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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4화 (244/408)
  • 244화. 되찾은 법기

    흑마지를 벗어난 준혁은 단숨에 흑석대륙의 경계까지 날아갔다.

    몇몇 마족 무리를 마주치긴 했지만, 전부 화신기와 연형기급 수사들로 이뤄진 무리. 그들은 준혁의 일초지적도 되질 못 했다.

    덕분에 흑석대륙에 근접했을 때쯤엔 천혈은 완벽하게 회복해 아마르곤에게 힘을 전달해주기 전으로 돌아온 후였다.

    거기다 암흑마기 때문인지 흑마자는 준혁이 지나가면 나타나기가 무섭게 달아나 버렸다.

    “후아…. 좋구나.”

    어느새 흑석대륙에 도착한 준혁은 영기를 호흡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일인지를 새삼 깨달으며, 적당한 곳에 은신처를 마련했다.

    거무튀튀한 암석과 회색 돌들이 뒤죽박죽인 땅 깊이 파고들어 가, 외부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게 소규모 영역으로 완벽히 주변을 차단한 후.

    혹시나 대막리를 비롯한 위선경 이상 수사들이 눈치챌까 싶어, 진법으로 입구를 보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야 공법을 운용하며 원영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융화의 힘으로 암흑마기와 영력이 조화를 이뤘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암흑기로 가득했던 공간에서의 일.

    그 균형이 깨지질 않나 살피고, 더불어 용천무가 남긴 ‘왕의 정수’도 확인해야 했다.

    비늘과 발톱들을 연화시키는 데 성공해, 왕의 정수라 생각되는 힘을 얻긴 했지만, 정확히 어떤 힘인지, 발동 조건이 무언지도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모르겠군, 분명 영역과 관련된 힘인 건 분명한데. 설마 발동 조건이 있는 건가?”

    그렇게 며칠 간의 정비 기간을 가진 준혁은 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왕의 정수를 움직이는 건 포기했다.

    그리고는 공간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동시에 수결을 맺자, 옥패가 빛을 발하며 껌뻑거리기 시작했다.

    “흠. 설마 너무 시간이 지나 연락망이 사라진 건가.”

    빛을 발하는 반투명한 옥패.

    그것은 남운상단의 학고응에게 받은 연락용 통신 법기였다.

    설명에 따르면 몇 개의 대륙을 건너뛸 정도가 아니면 어디에 있든 연락이 닿아야 정상이었다.

    그때, 점멸을 반복하던 옥패가 허공에서 직각으로 바로 섰다.

    스아아-

    직후, 옥패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며 오래전 본 적 있던 사내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내의 형상은 마치 새로운 세상에 눈뜬 것처럼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준혁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수사! 살아계셨군요!

    “오랜만입니다. 학고응 수사.”

    옥패에 의해 수박만 한 크기로 투영된 학고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준혁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다들 수사가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호랑 수사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십니까?

    자신을 챙겨주었던 그녀를 떠올리며 준혁은 피식 웃고는 말문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되도록 저에 대해 함구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째서? 조호랑 수사가 단번에 달려올 텐데…. 크흠. 하긴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지요. 상단에 몸이 매인 저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수사가 원치 않는다면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 되는 겁니다. 상인의 신용을 걸고 지켜드리겠습니다. 저야 거래만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니까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유난히 말꼬리를 늘이는 상대가 미심쩍었지만, 준혁은 그의 말에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준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백 년이나 지났으니 적지주의 정보는 확보하셨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수사께선 제가 말한 회색 수정을 구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준혁과 그 모습에 화색이 만연해진 학고응.

    -그럼 개수는….

    “하늘이 도왔는지, 수사께서 원하는 수량을 겨우 맞출 수 있었습니다.”

    -오! 세상에! 수정을 세 개나 구했단 말입니까? 수사! 지금 어디에 계신 겁니까?!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그럴 능력만 있었다면, 학고응은 당장이라도 순간이동을 해왔을 정도로 들뜬 얼굴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다만 크기는 수사가 말한 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괜찮습니까?”

    말을 하던 준혁은 공간대에서 마정의 껍데기 중 가장 작은 걸 꺼내 학고응이 자세히 볼 수 있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것도 감지덕지인 듯 학고응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충분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렇습니까? 그럼 만날 장소를 정하시지요. 대륙 남부 쪽에서 보았으면 합니다.”

    -남부라, 흠, 그럼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예전 저를 만났던 곳에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대흑산 이라는 거대한 산이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보도록 하시죠?

    준혁은 수행만 올라갔지, 선계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장소를 상대에게 정하게 하는 것 자체가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도록 하지요.”

    - 어디 계신지는 모르나, 저는 석 달 안에는 도착이 가능할 듯합니다. 수사께선?

    “저는 수행이 부족해 좀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군요. 최대한 빨리 닿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잠시 후, 만족한 표정으로 학고응의 환영이 사라지자, 반투명한 옥패가 힘을 잃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

    대천경 수사이자 천휴림의 세 번째 제자위에 올라있는 대막리.

    그리고 그런 그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 교휴.

    교휴는 햇빛이 들어오는 석실에 앉아 공법을 운용하는 중이었다.

    조용한 석실에 앉아 햇빛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것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 중 하나였다.

    정확히는 그녀가 익힌 공법이 빛을 받아들이며 수행을 올리는 것이라 그런 것이기도 했다.

    “심심하네, 조호랑 그 꼬맹이가 떠나고 나니 쫑알거리는 상대도 없고.”

    기나긴 공법 수련 시간이 끝나고 상념에 사로잡힌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며 석실 내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가볍게 젓자, 석실 벽에 일렬로 나열된 반원구 형태의 보호막 중 하나에서 짧은 단검 하나가 날아와 그녀 손에 잡혔다.

    “분광소…. 이게 소문의 그 마선이라니. 스승님만 아니면.”

    마선과 계약할 수만 있다면 막혀있는 수행이 폭발적으로 상승할지도 모르는 일.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단검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이곳에서 수련을 지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100여 년 전 하계에서 비승한 인족에게서 빼앗은 마선들 때문.

    예상대로 마선들을 가지고 왔던 인족이 죽었음에도 그들의 봉인은 풀리질 않았다.

    그들과 계약은 하지 않더라도 봉인은 풀고 싶던 교휴는 그날 이후 항상 이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선에게 관심을 두는 그녀의 행태를 스승인 대막리가 못마땅해하긴 했으나, 그도 은연중 봉인은 풀고 싶었는지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슨 방법인지 알 수가 없다니, 역시 그 인족 놈을 어떻게든 구했어야 했나….”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녀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흑마지의 폭발로 스승인 대막리조차 몸을 빼내려고 했던 상황. 약하디약한 연형기 인족이 그 안에서 살아나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한참 동안 군침을 흘리며 분광소에 이것저것 시도하던 교휴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결국 스승이 만들어 놓은 ‘감옥’이라는 보호막 안에 마선을 돌려놓으려 손짓했다.

    부르르-

    그때, 지금껏 죽어있는 듯 아무 반응 없던 분광소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진동이 시작된다 느낀 순간.

    파앗-

    허공을 통과하듯 공간을 찢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뭐, 뭐야!”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쾅-

    콰쾅-

    분광소를 제외하고도 귀원패와 인지경이라 불리는 마선 법기들이 반원구 형태의 감옥 안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하기라도 하려는 듯.

    교휴는 요동치는 두 법기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감옥은 아무런 미동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인족 놈에게서 빼앗은 것들만!”

    당장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교휴는 손가락을 교차해 고리처럼 만들더니 그 사이로 입김을 불어 넣었다.

    후훅-

    그러자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온 입김이 화살처럼 변하더니 석실을 뚫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사이, 귀원패와 인지경의 요동은 점차 심해졌다.

    쾅- 쾅-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그놈이 흑마지에서 살아온 건 아닐 테고! 왜 이것들만!”

    잠시 후, 감옥이라 불리던 반원구 형태의 장막이 금이 가더니, 당장이라도 깨어져 나갈 듯 위태위태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의 대응이 신속했기 때문일까.

    어느새 문을 열고 나타난 대막리가 주변을 훑어보더니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별빛 같은 어스름이 쏟아져 감옥의 깨어진 부분들을 다시 수복해 버렸다.

    ‘역시 스승님의 성운지력은 정말 탐나는 능력이야. 마선들을 이렇게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니.’

    마선들만 발견하면 문답무용으로 공격하는 대막리를 법문이나 선마궁에서 가만히 두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천휴림의 제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긴급한 상황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는지, 대막리는 제자를 향해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저도 모르겠어요. 평소처럼 봉인을 풀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 중이었는데 갑자기….”

    그제야 감옥 중 하나가 열려있다는 걸 파악한 대막리.

    “분광소는?”

    “그, 그게…. 누군가 소환한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렸어요.”

    소환이란 말에 대막리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설마, 그 인족 놈이 살아난 걸까요? 그래서 그가….”

    생각에 잠겨있던 대막리는 제자의 허황된 상상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그놈이 흑마지에서 살아남았을 리도 없지만, 겨우 연형기 수행에 내 영역을 뚫고 이것들을 불러낼 수 있을 리 없지. 게다가 보지 않았느냐? 성광지력으로 만든 감옥이 반파되는걸.”

    “그럼 어떻게….”

    성광지력을 사용하는 자신에게 대놓고 이빨을 드러낼 만한 이가 누가 있는지 생각하던 대막리는 선마궁에 살고 있는 괴물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가 움직일 리 없지.’

    겉으로 볼 때 마선들은 단단히 뭉쳐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는 동맹체나 다름없었다.

    영원불멸하기에 생명에 운운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동료의 죽음에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도대체 누가….”

    그때였다.

    콰콰쾅-

    안정되는가 싶던 귀원패와 인지경이 폭발하듯 요동치며 감옥의 막을 두들겼다.

    그리고는 지금껏 반항은 애교였다는 듯이, 서너 번의 부딪침만으로 막을 부수고 탈출해 버렸다.

    콰앙-

    “감히!!”

    그 순간 대막리가 재빠르게 손을 저어 별빛을 뿌렸지만,

    스윽- 팟-

    두 법기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후였다.

    ***

    대막리가 펼쳐둔 영역의 바로 근접한 곳.

    과도한 힘을 소모한 듯, 준혁은 안색이 파리해진 상태로 인지경과 귀원패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군.”

    정확히 어떤 원리로 마선들을 제압해둔 건지는 몰랐지만, 식검과 연결된 끈을 최고조로 자극한 후에야 겨우 법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만약 처음 계획대로 대륙을 벗어나기 직전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환을 시도했다면, 미세한 차이로 실패할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만 지금 준혁이 위치한 곳은 대막리와 너무 근접해 있었다.

    “이제 학고응에게 가볼까.”

    서둘러 법기를 수납한 준혁은 곧바로 용천무의 날개를 꺼내 공간을 비집고 숨어들었다.

    스르륵-

    그리고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보여주듯, 대막리의 영역이 더 넓어지며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준혁은 몸을 빼내 버린 후였다.

    당연히 대막리는 작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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