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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29화 (229/408)

229화. 회복 (3)

갑작스러운 사태에 시간이 정지라도 한듯했다.

너무 빠른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구로반은 두 눈만 치켜뜬 채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노인 역시 기세만 끌어올리고 있던 상태였기에 준혁의 기습을 피하지 못했다.

푸욱-

자신보다 수행이 낮은 준혁이 기감을 피해 기습을 준비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끄륵-

분광소로 만들어진 분신체의 칼날 같은 손이 심장을 뚫고 나오자, 노인은 피를 한 움큼 뱉어내더니 두 손가락을 꼬아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 순간, 심장이 뚫린 노인의 몸이 흐릿하게 변하며 공동의 끝에 나타났다.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커헉, 이 빌어먹을 잡놈이!”

‘심장을 뚫리고도 살아 움직이다니.’

노인이 죽는 순간 금빛 실을 방출해 그의 원영을 구속하려 준비 중이던 준혁은 급하게 계획을 변경해 적마도를 소환했다.

그리고 소환과 거의 동시에 노인의 앞으로 순간이동해 월광지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내질렀다.

‘지금 내 몸으론 얼마 버티지 못한다!’

분광소의 일격으로도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순간, 이미 준혁은 무영기로 눌러놓았던 수행을 전부 드러냈다.

마선경의 시선을 신경 쓰다 죽는 것보단, 우선 이곳의 일을 처리하고 다시 도망치는 게 나았으니까.

하지만 화신기라는 수행을 노름으로 딴 건 아니라는 듯, 기습에 분노를 표하던 노인은 준혁의 월광지력을 무형의 보호막으로 막아냈다.

그리고는 보호막에 서리가 끼며 얼어가는 사이, 이마에 손을 가져가며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라졌다.

조금 전과 다른 게 있다면 나타난 순간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뱉어냈다는 것 정도.

“네놈!! 이미 태음목을 얻었구나!”

‘태음목? 설마? 천년수가 태음목이란 말인가?’

월광지력에 반응한 노인을 보고 준혁은 눈꽃 비경에서 달의 음기를 응축시키던 천년수를 떠올렸다.

“구로반! 뭐 하나, 당장 저놈을 잡아!”

노인은 입구에서 당황한 채 서 있던 구로반에게 소리치더니 어디서 소환했는지 뇌기가 서려 있는 검을 꺼내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하지만 노인의 명령에 구로반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질 않았다.

연형기 초기인 줄 알았던 준혁이 사실은 연형기 후기였고, 그런 후기 수사가 두 명.

거기다 자신보다 수행이 높은 동요문이 기습에 당한 후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걸 보고는 도망쳐야 하나, 같이 싸워야 하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구로반!!”

거듭 구로반을 재촉한 노인은 뇌기를 머금은 검을 준혁을 향해 쏘아 보낸 후, 알약을 꺼내 삼켰다.

알약을 먹고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목에 낀 핏덩이를 뱉어내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 손바닥으로 허공을 톡톡 건드리더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노인 주변의 영기가 실체를 가진 것처럼 뭉쳐 들더니, 그의 심장을 향해 미친 듯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화신기가 괜히 진정한 선인의 시작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구나! 부서진 심장을 스스로 치료하다니!’

찰나에 불과한 순간, 심장이 부서진 채 죽어가던 여서령의 모습을 떠올리던 준혁은, 황급히 상념을 날려버렸다.

‘저자가 몸을 회복하면 상황을 타개하는 건 불가능할 터, 할 수 없구나.’

뇌기를 품은 검을 월광지력으로 막아선 준혁은 노인이 회복하길 지켜볼 이유가 없었기에 분광소를 움직여 노인을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연달아 수결을 맺었다.

잠시 후, 공동의 입구에 설치되어있던 결계가 반응하더니 구로반을 감싸버렸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되어있던 결계가 내부의 그를 감싸자, 구로반은 당황해 삼지창을 휘두르며 벗어나려 했다.

그사이, 준혁은 또 다른 수결을 완성했고, 수결이 끝나자 그의 정수리 위로 핏빛을 띤 인형 하나가 퐁 하고 솟아올랐다.

“천혈!!!”

핏빛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자, 분광소의 공격을 막으며 새로운 술법을 발동하려고 하던 노인이 경악을 터트렸고, 자신을 감싼 결계를 몇 번의 공격만으로 반파시킨 구로반도 넋을 잃고 시선을 고정했다.

천혈족의 천혈이 선계에서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던 준혁.

만에 하나라도 이 소식이 퍼져나간다면 마선경이나 괴조의 관심과는 차원이 다른 역풍이 불 것을 알았기에, 천혈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현재 준혁의 상태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중이었기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상황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리고 준혁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패가 ‘천혈’이었다.

동요문의 경악과 구로반의 반응은 무시한 채 준혁은 빠르게 손가락을 들어 노인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갈라져라.”

지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의 정수리 위로 나타난 핏빛 인형이 손을 치켜들었고, 그와 동시에 한때 준혁을 소름 돋게 했던 붉은 광선이 공간을 갈랐다.

스걱-

***

툭- 떼루르르

경악과 분노, 그리고 허탈감이 동시에 담긴다면 그런 모습일까?

분광소의 공격을 막던 노인은 핏빛 광선이 나타난 순간, 급하게 손가락을 이마에 가져갔지만, 몸을 피하기도 전 이미 목이 잘려버리고 말았다.

목이 잘리자 요동치며 심장으로 모여들던 영기도 흩어져 버렸고, 노인의 몸은 바들바들 떨더니 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준혁이 발을 굴리자, 그의 발끝에서 수십 가닥의 금빛 실이 빛살처럼 날아가 노인의 시체를 감싸버렸다.

그 모습에 입구 결계에 붙잡혀 있던 구로반은 삼지창에 영기를 구겨 넣듯 밀어 넣으며 사방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이제 동요문을 돕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자신이 살아나갈 수 있냐 아니냐의 문제란 걸 인식한 듯했다.

“모든 일은 욕심이 문제지요.”

그런 그를 향해 눈짓으로 분광소를 움직인 준혁은 천천히 금빛 실에 감긴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천혈을 성장시킬 때도 정혈을 사용해야 했지만, 능력을 사용할 때도 정혈을 소비해야 했기에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탈색된 듯한 준혁은 핏빛 인형을 내부로 불러들였다.

그리곤 실핏줄이 가득한 입가를 힘겹게 움직여 노인을 불렀다.

“어서 나오시지요.”

원영이 튀어나오길 기다리던 준혁은 반응이 없자, 월광지력을 송곳처럼 만들어 노인의 단전에 쑤셔 넣었다.

푹-

그 순간, 단(丹) 속에서 힘을 모으고 있던 노인의 원영이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촤아악-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한 채 대기하고 있던 준혁의 금빛 실을 뚫지는 못하고 움직임을 봉쇄당하고 말았다.

“도망이 가능하실 것 같습니까?”

준혁은 코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었다.

“하계의 술법이 얼마나 비루한지 확인해 보시니 어떠십니까?”

금빛 실을 뚫기 위해 발악하는 노인의 원영을 보며 준혁은 자신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노인의 원영은 악독한 눈빛으로 준혁을 노려보며 어떻게든 금빛 실을 끊어내기 위해 손발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수사의 선도는 이것이 끝인 듯합니다.”

살기 위해 발악하는 원영을 보며 준혁은 여유롭게 악담을 건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준혁의 심정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화신기에 오른 원영은 그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운을 품고 있었고, 예전에 상대했던 자들처럼 금빛 실로 순식간에 구속하는 게 불가능했다.

외관상으로는 원영이 금빛 실에 완벽하게 포획된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빛 실이 터져나갈 것같이 위태로운 상황.

금빛 실과 원영은 쉴 새 없이 줄다리기하며 힘을 겨루고 있는 상태였다.

허나 그런 마음은 준혁뿐만이 아니었는지, 잠시 후 원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사! 살려주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내 가진 재산을 전부 드리리다!

고서에서 보긴 했지만, 원영이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전달하자 준혁은 깜짝 놀랐다가, 여유로운 척 입을 열었다.

“어차피 수사가 죽고 나면 제 것이 될 것인데, 거래가 가당키나 합니까?”

-그건 모르는 소리요! 평소 지니고 다니던 것은 얼마 되지도 않소이다! 내 거처를 찾아낸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난 의심이 많아 가진 것들을 비밀장소에 숨겨두었으니 말이오!

살기 위한 노력인지 노인의 원영은 묻지도 않은 것들을 술술 불었다.

하지만 준혁 입장에서 어차피 이곳은 용담호혈. 화신단보다 귀한 영단 같은 것이 아닌 이상 재산에 욕심낼 이유가 없었다.

괜히 물건에 욕심내다 목이 달아날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

“저는 몸만 회복하고 나면 바로 떠날 겁니다.”

원영은 준혁이 물욕이 없어 보이자 이번엔 협박을 해왔다.

-나를 죽이면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듯싶으시오! 어르신께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협박 이후엔 다시 사정이 이어졌고, 그런 행태는 분광소와 구로반이 대치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

한참 동안 이어지던 줄다리기를 끝내야겠다 마음먹은 준혁은 다시 천혈을 불러냈다.

정혈을 거듭 사용하는 게 후환이 두렵기는 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게 된다면 자신이 먼저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분광소가 소비하는 기운도 버티질 못하겠어.’

인지경까지 발동하고 있었지만,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몸 상태.

지잉-

결국 소리 없이 나타난 핏빛 인형이 실처럼 가는 핏빛 광선을 쏘아 보내 노인의 원영을 무력화시킨 후에야 금빛 실이 제 기능을 하며 그를 완벽하게 구속했다.

‘쉬고 싶다….’

어쩌면 수도계에 발을 내디딘 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 아닌가 생각하며 준혁은 월광지력으로 원영을 한 번 더 봉인했다.

그때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걸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현재 종속들이 몸을 숨긴 구슬이 신체 내부에 있는 상황.

혈단법을 이용해 노인의 원영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화신단의 도움 없이도 그들을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시도해 보면 알 테지.’

어차피 본인의 회복이 최우선이었기에 상념을 날려버린 준혁은 노인의 원영을 목함에 담아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 또 한 번 봉인했다.

그리고는 힘겹게 움직여 분광소와 대치 중인 구로반에게 다가갔다.

“수사! 살려주십시오! 저는 반대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이곳 수사들끼리의 분쟁을 금했기에, 절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렸단 말입니다!”

준혁이 다가오자 자신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는지, 구로반은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호소했다.

한 명과 비등하게 대치했으니 두 명을 상대하는 건 그 끝이 자명한 일.

“언제나 후회는 늦는 법 아니겠습니까?”

“수사! 제발 살려주십시오! 한발만 나아가면 선도가 눈앞이거늘…. 제발 부탁드립니다.”

“잘 가십시오.”

분광소와 함께 구로반을 포위하듯 선 준혁은 힘겹게 수결을 맺으며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자 구로반의 공격에 대부분 파괴되었던 결계가 다시 생겨나며 그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암담하게 변한 구로반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안을 궁리하다 급하게 준혁을 멈춰 세웠다.

“자, 잠깐!! 제가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당장이라도 손을 쓸 것 같던 준혁이 멈춰서자, 구로반은 황급히 말을 쏟아냈다.

“동요문 저자가 보물을 숨겨둔 장소 말입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그 장소는 물론이거니와 제가 가진 것도 전부 드리겠습니다!”

피식-

다급히 외치는 구로반을 보며 준혁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급한 건 보물이 아니라 목숨이었으니까.

“잘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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