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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6화 (246/408)

246화. 다시 만난 인연 (2)

“정말입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정, 정말…. 요마궁의 은신처를 오갈 수 있단 말입니까? 수사께서는?”

주변의 기세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온풍마저 감도는 듯 보이자, 준혁은 비어버린 찻잔을 달그락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학고응은 어느덧 평정을 찾고 고요한 눈빛으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어쩐지…. 비밀을 꺼리지 않고 말씀하시는 연유가 궁금했는데. 그 방법이란 것이 절대로 남이 알아낼 수 없는 것이겠군요.”

만약 법기나 술법 같은 것이었다면, 빼앗고 살인멸구 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학고응은 준혁의 진짜 의도가 궁금했던 것.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방법이란 것을 절대 남에게 빼앗기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기에 비밀을 발설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학고응의 생각에 긍정을 표하듯, 준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상단 분이라 눈치가 제법이십니다.”

어느새 학고응의 태도는 처음과도, 좀 전과도 달라져 있었다. 마치 딴사람이 된 것처럼.

“좋습니다! 거래하겠습니다. 헌데 그 방법이란 것을 지금 확인해볼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하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 밑천을 꺼내놓으면 거래가 성립이나 되겠습니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학고응이 말을 이어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정 껍데기 세 개를 가져오면 적지주의 정보를 주겠다는 거래에 더해, 요마궁을 드나드는 방법과 더 많은 수정을 가져다주신다면! 수사가 원하는 비술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수사, 계산이 틀렸습니다.”

준혁이 바로 딴지를 걸었다.

“틀리다니요?”

준혁은 공간대에서 수정 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이것의 가치가 종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몰랐다면 모를까. 거래 내용이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말씀해 보십시오.”

준혁의 발언이 타당하다고 여긴 것인지, 아니면 우선 말이나 들어보자는 것인지, 학고응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눌렀다.

“뒤에 성립한 거래는 화신체의 비술의 가치가 높으니 그대로 진행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적지주에 수정 세 개는 과한 감이 있지요.”

“따로 원하는 게 있다는 말입니까?”

탁-

준혁은 나머지 수정마저 꺼내서 두 개의 수정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비승한 후 요마궁에 잡혀있었기에 이곳의 거래에 대해 무지합니다. 수사께서 적절한 보상을 덧붙여 준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준혁은 상대방에게 모든 권한을 넘겼다.

그리고 그건 그의 노림수였다.

‘적절한 보상’, 그것만큼 어려운 단어가 있을까?

학고응은 지금의 거래가 후일 이어질 두 번째 거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걸 고려해야 했다.

막말로 정보가 드러난 이상, 준혁이 다음 거래에 또다시 응해준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마정 껍데기와 요마궁을 드나들 수 있는 방법. 그것들을 가지고 다른 거래처를 찾아 떠나버린다면 그때 가서 후회한들 소용없을 테니까.

“수사,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수정 하나당 영석 만 개를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영석이란 단어에 준혁이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영석이라…. 당장 관심이 갈 만한 것은 아니군요. 영석이라면 저도 충분하니.”

물론 하계에서 가져온 최하품이란 말은 꺼내질 않았다. 그리고 동요문과 구로반을 처리한 후 수거한 것들도 있어, 충분하단 말이 틀리지도 않았다.

“흠. 그렇다면 상단에서 판매하는 법기로….”

“그러지 말고 저에게 알려주실 화신체 비술, 그중 일부분만 제가 확인하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술을 말입니까?”

학고응의 눈이 커지자, 준혁은 빠르게 손을 저었다.

“아주 일부분 말입니다. 저도 수사께 말로만 들었지, 존재 여부를 확인하진 못하지 않았습니까? 저와 다르게 비술이라면 그 일부분만 알려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흐음….”

“그리고 기왕 꺼내신 거. 영석도 주신다면 크흠.”

잠시 후, 몇 번의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은 서로 만족하는 거래를 끌어냈고, 학고응은 옥으로 만든 팔찌 하나를 준혁에게 건넸다.

“그럼 수정을 더 구한 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일련의 거래가 마무리되자, 공간 팔찌를 건네받은 준혁은 다음을 기약하며 유유히 대흑산을 떠나갔다.

그리고 준혁이 떠나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학고응은 허공을 향해 전음을 날려 보냈다.

-매, 지금 보고들은 모든 것을 상단주께 그대로 보고해 주게.

-알겠습니다.

그 순간 그림자처럼 음영이 져 있던 2층 천창 구석에서 검은 무언가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재밌는 자가 나타났구나, 겨우 연형기에 불과한 자가 그리도 대담하게 행동하다니. 아마 요마궁을 드나드는 방법으로 나에게서도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과연 다음에 만날 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학고응은 창문 너머 검게 그을린 듯한 소나무를 응시하다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준혁과 통신했을 때 썼던 반투명한 옥패와 똑같이 생긴 것을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잠시 후, 반투명한 옥패가 어딘가에 연결되기 위해 영기 파동을 흩뿌리던 순간.

-어? 학고응 수사가 웬일이죠? 남운상단과는 당분간 거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호랑 수사. 흐흐.”

-왜 음흉한 노인네 같은 웃음소리를 내요? 기분 나쁘게.

“수사가 혹할 만한 정보가 있는데…. 혹? 구매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

“다행히 별일 없었군.”

대흑산을 떠나온 준혁은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날아가며 조금 전 거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연형기 수행이라 힘에 겨운 척 연기했지만, 상대가 손을 쓰려는 순간 바로 영역을 발동하기 위해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었다.

특히 건물 내부에 숨어있던 세 명의 수사는 수행이 흐릿하게 느껴져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분명 고위 수사는 아니었는데, 특수한 공법을 익힌 건가?”

자신보다 수행이 떨어지는 건 분명했지만, 수행이 완벽하게 읽히지 않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치 남들이 자신의 수행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다행히 학고응이 강도로 돌변하지 않았기에 아무 탈 없이 거래를 끝마칠 수 있었지만, 만에 하나 그곳에서 전투가 진행되었다면, 수행을 파악할 수 없던 세 명의 존재는 큰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잠시 후 대흑산과 꽤 멀어졌다고 여긴 준혁은 조각배 모양의 비행법기를 꺼내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학고응에게서 받은 공간팔찌 안을 확인했다.

그 안엔, 예전에 사용했던 통신 옥패보다 한층 정교하게 만들어진 옥패와 옥간 두 개, 그리고 영석 삼만 개와 ‘남운’이라 적힌 나무패가 담겨있었다.

나무패는 남운상단의 중요고객임을 알리는 신분패였고, 두 옥간 중 하나는 화신체의 비술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적지주의 정보였다.

“우선….”

그중 옥간 하나를 꺼내든 준혁은 그 안의 내용을 곱씹는 듯 이마에 댄 채 눈을 감았다.

“뇌명숲과 전왕문이라.”

옥간엔 적지주의 위치가 담겨있었는데, 그곳은 흑석대륙과 주운대륙 사이에 존재하는 뇌명숲이란 곳이었다.

“우선 전왕문으로 가는 것부터가 시작이겠군.”

뇌명숲은 일반적인 숲과 달라서 통과하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고, 그 방법은 전왕문을 통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준혁은 옥간을 공간대에 집어넣고는 다른 옥간을 꺼내려 했다.

이제 자신을 한 단계 더 올려줄 비술을 확인할 차례.

그때, 쾌속하게 이동하는 준혁의 귓가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선배님!! 저는 전왕문의 태식이라 하옵니다!! 저 좀 살려 주십, 우왁!”

기감으로 살펴보니 멀리서 누군가 허둥지둥 날아오고 있었고, 그 뒤를 화신기 수사 셋이 바짝 쫓고 있었다.

‘전왕문?’

마침 그곳으로 가야 했기에 준혁은 비행 법기를 멈춰 세우고 쫓고 쫓기는 자들을 천천히 살폈다.

‘마침 잘됐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그러길 잠시.

살려달라 외치던 자는 준혁이 멈추어 선 걸 확인하더니 전심전력으로 날아와, 곁에 도착한 후 죽을 듯 숨을 내몰아 쉬었다.

“후욱후욱, 선배님 가, 감사합니다! 저는 전왕문의 괴진단 소속인 태식이라 하옵니다! 후욱,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이자. 생김새가….’

곁에 다가와 숨을 몰아쉬던 태식이라는 사내의 외모에 준혁은 잠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쇄액-

“흥! 머저리 같은 놈! 도망간다는 것이 겨우 연형기 애송이란 말이냐! 오늘 반드시 죽여주마!”

그 순간 쫓아오던 자 중 하나가 단창 두 개를 쏘아 보냈고, 번개처럼 움직인 단창은 당장이라도 태식이라는 수사와 준혁을 꿰뚫어버릴 것만 같았다.

연형기라는 말에 쫓기던 태식의 눈이 휘둥그레지려는 찰나.

넷을 주시하고 있던 준혁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쉬익-

그러자 날아가던 단창 두 개가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준혁의 손에 날아가 안착했다.

탁-

동시에 준혁의 발끝에서 금빛 실이 소리 없이 뻗어나가더니 태식이라는 수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발끝까지 당도했다.

“얘길 들어보려 했더니, 듣지 않아도 알겠구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살수를 펼치다니.”

그제야 세 명 중 단창을 집어 던진 자가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서, 선배님이십니까?! 저, 저는 몽교 출신…!!”

“이제 와서 말인가?”

스걱- 툭-

그 순간 소리 없이 나타난 푸른 단검이 사내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고, 수행에 걸맞지 않게 사내는 너무 쉽게 목과 몸이 분리돼 버렸다.

그리고 목이 잘린 순간 발끝에 닿아있던 금빛 실이 그물처럼 퍼지며 도망가려던 원영을 포획해 버렸다.

“마, 말도 안, 에잇!”

“빌어먹을!”

세 명 중 무리를 이끌었던 자가 단숨에 죽어 나가자 두 명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둔광을 일으키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퍼져 달아났다.

약속하지 않았어도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살아남자는 듯이.

그때, 살았다고 안심하던 전왕문 출신 사내가 빛무리를 일으키며 도망간 두 명 중 한 명을 쫓기 시작했다.

“선배님! 한 놈은 제가 막아두고 있겠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찾는 그를 보며 준혁은 피식 웃고는 가볍게 몸을 날렸다.

***

“선배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보는 눈이 있었기에, 천혈을 불러 마무리를 하지 못한 준혁은, 몽교(夢敎) 수사라던 세 명의 원영을 금빛 실로 봉인했다.

그리고는 그들의 공간팔찌만 따로 챙겨 전왕문 사내를 비행법기에 태워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기질이나 생김새가 똑같구나….’

자기소개를 신나게 주절거리는 상대를 보며 준혁은 전혀 다른 인물을 떠올리고 있었다.

설악산에 입문할 때 스치는 만남을 가졌고, 후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 후 연구소의 시체로 준혁 앞에 나타났단 그.

눈앞의 태식이라는 전왕문의 화신기 수사는 그때 만났던 오태식이라는 연기기 수사와 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하물며 이름이나 특기마저 비슷했다.

“선배님께서도 뇌명숲을 지나기 위해 저희 전왕문으로 가시는 것일 테지요?”

“그렇네.”

“역시! 그렇다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니지! 제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당연히 도와드리는 게 사람의 도리입죠!”

상대는 전왕문에서 진법을 연구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진법을 연구하던 중 몇 가지 재료가 부족해 수하들을 이끌고 채집을 나왔다가, 몽교의 수사들에게 기습을 당했다고 했다.

‘진법이 특기인 것까지 같다니….’

몽교는 전왕문처럼 흑석대륙과 주운대륙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종교 색채를 띤 종문이었는데, 뇌명숲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전왕문을 항상 눈엣가시처럼 여겨 지금처럼 종종 기습을 가하는 때가 많다고 했다.

다만 평소엔 원영기 이하 하급 수사들만 공격했기에, 태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한 것이라 했다.

상대방이 예전에 만난 그처럼 아는 바를 줄줄 늘어놓는 수다형인 걸 파악한 준혁은 혹시나 그의 환생은 아닐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것이 있네.”

“무엇이든 하문하십시오! 아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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