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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25화 (225/408)

225화. 중천(中天)

예로부터 땅이 검다 하여 이름 붙여진 흑석대륙(黑石大陸).

범인은 평생을 이동해도 끝에서 끝까지 닿을 수 없을 만큼 넓은 그곳은 북으로는 호전적인 야수들이 사는 대황대륙(大荒大陸)이 존재했고, 남으로는 누구도 그 끝을 본 적이 없다는 초태해(超太海)가 자리하고 있었다.

눈으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세상을 누비고 다니는 선인들도 계면의 끝에서 끝까지 다녀본 적이 없다는 중천에서, 흑석대륙은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어야 할 정도로 보잘것없고 먼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흑석대륙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그건 오늘날도 마찬가지였었다.

“어이 독형. 독형도 그곳에 가는 겁니까?”

“허허, 그럼 무에 이곳까지 왔겠습니까?”

온통 검은 돌밖에 보이지 않는 곳을 날아가는 두 사내중 얼굴 가득 주근깨가 박힌 사내의 질문에 통통한 사내가 대답했다.

“독형이 호란대륙(浩瀾大陸)에서 왔다고 했수?”

“그렇습니다. 호란의 명규성(明奎城) 출신입니다.”

“멀리서도 오셨수. 명규성이면 호란대륙의 남쪽 끝이라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 출발해 주운대륙(朱雲大陸)과 뇌명숲(雷鳴林)을 건너 이곳까지 오다니…. 참. 대단하구려.”

주근깨 사내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자, 통통한 사내가 코끝을 훔치며 무언가를 회상하듯 시선을 멀리 옮겼다.

“여러 번 죽다 살아났습니다. 암흑기로 몸을 단련하겠다는 욕심 하나로 삼십여 년을 넘게 날아왔으니.”

“흘흘, 천휴림(天休林)의 고류제(高流帝)께서 구지대륙이 사라진 곳에서 발생한 암흑기로 영역을 단련할 수 있다는 걸 알아내신 후로, 수도자들이 끊이질 않고 있긴 하지요.”

“그렇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위험을 감수할만합니다.”

주근깨 사내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여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오래전 구지대륙에서 천혈족의 후인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 터진 후, 구지대륙과 동서로 닿아있던 흑석대륙은 전장으로 발돋움하며 수많은 이들을 불러 모았었다.

하지만 구지대륙 전체가 공간의 틈으로 날아가 버린 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자 흑석대륙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죽은 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전쟁이 어이없이 끝나버린 후, 흑석대륙은 수도자들 사이에서 점점 잊혀갔다.

그러던 것이 최근 수백 년 전부터 구지대륙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발생하던 암흑기를 이용해 영역을 단련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수많은 수도자가 다시금 모여들고 있었다.

심지어 삼경에 이른 수도자뿐 아니라, 화신기, 혹은 연형기에 올라 다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비루한 땅은 그 어느 곳보다 수련에 인기 있는 장소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다만 소규모 마을과 부락밖에 존재하지 않던 곳이라 편의시설이나 전송진 따위는 찾을 수가 없어서,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럼 독형은 어디까지 가시려는 겁니까?”

“저야 아직 소천경에도 이르지 못해 깊은 곳에서 수련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흑석대륙과 맞닿아있는 외곽에서만 수련해야지요. 그것도 쉽지 않을 거라 여기고 있습니다.”

“하긴, 안으로 들어가면 흑마자(黑魔子)가 날뛴다고 하니깐 깊이 들어가면 안 되긴 하것수다.”

통통한 사내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흑마자? 그것이 무엇입니까?”

통통한 사내의 질문에 주근깨 사내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흑마자도 모른 채 옛 구지대륙이 있던 공간에 발을 디딜 생각을 했단 말이요?”

“가르침을 주십시오.”

“허,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야…. 간단하게 말하자면, 흠, 구지대륙이 사라진 공간에 암흑기가 모여들어 기이한 압력이 발생하는 건 알고 있겠지요?”

“그것 때문에 그곳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흘흘, 맞수. 그 암흑기가 영기에 반응해 의지를 지닌 영체가 생겨나는데, 그것이 흑마자요.”

형체는 없어 물질이나 생명체라고 부를 순 없었지만, 정령체라고 하기엔 물리적인 충격에도 피해를 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것이 반물질 반영체라 여기고 있었다.

“흑마자는 생명체만 보면 몸을 빼앗으려 달려드는데, 영역이 없는 자들은 잠시도 버티질 못한다는 얘기가 있수다.”

“허, 그런 괴생명체가 있다니! 몰랐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통통한 사내가 두 눈을 빛내자, 주근깨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지평선 멀리 보이는 웅장한 산맥을 가리켰다.

“저기가 구지대륙과의 경계였던 서봉산맥(西鳳山脈)입니다. 내 덕에 목숨값 하나는 건진 셈이니 훗날 잊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제가 구형 덕분에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훗날 꼭 이 은혜를 갚….”

쿠웅-

통통한 사내가 말을 잇는 사이, 서봉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위로 거대한 금빛 진법이 나타나며 금빛 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쿠르르르-

“이 무슨….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금빛 기둥은 엄청난 영기파동을 퍼트리며 주변을 휩쓸었는데, 산맥에서 멀리 떨어진 두 사람 역시 전율을 느낄 정도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쳤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던 통통한 사내는 갑자기 허공을 박차며 쏜살같이 날아가는 사내를 향해 손을 뻗어야만 했다.

“구, 구형!”

구지대륙과 맞닿아있는 흑석대륙, 그것도 가장 최전방이었던 서봉산맥 근처는 암흑기로 인해 불안전했고, 방문하는 수도자들도 많았기에 수행을 올리기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금빛 기둥의 정체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새로운 보물이 탄생하거나, 천지 영기를 스스로 깨달은 생명체가 태어난 것 중 하나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걸 단번에 알아차린 구형이라 불린 사내는 시종일관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것과 달리 대답도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이었다.

“가, 같이 갑시다!”

통통한 사내도 뒤늦게 허공을 갈랐지만, 주근깨 사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질 않았다.

***

둔광을 일으키며 구형의 뒤를 쫓은 통통한 사내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가파른 산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비행이 가능한 수도자에게 산이란 조금 귀찮은 장벽일 뿐, 발걸음을 막을 존재는 될 수 없었다.

마침내 숨이 막힐 정도로 높은 산 정상에 도착하자, 통통한 사내의 눈에 구형이라 불렀던 주근깨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구형! 거 같이 좀 가시지. 아무렴 보물이 나타났다 해도 내가 욕심을 내겠습니까? 거참.”

통통한 사내, 독고진은 너스레를 떨며 주근깨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구형이 서 있던 봉우리 정상엔 농밀한 영기의 잔재와 함께 계면 사이에만 존재한다는 암흑기가 진하게 묻어있었다.

다만 요란한 금빛 기둥의 출현과 달리 구형을 제외하곤 어떤 물건도 물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벌써 챙긴 건가?’

독고진은 급히 따라오며 끌어올렸던 영력을 가라앉히며 주근깨 사내에게 물었다.

“혹, 뭔가 발견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독고진이 관심 없다는 듯 가볍게 묻자, 주근깨 사내, 구로반이 피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분명 누구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여겼는데…. 흐음.”

구로반의 표정은 거짓이 없어 보였기에 독고진은 의심 없이 그의 말을 믿었다.

그때, 아쉬워하던 구로반의 얼굴이 구겨지며 고개가 훽하고 돌아갔다.

“이런!”

“왜 그러십니까?”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겠습니다!”

“??”

말을 마친 구로반은 비행 법기도 꺼내지 않고, 전신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더니 보물을 발견하고 튀어왔을 때처럼 다시 빛살로 변해 산맥 아래로 쏘아져 나갔다.

그 모습에 독고진은 이유도 모른 채 그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구형!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이유라도 알려주십시오!”

“독형은 안 느껴지십니까? 지금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기운이?”

구로반만큼은 아니었지만, 독고진 역시 미약하게나마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황금빛 기둥이 나타나며 보물의 탄생을 알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아!!”

구로반의 질문이 끝난 순간 독고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몰려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보물의 행방을 찾는 것일 터.

독고진의 표정을 확인한 구로반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이제 아셨습니까? 누가 되었든 우릴 발견하면 보물을 내놓으라 강짜를 부리겠지요. 우리말은 듣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러겠습니다. 내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서봉산맥에서 멀리 떨어진 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가보도록 합시다. 아마 삼경에 이른 자들도 나타날 터. 괜히 가까이 있다가 횡액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독고진은 구로반을 만난 게 천운이라 생각하며 그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그때, 앞서 날아가던 구로반이 급하게 멈춰서더니 고개를 치켜들고 당황한 소리를 내뱉었다.

“저, 저것이 어찌 이곳에!”

구로반이 멈춰서자 덩달아 멈춰선 독고진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다가 휘청하더니 비행 능력이 잠시간 풀려버렸다.

“저건 또 무엇입니까?!”

경악에 가까운 독고진의 음성.

황금 기둥이 나타났던 서봉산맥의 정상 위,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하늘에 기이한 기류가 타원형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고, 그 안엔 거대한 붉은 눈동자가 나타나 세상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선마궁…. 백팔마선경의 눈입니다.”

선마궁(仙魔宮)이란 말에 독고진은 조금 전보다 더 놀란 얼굴을 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선마궁이면 천운대륙(天運大陸)에 있는 그곳 아닙니까? 그… 마선들이 주축이 된 법문과 비교되는 그곳?”

“그렇지요. 그러고 보니 독형은 천운대륙과 붙어있는 호란대륙 출신이면서 저보다 더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구로반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독고진이 양손을 세차게 저었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그리고 붙어있다니요? 호란대륙에서 천운대륙으로 가기 위해선 ‘황류의 땅’이나 ‘소류의 땅’을 거쳐야 하는데. 그곳은 삼경에 이른 자들도 죽어 나가는 곳입니다. 그곳을 통과하려거든 차라리 공간의 틈을 지나가는 게 낫다고 하는 말 못 들어보셨습니까?”

“하긴. 그런 얘길 들어본 것 같긴 합니다.”

하늘 천장에 붙어있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언갈 찾고 있는 모습에 구로반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팔뚝을 쓰다듬다가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보물이 나타난 징조에, 선마궁의 눈이라는 마선경의 눈동자까지…. 이곳에 큰일이 터지려나 봅니다. 독형은 이런데도 암흑기로 수련을 하러 떠나실 겁니까?”

독고진 역시 영력을 움직여 비행을 시작하며 구로반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겠습니까? 저도 눈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겠습니다.”

“그럼 가실 곳도 없으실 텐데. 저와 함께 가시지요. 원래는 외곽까지만 무사히 도착하면 끝날 의뢰였지만, 원하신다면 안전하게 수련하실 수 있는 장소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비용은….”

날아가던 도중 구로반이 고개만 돌려 의사를 묻자, 독고진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안전한 곳에서 수련을 하다가 이곳 정세가 다시 진정되면 그때 제가 말한 곳까지 다시 안내해주기로 말입니다.”

독고진의 제안에 구로반이 얼굴을 구겼다. 곤란함이 가득하다는 듯이.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그렇게 해주신다면 원래 드리기로 했던 비용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독고진이 알기로 구로반 역시 자신이 원래 가려고 했던 수련 장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러니 제안을 거절할 리 없는 일.

그리고 그런 예상에 맞게 구로반이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긍정을 표했다.

“어쩔 수 없군. 그렇게 하시지요. 그럼 우선은 자리를 피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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