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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09화 (209/408)

209화. 잔혼결(殘魂結) (2)

“역시 그렇군.”

준혁의 예상대로 상대는 청호를 종마로 사용하려는 계획이었다.

“자격지심인가?”

무영기로 수행을 감춘 준혁은 매혹하는구름의 머릿속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준혁이 떠난 후 초창기엔 그녀도 청호를 진심으로 대했다.

하지만 청호가 원영기에 오르며 혈맥의 힘이 강화되자, 연형기인 자신이 움츠러듦을 느끼고는 심경의 변화가 왔던 것.

예전 호왕족의 선조들처럼 백호족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님에도, 백호족의 기운 앞에선 스스로 굴종하려는 게 용납할 수 없었던 거였다.

그런 감정을 느낀 그녀는 그때부터 청호를 조종하려 남모르게 금제를 가하기 시작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스스로 본인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은연중 혈맥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이 앞서있는 상태였다.

나아가 호왕족의 희생으로 봉인지를 보호하고 있을 땐 아무 도움도 주지 않던 백호가, 자신의 피를 이은 자가 나타남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해 주자 알 수 없는 분노도 함께했던 것이었다.

“오호, 그런 거였군.”

거기다 더해, 준혁은 매혹하는구름의 기억을 통해 그녀가 수행을 낮추는 방법인 천봉족의 술법을 어떻게 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현무가 주작을 기습했을 때, 백호는 주작의 근원과 마찬가지인 천봉족을 분쇄했고, 그때 술법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고서보관소가 아닌 또 다른 비처에 따로 보관돼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걸 알게 된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잠시 후 준혁이 금빛 실을 회수하자, 팔다리가 구속된 채 벌벌 떨던 매혹하는구름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후인이시여…. 제 생각이 부족하고 짧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생 백호족의 영광만을 위해 살겠어요. 원하신다면 금제를 가하셔도 됩니다. 제발….”

그녀의 시선은 검은 사슬에 감긴 채 힘을 잃고 축 처진 자신의 원영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계면의 압박이 멈춘 걸 보면,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던 것.

“제발…. 수사….”

하지만 준혁은 그녀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염치가 없으시군요. 청호를 이용해 저를 봉인시키려 하신 분께서.”

그랬다. 매혹하는구름의 기억 속에서 얻은 또 다른 중요 내용 중 하나.

그건 그녀가 청호의 의지를 조종해 준혁을 함정으로 이끌 작정이었던 것. 함정으로 준혁을 끌어들인 후, 구속과 동시에 준혁이 가진 힘만 빼앗을 예정이었다.

“그, 그건….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어리석은 판단으로 잠시 그런 생각을 했을 뿐, 절대 그 일을 이행하려고는 하지 않….”

푸학-

그 순간, 변명하던 그녀의 몸이 갈가리 찢어지며 폭사했다.

“변명이 참 구차합니다.”

본체가 죽자 원영이 빛을 잃으며 눈에 띄게 어둑해졌다. 그 모습에 준혁은 사슬 위로 금빛 실과 월광지력을 이용해 봉인한 후 목함에 넣어 부적으로 또 한 번 봉인해버렸다.

***

매혹하는구름을 처리한 준혁은 금제가 강제로 파괴되며 밀려든 충격에 정신을 잃은 청호를 거둬들인 후, 호왕족 부락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충격파를 느낀 수사들이 전부 나와 있었고, 종족의 최고 어른인 매혹하는구름의 죽음에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중 부락을 이끌고 있던 노인, 준혁에게 거처를 빌려주었던 제사장은 준혁이 다가오자 바닥에 부복하며 목소릴 높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두 연형기 수사가 맞붙는 걸 본 그는 준혁이 호왕족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외침을 분명히 들었기에 이미 전신을 벌벌 떠는 중이었다.

“백호족의 전사시여!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겁에 질려 있는 그들을 보고 준혁이 차갑게 비죽였다.

“노여움? 네놈들이 한 짓을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두 분께서 왜 갑자기 척지셨는지는 모르오나,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혹 저희가 알아야 할게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제사장 노인의 대답을 이어, 봉인지에서 본 적이 있던 완영기 수사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준혁과 매혹하는구름의 대치가 시작될 때만 해도 그저 ‘가벼운 다툼이나 의견대립이 생긴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혹하는구름의 죽음.

만약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곳이 끝이 명확하게 구분된 갇힌 세상만 아니었다면, 이유 불문하고 도망쳤을 상황이었다.

“정말 모르는 것이냐? 나를 한 번 더 기만한다면 그땐 호왕족의 멸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 모르옵니다. 그분께서 수사께 무슨 잘못을 하신 겁니까?!”

제사장의 확답에 준혁은 금빛 실을 날려 보냈다.

“거짓이 없다면 받아들이거라.”

날아오는 금빛 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제사장이 흠칫하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무언가를 결심한 듯 부릅떴던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금빛 실이 노인의 이마를 파고들었다.

“흐음…. 진실이군.”

자신의 예상과 달리 호왕족 제사장을 비롯한 그들은 진실로 매혹하는구름이 한 짓을 모르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준혁은 그녀가 청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주었다.

“말도 안 됩니다. 어르신께서 그런 일을 벌이실 분이 아니….”

“내가 거짓이라도 한단 말이냐?”

“아, 아닙니다.”

결국 다른 호왕족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준혁은 매혹하는구름을 처치한 것으로 일을 일단락 하기로 했고,

제사장을 포함한 호왕족 수사들은 자체적으로 조사를 벌여 관련된 이가 있다면 잡아내겠다고 맹세했다.

어쨌든 그들은 백호족을 숭배하던 종족.

매혹하는구름의 행동은 그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

일 처리를 마무리한 준혁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몇몇 주요 인사들에게 꽃잎을 붙여두고, 청호를 데리고 고서보관소로 이동했다.

보관소 한쪽에 회복진을 설치한 후, 한차례 치료과정을 거친 청호를 그 안에 넣었고, 그 후에야 잔혼결에 관련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며칠 후 잔혼결에 관련된 자료를 전부 찾아 머릿속에 담은 준혁은 청호를 남겨 두고 고서보관소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보호 결계를 만든 후, 제사장을 찾아갔다.

“안내하거라.”

고서보관소에서 나온 준혁이 가려는 곳은 천봉족의 술법이 숨겨진 비처.

제사장은 준혁이 그곳을 알고 있단 사실에 깜짝 놀라더니,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장섰다.

잠시 후, 마을의 남쪽 끝으로 이동한 준혁은 기괴하게 생긴 나무를 마주할 수 있었고, 제사장의 뒤를 따라 나무 밑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곳입니다.”

“수고했네. 당분간 이곳에 머물 테니 그렇게 알게.”

제사장이 물러가자 공동에 혼자남은 준혁은 기감으로 주위를 살피고는 공동의 오른쪽에 나 있는 통로로 이동했다.

“흐음….”

매혹하는구름의 기억을 읽었을 때만 해도, 이곳이 작은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고서보관소와 비견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아마 그녀가 무의식중에 이곳을 가장 중요한 비밀이라 여겼기에 온전하게 기억을 살피지 못한 듯했다.

준혁은 가장 앞에 진열된 벽돌 모양의 옥석을 가져와 안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

그 안엔 천봉족의 제사 의식에 관한 것이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 확실히 알 수 있겠어.”

고서보관소에서 잔혼결에 관한 정보를 습득한 준혁은 그것만으론 바로 주작이 넘겨준 잔혼결을 익히지 않았다.

그동안 사신들의 행태를 보았을 때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던 것.

만약 다른 의도가 없다 해도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런 준혁에게 이곳의 정보는 주작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나 다름없었다.

술법뿐만 아니라 제사 의식과 천봉족의 진법, 결계에 관한 것까지 전부 있었기에 주작이 남긴 잔혼결을 하나씩 파헤칠 수 있게 된 것.

옥석들은 쉴 새 없이 준혁에게 날아갔고, 그 안의 내용을 파악한 준혁은 옥석을 제자리가 아닌 자신의 공간대에 넣었다.

그렇게 시간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

3년 후.

천봉족이 남긴 자료를 전부 확인하기도 전, 잔혼결을 완벽히 파악한 준혁은 남은 자료를 전부 공간대에 넣은 후 백두 비경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 옆엔 어느새 몸을 회복한 청호가 함께했다.

“주인님. 그럼 매혹하는구름 어르신, 아니 그자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긴히 쓰일 곳이 있으니 곧 알게 될 것이다.”

“지금 가고 있는 주작의 봉인지에서요?”

오랜만에 준혁을 만나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지를 되찾았기 때문인지, 청호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그런 청호가 밉지 않았기에 준혁은 간간이 필요한 설명을 해주었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눈꽃 비경의 외경을 넘어가고 있었다.

쉬지 않고 날아가는 준혁의 시야는 내경의 주작 봉인지를 향해있었다.

‘그런 장난을 쳐뒀을 줄이야. 주작. 당신이나 그들이나 나를 함부로 이용하려던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천봉족의 자료가 남아 있던 비처에서 시간을 보낸 준혁은 잔혼결에 담겨 있던 비밀을 밝혀내고 말았다.

주작의 말대로 그녀가 넘긴 잔혼결은 백호와 현무의 의식을 처리할 비수가 될 엄청난 술법임엔 틀림없었다.

다만 그녀의 말대로 혼자 희생하는 것이 아닌, 시전자의 영혼까지 싸잡아 희생시키는 극악한 술법이었다.

그녀는 약해진 자신의 영혼의 힘으로는 두 사신을 처리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시전자의 영혼을 끌어와 자신의 힘을 증폭시키려고 했던 것.

원래의 잔혼결과 다르게 그렇게 변질된 잔혼결은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었다.

‘대신 내 영혼도 같이 녹아버렸겠지.’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준혁은 천봉족의 지식을 이용해 위험한 부분을 제거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3년.

3년 동안 고생하고서야 잔혼결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고, 주작의 잔혼까지 완벽하게 흡수해 잔혼결의 기반을 다졌다.

“주인님! 저기!”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미칠듯한 속도로 쏘아져 오더니, 준혁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자는 아마르곤이었다.

“수사. 잠깐 다녀온다더니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었으면 저를 데려가셨어야지요.”

“하하, 잘 지냈습니까?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준혁은 가볍게 웃어 보이며 청호에 얽힌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너무 무르신 것 아닙니까? 저라면 하나도 살려주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르곤은 청호를 바라보다 자신이 일을 당한 것처럼 분노했다.

준혁을 매개로 약하게나마 연결되어 있기에 상호 간에 느끼는 감정이 조금 특별해진 걸지도 몰랐다.

“그 제사장이란 자와 고위수사들은 몰랐을 수도 있지만, 분명 동조한 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다만 필요가 있으니 그리 행한 겁니다.”

“필요 말입니까?”

준혁은 아마르곤의 되묻는 말에 따로 대답하진 않고 웃음으로 넘겨주었다.

당장 설명하지 않아도, 백호를 처리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한다면 준혁이 왜 호왕족을 징치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준혁이 대답을 피하자, 아마르곤은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

“수사가 돌아왔으니 산들 수사가 좋아하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리고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하늘을 가르며 사라지자, 준혁도 빛 꼬리를 만들며 그 뒤를 따랐다.

이제 주작의 본체, 정확히는 그녀의 봉인된 정신체를 온전히 흡수하기만 하면, 재탄생한 잔혼결을 이용해 백호와 현무까지 연달아 처리할 수 있는 상황.

어느새 선계로 향할 한걸음이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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