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20화 (220/408)
  • 220화. 신악(神惡) (2)

    ‘심영근?’

    삼청조를 흡수할 때 심영근이란 특수 영근을 가지고 있단 걸 알게 됐지만, 심영근의 특징이 무엇인지, 어떤 속성을 지닌 것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준혁.

    그런 심영근이 특수한 영근이었던 것이 아닌 천혈족 후인의 증표라니?

    “인족들이 가지고 있는 영근은 거인족에게서 기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헌데 천혈족이라니요? 혹 제가 잘못 알고 있던 것입니까?”

    정보를 왜곡해봤자 청룡 후인에겐 아무 실익이 없었기에, 준혁은 그가 거짓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예상이 맞았다는 듯 독고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 거인 놈들이 세상에 뿌린 씨앗이 영근이지, 우린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혈맥을 퍼트렸고 말이다. 하지만 전쟁은 끝도 없이 길어졌고, 우린 언젠가 자멸할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차갑던 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자, 준혁은 기세를 더욱 낮추며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그놈들을 압도할 수단으로 마선기를 해방해 권능을 나눠 가진 전투 병기들을 만들었다.”

    “마선….”

    “그래. 마선이라 불리는 그것들을 만들었지. 허나 그놈들은 무언가에 기생하지 않고는 제 능력을 온전하게 사용하지 못했고, 천혈족의 수장이셨던 독고천께선 그것들의 권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마선기를 혈맥에 담기 시작하셨다.”

    ‘동화율!’

    마선들이 말하던 동화율. 마선들이 영수들보다 인족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말했던 그것. 독고제는 지금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설마? 동화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근이 심영근이란 말인가? 그럼 심영근도 혈맥의 일종?’

    삼청조가 흡수되기 직전 자신의 영근을 확인하고 환희에 차 있던 걸 기억해낸 준혁은 독고제의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마선기와 혈맥의 힘이 하나 되니 일반적인 생명체들은 그 힘을 견디질 못하더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우리 천혈족의 권능을 한 몸에 담기엔 다들 연약하기 그지없으니.”

    ‘심영근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나?’

    그렇게 마선과 마선기, 혈맥의 힘, 그것들의 영향과 효용성에 관한 얘기가 더해지길 한참, 준혁의 의문이 극에 다다를 때쯤, 독고제의 설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해결책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나와버렸다.”

    “그게 무엇입니까?”

    “독고천께선 마선들의 권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그렇다고 영수들을 부려 전쟁을 지속하기도 더는 어렵다고 느끼셨고, 결국 거인족의 심장에 직접 쐐기를 박기로 결심하셨다.”

    눈이 마주친 독고제가 가볍게 양손을 젓자, 각 손바닥에서 각기 다른 기운이 만들어지더니 천천히 흘러 그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바로, 우리 천혈족의 피에 담긴 권능을 이용해 거인족들의 능력인 영근을 만들어, 그들의 생태계를 교란하려고 하신 것이지.”

    ‘아! 그것이 심영근!’

    독고제의 설명이 계속되자 준혁은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를 이을 때, 잡종이 섞여 피가 묽어지는 것처럼, 혈맥의 근원인 천혈족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영근을 침투시켜 거인족의 영근을 퇴화시키고 영근에 담긴 기운을 약화하려 했던 것.

    백 년, 천 년 단위의 전쟁이 아니었으니 생각할 수 있는 대장정의 계획이었다.

    ‘생각하는 사고 자체가 다르구나.’

    하지만 설명을 끝낸 독고제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분의 계획은 실패했다.”

    선생님처럼 하나씩 설명해주는 독고제의 태도에 준혁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몰두했다.

    “천혈족의 혈기로 만들어진 영근은 거인족의 영근과 달리 인족에게 심기도 쉽지 않았고, 다른 영근을 희석하는 것도 불가능했지. 가장 큰 문제는 대를 이어 발현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무작위로 다른 이들에게 전해졌단 말입니까?”

    그런 특징을 가진 힘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혈맥 보존의 법칙!’

    “그래. 천혈족의 권능이 섞인 탓인지 심영근이라 불리는, 우리가 만든 영근은 혈맥의 힘처럼 같은 종족에 무작위로 나타나고, 그것도 편차가 너무 심해 의도한 대로 되지 않더군.”

    “아….”

    지구의 인간 수만 해도 땅덩이와 비교해 대단히 많았다. 하물며 지구 따위완 비교도 되지 않는 대륙들이 끝없이 이어진 선계는 어떻겠는가?

    종족에 한해 발현되는 혈맥의 힘처럼 해당 영근을 가진 자가 출몰했다면, 대부분은 그걸 인지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게 없었으니 그걸 판별해주거나 지식을 통해 알려줄 수가 없었을 테니까.

    결국 비수로 심어둔 힘이, 칼날은 무뎌진 채 사용 용도도 불분명해진 상태로 방치되어, 인간들의 핏속에 숨어 있는 듯 마는 듯, 잊혀 버려진 게 분명했다.

    준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독고제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걸 발견해내는 계기가 됐지.”

    얘기는 돌고 돌아 다시 동화율이라는 주제로 돌아왔다.

    “혈맥에 담은 마선기가 마선의 능력을 십분 사용하게 해주었지만, 생명체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해주었지?”

    “그렇습니다.”

    “심영근은 그 문제의 해결책이 되었다. 심영근이 발현된 인족은 마선의 권능을 온전하게 끌어낼 수 있었어.”

    “아!”

    “그리고 거기에 더해 혈맥의 힘까지 인족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게 체질을 변화시켜 버렸지.”

    준혁은 오랜 기억 속, 자비에가 혈맥의 힘에 대해 알려주며 경고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혈맥의 힘을 쉽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더해 여러 힘을 중복해 습득해도 이상 없던 것이 오롯이 심영근 때문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되니, 스스로 무모하게 성장해 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심영근이 아닌, 일반 영근이었다면 지금쯤 몸이 열 개라도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자기 파악을 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짓던 준혁은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어 질문을 던졌다.

    “혹, 제 영수들이 저에게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하던 것도 제가 심영근이기 때문입니까?”

    산들바람과 청호, 심지어 두 도마뱀까지. 종속의 인을 맺어 유대감이 강해진 영수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심장 앞에 자리 잡고 떠나기를 싫어했었다.

    도마뱀들은 의사 표현이 없었기에 알 수 없으나, 청호와 산들바람은 공통적으로 자신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더불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처음엔 향기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독고제의 설명이 계속되자 어쩌면 심영근이 혈맥의 힘을 전해 받은 영수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생각됐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예상에 독고제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답변해주었다.

    “그것이 그대가 천혈족의 후인이라는 뜻이지. 하지만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원한다면. 아니다.”

    “그럼?”

    “아까 말했듯 심영근도 혈맥의 힘과 마찬가지로 그 농도가 제각기 다르다. 즉, 그대처럼 밀도가 높은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지.”

    “아….”

    쐐기를 박듯 독고제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린 그런 자들만을 후인이라 여긴다. 그저 심영근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후인이라 할 순 없는 법이지.”

    ‘역시, 그 향기라는 게 심영근 때문이었구나!’

    비로소 지금껏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의문들이 풀리는 기분에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들며 자신이 가진 의문을 해소함과 동시에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된 준혁은, 어느새 자세를 바로 하며 독고제에게 예를 올렸다.

    “제 오랜 궁금증을 덕분에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의 예법대로 허리를 깊숙이 숙임으로써 후배에게 지식을 전해준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는 허리를 편 후 호왕족에서 배운 백호족의 예법으로 다시 한번 인사를 올렸다.

    “후인 최준혁,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인사를 받은 독고제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준혁은 자세를 바로 하며 해소된 의문 위로 추가된 의문을 꺼내놓았다.

    “헌데, 후인 최준혁, 한 가지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독고제가 무엇이든 물어보란 듯한 표정으로 턱을 슬쩍 올렸다.

    그 모습에 준혁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무형의 기운으로 제 머리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으시던데. 그건 저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제 의식을 조종하기 위해서입니까?”

    그 순간, 지금껏 극도로 차가운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독고제의 얼굴에 균열이 가듯 놀란 표정이 드러났다.

    ***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라고.”

    “흐음…. 연형기 후기에 겨우 발을 걸쳤는데…. 이토록 강한 의식 수준이라니. 혹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심영근을 만들어낸 천혈족이기 때문인지, 독고제는 아무도 읽지 못한 준혁의 수행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하지만 그런 그도 준혁의 혼이 얼마나 강대해졌는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혼단으로 단련된 준혁의 혼과 의식은 이미 인계에서 논할 정도가 아닌 상태.

    독고제는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몇 번이나 추궁하다가, 말없이 웃기만 하는 준혁의 태도에 포기한 듯 중얼거렸다.

    “하긴, 그게 의미가 있나. 기연이든 수련이든, 그럼….”

    말끝을 살짝 흐리던 독고제가 두 눈을 빛내며 준혁을 응시했다.

    “두 번째 시험은 이것으로 끝이다.”

    화아악-

    그리고 말이 끝난 순간.

    의식공간이 수십 배 확장되더니 독고제의 모습이 먼지처럼 무너져 사라져버렸다.

    스르륵-

    그리고 그 자리엔 주먹만 한 핏빛 원영이 나타나 지금껏 준혁이 느껴보지 못한 극도로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이것이 세 번째 시험입니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고, 독고제가 사라진 후 나타난 원영의 기세만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준혁은 침묵이 긍정이라 판단하고, 독고제에 대한 생각은 날려버린 후, 핏빛 원영에 정신을 집중했다.

    ‘원영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정혈과 흡사하다. 피로 만들어진 인형이라 표현하는 게 옳아.’

    눈앞의 핏빛 원영은 어느새 기운을 증폭하더니, 작은 몸을 꼬물거리며 움직였다.

    ‘변화하려는 건가?’

    그러길 한참 후, 준비운동이 끝났다는 듯 몸을 바로 하고는 조막만 한 손을 들어 올려 준혁을 가리켰다.

    그 순간.

    ‘웃는다?!’

    핏빛 원영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비틀린다 싶은 순간.

    스걱-

    원영의 손이 가리키던 직선이 공간째로 잘려 나가 버렸다.

    “이게 무슨….”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이라 준혁은 피하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피할 수가 없었다.

    술법인지 원영 특유의 권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런 준비도, 영력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속도라니.”

    준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원영의 손끝부터 자신의 몸으로 이어진 기다란 실선을 눈에 담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하지만 그의 표정에 절망이 어리진 않았다. 기습에 당하긴 했지만, 걱정 없다는 표정.

    잠시 후, 준혁의 몸이 양분되듯 갈라졌다.

    퍼엉-

    그리고는 갈라지던 준혁의 몸이 꽃잎으로 터져나가더니, 한참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대비했기에 망정이지. 정말 무서운 능력이야.”

    의식공간에 들어온 순간부터, 청룡 후인의 경고를 되새기며 의식을 보호함과 동시에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랬기에 기습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지, 만약 조금의 방심이라도 했다면 분명 이번 한 수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시험은 시험이되…. 통과하지 못하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군. 게다가 아무 설명도 없이 진행하는 걸 보면. 어쩌면 죽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순간, 원영의 손이 또 한 번 움직였고.

    스걱-

    거대한 공간이 또 한 번 통째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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