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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13화 (213/408)
  • 213화. 현무 (1)

    ‘이런, 생각보다 빠르다!’

    두 기운이 서로를 배척하려 한다고 느낀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기운이 증폭했다.

    마치, 이번 기회에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르곤 수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두 기운을 다스리려 했던 준혁은, 아마르곤의 이름을 부르짖은 후, 몸을 보호할 어떤 준비도 마련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촤르르륵-

    검은 사슬이 생성되더니 준혁의 몸을 칭칭 휘감아 버렸다.

    그때, 준혁의 머리 위로 꽃잎이 흩날리나 싶더니 순식간에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사내의 형상을 갖춰 갔고, 모습을 갖추었다 여긴 순간 그의 전신에서 나무줄기가 뻗어 나와 준혁의 몸을 공처럼 둘러싸 버렸다.

    “지금부터 모두 제가 하는 말에 따라주시면 되겠습니다. 최 수사가 기운을 다스릴 때까지 그 자리에서 회복에만 전념하시길 바랍니다.”

    창백한 아마르곤의 목소리가 봉인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

    붉은색으로 덧칠해 놓은 것 같은 세상.

    전지적 시점이란 게 무엇인지 체감하며 준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식 공간을 조율하는 중이었다.

    그런 준혁의 눈앞엔 두 마리 영수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싸우고 있었는데, 그 둘은 백호와 주작이었다.

    두 영수는 이지를 잃어버린 듯 본능에만 의지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검은 사슬에 칭칭 감긴 상태로.

    “생각보다 쉽지 않겠구나.”

    영혼의 격이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의식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준혁은 충돌과 동시에 밖으로 뻗어나가려던 기운을 내면으로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거기다 잔혼결 덕분에 주작의 기운까지는 완벽하게 조종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백호의 기운은 생각보다 강해 준혁의 의지에 순종하지 않았다.

    “이대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힘을 모두 소진한 후에나 내 뜻대로 되겠어.”

    백호라는 존재 자체가 지금의 준혁으로서는 닿을 수 없는 위대한 존재.

    구지대륙의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 그의 힘 중 일부만을 받아들였고, 그것마저 위험하다고 여겨 청호와 나눠 가지기도 했다지만, 좀처럼 다스리는 게 쉽지 않았다.

    만약 준혁이 청호처럼 백호 혈맥만 가진 존재였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주작과 백호 두 기운은 융합될 수 없다는 듯 맹렬하게 반응했다.

    “여기에 현무나 청룡의 힘까지 가세한다면?”

    백호가 주작의 목을 물어뜯고, 주작이 부리로 백호의 머리를 쪼는 모습을 보며, 준혁은 오랜 시간 묵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준혁의 의식 공간에 주작의 잔혼결이 문자가 되어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준혁의 얼굴엔 고민이 사라지고 결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방법이란 바로, 잔혼결.

    주작의 잔혼결을 낱낱이 파헤쳐 백호의 기운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는 잔혼결을 만드는 게 준혁이 생각해낸 유일한 방안이었다.

    ***

    “아마르곤 수사시여. 천둥치는저녁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 있어야 할지 알았다면…. 최 선배님께 부탁해 동행하지 않게 했을 겁니다.”

    “안 됩니다.”

    “수사…. 부디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허락해주시옵소서. 생의 마지막을 이런 봉인지에서 맞이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준혁이 공처럼 둥근 나무줄기에 싸인 지도 벌써 10년.

    준혁을 따라 봉인지 안으로 들어섰던 자들은 단 한 명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의도치 않는 면벽 수련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준혁에게 결계를 마음껏 이동할 방법이 있다고는 하나, 호왕족 수사들을 밖으로 보내 돌발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아마르곤의 처치였다.

    본인이 준혁을 보호하는 동안 아르나프를 밖으로 보내, 봉인지에 허튼짓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아마르곤은 호왕족 수사들만큼이나 아르나프도 믿지 않았다.

    “그것 또한 수도자의 삶이지. 불가.”

    더군다나 무상번의 도움을 받은 흡수진이 최고조에 이를 때, 모든 이들이 매혹하는구름의 원영이 살아있는 걸 보았으니, 사특한 마음을 가질지도 몰랐다.

    원영이 살아있다는 건 결국 다시 수행을 되찾고 온전한 수사가 될 수 있을 희망이 있다는 것과 같았으니까.

    수거한 후 품속에 보관하고 있던 식검과 분광소, 그리고 사슬에 쌓인 원영을 느끼며 아마르곤은 준혁을 보호하고 있는 나무줄기를 바라보았다.

    ‘수사, 얼마나 오래 걸리시는 겁니까?’

    지금이야 준혁의 압도적인 수행에 겁을 먹어 반기를 드는 이들이 없었지만, 10년이 50년이 되고 50년이 100년이 되면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준혁을 보호함과 동시에 사슬에 갇힌 연형기 원영을 억제하는 것만으로 아마르곤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태.

    만에 하나라도 아르나프가 호왕족 완영기 수사들과 손잡고 반기라도 드는 날엔 자신 혼자서 준혁을 보호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 모든 건 아마르곤의 일방적인 걱정이고, 준혁에게 금제를 당한 아르나프가 그렇게 행동할 리는 거의 없긴 했다.

    하지만 아마르곤은 준혁을 제외한 인간을 믿질 않았다.

    하물며 청호를 세뇌하려 했던 호왕족은 더더욱.

    쿠오오오오-

    “우욱-”

    그때, 미증유의 기운이 밀려들며 아마르곤이 만든 보호 줄기를 단숨에 분쇄해버렸다.

    단숨에 자신이 만든 보호막을 날려버린 거력에 내상을 입은 아마르곤은 입가를 닦으며 시선을 옮겼다.

    “성공하셨군요….”

    아마르곤의 시야가 닿는 곳.

    그곳엔 준혁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하얀 털을 휘날리는 호랑이와 붉은 털의 봉황새가 마치 주인을 영접하듯 몸을 낮추고 있었다.

    ***

    “이건 백호결이라 부르면 되겠구나.”

    주작의 잔혼결을 완전히 분리해 연구하길 수천 번.

    준혁은 백호의 기운에 특화된 잔혼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주작의 잔혼결마저 더 깊게 익힐 수 있어 예상외의 소득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주작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원래 그녀는 자신의 영혼과 백호, 현무의 영혼이 서로 상잔해 완벽히 소멸하길 원했는데, 준혁은 서로 상충하기보다는 보완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바로 마족의 전영술이었다.

    마기를 이용해 실체 하는 환영을 만들 수 있는 전영술을 응용해, 주작의 기운과 백호의 기운을 이용해 전영을 만들어 버린 것.

    그들 혈맥의 힘은 원영이 받아들여 체화시킨 후, 기운은 완벽하게 흡수하지 않고 하나의 보조 기운으로 떠돌게 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는, 준혁이 두 사신의 힘 일부를 온전하게 사용 가능하다는 것과 같았다.

    “수행이 올라가면 전영이 가져다 쓰는 힘도 늘어나겠지.”

    아쉬운 게 있다면 백호나 주작의 기운이 준혁을 압도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힘 일부만을 가져다 쓰고, 나머지는 정혈로 뭉쳐 검은 사슬로 봉인해 버린 상태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준혁이 수결을 맺자, 두 사신의 환영이 바람과 불꽃으로 흩어지더니 그의 몸으로 흡수돼 사라졌다.

    “선배님! 감축드리옵니다!”

    “선배님! 진일보하신 걸 축하드리옵니다!”

    봉인지 밖으로 나가길 바라며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수사들이 준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그중엔 아마르곤도 있었다.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외부로 흘러넘치던 기운을 전부 갈무리한 후, 주위에 몰려든 수사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저어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아마르곤을 향해 가볍게 몸을 숙였다.

    “수사.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라니요. 그런 말은 오히려 섭섭합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아마르곤을 보는 준혁의 눈빛이 한층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준혁을 감싸고 있던 나무줄기 보호막. 그건 그저 외부에서 밀려드는 충격을 막는 역할만이 아닌, 내부에서 기운이 충돌하는 준혁의 몸을 안정시키는 역할까지 했던 것.

    그리고 그건 아마르곤의 수행에 엄청난 수고를 해야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원하시는 바는 이루신 겁니까?”

    준혁의 만족한 표정만 보아도 적지 않은 발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한번 체험해 보시겠습니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던 준혁이 수결을 맺으려 하자 아마르곤이 급하게 손을 저었다.

    “수사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얻으신 것이 적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밖에 나가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아마르곤도 다른 이들처럼 대부분 기운이 준혁에게 잡아 먹혀버린 텅 빈 곳간 같은 봉인지 안에서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

    한 달 후.

    현무가 잠들어있는 봉인지.

    아마르곤, 아르나프는 물론이고 도천과 리암, 사쿠라 등 울릉도에 소속을 둔 원영기 수사들 전원이 모여 있었다.

    백호의 봉인지를 방문했을 때나, 주작의 봉인지를 방문했을 때보단 진법을 운용할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준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먼저 시행한 두 번의 흡수 때와 다르게 이번엔 남아 있던 연형기 원영을 완전히 녹여버릴 계획이었기에 영기를 공급하는 데엔 오히려 차고 넘치는 상황.

    거기다 주작의 잔혼결을 업그레이드시킨 주작결과 백호의 힘을 담은 백호결이 있었기에 현무의 정신체를 상대하는 것도 훨씬 수월할 예정이었다.

    다만 모든 준비를 마친 준혁에겐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바로 자신과 현무의 힘을 나눠 저장할 혈맥의 부재.

    현무의 기운과 가장 흡사한 기운을 가진 아마르곤이 전담하고 나서긴 했지만,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수사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아마르곤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평온해 보였지만, 준혁은 맘이 편하질 못했다.

    그나마 청명에게 현무 일족의 미약한 끈이 남아 있어 아마르곤을 보조하긴 할 테지만, 청명의 수행이 너무 낮아 큰 도움이 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청명, 네 역할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요. 어르신.”

    “네 몸 안에 흘러들어오는 기운은 여기 아마르곤 수사가 조종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네 피 안에 잠들어있는 힘을 최대한 자극해 발현시키는 데만 집중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요!”

    굳은 얼굴로 결의를 다지는 청명을 보며 준혁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만약 한 줌뿐이라도 현무 일족의 힘을 깨울 수만 있다면 너 역시 크게 진일보할 터….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예!!”

    청명의 쩌렁쩌렁한 대답을 뒤로한 채 준혁은 주위에 모인 자들의 눈을 하나씩 맞춘 후 입을 열었다.

    “다들 숙지한 대로, 행하면 된다. 그리고 아르나프 수사. 그대가 진의 중추 역할을 잘해줘야 일이 수월하게 돌아간다는 건 알겠지요?”

    “아마르곤 수사 곁에서 두 번이나 확실하게 경험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르나프의 확답에 준혁은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는 청명의 몸속에 월광지력을 집어넣고, 분광소로 분신체를 만들었다.

    분광소는 연형기 원영을 녹여 진의 배터리 역할을 할 예정이었고, 월광지력은 만에 하나 아직 원영도 응결하지 못한 청명이 기운을 감당하지 못할 때 그를 강제로 봉인해버릴 안전장치였다.

    “그럼 모두 잘 부탁한다.”

    준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사들이 무상번을 여러 개씩 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준혁은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마르곤에게 짧은 눈인사를 하고는 봉인지 중심에 놓인 거대한 바위에 손을 가져갔다.

    파앗-

    ***

    여러 번 경험하니 사신의 의식 세계가 전부 다른 강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챈 준혁.

    ‘백호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지지만, 주작과 비교하면 훨씬 강하구나.’

    그는 눈앞의 거북이를 마주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뱀처럼 긴 목과 코끼리 같은 네발을 가진 현무.

    물속에서 흔들리는 미역 같은 네발에 달린 흰털들을 보며, 준혁은 인상을 찌푸리다 입을 열었다.

    “사신이라 불린 현무가 맞으시겠지요?”

    이제 힘을 갖추었기에 굳이 연기를 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너는 내 후인이 아니구나.”

    “그렇습니다.”

    “그럼 이곳엔 무슨 일로 온 것이냐? 내 후인이 아님에도 내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면, 내가 남긴 유적을 통해 온 것 같은데…. 혹 나의 전인이라도 되려는 것이냐?”

    목을 뱀처럼 움직이며 궁금하다는 듯 말하는 현무.

    준혁은 그런 그의 질문에 대답과 동시에 수결을 맺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복수를 위해서입니다.”

    “복수?”

    “주작.”

    그 순간 준혁의 등 뒤로 짙은 마기를 흘리는 전영이 나타났고, 양옆엔 주작과 백호의 전영이 소환되며 각각의 기운을 흩날렸다.

    “이 무슨! 네놈은 누구냐?! 두 녀석의 후인이더냐?”

    현실에선 아직 불가능했지만, 정신력이 허락하는 한 의식 공간에선 세 전영을 불러낼 수 있던 준혁이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세 녀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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