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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38화 (238/408)

238화. 화신기. 그리고… (2)

흑마지가 정확히 어떤 원리로 생겨났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대천경 수사인 대막리조차, 일정 깊이 이상은 발을 들여보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 대막리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준혁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그럼 나는?’이었다.

대천경 수사가 버티지 못한 곳에서 연형기인 자신이, 아니, 살 확률을 높이기 위해 화신기까지 기다려준다 했으니 정확히는 화신기에 오른 자신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더 깊고 더 짙은 흑마지 밑으로 내려오자, 그 의문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직접 경험하니 완벽하게 수긍이 가는 중이었다.

‘이래서 대막리도 그 끝을 본 적이 없다 했었구나.’

흑마지는 움직이지 않는 소용돌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암흑기가 점점 짙어졌는데, 문제는 농도가 진해지는 어느 지점마다, 고밀도의 암흑기가 공간의 틈처럼 작용을 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농도가 짙어지는 구간마다, 공간 분리가 된 결계가 존재한다는 뜻.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암흑기라는 물질 자체가 공간의 틈에서 발생했던 것이었으니, 그것이 고밀도로 농축되면서 공간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결계를 뚫어내는 게 쉽지 않았고, 깊이 들어갈수록 결계를 파괴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대천경에 오른 수사라 할지라도 암흑기에 노출된 상태로 영원히 버틸 수는 없었기에 대막리도 몇 개의 결계를 돌파하다가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억지로 버틴다면 아무리 그라 해도 고밀도로 농축된 암흑기에 침식당하고 말 테니까.

그랬기에 그는 자신이 포기한 걸 준혁이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었다.

바로 적마의 결계를 뛰어넘는 능력 하나만으로.

‘그러고 보면 적마의 능력이 대단하긴 하구나. 이 모든 걸 무시할 수 있다니.’

붉은 눈썹을 휘날리던 양아치 같던 사내를 떠올리며 피식 웃은 준혁은 식검을 소환해 적마와 융합시켰다.

대막리가 멸진단을 세 알이나 준비해준 걸 보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영기 소모가 극심해질 것이라 유추할 수 있는 일.

그의 경고를 제외하고라도, 최대한 빠르게 진마정을 구하는 게 중요했다.

***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며 아래로 하강하길 세 시간.

준혁은 벌써 두 번째 결계를 통과하고 세 번째 결계를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암흑기의 압박이 버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네 번째, 다섯 번째 결계를 지나쳤을 때 준혁은 본인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인지했다.

‘왜 압박이 강해지지 않지?’

대막리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쯤 영기 소모 속도가 두 배는 많아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처음 흑마지 안에 진입했을 때와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세한 차이 정도.

‘마냥 좋게 생각할 순 없다. 새옹지마라 했으니 원인을 찾아내는 게 중요해.’

이상함을 느낀 준혁은 당장 더 깊숙이 파고들기보다는 몸 상태를 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자리에 좌정한 채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당장 이롭다 해서 간과하다가 후일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시간이 조금 지체되더라도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우선 원영부터.’

그렇게 원영부터 시작해 공법을 운용해보고 아직 남아 있는 초연단의 약효와 몸을 휘감고 있는 멸진단의 기운까지.

하나하나 파악하던 준혁은 의외의 사실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종속의 구슬!’

공간의 틈을 지나치며 암흑기에 침식당한 종속들.

그들이 봉인된 구슬, 구슬을 잠식한 암흑기가 마치 하나의 단이 된 것처럼 외부와 긴밀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즉, 구슬들로 인해 준혁의 내부가 이미 암흑기로 충만한 상태였기에 외부의 암흑기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구나!’

그리고 그것이 특별하다고 여긴 준혁은 더욱 주의 깊게 파고들었고 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혈단법의 부작용이자, 마족의 공법을 사용할 수 있던 근원인 탁기(濁氣)가 몸 안으로 들어온 암흑기를 자연스럽게 융화시켜 마기로 변하고 있단 것이었다.

마족의 공법이나 전영술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아!!”

그 순간 준혁은 뇌리를 관통하는 생각에 전율했다.

“암흑마기!”

공간의 틈을 지나오며 자신의 능력과 종속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탁기가 암흑기와 만나 새로운 마기가 되는 걸 깨닫자, 자신이 공간의 틈에서 살아남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암흑기가 암흑마기가 되듯, 내가 가진 탁기도 암흑기로 인해 새로운 마기가 되었다.’

그리고 암흑기가 변해 만들어진 마기는 원래 자신이 사용하던 기운과 사뭇 달라고, 주어진 정보를 조합했을 때. 그것은 마정에 깃든다는 암흑마기가 틀림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준혁은 암흑기의 영향으로 변질한 마기로 마족의 전영을 소환했다.

스르륵-

그리고는 공간의 틈을 통과했을 때처럼 마기로 만들어진 전영을 몸 안으로 받아들여 몸을 강화시켰다.

그 순간.

“아!”

준혁은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멸진단과 초연단, 그리고 극락종의 보호막으로 버티던 암흑기의 압박이 그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약해졌다는걸.

***

슈앙-

멀리서 본다면 마족으로 보이는 외관.

보라색 피부에 거무죽죽한 얼굴의 준혁은 거침없이 흑마지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갔다.

적마도를 이용해 결계를 넘어설 때마다 영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그때마다 멸진단의 약력이 바로 영기를 보충해주었다.

파앗-

그런 그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걸려있었는데, 전부 암흑마기 덕분이었다.

몸의 압박이 줄어들어 편해진 것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멸진단과 초연단을 아낄 수 있다는 것.

초연단을 몸의 회복이 아닌 종속을 살리는 데 온전하게 사용하고, 남은 멸진단 두 알은 차후에 수행을 올릴 때 사용할 생각을 하니, 전화위복이란 말을 절로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때, 끈적거리는 반죽 같은 암흑기 사이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준혁의 시야에 들어왔다.

날아가던 걸 멈춘 준혁은 기감으로 그것을 확인하고는 희색이 만연한 채 다가갔다.

“이것이 마정이구나.”

어느새 손에 들어온 주먹만 한 수정을 꼼꼼히 살핀 준혁.

그는 수정 안에 담긴 힘이 자신 내부의 마기와 얼핏 비슷하다는 걸 깨닫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탁기가 암흑기의 영향을 받아 암흑마기로 변한 거였어!”

암흑마기가 일반적인 자연계의 힘이 아니란 사실 말고는 자세히 아는 건 없었다.

다만 마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걸 보면 그들의 수련 성취에 중요한 힘인 건 틀림 없는 일.

준혁 역시 전영술과 마족의 공법을 운용할 줄 알았으니, 도움이 되는 건 분명했다.

게다가 준혁은 탁기를 이용해 암흑마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앞으로 이 힘이 자신의 수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감도 잡지 못할 정도였다.

아마 예상하기로 무궁무진한 이득을 안겨주지 않을까?

‘나중 일이지.’

하지만 우선은 급한 일이 따로 있었기에 준혁은 상념을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대막리에게 전해 들은 대로 영기로 마정을 감싼 후, 그것을 공간대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잠시 후, 주변을 한 번 더 살핀 준혁은 어느새 도착한 새로운 결계를 통과해 더 깊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정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진마정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일 테니, 지금부터는 천천히 움직여야겠구나.’

그렇게 흑마지 밖에서 땅을 뒤집고 하늘을 가르는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준혁은 기감을 유형화시키며 본격적인 탐색에 들어갔다.

***

수십 겹의 결계를 뛰어넘고 들어온 흑마지의 하층부.

암흑마기로 전영을 만들어 몸을 보호했음에도 준혁은 슬슬 견디기 힘든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어서 나타나 줘야 할 텐데.’

벌써 스무 개가 넘는 마정을 얻었지만, 진마정은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다만 남운상단의 학고응이 요구한 물건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학고응이 부탁한 물건은 흑마지와 공간의 틈에서만 발견된다는 회색 수정.

처음 그에게 회색 수정에 대해 들었을 땐 특별한 광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채집해보니 그것은 마정에서 암흑마기가 빠져나간 껍데기란 걸 알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대막리와 함께 왔다고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그런 물건.

그리고 그런 회색 수정의 존재를 알게 된 준혁은 진마정을 찾을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회색 수정 근처에선 유독 암흑마기 함유량이 많은 마정들이 발견됐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건 바로 하나.

마정이 다른 마정의 기운을 흡수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 흡수가 반복된 고밀도의 마정이 진마정이란 뜻이겠지.’

그랬기에 준혁은 언젠가부터 마정이 아닌 회색 수정을 찾고 다녔다.

진마정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 주위엔 회색 수정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때 준혁의 시야로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다수의 회색 수정이 들어왔다.

“설마!”

지금껏 본적이 없던 규모였기에 준혁은 기대감을 가지고 다가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특한 수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았구나!”

그것은 점액질처럼 뭉쳐버린 암흑기 사이에 묻혀있었는데,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듯 세밀하게 주위를 살핀 후에야 준혁의 기감에 잡혀 들었다.

잠시 후 주변 회색 수정을 전부 수거한 준혁은 진마정으로 의심되는 수정 가까이 다가갔다.

“이 정도라니….”

그리고는 부르르 몸을 떨고 말았다.

내부에 암흑마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수정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전율할 정도였다.

“대단하구나. 이걸 이용해 수행을 상승시켜야 할 정도라면…. 그 경지가 감히 짐작되지도 않아.”

광택조차 나지 않는 뭉툭한 수정은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 해도, 누구라도 천고의 보물이라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흑마지에 들어선 지 삼 일이 되어가는 시점이었기에 준혁은 서둘러 움직였다.

다만 서두른다고 경거망동하진 않았다.

진마정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압도적이었기에, 몸을 보호하던 암흑마기를 한층 강화하며 조심스럽게 손안으로 끌어왔다.

슈욱-

그 순간 준혁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화악-

몸을 보호하기 위해 끌어올린 암흑마기에 반응해 손안에 들어온 수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빛을 발한다 싶은 순간 빛무리가 준혁에게 빨려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게 무슨….”

너무나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준혁은 어안이 벙벙해 말을 잃어버렸다.

어느새 손안엔 진마정이 아닌, 내용물이 텅 비어 버린 회색 수정만이 남아 있었다.

순간 준혁은 허탈함에 말을 잃고 말았다.

당장 진마정의 기운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보다, 진마정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대막리가 준혁에게 준 기한은 삼 일.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오늘 안에 또 다른 진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기에.

“왜 갑자기 이런 일이….”

하지만 걱정도 잠시.

준혁은 지금 진마정을 찾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야만 했다.

한 줌 빛이 되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던 진마정에 담긴 고밀도의 암흑마기와 그것을 감당하고 있던 융화의 힘.

그것이 몸속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그리고 그 폭발은 준혁의 혼백까지 날려버릴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어둠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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