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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2화 (242/408)
  • 242화. 소천경(小天境) (3)

    “누, 누구십니까?! 아, 아니. 그전에 도대체 어떻게 그 안에서 나올 수가!”

    갑작스러운 고위 수사의 등장에 마족 무리의 대장 격이던 사내가 말문을 열었다.

    동시의 그의 등 뒤로 살기를 줄줄 흘리는 전영이 나타났다.

    다른 이들도 시간 차는 있었지만, 각자의 전영을 불러낸 뒤, 흑마지에서 나타난 고위 수사를 향해 경계심을 비췄다.

    “질문은 내가 했을 텐데?”

    하지만 그들의 태도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위 수사는 냉랭하게 대꾸하며 가볍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커억!”

    질문을 던졌던 새끼 뿔이 난 사내가 발버둥 치며 고위 수사 앞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마족 놈들이란, 기회만 보이면 수작질을 펼치려 드는구나.”

    끌려가던 사내를 막아서려던 나머지 세 명의 마족은 고위 수사의 말에 움찔하더니 황급히 멀찍이 물러섰다.

    -다들 멈추고 물러납시다!

    흑마지가 감시구역이었던 만큼, 주변에 보호 결계가 쳐져 있었고, 이들은 고위 수사 몰래 그것을 발동하려 했었던 것.

    하지만 아무리 은밀했다고는 하나, 겨우 화신기에 오른 네 명의 행동이 그에게 들키지 않을 리 없었다.

    잠시 후. 치렁한 머리를 가진 사내가 가장 빨리 멀어진 후, 버럭 외쳤다.

    “이곳은 요마궁의 부궁주이신 비브란님이 관리하시는 곳입니다! 수사께선 허락도 없이 요마궁의 관리구역에 몰래 숨어들. 커억!”

    요마궁의 이름을 팔면 안전할 거라 생각했던 사내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암흑기가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을 옥죄자, 첫 사내가 왜 그렇게 쉽게 무력해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암흑기를 자유자재로!”

    두 번째 사내 역시 무언가에서 벗어나려는 듯 발버둥 치더니, 두둥실 떠올라 고위 수사에 끌려갔다.

    그러길 잠시, 두 마족은 찌그러진 찰흙처럼 고위 수사 등 뒤에 소환된 전영에 손에 붙잡혀 버렸다.

    “감히!!”

    그때 허공 한쪽에서 무언가 번쩍 움직였다.

    콰르릉- 쇄애액-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린 무언가는 순식간에 검은 삼지창으로 변했고, 그것은 정확히 흑마지 위에 서 있던 고위 수사의 얼굴을 향했다.

    쉬익-

    하지만 고위 수사가 고개를 까딱 움직이자, 삼지창은 제 역할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를 스쳐 지나가더니 번쩍하고 모습을 감췄다.

    “감히! 비브란님의 관리구역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놈이 있다니, 나, 비욘사라가 용서치 않겠다!”

    삼지창이 뿜어대던 기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쯤, 허공엔 늘씬한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을 입은 흑발의 여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수사는 옅은 보라색 피부를 가진 마족 수사였는데, 얼핏 보기에도 고위 수사에게 전혀 밀리지 않아 보였다.

    ***

    ‘소천경 수사로군.’

    흑마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사내. 준혁은 새롭게 나타난 이를 보고 수행을 단번에 파악했다.

    이제 소천경에 이른 자신과 달리, 상대방에게선 묵직한 기세가 느껴지는 걸 보면 조금 더 수행이 높은 자로 보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앞서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대가 나타났음에도 준혁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입가에 살짝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난동을 부리다니, 저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그럼 이곳에 네놈이 아니면 누굴 말하는 거겠어?!”

    어느새 십여 미터 지척까지 다가온 마족 여수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준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준혁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근데 넌 누구지? 전영을 보면…. 전마족인 것 같은데. 뭔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익힌 전영술 때문인가?’

    하계에서 얻은 전영술이 전마족의 술법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의문을 가진 것 같았다.

    사실 준혁은 혈맥의 힘을 발동해 영수족으로 변했던 것처럼 암흑마기를 이용해 신체를 변화시킨 상태일 뿐이었다.

    장시간 끈적거릴 정도로 짙은 암흑기 안에서 버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저 궁금한 게 있어 말을 걸었더니, 수하분들이 장난질을 하려 하더군요. 그러니 난동이란 말은 맞지 않습니다.”

    “비욘사리님! 저자는 흑마지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준혁에게 구속당하지 않은 두 명 중 한 명이 급하게 소리치자, 비욘사리라 불리던 여수사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치켜떴다.

    “흑마지에서 나왔다고? 어떻게?”

    “그건 저희도….”

    “그 안은 부궁주께서도 뚫지 못할 정도로 결계막이 강화된 상태였는데…. 어이, 거기 정말인가?”

    여수사의 질문에 준혁은 별것 아니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랬기에 밖으로 나온 후 궁금한 걸 물었더니 수하분들이 다짜고짜 저를 공격하려 하더군요.”

    “......너.”

    “그래서 다시 묻겠습니다. 원래 이곳에 있던 이들은 어딜 갔습니까?”

    여수사는 생각을 방해받아 인상을 찌푸리다가, 준혁의 질문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반문했다.

    “원래 있던 자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쭉 우리 요마궁의 구역이었다. 너는 누구를 말하는 거지?”

    ‘그때 마족과의 전투가 진행되려는 듯하더니…. 전쟁으로 번졌나 보구나.’

    “그럼 천휴림의 세 번째 제자인 대막리. 그는 어떻게 됐습니까?”

    준혁의 말이 끝나자 삽시간에 주변에 침묵이 찾아왔다.

    전영에 붙잡혀있던 두 마족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나머지 마족도. 거기다 상황을 판단하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수사도.

    잠시 후, 무언가를 깨달은 듯 여수사가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너. 설마. 100년 전 대막리와 함께 온 동료인가?”

    ‘100년? 설마 내가 수련하는 동안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단 말인가?’

    내부로 침잠한 채, 조화를 이끌어내는 데 겨우 몇 년 정도 걸린 거라 여겼다.

    ‘허어…. 백 년이라니….’

    “대막리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게 벌써 백 년이나 지났단 말입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 요트람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도 같다! 그때 누군가 흑마지에 들어선 자가 있!! 그렇구나!! 다들 지괴수순(地怪收馴)을 밟아라!!”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을 하다 말고 손뼉을 짝하고 맞댄 여수사가 소리쳤다.

    그러자 준혁에게 잡히지 않았던 두 마족이 검은 구슬을 뱉어내더니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준혁이 그 모습을 무심한 듯 바라보는 사이, 그의 전영에 잡혀있던 마족들도 입을 벌려 검은 구슬을 뱉어냈고, 그것들도 허공으로 치솟더니 나머지 구슬들과 하나 되었다.

    쿠우웅-

    그 순간 허공에서 부딪친 구슬에서 광대한 마기가 퍼져나가더니 주변 일대를 완벽하게 감싸버렸다.

    그리고 그에 맞춰 여수사는 기이한 동작으로 손을 비틀다가 마지막에 허공을 찌르며 외쳤다.

    “영역 발동!”

    파앙-

    잠시 후, 주변 일대를 감싼 마기의 질이 변하더니 엄청난 중압감과 함께 몸을 구속하듯 강렬한 인력을 발생시켰다.

    준혁이 가만히 있는 동안 모든 과정을 마친 여수사는 얼굴 가득 만연한 웃음을 지었다.

    “네놈이 백 년 전 흑마지에 들어간 놈이라면 분명 흑마지의 변고와 관련 있을 터! 사실을 말하기 전엔 살아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위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상대의 수행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던 준혁은 기다리던 일이 벌어지자, 여수사와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 짧게 읊조렸다.

    “영역 선포.”

    파앙-

    그 순간 준혁을 중심으로 작은 구형의 공간이 압축 팽창을 거듭하는가 싶더니 여수사가 만든 영역 크기만큼 범위를 넓혀갔다.

    상대는 준혁의 영역에서 느껴지는 힘이 보잘것없다 느꼈는지, 코웃음을 치며 복잡한 수인을 맺더니 짧게 합장했다.

    그러자 그녀의 손짓에 따라 영역으로 뒤덮인 공간 곳곳에서 대나무처럼 길쭉하게 생긴 괴생명체들이 자라나더니 순식간에 주변을 완벽하게 에워싸 버렸다.

    ‘영역의 분신은 위선경의 능력일터인데, 특수한 결계의 도움을 받았구나.’

    상대가 같은 소천경 수사인 자신을 얕보듯 행동했던 이유를 대충 이해한 준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위선경의 능력과 같은 수준은 아닐 테지만, 동급 수사와의 대결에서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수단을 보유한 건 맞았다.

    물론 일반적인 소천경 수사와의 대결이라면 말이다.

    ‘허나 과연 나에게 통할까?’

    쿠웅- 부우욱-

    그 순간, 상대의 영역의 힘이 발동하며 준혁의 온몸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모든 수사가 공통으로 사용 가능한 영역의 가장 기본적인 공능인 중력 조절과 공간 압박이었다.

    “흐음…. 제법입니다.”

    준혁은 몸을 짓누르는 힘을 가볍게 해소하며 상대를 비꼬듯 칭찬했다.

    대천경인 대막리의 영역에 비한다면, 정말 미약하기 그지없는 힘.

    그녀의 영역은 상대의 의지를 온전히 침범할 수준이 못 됐기에, 준혁으로서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상대 영역의 간섭을 밀어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여인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맛살을 찌푸리며 손을 지휘하듯 휘저었다.

    “이익!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러자 대나무처럼 생긴 괴생명체들이 우르르 개미 떼처럼 움직여 준혁에게 쇄도했다.

    “물량만큼은 대단하구나.”

    대나무 괴생명체는 수백 수천이라 말하기가 힘들었다. 크기도 작고 매우 얇은 몸을 가진 것들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였기에 말 그대로 떼거지였다.

    “가히 보기 좋진 않군.”

    점점 가까워지는 괴생명체 때가 비위를 상하게 만들자, 더 이상 구경은 끝났다는 듯 준혁은 발끝으로 가볍게 바닥을 가격했다.

    투웅-

    그 순간. 준혁의 발끝에서 금빛 뭉텅이가 발생하더니 이내 수백 가닥의 금빛 실로 변해 거미줄처럼 영역이 선포된 공간을 뒤덮기 시작했다.

    스스스-

    그리고 퍼져가던 금빛 실의 ‘영역’ 안에 괴생명체들이 발을 들이민 순간.

    츠파파팟-

    괴생명체들이 급속도로 쭈글쭈글하게 변하더니 한 줌 핏덩이로 변해 버렸고, 금빛 실로 이뤄진 바닥에 철퍼덕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증발하듯 흡수돼 사라져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그 모습에 여수사를 비롯한 네 마족이 경악을 터트리는 사이.

    두둥실-

    괴생명체가 자리했던 모든 곳에 붉은 기류가 피어오르더니 허공에 붉은 구슬을 만들어냈다.

    금빛 실로 흡수됐던 핏덩이가 정제과정을 거쳐 순수한 기운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혈정단은 오랜만이군.’

    준혁의 영역의 힘.

    그건 혈단법을 이용해 살아있는 생명체를 혈정단으로 만들어버리는 공능이었다.

    지금껏 준혁이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인 것도 그것 때문.

    준혁이 가진 영역은 천혈과 식검의 힘을 바탕으로 한 혈단법에 기초를 두고 있었고, 생명체에겐 극악한 상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역의 의지에 저항하지 못한 순간, 생명체라면 한 줌 핏덩이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 한 수만에 격차를 깨달았는지, 여수사가 둔광을 일으키며 영역 밖으로 몸을 날렸다.

    쿵-

    하지만 영역이란 건 소규모 결계와도 같은 것.

    자신의 힘으로 상대의 의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못한 이상, 물질화돼버린 영역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뚫어야만 했다.

    쿵-

    “깨져라!”

    여인은 각종 법기와 술법으로 영역의 막을 강타했다.

    그 모습에 준혁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허공을 움켜잡았다.

    “수하들은 버려두고 가시렵니까?”

    직후, 준혁의 손짓에 따라 전영에게 잡혀있던 두 마족이 찌그러지더니 몸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금빛 실로 흡수돼 버렸다.

    “살려줘!!”

    마족 사내들은 화신기에 올라 준혁과는 겨우 한발 차이였지만, 그 차이는 가히 하늘만큼이나 컸다.

    그리고 나머지 두 마족 사내도 금빛 실에 닿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피하다가 결국 영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으아아악!”

    그 후론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 녹아 사라질 뿐이었다.

    잠시 후, 거세게 영역을 뚫기 위해 발버둥 치던 여인이 절망에 찬 표정으로 준혁을 응시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듯 눈빛에 악이 가득 차 있었다.

    “살려주세요! 저를 죽인다면 비브란님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거예요!”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결국 생명을 구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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