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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34화 (234/408)
  • 234화. 남운상단 (2)

    “무슨 소리야? 둥글다니? 설마 세상이 둥글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란 말입니까?”

    이어진 설명에 준혁은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중천의 가장 큰 대륙인 천운대륙과 그곳에서 남쪽으로 수십 년 날아가면 나오는 남운대륙.

    두 대륙을 중심으로 가지처럼 뻗어있는 또 다른 대륙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인 초태해.

    만약 세상이 둥글다면, 한 방향으로 계속 날아가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할 테지만, 그녀의 말에 의하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라 했다.

    “그럼 흑석대륙의 너머엔 무엇이 있습니까?”

    “예전엔 구지대륙이 있었지만, 지금은 공간이 통째로 분리되며 그곳엔 암흑기만 남아 있지.”

    “그럼 그 너머에는?”

    “초태해가 있겠지? 몰라, 가보질 않아서. 애초에 일반적인 수사는 평생 자신이 태어난 대륙을 벗어나는 일도 없다고.”

    “초태해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말입니까?”

    “넌 정말 궁금증이 많구나? 당연히 모르지. 끝도 없는 그곳을 누가 건널 수 있겠어? 게다가 전해지기론 초태해 어딘가엔 진선급 요수가 산다는 말도 있는데. 감히 깊은 곳까지 가려는 자가 있을까?”

    ‘하긴. 흑석대륙만 해도 지구의 수십 배는 될듯한데. 그런 대륙이 줄지어 있다면 이곳이 행성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의미가 있진 않겠구나.’

    그 끝을 알 수 없다면 둥글든 평평하든 아무 의미가 없었다. 준혁은 선계라는 개념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걸 인지했다.

    “어서 가자. 그가 기다릴 테니까.”

    그리고는 앞장서 깊은 구덩이로 몸을 날리는 조호랑의 뒤를 따랐다.

    ***

    전심전력을 다하진 않았지만, 꽤나 빠른 속도로 하강하길 스무 시간 가까이 지날 무렵.

    깊고 어둡기만 하던 통로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지하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큰 규모의 공동이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수백 미터가 넘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곳곳엔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바닥엔 각종 식물과 꽃들이 즐비해 있었다. 검은 암석으로 점철되어있는 지상보다 이곳이 더 살기 좋은 곳 같았다.

    “허….”

    준혁은 절로 감탄이 흘러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나무로 다가가려 하는데, 조호랑이 그런 그를 막아섰다.

    “현혹되지 마. 영역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그녀의 충고에 준혁은 바짝 긴장감을 세웠다.

    “설마, 이것들이 전부 환영이란 말입니까?”

    “아니. 진짜 식물은 맞아. 하지만 영역의 영향으로 생명력을 얻은 것이라, 자연의 일부라기보단…. 저기 오는군.”

    조호랑이 고개를 돌려 멀리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저기 오는 저자의 일부라고 하는 게 맞겠지.”

    ‘영역의 공능이 끝이 없구나.’

    하계에서 영역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땐, 공간을 지배하는 공격수단의 일종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공간을 지배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진정한 지배구나.’

    어렴풋이 이해했고, 자신의 몸에 한정해 어설프게나마 영역을 흉내 낼 수 있던 준혁은 자신이 체득한 것은 진정한 영역의 극히 일부분이란 걸 깨달았다.

    그때 빛처럼 반짝이던 것이 점점 커지며 어느새 두 사람 앞엔 점잖게 생긴 남색 피부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사꾼 특유의 기질이 엿보이는 웃음을 띤 사내였다.

    “안녕하신지요. 조호랑 선인께서 자주 얘기하시던 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남운상단에 적을 두고 있는 학고응이라 합니다.”

    사내는 준혁을 향해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털털하게 보여도 결국 삼경에 오른 강자.

    준혁은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후배 최준혁이라 합니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하하. 무슨 말을 듣고 오셨길래 이리 예를 차리시는지요. 자자 저쪽으로 가서 얘길 나누시지요.”

    잠시 후, 공동 끝으로 이동한 세 사람은 나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의자 형태를 갖춘 곳에 자리했다.

    자리에 앉은 사내는 잡다한 얘기로 분위기를 풀 것 같은 인상과 달리,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후배께서 중천에 찾는 자가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우리 남운상단이 천운상단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다 하지만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느닷없이 상단의 장점을 말하는 사내를 보며 준혁은 이것이 조호랑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임을 눈치챘다.

    10년의 기간 동안 때때로 조호랑과 많은 얘길 나누었고, 대부분은 신변잡기에 불과했지만, 그중 몇 번은 꽤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꼭 이루고픈 목표 중에 선계에서 누군가를 찾고자 하는 것도 있다는 얘기도 한 적이 있었는데, 조호랑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기회를 연결해준 것이었다.

    준혁이 조호랑을 바라보자, 그녀는 그 의도가 맞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후 학고응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면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우선 찾는 게 누구인지 신상을 자세히 알려주신다면 상단으로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수락이 떨어지자, 준혁은 조심스럽게 얘길 꺼냈다.

    “적지주. 혹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마선 적지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적지주란 말에 조호랑은 깜짝 놀라 준혁을 쳐다보았고, 학고응은 짐작 가는 바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지주를 찾으시는 게 그의 능력 때문인지요? 흠….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지. 적지주가 전생의 인연을 찾아준다고는 하지만 조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으십니까?”

    고개를 끄덕인 준혁이 자신의 손목을 드러나게 했다.

    그러자 그의 손목에 감춰져 있던 붉은 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라! 인연실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이미 알고 있으시군요.”

    “찾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자가 법문이나 선마궁에 적을 두지 않아 찾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상단의 눈을 움직인다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선계에 오른 후 여서령을 찾기 위해선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지 감히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그 시발점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준혁은 얼떨떨하면서도 기쁜 마음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신다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니요. 거래입니다.”

    “??”

    “나는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둘이서만 얘기해. 난 모르는 일이야.”

    조호랑은 거래라는 단어가 나오기가 무섭게 공동을 떠나 지상으로 나가버렸다.

    원래 계획도 소개만 해주고 가려다가 준혁이 찾는 자가 누군지 궁금해 남아 있던 것이었다.

    그녀가 떠나자 학고응은 웃음을 지우더니 조금 거만해진 얼굴로 준혁을 대했다.

    “크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시지요.”

    갑작스럽게 변한 학고응의 모습에 준혁은 그게 원래 모습이고, 높은 지위를 가진 조호랑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준혁도 태도를 고치고 감정을 감췄다.

    “말씀하십시오.”

    “흠흠. 조만간 어르신을 따라 구지대륙 안쪽까지 가신다 들었습니다.”

    ‘구지대륙이면…. 암흑기로 가득한 공간을 말하는 건가?’

    임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준혁은 내색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얘길 들으셨겠지만, 그곳 중심부에 도착해 흑마지(黑魔池)로 향하실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곳에서 어르신이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나오실 때, 특정 물건을 구해다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어르신이 함께하시는데 어찌 물건을 빼돌리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준혁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상대가 놀란 눈을 했다.

    “빼돌린다니요?! 큰일 날 소립니다. 제가 원하는 건 어르신께서 관심도 없으실 잡석(雜石)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개 챙긴다고 하여도 전혀 상관하지 않으실 겁니다.”

    “흐음.”

    “만에 하나 어르신이 그것들도 가져가신다면, 빈손으로 오십시오. 그럼 대가 없이 적지주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손해 볼 것이 없었기에 준혁은 곧바로 거래를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하면 제가 원하시는 물건을 가져다드리면 바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는 겁니까?”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아무리 저희 상단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몇 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제가 곤란하군요. 어르신이 맡긴 일이 끝나면 조호랑 선인을 따라 대황대륙으로 떠나야 할 테니 말입니다.”

    준혁이 유독 ‘조호랑’이라는 이름에 힘을 주어 말하자, 그 의미를 파악했는지 학고응이 쓰게 혀를 찼다.

    그리고는 품에서 반투명한 옥으로 만든 옥패를 꺼내 준혁에게 내밀었다.

    “다 방법이 있지요. 이걸 가지고 계신다면 언제든 저와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고 말입니다.”

    “대륙을 넘어도 연락이 닿는단 말입니까?”

    “물론이지요. 특수한 힘으로 가로막혀있지만 않다면 어디든지 가능합니다.”

    ‘허. 그렇다면 삼청조의 힘에 버금가는 법기가 아닌가?’

    준혁은 혀를 내두르며 질문했다.

    “이런 게 이곳에선 흔한 것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비승 수사라 하셨지요? 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기 드문 것도 아니지요. 큰 상단을 관리하기 위해선 필수품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드리진 않습니다. 조호랑 선인이 소개하신 분이라 특별히 제공해 드린 겁니다.”

    ‘특별히라….’

    준혁은 그 의미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남운상단이 도움을 주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거래를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조호랑의 소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즉 그녀에게 잘 보이라는 것과도 같았다.

    ‘그녀가 나를 이자와 연결한 것도 그저 호의만은 아니겠구나.’

    그녀의 마음이 변하는 순간, 적지주를 찾는 거래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

    이것은 호의기도 하면서 인질이기도 한 것이었다.

    ***

    거래를 마치고 거처로 돌아온 준혁은 다시 수련에 매진했다.

    아니, 겉으로 보이기엔 수련에 힘을 쏟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턴 지급 받은 단약도 사용하지 않고 연형기 후기 상태만을 유지한 채 시간을 보냈다.

    조호랑까지 개입해 준혁을 화신기에 오르게 만든다고 애를 썼지만, 애초에 준혁이 수행 상승을 미루고 있으니 효과를 볼 리가 없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 마. 화신기가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도, 꽤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으니까.”

    준혁이 충격을 받은 건, 그런 준혁의 행태에 대해 조호랑은 재능이 없기 때문이라 못 박았다는 것.

    후일 알게 된 사실은, 선계에선 태어난 지 50년도 되지 않아 원영기에 오른 이도 꽤 많다는 것이었다.

    영기가 풍부하기도 했지만, 하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효과가 좋은 단약들이 즐비했기 때문.

    게다가 고위수사가 특수한 비술을 사용해주면 그 속도는 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조호랑이 준혁에게 재능이 떨어진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이미 화신기에 올랐어도 남았을 만한 단약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연형기에 머물러 있는 준혁은 그녀 눈엔 재능이 없는 걸로 비쳤다.

    “힘내. 너무 조급해할 필욘 없어. 소림주도 네 재능을 눈치채고 보채는 기색은 아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간간이 나타나 도움을 주는 조호랑의 지도를 받으며 준혁은 진실과 거짓이 섞인 수련의 시간을 보냈다.

    그와 더불어 고민의 시간도 길어져만 갔다.

    영역을 뚫고 도망칠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이대로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알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하고, 대황대륙으로 끌려갈 수는 없는 일.

    남운상단의 학고응이 적지주의 위치를 알려준다 해도, 과연 대황대륙으로 끌려가면 그곳에서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감을 표현하는 조호랑의 태도를 보자면 아마도 영원히 그곳에 머물러야 할 가능성도 다분했다.

    ‘떠나기 전에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언제든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는.’

    하지만 준혁의 고민은 어느 날 찾아온 참새 한 마리로 인해 무산되어버렸다.

    -짹, 주인, 부른다.

    그리고 참새의 방문 직후 찾아온 조호랑에게 자세한 얘길 들을 수 있었다.

    “당장 떠나야 하니깐 내 말 명심해! 절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알았지?”

    “알겠습니다. 헌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것입니까? 제가 화신기에 오를 때까지 시간을 준다 하지 않았습니까?”

    준혁의 질문이 이해 간다는 듯, 공감을 표하던 그녀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족들이 진마정(眞魔精)의 존재를 알아차렸나 봐. 그놈들이 그걸 손에 넣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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