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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35화 (235/408)
  • 235화. 흑마지(黑魔池) (1)

    참새가 떠나고 난 뒤, 조호랑의 뒤를 따른 준혁은 소림주라 불리던 대천경 수사에게 이동했다.

    그곳엔 그 말고도 삼경에 이른 수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조호랑의 말에 의하면 소천경과 위선경의 경계에 서 있는 강자라 했다.

    “저자가 소림주의 제자 중 으뜸이라는 교휴(嬌休)야. 매서운 자니까 조심해.”

    교휴는 긴 생머리가 발끝까지 닿아있는 미녀였는데, 눈매와 입가가 사납게 솟구쳐있어 표독스러워 보이면서도 고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깡마른 모습이 풍만한 몸으로 건강한 미(美)를 가진 조호랑과는 대조되었다.

    멀리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전해주던 조호랑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두 사람이 가까이 오자 교휴가 교태가 섞인 눈웃음을 쳤다.

    “매섭다니요? 조호랑 수사, 말이 심하시네요.”

    “매서운 게 매서운 거지. 너한테 잘못 걸려 귀천한 남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호호, 그건 그들이 너무 허약했기 때문이지, 제 잘못은 아니지 않나요? 저는 그저 운우지락을 나누었을 뿐인데?”

    교휴는 말을 하면 준혁을 응시하고는 긴 혀를 날름거렸다.

    그 모습에 조호랑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시간이 없으니 바로 가겠다.”

    전방을 바라보며 준혁에게 시선도 주지 않던 사내가 말을 함과 동시에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그러자 주변 공기 질이 바뀌며 다른 곳에 있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이건?”

    준혁이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바짝 긴장하자, 조호랑이 별것 아니란 듯 설명을 곁들였다.

    -주위를 보호하던 영역을 제거한 거야. 놀랄 필요 없어. 원래대로라면 떠나고 난 뒤에도 일정 시간 영역이 유지되게 했을 테지만, 그만큼 그도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

    ‘마족과의 전투를 고려했기 때문인가?’

    도착하기 전 마족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에 준혁은 빠르게 이해했다.

    그도 울릉도 전역에 진법을 이용해 영역을 흉내 내본 경험이 있어서, 완벽하게는 아니었지만 대충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임무에 대한 소상한 설명도 없이 일이 진행될 것 같아지자, 준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남운상단의 학고응에게 흑마지(黑魔池)가 목적지란 건 들었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었기에 모르는 척 말을 꺼냈다.

    -가는 길에 말해주려 했어. 지금부터 흑석대륙을 벗어나 ‘비어있는 땅’으로 갈 거야.

    -비어있는 땅이라면?

    -예전엔 구지대륙이라 불리던 곳이지, 지금은 그곳이 공간째 뜯겨나가 ‘공허’만 남아있거든. 자세한 건 가보면 알 수 있어.

    ‘공허라….’

    -그럼 그곳에 가서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진마정이란 물건을 가지고 온다는 건 알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조호랑이 준혁의 말에 대답하려는 순간.

    우우웅-

    영역을 제거한 사내가 또 한 번 하늘을 향해 손을 흩뿌렸고, 백여 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정. 그중에서 진마정이란 물건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자세한 건 출발하고 알려주지.”

    전함을 소환한 사내는 고개를 돌려 준혁을 보더니 짧게 한마디 내뱉고는 공중으로 도약해 사라졌다.

    ‘전음을 엿듣고 있었구나.’

    깜짝 놀란 준혁이 조호랑을 바라보자,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왜 쳐다봐?’라는 눈빛을 하다가 위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도 올라가자.”

    그리고는 준혁에게 따라오라는 시늉과 함께 전함 위로 날아 올라갔다.

    ***

    두 사람에 이어 교휴마저 탑승하자, 전함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함의 속도는 수사의 이동속도보단 느렸지만, 일반 비행 법기에 비교한다면 엄청난 속도를 발휘했다.

    ‘역시! 똑같구나!’

    위로 올라온 준혁은 놀란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천천히 전함을 둘러보았다.

    대천경 수사가 소환한 전함은 용천무의 전함과 거의 흡사했는데, 다른 게 있다면 위아래로 폭이 좁아 조금 더 날렵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준혁의 눈이 쉬지 않고 움직이자 조호랑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놀랐어? 하긴 하계에서 이런 걸 볼 순 없었을 테니까. 대단하지? 근데 부러워해 봐야 소용없어. 이건 천휴림의 림주와 제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대 전함이거든.”

    “귀한 것입니까?”

    “당연하지. 천영보급 영보인데. 지금까지 알려진 걸 통틀어도 열 대도 되지 않을걸? 몇몇은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고.”

    조호랑의 설명에 준혁은 다시 한번 용천무가 대단했던 강자였음을 깨달았다.

    그에게서 얻은 명혼단과 날개, 거기다 전함까지. 생각이 그것들에 미치자 그가 남긴 용각족 왕의 힘이라는 ‘왕의 정수’가 더 궁금해졌다.

    혹시나 조호랑이 그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기에 준혁은 조심스럽게 그것에 대해 떠보려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다가온 소림주로 인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는 동안 마정과 그대가 해야 할 일에 관해 설명해주지.”

    ***

    어둠만이 존재하는 칠흑 같은 공간.

    흑석대륙을 넘어 구지대륙이 있던 곳으로 진입하자마자 시작된 어둠의 공간.

    준혁은 전함의 뱃머리에 서서 전방을 주시한 채 생각에 빠져있었다.

    ‘암흑기가 채워지다니.’

    공간이 뜯겨나간 구지대륙.

    그곳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없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구지대륙이 존재했던 공간은 암흑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암흑기에서 스스로 태어난 흑마자라는 괴물들도 존재했다.

    ‘이런 곳의 중심지에 위치한, 암흑기가 뭉쳐 생겨난 연못이라.’

    암흑기가 뭉쳐 만들어진 흑마지라는 곳에 들어가 진마정이라는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는 소림주의 설명.

    일부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덤덤하게 받아들이긴 했으나, 흑마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엔 생각이 바뀌었다.

    흑마지는 암흑기가 고도로 농축된 장소였는데, 공간의 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생명을 배척하는 장소라 했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생명체 따윈 압사당해버린다 했지.’

    비록 대천경 수사가 원격으로 도와주고 조호랑이 뒷받침해준다고는 하나, 잠깐 방심하는 사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게 준혁의 임무였기에 절로 긴장됨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흑마지까지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흑마자라는 괴생명체 때문.

    흑마자는 결단기부터 화신기까지 다양한 수행을 지닌, 암흑기로 이루어진 생명체였는데, 물질계의 존재라기보단 영체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무서운 이유는 한 번 출몰할 때마다 그 수가 수백에서 수천은 넘는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또 나타났네.”

    준혁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어느새 나타난 조호랑이 구체로 이루어진 영역을 만들어 몸을 보호하더니 전함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번엔 몇 마리지?”

    어느새 교휴도 뱃머리에 나타나 조호랑의 뒤를 따를 준비를 했다.

    “하긴 연형기 수행으로 암흑기 속 흑마자를 파악할 순 없겠죠? 호호.”

    그녀는 아무 말 없는 준혁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고는 붉은 빛줄기로 변해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으레 그렇듯 흑마자를 처리하고 온 두 사람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각자 지키던 자리로 사라졌다.

    두 사람은 흑마지로 향하는 기간 동안 흑마자를 처치하고 전함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주기적으로 흑마자가 나타나면 둘이 움직였고, 전투와 이동이 반복되는 동안 일 년이 조금 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 준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조호랑에게 영역과 고위수사들의 공법 운용 방법에 대해 배우며 수련을 계속해 갔다.

    ***

    계속되는 흑마자와의 전투와 이동.

    준혁은 전투에 낄 깜냥이 안됐기에 혈단법을 운용하며 종속들을 자극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번엔 꽤 오래 걸리는군.”

    평소라면 반나절 혹은 하루 이틀이면 원거리에 밀집해 있던 흑마자 무리를 처리하고 오던 두 사람이 사흘이 넘게 보이지 않자 의문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그때, 살을 엘듯한 존재감과 함께 전함을 소환한 이후로 보이지 않던 사내, 천휴림의 소림주인 대막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막리는 준혁이 수련 중이던 뱃머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어둠 속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상적이진 않군.”

    그러더니 영력을 움직여 배를 멈춰 세운 후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잠시 후 손가락을 떼며 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무엇을 말입니까?”

    사내의 목소리에 담긴 음산함에 준혁은 소름이 끼치며 빠르게 반문했다.

    하지만 대막리는 아무런 대답 없이 한 손을 위로 올리더니 조용히 읊조렸다.

    “영역 선포.”

    투웅-

    그 순간, 준혁은 자신의 몸이 살짝 붕 뜬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어미 배 속에 든 아기처럼, 아무 의지가 없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미미한 존재가 돼버린 느낌.

    그리고 그런 기운이 찰나에 불과한 순간 대막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규모가 확장되며 온 세상을 가둬버리는 것만 같았다.

    파앙-

    ‘이것이 영역!’

    준혁은 처음으로 진실한 영역의 기운을 느끼며 탈력감에 자기도 모르게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대막리의 입에서 ‘죽어라’라는 말이 나온다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실제로 그러진 않을 테지만, 그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압도되는 걸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의문도 생겨났다.

    ‘왜 갑자기?’

    하지만 생겨남과 동시에 준혁의 의문은 해소되었다.

    어느새 대막리 주위로 뻐드렁니가 가슴까지 내려오고 번들거리는 피부를 지닌 수인족 형체가 여럿 나타나더니,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저것이 바로 위선경에 올라야만 할 수 있다는 영역분신!’

    오롯이 원영이 가진 근원에 영향을 받아 생겨나며, 영역 안에선 본신의 능력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기술이었다.

    더 중요한 건, 영역 안에 생겨난 영역분신은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쇄애애액-

    “컥.”

    잠시 후, 사라졌던 영역분신들은 전영을 소환한 채 발버둥 치는 마족 하나를 잡아 와 대막리 앞에 무릎 꿇렸다.

    마족은 자신이 잡혀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당황해하며 거세게 저항했다.

    “왜 나를 잡아 온 겁니까?! 놓아주십시오! 그대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거늘! 왜!”

    마족의 저항에 대막리는 피식 웃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말이더냐?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흑마자를 조종해 나와 함께 온 이들을 핍박하고 있지 않았더냐?”

    “그, 그건!”

    대막리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마족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잠시 후, 영역분신 중 하나가 마족의 몸을 통째로 뜯어버렸고, 그 후엔 안에서 튀어나온 마족 원영을 잡아채더니 으그적거리며 씹어먹어 버렸다.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은 것이지?”

    대막리는 애초에 마족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던지 혼잣말을 내뱉은 후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대단하구나. 이것이 대천경.’

    마족의 몸이 갈가리 찢기며 원영이 튀어나온 순간, 준혁은 원영을 감싼 보호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조호랑이 몸을 보호할 때 만들었던 영역과 꽤 비슷했기에, 마족의 수행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소천경에 오른 이 같았는데…. 이리 쉽게….’

    그때, 상당히 초췌한 모습을 한 조호랑과 교휴가 날아오더니 대막리에게 고갤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스승님께 못난 모습 보였어요.”

    두 사람은 처음으로 낭패한 모습을 보였는데, 상황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럴 만했다.

    평소 수백 수천 마리였던 흑마자가 수만 마리 모여들었고, 거기에 더해 소천경에 이른 마족까지 함께하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교휴의 영역이 상대 마족의 영역에 상성이 좋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준혁은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규모의 전투 설명에 또 한 번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 실감해야만 했다.

    ‘강해져야 한다! 지금 내 수행으론 그녀를 찾기 전에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더 커.’

    원하지 않아도 분쟁에 휘말리는 걸 피할 수 없으니, 힘을 가져야만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때, 설명을 전부 듣고 난 대막리가 전함을 회수해 버리더니 명령을 내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족들의 행동이 너무 빠르다. 우리도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그리고는 무언가를 뱉어내더니 준혁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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