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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1화 (241/408)
  • 241화. 소천경(小天境) (2)

    아마르곤의 말은 합리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넙죽 받아들일 순 없었다.

    그는 준혁이 몸을 빠르게 회복한 후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준혁은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천경에 오른 후에야 간신히 안정적으로 방어를 하고 있는 암흑마기를 완영기의 아마르곤이 받아들인다면 그 말로는 뻔한 일.

    암흑마기에 잠식당해 마족화가 진행될 건 자명했고, 그 후엔 완벽하게 침식당해 커다란 진마정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돼버릴 수도 있었다.

    준혁이 절대 안 된다는 듯 거듭해 거절하자, 아마르곤의 감정이 파도처럼 다가왔다.

    -수사, 수사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다면 이게 최선입니다.

    결국 준혁은 속마음을 꺼내고 말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아마 제 몸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수사는….’

    -수사의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허나 최악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사를 저버리는 것이 저에겐 최악의 선택…!! 이런!’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려는 아마르곤에게 단호하게 얘길 꺼내던 준혁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정신을 외부로 돌렸다.

    그리고는 터질 듯 부푼 공간대를 볼 수 있었다.

    부풀어 오른 공간대의 입구에선 암흑마기가 줄줄 새어 나와 몸으로 흡수되는 중이었다.

    ‘마정!!’

    몸이 안정을 되찾아가며 암흑마기의 양이 점차 줄어들자, 외부와의 기압 차가 발생했고, 그 영향으로 공간대 안에 보관해 두었던 마정이 반응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공간대란 공간이 분리된 것이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야 했지만, 준혁이 가진 암흑마기가 이상 반응을 끌어낸 것 같았다.

    재빠르게 수결을 맺어 무영기로 공간대를 감싸버린 준혁은 이미 빠져나온 암흑마기가 온전히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도록 영역을 발동해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런 임기응변에도 암흑마기는 꾸준히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원인은 고도로 응축된 자신의 암흑마기 때문. 그건 아직 준혁의 능력으론 완벽하게 조종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급박하게 대처하는 준혁에게 또 한 번 아마르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수사!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

    -항상 냉정하게 판단하시던 분이 어찌 정에 휘둘려 일을 망치시려는 것입니까? 그리고 설마 저를 다시 구할 자신이 없으신 겁니까? 수사!!

    그 순간, 신체는 또 한 번 변화를 일으켜, 이마에 30cm가 넘는 뿔이 자라나고, 두 눈에 보랏빛 광망이 비치기 시작했다.

    ‘하아….’

    상황이 점점 안 좋게 변해가자 준혁은 결국 아마르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의 말대로 더 시간을 끈다면 그땐 시도조차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제 혼백의 일부를 받아들이십시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지금도 겨우!

    ‘그렇다면 저는 이대로 이겨내 보겠습니다.’

    마지막 허락의 순간, 준혁은 명혼단의 기운 일부를 전해주려 했다. 그것으로 인한 결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최소한의 안전은 도모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결국 아마르곤도 한발 물러서 준혁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휴우…. 수사는 참으로….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 했거늘.

    ‘그건 아마르곤 수사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잠시 후, 준혁의 원영이 조심스럽게 단(丹)을 벗어나더니, 아마르곤의 구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준혁 내부의 암흑마기가 요동치더니 그곳으로 꿀렁대며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제 저를 밖으로 배출하십시오. 그리고 최대한 떨어지시길 바랍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동안 원영이 막아서고 있던 암흑마기가 그에게 응집할 테니, 가까이 있어서 좋을 건 없었다.

    ‘그전에 한 가지만 더.’

    준혁의 말이 끝난 순간, 원영 등 뒤로 빨간 인형이 투영되어 나타났다.

    그리고는 한 손을 들어 아마르곤의 구슬을 가리켰고.

    지이잉-

    핏빛 광선이 구슬을 뚫고 그 안에 숨어있던 아마르곤의 원영의 이마를 파고들었다.

    -이, 이건!

    ‘천혈 한 방울입니다. 고귀한 피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바. 최악의 순간이 온다 해도 그대를 지켜줄 겁니다.’

    -수사….

    독고제에게 얻은 천혈은 혈맥의 힘과 마선기보다 우위에 있는, 상위의 개념이었다.

    그런 천혈 한 방울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준혁의 정혈이 수십 배 소비되어야 하는 일.

    그 순간 종속의 인으로 연결된 공유감각을 통해, 아마르곤의 감정이 여실히 전달되었다.

    그것은 고마움과 따뜻함, 그리고 안타까움이었다.

    힘을 나눠줘 자신을 보호하려는 준혁의 마음에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힘을 낭비한 후 그걸 복구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지 알기에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었다.

    잠시 후 모든 과정을 끝낸 준혁이 입을 벌리자 빛나는 비늘에 싸인 아마르곤의 구슬이 튀어나왔다.

    ‘저것이면 신체가 붕괴하는 것도 막아줄 것이다.’

    아마르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준혁은 천혈 한 방울을 건네주며 다른 것도 추가했다.

    바로 최근에 연화를 거친 용천무의 비늘 중 일부.

    용천무의 비늘은 ‘왕의 정수’를 담은 재료이기도 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영보급 강체술의 재료.

    약하디약한 목족의 몸을 가진 아마르곤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화악-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아마르곤의 비술이 풀리며 그의 육체가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예상대로 암흑마기가 요동치며 그에게 밀려들었다.

    쿠르릉-

    “수사 물러나십시오!”

    준혁은 더는 암흑마기가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걸 느끼며, 아마르곤의 말에 황급히 멀찍이 떨어졌다.

    기껏 암흑마기의 근원을 빼냈는데, 가까이 머물며 영향을 받을 필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행동은 준혁에게 크나큰 아픔을 남겨버렸다.

    요동치는 마기의 움직임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짙어질 때쯤. 아마르곤의 목소리가 준혁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수사, 수사의 성품이면 그럴 리 없겠지만,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훗날 옛 구지대륙으로 통로를 열게 된다면…. 그땐 우리 목족도 인족과 차별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 끈적끈적한 암흑마기 속에 있던 아마르곤의 몸이 퍼엉 터지면서 검은 꽃잎으로 변해 흩어져 버렸다.

    “수사!!!”

    아마르곤이 목족의 둔술을 사용해 암흑마기 속으로 숨어든 것.

    깜짝 놀란 준혁이 급하게 기감을 방출해 주변을 살폈지만, 어느새 아마르곤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후였다.

    ***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

    그리고 그 어둠보다 조금 더 짙은, 어둠이 연못처럼 고여있는 흑마지 근처.

    이마에 새끼손가락만 한 뿔이 튀어나온 사내가 크게 하품하며 눈알을 굴렸다.

    “하암, 거 더럽게 무료하네.”

    뒤이어 곁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내도 하품하며 입을 쩍 벌렸다.

    “그러게나 말일세. 도대체 언제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지 원.”

    하품에 전염성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 뒤를 이어 두 명의 사내가 손바닥으로 입을 두드린 후에야 대화가 진행되었다.

    “거 듣자 하니, 당분간 이곳은 부궁주께서 맡으신다던데?”

    “그럼 우린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단 건가?”

    두 번째로 하품했던 치렁치렁한 흑발 사내의 질문에 뿔이 달린 사내가 대답했다.

    “낸들 알것수? 부궁주도 궁주님의 명령대로 움직일 것인데…. 그러게 왜 이딴 걸 발견해서는, 에이 퉤.”

    사내는 근처에 있던 흑마지를 노려보다 침을 뱉었다.

    백여 년 전, 궁주가 오매불망 찾아다니던 진마정의 존재가 알려진 사건이 있었다.

    천휴림의 세 번째 제자인 대막리가 그의 스승을 위해 진마정을 수거해가려 했던 사건.

    누구에게서 시작된 지 모르나, 그 일은 삽시간에 여러 마족들에게 퍼져나갔고, 살선이라 불리던 요트람과 그의 사제가 가장 먼저 움직여 대막리를 막아섰다.

    그 후 진마족(眞魔族)과 전마족(戰魔族), 거기다 요마족(蟯魔族)까지 진마정을 차지하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 도착하기도 전, 상황은 웃기지도 않게 돌아가 버렸다.

    진마정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던 흑마지에 변고가 일어나며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돼버린 것.

    그전까진 노력한다면 일정 깊이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던 흑마지가, 변고 이후 단단한 막이 생겨나며 누구도 뚫을 수 없게 돼버렸다.

    소용돌이처럼 깊게 뻗어있던 흑마지, 그런 흑마지 속에서 층층이 쌓여 결계처럼 사람들의 발길을 막던 막이, 예전보다 수십 배 두꺼워지며 모든 방문을 원천 차단해버렸다.

    하지만 진마정이 무엇인가?

    마기를 다루는 고위 수사에겐 천고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것.

    당장은 흑마지가 누구도 받아들여 주지 않으나, 언젠가는 다시 문을 개방할 거라 의심치 않은 각 종족의 선인들은 흑마지를 차지하려 전쟁을 벌였고, 최종적으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니미럴, 삼십 년 동안 수련도 못 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몰러.”

    흑마지를 차지하기 위한 10여 년 가까운 전쟁의 최종 승자였던 요마족, 정확히는 요마족으로 구성된 요마궁(蟯魔宮).

    요마궁 출신이었던 뿔이 달린 사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오. 도대체 이 빌어먹을 암흑기는 왜 수련에 도움이 안 되는지 몰것소. 암흑기가 농축돼 암흑마기가 되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우리에게 보물이나 다름없는 암흑마기와 다르게 암흑기는…. 에잉 퉤!”

    콧수염이 간사하게 자라난 사내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심지어 마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은 암흑기를 직접 흡수하진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이용해 수련 증진에 도움을 받는데, 유독 마족은 그러질 못했다.

    다만 다른 종족과 달리 암흑기 속에서 원활히 움직일 수 있던 마족이 불평불만 할 일은 아니었다.

    “암튼 나는 이제 하루 남았소이다. 하루만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부럽습니다. 저는 앞이 깜깜합니다.”

    30년 복무기간을 가득 채운 뿔이 달린 사내 말에 다른 이들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두웅-

    그때, 지금껏 100여 년간 아무런 변화도 없던 흑마지가 잘게 미동하기 시작했다.

    쿠르르-

    “뭐, 뭐야!”

    갑작스러운 변화에 네 마족은 깜짝 놀라 허둥거렸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무리의 책임자였던 뿔이 난 사내는 품속에서 손바닥 길이의 피리를 꺼내더니 세차게 불었다.

    삐이익-

    그리고는 다른 이들에게 손짓하더니 재빨리 흑마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 잡았다.

    입으로는 쉬지 않고 툴툴거렸지만, 누구보다 행동강령은 빠삭하게 익힌 노련한 대처였다.

    “스브랄, 도대체 뭔 일이여?”

    대장 격인 사내가 또 한 번 불만을 토로하는 사이, 다른 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저, 저기!!”

    모두의 시선이 소리친 자가 가리킨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흑마지 위.

    냉랭한 무표정으로 한없이 차가운 기운을 흩뿌리는 사내.

    이마 위로 삼십 센티미터가 넘는 보라색 뿔을 지니고 그보다 짙은 보라색의 눈빛을 간직한 채, 등 뒤로 자신의 몸집보다 세 배는 큰 전영을 소환한, 무시무시한 마기를 흘리는 고위 마족 수사를.

    모습을 드러낸 마족 수사는 감정이 메말라버린 듯한 눈빛으로 주변을 쓱 훑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무언가를 느끼기 위한 듯 가만히 서 있다가,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이곳에 있던 자들은 어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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