 나갔던 아이들의 본명패가 연달아 꺼져서, 스승님과 다른 사형들이 걱정이 많았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그랬는가? 사실 나도 죽는 줄 알았네.”

    “듣기로는 몽교의 이장로가 마음먹고 움직였다고 하던데, 사형은 어찌 살아오신 겁니까?”

    평소 아끼던 사제였는지 태식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주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절정에 달할 때쯤, 준혁을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그러다 여기 선배님께 구함을 받아 살아난 것이네.”

    태식의 손짓에 성문을 지키던 사내는 준혁을 보고 새삼스레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는 마치 태식 옆에 누가 있다는 걸 몰랐다는 듯 ‘아!’ 소리를 내며 넙죽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희 못난 사형을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로 시간이 되신다면 제가 선주를 들고 찾아가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준혁이 수행을 드러내지 않아 전혀 예상하지 못하다가, 선배란 말에 갑작스레 친근한 척 가까이 다가왔다.

    손을 싹싹 비비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예끼. 이 사람아. 자네 수작을 모를 줄 아는가? 실력이 있는 선배라고 하니 어떻게든 연을 만들려고 하는 게 꼭 큰 사형을 닮으려고 하는구먼.”

    “들켰습니까?”

    “선배님은 바쁘신 분이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은 어디 계신가? 선배님이 뇌명숲을 건널 수 있게 도와드리려는데.”

    태식이 나무라자 그의 사제는 준혁을 보며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그러다 스승을 찾는 말에 성문 너머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다! 사형이 없는 사이에 큰일이 있었습니다!”

    “큰일이라면?”

    태식의 사제는 곧바로 말을 꺼내려다 흠칫하고 멈춰 서더니, 준혁의 눈치를 보고는 전음을 보냈다.

    -뇌명숲과 불타는 사막 경계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지금 그 일로 함께할 수사들을 구하느라 바쁘십니다.

    -유적이 발견된 것이라면 그 안에 보물이 적지 않을 것인데, 어찌 외부 사람들을 구한단 말이야?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문(門)에서는 스승님과 사숙 두 분만이 함께한다고만 합니다.

    ‘유적이라, 그러고 보면 유적에서 얻은 것이 적지 않았지.’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척하며 두 사람의 전음을 엿들은 준혁은 용천무의 날개와 전함, 그리고 명혼단 등 유적에서 얻은 보물들을 떠올렸다.

    물론 고의가 아닌, 초팔의 초감각이 자연스럽게 전음을 엿듣게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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