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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23화 (223/408)
  • 223화. 비승 준비 (2)

    독고제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울릉도로 돌아온 준혁은 청명을 통해 물자를 옮기라 지시했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산맥 전체에 말입니까요?”

    “그래. 지리산을 시작으로 백두산까지, 내가 알려준 위치마다 일정량의 영석을 매립하고, 가심악을 데려가 진법을 새겨 넣거라.”

    “가 수사는…. 크흠, 원영 응결을 준비한다며 칩거에 들어간 지 몇 해나 지났습니다요.”

    수도자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보니 준혁의 명령에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청명이 곤란하다는 듯 몇 마디 말을 더했다.

    준혁은 문제없다는 듯 가볍게 웃어 보이며 공간대에서 자기병 하나를 꺼내 청명에게 건넸다.

    “일을 마치고 나면 여기 2품 화목단을 준다고 하면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사쿠라와 도천에게도 일러두겠으니 그들도 함께 데려가거라.”

    청명은 두 손으로 공손히 자기병을 받아들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이것이면 욕심 많은 가 수사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오겠습니다요. 명대로 움직이겠습니다요.”

    ‘어르신에게 전부 계획이 있구나’ 하며 감탄 어린 얼굴로 일어선 청명이 허리를 깊게 숙이자. 떠나려는 그에게 준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네 수고를 잊지 않고 있다.”

    갑작스러운 준혁의 말에 청명이 떠나려던 발걸음을 붙잡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요.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전부 어르신 덕택인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요.”

    피식-

    “그래…. 그럼 가보거라. 아마 너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이 될 테니 이 일만 끝내고 난다면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하거라.”

    “...예 어르신.”

    청명이 비승을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떠나자 준혁은 사쿠라와 도천을 불러 그를 도우라 명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전부 울릉도를 떠나 천제단이 위치한 태백산으로 향하자, 여동생인 최나연과 제자인 천이화를 불렀다.

    “오빠.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딜 다녀온 거야?”

    이젠 제법 어엿하게 한 사람 몫을 하는 수도자가 되었음에도 자신 앞에만 서면 한없이 철없는 아이처럼 변하는 동생의 모습에 준혁은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이유야 어쨌든, 무엇이 나를 이끌었든,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빼빼 말라 뼈밖에 남지 않았던 병약한 소녀의 모습에서 누가 보아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답게 자란 동생을 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연아.”

    “응? 왜? 부하들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겔 잡아.”

    철이 없어도 눈치는 있는지, 주제를 돌리려는 최나연에게 준혁은 자신이 사용하고 남은 명혼단 한 알과 가지고 있던 1, 2, 3품 화목단을 가득 담은 공간대를 건네주었다.

    “비승한 후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나, 네가 살아있어야 다시 만날 테니, 그때까지….”

    “그만!”

    최나연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준혁의 말을 막았다.

    “알겠어! 이제 진짜 수련에 매진할 거니깐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언니한테 들으니까 원할 때 언제든 올 수 있다며?”

    물론 사쿠라가 나연에게 말한 것처럼 준혁이 원한다면 천제단을 통해 다시 하계로 내려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통로의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천제단이었으니까.

    하지만 준혁은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수행이 더 올라가면 갈수록 계면은 자신을 밀어낼 테고,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천제단이 이어진 장소에 영원히 머물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자신은 선계에 오르고 나면 인연 실을 가지고 여서령을 찾아 떠날 테니 앞으로 일들은 기약할 수 없었다.

    “아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고서에 적힌 내용이니 직접 비승하기 전까진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니겠느냐?”

    “흥! 하기 싫은 건 아니고? 아무튼 오늘 얘긴 못 들은 걸로 할 거야. 올라가도 십 년…. 아니 그건 너무 짧으니까 오십 년에 한 번씩은 보러와.”

    잔뜩 토라진 듯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동생의 모습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고갤 끄덕여야 했다.

    “그래. 노력해 보마.”

    그때 남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이화도 최나연의 말에 힘을 실었다.

    “스승님. 저 역시 스승님께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나연이 말대로 오십 년은 힘드실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될 때마다 우릴 보러 와주세요.”

    천이화는 제자가 된 후, 시간 대부분을 사쿠라와 보냈기에 준혁은 그녀에게 미안한 것이 많았다.

    옛 인연으로 이어졌기에 누구보다 신경을 쓰고 싶었지만, 쉬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다 보니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고 만 것.

    “이화 너를 돌보지 못한 것이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스승님께서 내려주신 것만 해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정돈걸요.”

    천이화는 꾸민 표정이 아닌, 진심 어린 얼굴로 준혁을 향해 웃어 보였다.

    산수로서 결단기에도 오르지 못하고 시들어버렸을지 모르는 삶이 준혁을 만났기에 활짝 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미안해하던 준혁의 표정에도 어느새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잠시 후,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자릴 떠난 동생과 공간대 하나를 선물 받은 채 그 뒤를 따르는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준혁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한참 후, 상념을 털어버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기 전에 표식은 남겨놔야겠지.”

    해가 지기 전, 영국이 위치한 방향으로 누군가 하늘을 가르며 빛 꼬리를 남겼다.

    ***

    영국에 도착한 준혁은 제이엘을 찾아가 비승에 대한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꽃잎 한 장을 흘려보내 그녀가 가진 마선에 흔적을 남겼다.

    천혈을 받아들인 후 마선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마선들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후에야 가능하게 된 능력이었다.

    계약자가 있는 마선을 강제로 빼앗을 만큼 그 힘을 원하진 않았지만, 훗날 계약자가 사라지면 그땐 자신이 회수할 수 있게 한 조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독고제가 원한 종족의 번영을 위한 마선기의 회수가 아닌, 식검을 발전시키며 강해져 온 자신의 행보를 이어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럼 비승식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지 말라 해도 가야죠. 선계로의 문이 열리는 일이니 제 눈에 꼭 담아두겠어요.”

    “하긴, 제 다음은 수사가 가장 유력하긴 합니다.”

    “그럼요. 기다리세요.”

    인도의 아르나프가 완영기 수행이라는 것을 모른 채 호언장담하는 제이엘.

    그녀를 뒤로한 준혁은 백두 비경으로 이동해 이글대는포효를 만났고, 같은 일 처리를 한 후 울릉도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하듯, 수하들을 하나씩 거처로 불러들여 깊은 대화를 나눈 후, 가르침을 내리기 시작했다.

    연단각에 머무는 이들에겐 천균의 가르침을 전파해 목족의 연단술을 널리 퍼트렸고,

    무위각 소속 수사들에겐 강체술을 바탕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 위주의 가르침을 내렸다.

    비각에 가장 필요한 건 빠른 속도였기에 풍둔술을 포함한 지둔술과 화둔술을 남겨주기도 했다.

    유일하게 목둔술만은 익힐 재능을 가진 자가 하나도 없어 옥간으로 남겨 비각주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미 신체 강도가 너무 올라 자신에게 필요가 없어진 화룡관을 마선문에 남겨, 일정 자격이 되는 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일들을 처리하며 소식을 기다린 지 일 년.

    청명이 피곤 가득한 얼굴로 나타나 보고했다.

    “어르신! 준비가 끝났습니다요!”

    ***

    웅성웅성-

    태백산 아래 수많은 인파가 물밀듯이 밀려와 진을 치고 있었다.

    축기기 이상의 수도자들도 더러 보였지만, 연기기 수사들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일반인들도 드문드문 존재했다.

    “선계로 가는 구멍을 뚫는다면서?”

    “에이 무식한 인간아! 구멍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문을 여는 것일세.”

    “뭐야? 그럼 특별한 것도 없는 것 아닌가? 누가 됐든 문고리만 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

    “정말 한심한 소리만 하는구먼. 저 푸른 하늘을 보고 있으면서도 모르나? 하늘 어디에 손잡이라도 보이나? 쯧쯧, 그러니 여태 연기기에 머물러있지. 생각을 좀 하게나 생각을.”

    “지도 연기기면서 뭘 뻗대는 거야?”

    “뭐?! 이게 지금 해보자는 거야!?”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여기저기 소란이 일었다.

    그렇게 개미 떼처럼 모여 있는 자들을 제외하면 산 곳곳에 축기기 수사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포진해 있었고, 결단기 이상부터는 개인 혹은 두셋씩만 자리를 잡은 채 비승식을 기다렸다.

    “마 수사, 소문을 듣고 오긴 했지만…. 정말 선계로 가는 문이 열린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마선문에 소속된 친우에게 들은 얘기니 틀림없습니다.”

    “최 도주께서 완영기에 올랐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가능한 것입니까?”

    울창한 소나무 숲, 꾀죄죄하게 생긴 사내의 질문에 마 수사라 불린 사내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직 소문을 듣지 못하신 겁니까?”

    “무얼 말입니까?”

    “완영기라 알려진 최 도주가…. 사실은 연형기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마 수사는 한껏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예전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완영기에 오르는 것치고는 그 과정이 너무 요란했다는 것부터 시작해, 뇌전이 머물다 사라진 것까지…. 아무튼 알게 모르게 원영기 수사들 사이에선 최 도주가 완영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허…. 연형기라니. 그게 정녕 수련으로 오를 수 있는 경지였단 말입니까? 선계에 비하면 이곳은 영기 농도가 매우 낮아 완영기 이상은 힘들다고 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꾀죄죄한 수사의 모습에 마 수사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덕분에 우린 편하게 숟가락을 얹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궁금하다는 듯 눈을 빛내는 사내의 모습에 마 수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최 도주께서 선계로 비승한 후 하계로의 통로를 공고히 하시면….”

    “하시면?”

    “이곳의 영기 밀도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이 말입니다.”

    “예에? 선계처럼 변한다 그 말입니까?”

    화들짝 놀라는 사내의 반응에 마 수사는 씁쓸하게 고갤 저었다. 아쉽다는 표정과 함께.

    “그건 아닙니다. 다만 삼투압 효과 아시지요? 그처럼 되는 겁니다. 다만 어느 정도 올라가다 멈추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지금보다는 배 이상 영기 밀도가 올라갈 수도 있단 말이니 우린 최 도주께서 비승에 성공하시길 기원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오오!”

    그때, 산 정상에서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지막한 목소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산 중턱에 있든 끝자락에 있든 관계없이 모두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비승을 시작한다. 비승식에 휘말리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으니, 모두 지시에 따라 거리를 두길 바란다.

    “시작하려나 봅니다!”

    마 수사는 자신들이 머무는 자리가 천제단이 자리한 정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안심하고 보호 진법만을 설치했다.

    잠시 후, 산 곳곳에서 사람들이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산 중턱 아래로 쫓겨나기 시작했다.

    ***

    “도주, 주변에 남은 자들이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무위각 대원들과 움직였던 도천. 그가 천제단 인근에 숨어 있던 수사들을 전부 쫓아내고 돌아왔다.

    “수고했다.”

    빠르게 일 처리를 한 도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준 준혁은 마음을 차분히 하며 태백산 정상에 마련된 천제단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말 그대로 선계로 향한 한 걸음만을 앞둔 상황.

    ‘이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려나.’

    그리고는 깊게 숨을 내쉬다 크게 소리쳤다.

    조금 전 영력을 이용해 소리를 전달한 것과는 사뭇 다르게, 육성에 백호 혈맥의 사자후를 담았다.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알릴 의도가 아닌, 본인의 의지를 고양하기 위한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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