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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32화 (232/408)

232화. 모여드는 사람들

“치료는?”

“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당분간은 깨지 않게 막아두었어요. 치료는 그 후에.”

대전 끝머리의 아무런 장식도 없는 상석, 그곳에 앉아있던 흰 눈썹 사내의 말에 준혁을 데리고 사라졌던 여인이 대답했다.

“그래, 어련히 잘하겠지.”

보고를 들은 사내는 관심을 지웠다는 듯 천장을 누비던 참새를 불러와 말없이 감상했다.

조호랑은 그런 사내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그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었죠?”

사내는 참새를 관찰하던 시선을 돌려 조호랑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고개를 살짝만 끄덕였다.

“그래. 겁을 주면 술술 불 거라 생각했지. 허나 생각보다 강단이 있더군. 내 적탄지(赤彈指)에 노출되고도 움츠러들지 않다니.”

자신의 붉게 변한 손가락을 보고도 꼿꼿이 고개를 치켜든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인족의 모습이 떠올라 사내의 입가엔 슬쩍 비웃음이 그려졌다.

“혹시 그 녀석을 데리고 가려는 건가요?”

“그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어. 적마라니…. 중천의 골칫거리가 이렇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그 녀석의 수행으론 버티지 못할 거예요.”

여인의 부정적인 말투에 사내는 참새를 날려 보내며 턱 끝을 주억거렸다.

“상관없다. 어차피 필요한 바를 취하기만 하면 그뿐. 왜? 그가 탐나나? 칠황의 딸께서?”

칠황(七皇), 그 이름은 흑석대륙에서 북으로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대황대륙을 다스리는 일곱 영수족의 왕을 의미했다.

눈을 빛내는 사내의 말에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깟 인족 따위. 다만 특이해서 연구 좀 해보려고 한 거예요. 소림주(小林主)께서는 그의 능력을 파헤치고 싶은 생각이 없으신가요? 마선이 봉인 당한 것.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한데?”

“상관없다. 잊었나? 내가 왜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 다른 이들은 내가 암흑기를 수련하기 위해 이곳에 머문다고 알고 있지만, 그대와 칠황은 천휴림의 소식을 들었으니 진짜 이유를 짐작할 테지?”

사내의 표정이 변하자 덩달아 여인도 진지하게 변했다.

“진마정(眞魔精)을 구하려는 거잖아요?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래. 진마정만 구한다면 스승님께선 그 기생충 같은 선마궁과 법문의 마선들…. 특히.”

으드득-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신라와 마규보. 그 두 놈을 압도하실 수 있을 터. 그때가 되면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실 수 있으실 테지.”

이야기에 너무 많은 정보가 담기는 것 같자 조호랑은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의 부친이라면 모를까, 동맹 세력에 잠시 놀러 온 자신이 알기엔 너무 과한 정보들이었다.

“근데 소문으론 적마? 그자의 소문이 너무 과하던데? 그것들이 전부 진실인가요?”

여인의 처신에 사내는 피식 웃고는 혀를 찼다.

“과해? 아니. 아마 그대가 들은 소문들은 꽤나 축소되어있을 가능성이 크지. 적마 그놈에게 보고(寶庫)를 털린 종문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니까. 왜 욕심나나?”

“법문의 보물이라던 무전지(無戰池)도 그가 훔쳤다던데.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욕심나는 게 정상 아닐까요? 봉인된 그자를 깨울 수만 있다면 그 많은 보물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눈을 빛내는 여인을 보며 사내가 손을 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빛살이 쏘아져 여인에게 닿았다.

여인은 어느새 손위에 생성된 호리병을 만지작거리며 기대감이 어린 표정을 했다.

“어쩌면 그 녀석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계약을 하지 않고 권능을 가져다 쓰는 건 절대 불가능해. 그건 마선들을 제약하는 절대 법칙 중 하나니까. 전부 연기일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럼. 이건?”

“그대가 예전부터 한번 마시고 싶다던 활신미주(活神美酒)다. 그 녀석을 살리는 데 사용해.”

활신미주라는 말에 여인의 얼굴에 경악이 담기려는 찰나,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대의 말을 들으니,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어. 처음엔 마선경이 그놈에게 닿으려고 하던 게, 그놈을 도와 일을 도모하려 한다고 생각했는데….”

“했는데요?”

“마선경도 놈을 찾으려고 한 것일 수도 있겠어. 선마궁도 적마가 사라진 후 한동안 그를 수배했었다고 했으니.”

사내의 말에 여인도 그것이 맞을 것 같다며, 쓰러져 있던 하계 비승 수사에게서 보물들의 행방을 알아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내의 예상은 절반만 맞았으니, 마선경이 그토록 집요하게 준혁을 찾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준혁이 비승한 순간, 그토록 간절히 찾던 공천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마 사내도 그 사실을 알았다면, 마선경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리라.

***

초죽림(超竹林).

사람 몸통만 한 대나무가 수십 미터씩 자라,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대나무 숲 안.

그곳에 마련된 초가집 안에서 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쾅!

“사형! 당장 가야 합니다!”

“진정하게나.”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적마라구요 적마! 그 빌어먹을 잡놈! 아니 도둑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단 말입니다!”

흰 수염을 명치까지 기른 도인의 풍모를 풍기는 노인이 핏발이 선 채 바락바락 소릴 질러댔다.

그 모습에 반대편에 차분하게 앉아있던 붉은 눈썹의 노인이 진정하라는 듯 손을 까닥거렸다.

“사형!! 우리뿐 아니라 다른 종문들에도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답니다. 다른 곳에서 잡아가면 우리 종문의 보물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흰 수염 노인이 거듭 소리를 지르자, 결국 반대편 노인의 붉은 눈썹이 짜증 난다는 듯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우…. 사제. 우선 내 말을 들어보게나.”

“지금 움직여야 한다니까요!”

“선마궁이 왜 그 사실을 퍼트렸다고 생각하는가?”

“예? 그, 그건….”

“적마의 능력이 무엇인지 잊었는가?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적마가 수많은 종문의 보고를 털어갈 때, 그를 잡은 자가 있냐 이 말일세.”

사형의 말이 이어지자, 흰 수염 노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선마궁의 그 늙은 여우도 적마를 직접 잡는 게 힘들다는 걸 아니까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걸세. 잡아다 바치라 이 말이지.”

“힘들게 잡은 걸 왜 바친단 말입니까? 적마가 마선이라 한들 그놈들에게 넘겨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휴우. 그래, 이유는 없네. 다만 그들이 무력을 동원하면 사제와 내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

흰 수염 노인이 시무룩하게 변하자, 붉은 눈썹 노인이 걱정하지 말란 듯 그의 손을 토닥거렸다.

“그러니 급하게 움직일 필요 없이 기회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럼…. 사형 말씀은 언제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까? 우매한 아우가 쉽게 알아듣게 설명해주십시오.”

그 순간, 붉은 눈썹 노인의 입가가 비틀렸다.

“움직이긴 당장 움직여야지. 다만 우린 흑석대륙으로 가진 않을걸세.”

“그럼?”

“흐, 그놈에게 당한 종문들을 전부 움직이는 게 먼저라 이 말일세.”

***

적마도를 발동한 후, 기절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준혁은 안개처럼 몸을 짓누르고 있던 기운이 점차 옅어짐을 느끼며 눈을 떴다.

‘별?’

정신을 차린 그의 눈에 처음 비친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별이었다.

‘외부는 아닌 듯한데 별이라니…. 아!’

시간이 조금 흐르자, 별처럼 보이던 것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진법으로 인한 현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별빛은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성광지력! 마선들을 억제하려는 것이구나.’

치료의 공능과 함께 마선들을 봉인시키는 힘인 성광지력.

그 힘이 하계의 신비경에서 보았던 것보다는 옅었지만, 자신을 치료함과 동시에 연결된 마선들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다행인가?’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다른 부정적인 영향은 없었다.

예상과 달리 어떠한 금제나 구속도 되어있지 않았고, 심지어 몸 상태도 처음 선계에 올랐을 때보다 호전된 상태였다.

다만 자신의 원영은 빼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영기가 고갈된 영양실조 상태였고, 주위의 종속 구슬들도 여전히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다.

‘역시 내가 회복되길 기다렸다가 부려 먹을 생각이구나, 적마의 능력을.’

준혁은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몸 곳곳과 종속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때 인기척과 함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어? 생각보다 빨리 깼네?”

정신을 잃고 누워있던 곳은 어두컴컴한 석실이었는데, 벽면 한쪽에서 거대한 존재감과 함께 번뜩이는 눈빛이 나타났다.

순간 상황을 파악한 준혁은 성광지력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저를 치료해주신 겁니까? 감사합니다. 수사.”

“역시 재밌어. 너는 당황을 하질 않구나? 보통 모르는 곳에 끌려오면 겁부터 먹어야 정상일 텐데?”

준혁으로서는 어느 정도 예상한 그림이었기에 당황할 일이 아니었지만, 여인에게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두 분 모두 저를 죽이고자 했다면 그 자리에서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테니, 이렇게 살려준 상황에서 겁먹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 쓰임새가 있는 것이겠지요.”

“뭐? 호호, 정말 재밌어. 그리고…. 아니다. 그래, 소림주가 너를 치료하라고 했으니 그 말에 따라야지.”

“소림주라면…?”

흰 눈썹 사내의 정체가 비밀은 아니었는지, 여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맞다. 너 하계 수사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었지? 소림주는 천휴림의 공식 제자를 일컫는 말이지. 그는 세 번째 제자고 말이야.”

“??”

“천휴림도 몰라?”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이걸 어디서부터, 아니지.”

준혁의 반응에 인상을 찌푸리던 여인은 말없이 성큼 다가오더니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준혁은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지만, 여인이 뭘 하려는지 대충 눈치챘기에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 순간 옥간을 이용해 정보를 받아들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수많은 정보가 박히기 시작했다.

“천휴림…. 선마궁…. 법문….”

간단하고 주요한 것들의 주입이 끝났는지 여인이 손가락을 떼자, 준혁은 순간 비틀거리다가 겨우 자세를 유지했다.

‘선마궁과 법문이 마선들의 세력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천휴림과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었구나.’

여인이 주입한 정보는 아주 대략적인 것들이었다.

중천이라 불리는 선계엔 셀 수 없이 많은 종문과 세력들이 즐비했는데, 그중 손꼽히는 거대 세력이 바로 천휴림과 선마궁, 법문이었다.

물론 그들과 비견될 법한 곳들도 여럿 존재했지만, 단일 세력으로는 가장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중 선마궁과 법문은 마선들을 위주로 하부세력이 선계 곳곳에 존재하는 형태였고, 천휴림은 두 곳과 척진 채, 선계의 중심 대륙이라는 천운 대륙을 지배하는 곳이었다.

선마궁과 법문이 마선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세력이라면, 천휴림은 인족과 요족, 수인족을 대표하는 세력이었다.

그런 천휴림에서 소림주라 불리는 세 제자의 자리, 그중 세 번째 자리에 오른 수인족의 대표가 바로 이곳에 자리를 잡은 대천경 수사였다.

아니, 대천경 수사라 소문이 나 있긴 했지만, 정확히는 진선경에 발을 내밀었다가 수행이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대충 눈치챈 것 같아 말하자면, 몸 상태가 회복되고 나면 그를 따라 위험한 곳으로 간 뒤, 특정 물건을 가져와야 할 거야.”

준혁이 정보를 체화시켰다고 여겼는지, 여인이 설명을 이어갔다.

“아마 네 수행이면 일이 끝나고 살아올 확률은 희박하겠지.”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기에, 준혁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 뭐야? 안 놀라?”

“위험한 일을 맡길 거라는 건 예상했습니다. 진선경에도 한발 올려보신 대천경 수사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저 같은 연형기 수사가 감당이나 할 만한 일이겠습니까? 마저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살아온다면 저에게 자유를 주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 후에도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겁니까?”

준혁의 말이 끝나자, 여인은 지금껏 호기심 가득하던 표정을 지우고는 진지하게 변했다.

“와, 진짜 재밌어! 나 결정했어!”

“??”

여인은 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준혁의 눈빛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내가 어떻게든 살려줄게. 나한테 그 정도 힘은 있으니까. 대신 나랑 같이 가자!”

“... 어딜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도망갈 생각이었지만, 살려준다는 말에 준혁은 귀가 솔깃했다. 대천경 수사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던 여인이 도와준다면 살아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성으로 가자.”

“......”

여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일이 끝나면 나와 함께 대황대륙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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