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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40화 (240/408)

240화. 소천경(小天境) (1)

말없이 흑마지의 기 폭풍을 바라보던 조호랑은 슬픈 눈으로 입을 열었다.

“돌아갈…. 게요….”

조금 전 암흑기의 폭발에서 느낀 힘은 소천경인 자신도 쉽게 이겨낼 수 없는 미증유의 기운.

조호랑은 준혁이 죽었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럼 지체할 필요 없겠지. 당장 떠난다.”

한편, 흑마지의 변화는 멀리 떨어져 있던 마족 무리의 수사들도 느끼고 있었다.

“사형! 방금 느끼셨습니까?”

대막리와 접전을 벌였던 대천경 수사의 말에 지옥에서 기어 나온 사신처럼 음울함을 풍기는 사내가 입술을 비죽였다.

“흐흐, 그래.”

“분명 암흑마기입니다! 암흑기가 아닌 암흑마기가 이렇게 존재감을 알리다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암흑기가 영기처럼 만연하게 퍼져있는 힘이라면 암흑마기는 응축하고 응집하는 성질의 힘이었다.

절대, 폭발이나 폭풍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힘 중 하나였다.

“흑마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평범하지 않은 건 맞구나. 오호!”

흑마지 방향을 바라보던 음울한 사내가 탄성을 내뱉더니 몸을 일으키며 손짓했다.

“저놈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돌아가려나 보군. 잘됐다. 모두 움직인다. 따라와.”

***

외부의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신경조차 쓸 수 없던 준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용천무가 남긴 비늘과 발톱을 연화시키는 데 엄청난 영력이 소비됐지만, 그것도 몸 안에서 증폭되어가는 기운을 완벽히 잠재우진 못했다.

내부에서 끝 모를 듯 확장해가는 암흑마기와 그걸 막겠다고 힘을 겨루는 멸진단.

처음엔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던 힘은 준혁의 수행이 올라감에 따라 바닥을 드러내기는커녕, 점점 더 진해지고 과격해져만 갔다.

종국에는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누가 준혁의 몸을 차지하는지 싸우는 것처럼 경쟁하듯 기운을 부풀렸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준혁은 진마정에 담긴 암흑마기가 이상 반응을 보인 이유를 추측해낼 수 있었다.

‘아! 처음부터 이것 때문이었구나!’

주위의 다른 암흑마기를 흡수하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확장하던 진마정은 어느덧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고, 그 와중에 준혁의 암흑마기에 반응하고 만 것.

즉, 비어버린 수정들의 암흑마기가 한쪽으로 모여들었듯, 진마정 안에 있던 암흑마기도 더 좋은 환경을 발견하고 준혁에게 흡수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암흑마기에 완전히 잠식당한다면 준혁은 거대한 진마정이 돼버린다는 소리였다.

‘기(氣)에 의지가 있을 순 없는 법.’

준혁은 암흑마기의 특성을 이용한다면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맹렬히 사고를 거듭했다.

하지만, 모든 일엔 시기가 있었다.

서로 견제하듯 증폭해 가던 두 기운은 결국 한계점을 넘어버렸고, 그 순간부터 준혁의 원영이 탈피를 시작했다.

그것은 경험해 본 적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소천경에 이르려는 것인가!’

어떻게든 화신기로 수행을 공고히 다지고 싶었지만, 멸진단과 암흑마기는 증폭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원영의 변화를 강제로 이끌어버렸다.

화아악-

잠시 후,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허물을 벗듯 변화를 거듭하던 원영은 준혁과 닮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완벽하게 성인인 준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덜덜덜-

준혁의 사지가 걷잡을 수 없이 떨리며 살점들이 시커멓게 죽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깨달음도 없이, 게다가 신체의 준비도 없이 강제로 수행이 올라가자 준혁의 몸은 버티질 못했다.

외부에서 천지영기를 불러오지 못하고, 오직 단약과 암흑마기만으로 수행을 올린 것도 이유였다.

그나마 강체술로 오랜 시간 단련이 되어있었고, 암흑마기로 이뤄진 전영 덕분에 이 정도까지 온 것이었다.

거기다 더해 멸진단과 암흑마기는 조금 전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격돌하며 기운을 줄줄 퍼트리는 중이었기에, 억지로라도 안정을 유도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체념하고 삶을 저버릴 준혁은 아니었고, 미약하지만 수단도 강구해둔 상태였다.

‘결국 이걸 이렇게….’

공간대에서 대막리에게 받은 초연단을 꺼낸 준혁은 지체없이 그것을 삼켰다.

‘미안하구나.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간 그대들을 구원하겠다.’

종속들을 살리기 위해 아끼고 아끼던 초연단을 삼킨 준혁은 한 올의 약효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부로 침잠해 들어간 후 모든 걸 잊고 조율에만 신경 쓴 준혁.

지금 그는 원영의 시점에서 암흑마기와 멸진단의 기운을 서로 상쇄시키며 수행을 다지고 있었다.

소천경에 오른 직후 시작된 신체의 괴사는 초연단으로 완전히 막아낸 지 오래였다.

만약 초연단을 초기에 먹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약효가 적절한 시기에 신체를 활성화했고, 그것이 올바른 결과를 가져왔다.

어느덧 ‘안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안전’의 단계에 접어들며 멸진단과 암흑마기를 온전히 녹여 원영뿐 아니라 본인의 신체마저 수행에 걸맞게 재구성시키는 중이었다.

인간사 새옹지마란 말이 정확했다.

끊임없던 고난과 시련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수천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게 해주었다.

실로 전화위복이라는 말에 부합되는 상황.

하지만 그렇게 마무리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준혁의 내부는 여전히 맹렬히 줄다리기 하는 중이었다.

어느덧 소천경의 경지를 견고히 다진 준혁의 원영은 온몸을 반투명한 영역으로 보호한 채, 한 손엔 새하얀 얼음 구슬을 들고, 나머지 손엔 피처럼 붉은 구슬을 든 채 자신을 조여오는 찐득거리는 검은 기운에 대항하는 중이었다.

‘이제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지만…. 이대로라면.’

지금 준혁의 몸은 언뜻 보기엔 암흑마기와 멸진단의 기운이 체화 과정을 거쳐 균형을 이룬 듯했다.

하지만 그건 당장 드러난 모습일 뿐.

실제로는 멸진단의 약효는 대부분 소멸하여 흡수된 상태였고, 반대로 암흑마기는 외부에서 조금씩 흘러들어와 계속해서 성장하는 중이었다.

진마정의 암흑마기는 균형을 이룬 후 안전하게 흡수되었지만, 그로 인해 준혁의 몸속 농도가 일정해지자, 마치 삼투압 현상처럼 흑마지의 기운이 계속해서 모여드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흡수를 막기 위해 흑마지를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도 없었다.

아직 완벽하게 안정을 찾진 못했기에,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적마의 힘을 이용하게 된다면 다시 내부는 거세게 요동칠 게 분명했고, 준혁에겐 그걸 막을 초연단이 남아있질 않았다.

‘이대로 계속 수련을 진행한다면 소천경의 수행을 견고히 할 수는 있을 터. 허나 그것을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단(丹) 속에 꼭꼭 숨어 월광지력과 혈단법의 공능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원영과 달리, 준혁의 신체는 전영을 해제했음에도 보라색 피부를 가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마엔 새끼손가락만 한 뿔이 자라나 있어, 이미 신체가 마족화되어 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오니…. 선계에 온 후로 편할 날이 없구나.’

짧은 기간 동안 격동적인 시간을 보낸 준혁은 과거를 회상하며 동시에 마족화되어 가는 신체를 되돌릴 방법을 쉬지 않고 모색했다.

‘혈맥의 힘을 자극해 마기를 일시적으로 몰아낼 순 있겠지만, 문제는 천혈이다. 천혈은 암흑마기에도 요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강제로 자극할 시 어떤 문제를 불러올지 예상할 수가 없으니….’

그때, 생각을 거듭하던 준혁은 내부에서 무언가 깨지는 느낌과 함께, 강렬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에 화들짝 놀란 준혁은 모든 상념을 전부 다 지워버리고 서둘러 내부로 정신을 집중했다.

‘아마르곤 수사!! 깨어나신 겁니까!!’

흑마지에 들어서기 전 섭취했던 초연단으로 인해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던 종속들은 두 번째 초연단을 먹었을 때 미약하지만 또 한 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그 후 멸진단과 암흑마기의 격렬한 반발력을 원영이 잠재우는 사이, 그 흐름에 편승해 영력을 흡수하고 몸을 회복해낸 것이었다.

-......

‘아마르곤 수사! 제 말 들리십니까?’

-으음…. 수사.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공간의 틈은 무사히 탈출하신 겁니까?

계속된 자극에 결국 아마르곤이 의식을 되찾자 준혁은 기쁜 마음에 지금의 근심과 걱정을 날려버리고는 황급히 지난 일들을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겁니다.’

준혁의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에 아마르곤은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제가 잠들어있는 사이 대단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살아있으신 게 용하군요.

‘그렇습니까? 수사가 있었다면 더 수월했을 텐데 도움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하하.’

준혁은 기쁜 마음에 농담까지 섞을 정도였다.

그런 그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는지, 아마르곤 역시 따뜻한 감정을 전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교류도 잠시, 아마르곤은 준혁의 몸 상태를 외부에서 보진 못했지만, 상당히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그걸 지적했다.

-허면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이대로면 마족화를 막으실 수 없으실 텐데.

마족도 선계에 수많은 종족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평생을 인간으로, 그것도 인족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아온 준혁에게 마족이 된다는 건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과도 같은 말.

‘저도 고심 중입니다. 여러 가지 방안들을 생각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안전을 보장하진 못하겠더군요. 어쩌면 우선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후일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듯싶습니다.’

-그것이 쉽겠습니까? 지금이야 수사의 원영이 버티고 있지만, 원영마저 마기에 침식당해버린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 겁니다.

준혁도 알고 있는 일이었기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고 그걸 모르겠습니까? 허나 다른 시도를 하기엔 이곳이 너무 불안정합니다. 최소한 몸의 안정을 찾고 흑마지를 벗어난 후에 일을 진행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때, 묵묵히 준혁의 의견을 듣고 있던 아마르곤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

그 말을 들은 준혁은 지금껏 보지 못할 정도로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됩니다!! 수사를 희생시키라니요?!’

-희생이 아닙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선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요. 수사도 느끼시겠지만, 저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암흑마기라 불리는 그 기운에 조금씩 침식이 시작된 상태입니다.

‘...그건.’

-수사의 원영은 어느새 지고지순한 경지에 올라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와 다른 이들은 어차피 회생할 길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저 혼자 그 짐을 감당하겠습니다.

아마르곤이 제시한 대안.

그것은 원영이 체화시킨 암흑마기의 근원을 자신에게 건네준 후 자신을 몸 밖으로 쫓아내라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원영이 가진 순수한 힘을 건네주는 것이 불가능했을 테지만, 처음 수행이 상승할 때부터 내부에서 같이 모든 일을 겪었기에, 이미 어느 정도 동화가 일어난 상태.

아마르곤의 제안은 충분히 타당하고 합리적이었다.

그렇다고 그 말을 따를 순 없었다.

결국 그 말은 아마르곤을 희생시켜 나머지 종속과 준혁의 살길을 연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수사. 수사도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암흑마기의 특성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에게 근원을 넘긴다면 자연스럽게 흑마지의 기운이 제게 응집할 터…. 수사는 그사이 몸의 균형을 되찾고, 다시 저를 구하시면 됩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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