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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06화 (206/408)

206화. 주작 (1)

사슬에 구속된 연형기 원영을 한 번 더 봉인하는 사이.

툭-

터져나간 마족의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와 땅으로 떨어졌다.

신체가 죽자, 몸속에 보관되고 있던 법기류가 영력을 잃고 체외로 배출된 것.

봉인한 원영을 목함에 담은 후, 부적으로 재봉인한 준혁은 손을 저어 물건들을 끌어왔다.

“음. 하나는 공법서인 것 같은데. 이건 뭐지?”

이마에 다섯 뿔이 달린 마귀가 그려진 옥패와 손바닥 길이의 피리.

두 물건을 살핀 준혁은 옥패를 공간대에 넣은 후, 피리에 영기를 불어넣어 기능을 살폈다.

“오호.”

잠시 후, 피리 법기의 기능을 확인한 준혁은 그것을 공간대에 넣고, 산처럼 버티고 있는 전함마저 회수했다.

그때 흑오족 원영기 수사가 다가왔다.

“소멸진을 발동할 준비는 끝났습니다. 인근에 있는 생명체만 전부 처리한다면 당장이라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시행합시다.”

조금 전 공간대에 넣었던 피리를 꺼낸 준혁이 법기를 발동했다.

그러자 심기를 거슬리는 기이한 쇠 긁는 소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허….”

잠시 후, 흑오족 수사의 놀람을 시작으로 구덩이에서 눈동자가 풀린 결단기 이하급 마족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헤매는 듯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놀람을 숨기지 못하는 흑오족 수사의 말에 준혁은 법기를 회수하고는 말했다.

“우리가 종속을 맺는 것처럼 마족은 수하들의 심령에 제약을 걸어두었더군요. 이건 그 제약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만들어둔 것이고요. 그럼 수사께 남은 일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서두르겠습니다.”

말을 끝낸 흑오족 수사가 수하들과 함께 흩어지자, 준혁은 아마르곤과 아르나프를 불러 구덩이로 향했다.

***

영수족 인질 중 살아 있는 자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다. 그들을 풀어준 준혁은 아마르곤과 아르나프에게 거주지를 수색해보라 부탁한 후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연형기 마족에게서 얻은 공법서를 확인했다.

“마기를 유형화시키는 공법이라….”

옥패에 담긴 공법은 진마기(眞魔氣)라 불리는 유형화된 마기를 다루는 것으로, 연형기 마족이 사용하던 끈적끈적한 마기에 대한 것.

진마기를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 천천히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흑오족 수사가 신호를 보내왔다.

“시작하겠습니다!”

파앙-

그 순간 마족의 거주지 중심에서부터 미묘한 파동이 퍼져나가 주변을 파고들었다.

‘이게 끝인 건가?’

공간의 비틀림을 제거해 가짜 열쇠로 생겨난 마족의 거주지를 제거한다고 하기에 준혁은 꽤나 거창한 장면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구덩이도 그대로 남아있고, 전투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딱히 무언가 변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건?!

그때 다음 행보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준혁이 급하게 공간대를 스치자, 공간대에서 뭉툭한 막대기처럼 생긴 법기 아홉 개가 빠져나와 허공으로 솟구쳤다.

촤르륵-

아홉 개의 법기는 전 울릉도 도주와 차경수, 거기에 더해 완영기 마족에게서 얻은 아홉 영수족의 보물.

준혁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아홉 법기는 스스로 움직이더니, 일정한 간격으로 벌어져 원형을 이루었다.

그리고는 영기를 흡수해 수도자의 수행을 돕던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듯, 엄청난 양의 영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쿠아아-

“이런 식이었구나.”

잠시 후, 영기 파동이 멈추고 응축되던 영기 흐름이 정지하자, 아홉 법기의 중심엔 푸른빛이 물결치는 2미터가량의 막이 생겨났다.

그건 누가 보아도 미지의 공간으로 갈 수 있는 전송진이었다.

***

주작의 봉인지로 향하는 길이 생겨났지만, 준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백호를 통해 그들의 성향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봉인되어 있다고는 하나, 위험을 감수하고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던 것.

대신, 자리를 지키고 관망하는 준혁과 달리 흑오족 수사는 정신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흑오족 수사가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왔다.

“찾았습니다! 주작의 유적!”

주작의 봉인지가 나타난 직후, 봉인지에 설치된 봉인 결계를 역산한 그는 눈꽃 비경부터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눈꽃 비경의 끝자락, 즉 잘려 나간 구지대륙 중 눈꽃 비경과 맞닿아있던 곳이 주작의 유적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준혁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던 흑오족 수사는 결국 도천과 종속의 인을 맺어 비경 밖으로 향하고 만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야 주작의 유적을 특정해 나타난 것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녀온 뒤 수사와의 약속을 이행하겠습니다.”

흑오족 수사에게 옥간을 받아든 준혁은 그 위치를 확인하고는 공간대에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흑오족 수사가 주작의 봉인지에 들어서는 걸 유보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주작의 유적을 찾아가야 할 때.

그때, 흑오족 수사가 손바닥만 한 깃털을 건넸다.

“유적의 입구에 펼쳐진 결계를 조사하다 보니, 특수한 조건을 가진 자만이 안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아마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흑오족 수사가 건넨 깃털을 받아든 준혁은 내심 놀랐다.

그 안엔 그들 종족 특유의 혈맥의 힘이 미약하게 약동하고 있었던 것.

그렇지 않아도, 유적에 입장하기 위해선 주작의 피를 이은 후인이 필요했던 준혁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만약 깃털을 얻지 못했다면 산들바람을 대동하려고 생각했던 준혁은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아마르곤과 아르나프가 비경 곳곳을 돌며 여행에 심취해있는 사이, 산들바람은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

그런 그녀의 가족 상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준혁은 흑오족 수사의 준비가 마음에 들었다.

잠시 후 거듭 감사함을 표현한 준혁은 거처 밖으로 나갔고, 곧이어 하늘을 가르며 모습을 감추었다.

***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네팔의 에베레스트산.

그곳엔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비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해(大海) 비경이라 불리는 그곳은 규모도 규모였지만, 비경 내부가 온통 바다뿐이라 특수한 재료를 구하기 위한 이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비경 입구엔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서는 중이었다.

“불을 상징하는 주작의 유적이 바다뿐인 이곳에 있다니.”

한편으론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준혁은 비경의 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발을 옮겼다.

‘이러니 아무도 찾질 않는 거지.’

대해 비경의 특징 중 하나는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바닷속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

숨을 쉬는 것엔 아무런 불편도 없었지만, 옷이 젖는 느낌이 싫었던 준혁은 영력으로 물을 밀어내 일정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흑오족 수사가 찾아낸 장소로 날아갔다, 정확히는 물속을 유영했다.

한참 후, 유적의 입구를 찾아낸 그는 전송진을 향해 지체없이 몸을 날렸고, 백호, 현무 유적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론 사뭇 기이한 기운이 흐르는 유적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역동하는 불꽃이 새겨진 비석을 지나쳐 유적 안으로 이동한 준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탄식을 내뱉어야만 했다.

“아! 이미 누군가 다녀갔구나.”

1층의 중앙 석실과 이어진 방들은 이미 텅 비어있었고, 주작의 후인이 잠들어있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제단 위에도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았다.

심지어 2층도 다른 유적과 마찬가지로 출구로 의심되는 벽화는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질 않았다.

이곳에서 엄청난 무언갈 얻어갈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작은 기대감이 있었기에 준혁은 입맛을 다시고는 식검과 적마도를 꺼내 들었다.

“주작의 잔혼을 만나러 온 것임에도 아쉽긴 하구나.”

그 순간 식검과 적마도가 공명하며 준혁이 모습을 감추었다.

***

파앗-

3층에 올라온 준혁은 기감으로 주위를 살피고는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석실의 중앙에 놓여 있던 붉은 불꽃으로 다가갔다.

현무 유적처럼 미리 등장해 있진 않았기에, 잔혼으로 만들어진 불꽃에 영기를 살짝 주입했다.

그제야 잔혼이 반응을 보이며 격렬하게 흔들리다가 청초한 붉은 머리의 여인으로 변해갔다.

여인의 얼굴엔 수심이 깊었는데, 잔혼 자체가 백호, 현무와는 달리 존재감이 너무 약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인은 준혁을 보고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한참 동안 눈을 맞춘 후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우리 천봉족의 후인이 아니군요.”

혈맥의 힘을 흡수했던 백호나 원영을 먹어 치웠던 현무와 달리, 아무런 연관도 없던 준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선계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던 중 이곳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

준혁의 말에 여인의 얼굴에 더욱 음영이 드리워졌다.

“역시…. 계면에서 분리가 되었나 보군요.”

‘분리가 되었다고? 이자는 왜….’

잔혼의 말에 준혁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껏 만난 두 사신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던 것.

백호와 현무 둘 다 구지대륙을 구하기 위해 봉인 결계를 발동시켰고, 그 와중에 계면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하지만 주작은 마치 처음 들은 얘기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수사께서는 다른 사신과 함께했으면서 계면이 분리될 걸 모르셨다는 듯 말씀하시는군요.”

준혁은 상대방이 경계하지 않게, 공손하게 물었다. 하지만 주작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이미 누군가를 만났군요. 혹 나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이질감이 느껴지는 상대의 태도에 준혁은 잠시 고민하다 백호와의 만남을 알려주었다.

대신 봉인지에서 본체를 만난 건 숨기고, 유적에서 만난 잔혼에 대해서만.

“아…. 이미 그자를 만났군요. 수사. 절대 그의 말대로 움직여선 안 됩니다. 그자는 당신을 선계로 보내려는 게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자가 자신과 나머지 사신의 힘을 이용해야 선계로 갈 수 있다고 했겠지요? 그러니 사신의 힘을 모아 자신을 봉인에서 풀어달라고?”

정확히는 선계에 오른 후 계면을 이은 후에야 봉인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했었지만, 주작이 말하는 바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렇습니다. 선계로의 통로가 완전히 끊어져 있으니,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 알려주었습니다.”

“틀렸습니다. 아니 거짓이에요.”

안색이 확 바뀌며 단호한 눈빛을 하는 주작의 잔혼.

준혁은 백호에게서 들었던 내용을 상기하며 되물었다.

“무엇이 거짓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말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 뒤 주작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말이었다.

구지대륙은 마족을 비롯한 타 대륙의 침공을 받고 크나큰 위기에 봉착했다.

그 당시 구지대륙을 지배하던 ‘그’

사신의 주군이자 주인인 ‘그’가 최후를 맞이하게 되자 사신들은 구지대륙을 구하기 위해 봉인 결계를 발동시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작 봉인결계가 발동하려던 순간, 백호의 술수로 인해 주작은 큰 피해를 당하게 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봉인 당하고 만다.

“그가 저를 살려둔 건, 결계가 유지되길 위해서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백호의 노림수는 공석이 돼버린 구지대륙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것.

거기까지 듣게 되자 준혁은 현무의 태도가 이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작과 달리 백호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그럼 현무와 청룡은 백호를 도운 겁니까?”

준혁의 질문에 주작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그 빌어먹을 거북이가 저를 기습했었습니다. ”

그럼 현무와 백호 사이에 모종의 협약이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청룡…. 그는 백호의 손에 이미 귀천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사신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백호 그자의 말은 처음부터 거짓인 거죠. 청룡은 이미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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