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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19화 (219/408)

219화. 신악(神惡) (1)

‘운이 좋았지.’

화신기에 오른 후에야 겨우 개념에 대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고, 소천경에 올라야 사용할 수 있다는 영역.

준혁은 비록 화신기에 오르지 못했지만, 삼경의 끝자락에 도달해있던 네 사신의 힘을 받아들이고 오행신기를 만들면서 그 힘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흡수한 기운이 전체에 비하자면 미약하기 그지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다.

다만 진짜 영역에 비교한다면 그 크기가 초라할 정도로 작았고, 그 기능도 현저히 떨어졌다.

하지만 영역은 영역.

영역 선포로 일정 지역에 자신의 의지를 온전하게 내비칠 수 있게 되었으니, 수행을 떠나 한 단계 격이 상승한 것과 다름없었다.

“한번 경험해보시지요.”

놀라워하는 아마르곤을 향해 성큼 다가간 준혁은 혈맥의 힘을 개방했다.

스르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치 특수한 기류가 생겨난 것처럼 반구 형태의 영역 공간 안을 무언가가 휘감고 지나갔다.

그러자 그 안에 자리하게 된 아마르곤의 표정에 경악이 담기기 시작했다.

“대단합니다!”

평소에 몸을 휘돌던 영기가 수십 배는 활발하게 움직였고, 그에 반응해 외부의 기운이 급속도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

아마르곤이 벌린 입을 닫지 못하자 준혁은 잠시간 그가 만끽할 수 있게 영역을 유지하다가, 한참 후에야 기운을 회수했다.

“아….”

아쉬워하는 아마르곤과 그걸 보며 웃는 준혁.

“우선 울릉도로 돌아가 수행을 안정시키고 나면 그때부턴 본격적으로 수사를 돕도록 하지요.”

그렇게 수행을 돕는 사이 청명을 통해 마선문을 움직여 독고제가 잠든 장소를 찾아내면 되는 일.

‘청룡결도 완성해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상관없겠지.’

거기에 더해, 청룡 후인의 기운을 받아들인 후 외부 영기와 반응하기 시작한 도마뱀 두 마리도 살펴보아야 했기에 준혁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아마르곤 수사. 돌아갑시다.”

잠시 후 바다 위로 올라온 두 사람은 길고 긴 빛 꼬리를 남기며 동북쪽으로 사라져갔다.

***

울릉도로 돌아온 준혁은 조용하지만 바쁘게 일 처리를 시작했다.

우선 청명을 불러 독고제가 잠든 지역이 새겨진 옥간을 넘겨주었고, 모든 일에 우선해 그곳을 찾으라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잠들어 있지만, 변화가 생긴 도마뱀 두 마리를 가슴에 품고 최소한의 영역을 발동해 두 영수의 수행을 도왔다.

그 와중에 천균과 기목청의 뿌리도 잊지 않고 품 안에 두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만들었고,

아마르곤과 산들바람, 청호를 불러 자신을 중심으로 삼각형을 이루게 앉힌 후 영역의 영향 아래서 수행을 올릴 수 있게 했다.

“큰둥아! 이거 엄청나!”

호들갑 피우는 산들바람과.

“주인님! 이 속도라면 원영기 후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요!”

백호족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유적의 보물로 몸을 치장한 청호.

“감사합니다. 수사.”

그리고 둘과 다르게 차분하게 목족의 공법과 현무 일족의 공법을 동시에 익히는 아마르곤.

준혁은 셋이 자신과 나눠 가진 사신의 힘의 일부라도 체화시킬 수 있게 오행신기를 움직였고, 세 명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눈에 띄게 수행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수련의 시간은 하루, 한 달 쉬지 않고 더해졌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길 어느 날.

“어르신! 찾았습니다요!”

칩거에 들어가며 종속의 수련을 돕길 오 년.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어디더냐?”

어느새 영역을 풀고 청명을 불러들인 준혁은 그의 설명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봉인을 흡수할 때와는 다르게 수하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혼자 거처를 나섰다.

“함께 가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청룡 후인의 경고에 대해 알고 있던 아마르곤이 잠시 저지하고 나섰으나,

“그곳에 함정이 있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는 준혁은 빛살처럼 하늘을 갈랐다.

슈앙-

그리고 준혁이 떠나간 자리.

떠나간 준혁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아마르곤은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빨리 강해지지 않으면, 그에게 난 점점 짐밖에 되질 않겠구나.”

시야에는 여전히 근심 걱정 없는 청호와 산들바람이 들어왔다.

‘나라도 빨리 수행을 올려 최수사에게 힘이 되어야지.’

처음 봉인지를 함께 탐색할 때를 비롯해, 함께하는 동안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아마르곤.

그는 사신의 힘을 흡수하며 진법을 진두지휘할 때까지만 해도, 수행은 뒤처졌지만 자신의 역할이 분명 있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준혁이 오행신기를 만들고 영역을 생성해 낸 순간부터, 어쩌면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최수사 성격에 분명 도움을 줄 테지만, 언제까지 도움만 받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인계에서는 완영기가 절대적인 수행이라 하나, 선계에선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했기에, 수행 상승에 대한 아마르곤의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오르고 있었다.

“흰둥아! 큰둥이…. 아니, 최수사도 없는데 놀러 나갈래? 저기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대양(大洋)이 나오는데 거기엔 고래라는 엄청 커다란 물고기가 있대. 그놈 잡아서 구워 먹자.”

들려오는 산들바람의 목소리가 결의를 다지는 아마르곤의 마음을 유난히도 어지럽혔다.

***

눈보라가 멈추지 않는 대지.

언덕 위로 쌓인 눈이 산을 이루고, 곳곳에 협곡이 생겨 일반인의 발이 닿지 않는 곳.

준혁은 청명이 전해준 정보에 따라 러시아의 끝단에 도착해 있었다.

마선문을 비롯한 수많은 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독고제가 묻힌 곳이 쉽사리 발견되지 않던 이유는 바로 눈 때문.

청룡 후인이 건넨 정보는 눈이 쌓이기 전의 모습이었기에 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이곳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준혁은 일대를 눈에 담은 후, 기감을 넓게 퍼트려 땅속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는 오래전 만통방에서 만났던 공천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마선경이 이곳 상황을 눈치채고 접속을 시도하고 있소, 당장 내보낼 테니 그댄 내게 말한 그 마음가짐을 잊지 마시오. 그리고 이곳에 용천무의 유적이 있는 걸 보면 고대 신악(神惡)이라 불리는 천혈(天血)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일. 그것을 꼭 찾도록 하시오. 그렇다면 그대가 바라는 일들이 한층 더 수월해질 테니!

“천혈, 그리고 천혈족…. 어쩌면 독고제가 바로 공천귀가 말한 신악(神惡)일지도 모른다.”

처음 독고제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됐을 땐 크게 고려하지 않았었는데, 울릉도에 칩거한 후, 넘겨받은 정보를 하나씩 되새김질하다 보니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

천혈이라는 이름이 흔한 것이 아니었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만약 독고제가 신악이 맞다면, 공천귀가 말한 천혈은 무엇인가? 혹 천혈족 혈맥의 힘인가? 아니면…. 전투 병기로 만들고 난 후 남은 마선기의 정수?”

준혁은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보며 상념에 빠져들다가, 기감에 무언가가 잡히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그를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자면 독고제가 잠든 그곳엔 특수한 ‘힘’만이 존재할 리는 없었다. 분명 사신들처럼 잔혼을 남겨두었을 테니, 정확한 건 그를 만나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

잠시 후, 기감으로 발견한 결계가 숨겨진 장소로 이동한 준혁은 크게 심호흡한 후, 수결을 맺었다.

쿠르르릉-

그러자 준혁을 중심으로 영기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허어….”

요동치던 영기가 뭉친다 싶더니, 10여 미터가 넘는 거인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 모습에 준혁이 흥미 가득한 눈길을 보내는 사이, 주변 영기를 쉬지 않고 빨아들인 거인이 각각 불과 물, 그리고 바람과 땅의 기운을 가진 네 명의 거인으로 분화했다.

동시에 준혁의 머릿속에 음산하면서도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 순간,

부우웅-

네 거인이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시험이 아니라 침입자를 처리하려는 것 같지 않은가.”

네 거인의 주먹에 담긴 힘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준혁은 급하게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적마도를 발동시켰다.

“어?”

하지만, 적마도는 죽은 것처럼 아무런 힘을 나눠주지 않았고, 심지어 두 발이 고정된 것처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적마도가 안 된다고 피하지 못하란 법은 없지!’

적마도는 결계를 벗어나는데 특화된 법기.

어느새 준혁의 등 뒤로 용천무의 날개가 나타나 영력을 뿜어댔다.

“아!”

하지만 용천무의 날개를 발동하기 전, 준혁은 네 거인의 시험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날개를 다시 회수했다.

‘네 거인의 네 가지 속성, 정확히 사신의 기운과 일치한다. 그 말인즉 네 가지 기운을 가졌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겠지.’

그리고는 눈앞까지 다가온 네 거인의 주먹을 동일한 기운으로 막을 방법을 생각해 내고는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착착착-

그 순간, 네 마리의 전영이 사방을 점하고 나타나더니, 각각 자신과 같은 기운을 내뿜는 거인의 주먹을 맞받아쳤다.

콰앙!

“역시! 이것이구나!”

네 거인과 네 전영이 맞부딪친 순간, 굉음과 함께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영기파동이 물결치듯 사방으로 파도쳤다.

그리고 그 파도가 일정 공간을 뒤덮듯 퍼져나간 순간.

화아악-

준혁은 자신이 의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이동됐음을 인식했다.

그리고 인식과 동시에 차갑게 생긴 미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

차가운 미남자.

독고제가 분명한 그는 창백한 피부에 찰랑이는 검은 머리카락, 앙다문 얇은 입술과 조각하듯 새겨넣은 눈빛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미남자는 말없이 고요한 눈빛으로 준혁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분명 말을 하고 있었지만, 생명체가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고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대는 나의 후인, 아니 천혈족의 후인이군.”

‘이것으로 시험은 끝인가?’

청룡 후인의 말과 달리 너무 쉽게 시험이 끝난 듯 보이자 준혁은 한 가닥 의심을 남겨둔 채 상대를 살폈다.

그리고는 상대방에게 공격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예를 갖추며 몸을 살짝 숙였다.

“사신의 주인이자, 구지대륙의 왕이신 독고제님을 뵙습니다.”

눈앞의 미남자, 독고제는 준혁이 경계심을 지운 듯하자, 눈을 빛내더니 말을 이었다.

“구지대륙의 왕이라…. 그렇게 불릴 만한 대륙이 남아있나? 어쨌든 결국 이렇게 후인을 보게 되는구나.”

구지대륙의 봉인을 담당한 네 사신과 다르게 독고제는 본체를 온전하게 남기지 못했다고 들었던 준혁은 의식에 불과할지 모르는 상대방에게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걸 느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후인이라니, 제가 천혈족이란 말처럼 들리는군요.”

“후인이라 할 수 있지.”

‘내가 혈맥의 힘을 가졌기 때문인가?’

청룡 후인의 설명에 의하면 세상 모든 혈맥의 힘의 발원지는 천혈족.

그러니 혈맥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뒤를 이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제가 사신들의 힘을 전해 받았기 때문입니까?”

죽이고 빼앗았다고 하면 그들의 주인인 독고제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에 마치 제자가 힘을 물려받은 것처럼 표현했다.

하지만 독고제에게선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니, 애초에 네가 우리의 근원을 이어받았기에 그들의 힘을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지.”

준혁이 눈을 치켜뜨자, 독고제가 말을 이었다.

“전혀 모르고 있나 보군. 그대가 가진 심영근(心靈根). 그것이 우리 천혈족의 후인이란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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