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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05화 (205/408)

205화. 청소 (3)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

말 그대로 연형기 마족, 룬다람의 움직임은 번갯불처럼 빨랐다.

흐릿하게 변했다고 느낀 순간 이미 준혁의 코앞까지 다가와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평범하게 보이는 주먹엔 끈적끈적한 검은 마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는데, 닿는 순간 보호막이고 법기고 순식간에 녹여버릴 것 같은 기운이 흘렀다.

하지만 준혁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

슈아악-

룬다람의 주먹이 면전에 닿으려고 할 땐, 이미 적마도를 이용해 멀리 회피한 후였다.

“급하시기도 합니다.”

준혁은 상대의 속도에 ‘역시 연형기는 다르구나’라며 속으로 감탄을 내뱉고는 재빨리 수결을 맺었다.

상대가 무슨 수를 사용하는지는 모르나, 제약 없이 연형기 수행을 드러내고 있으니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터. 우선은 계획대로 간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정도였다.

계면의 압박이 영향을 주지 못하다니? 처음부터 반응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분명 다른 이들처럼 반응을 보이다가 ‘너는 안 때릴게.’ 하는 것처럼 접촉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무영기를 이용해 계면을 겨우 속이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다른 이들이 준혁의 무영기를 보았다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테지만 말이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였다.

“제가 준비한 걸 보시겠습니까?”

준혁이 수결을 끝내자 땅속에 심어두었던 원반이 작동하며 만월강하진이 펼쳐졌다.

우우웅-

수행이 오른 뒤론 거의 사용하지 않던 물건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조우가 아닌 이상, 미리 준비하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진법.

분명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만월강하진의 영향으로 달빛이 일정 공간을 비췄고,

그 순간 준혁이 양손을 합장하자, 룬다람의 주위로 한기가 밀려들더니 그를 에워싸버렸다.

쩌저적-

한기가 상대를 뒤덮자, 준혁은 인지경을 꺼내 발동시키며 식검과 분광소를 분출했다.

“가라!”

동시에 적마도를 허공에 띄운 채 손가락으로 상대를 가리키자, 적마도가 스르륵 허공에 녹듯 사라져 버렸다.

“흥! 이따위 걸로!”

하지만 어느 정도 선수를 잡았다고 느낀 것도 잠시뿐, 한기로 뒤덮인 룬다람이 코웃음 치자 새하얀 월광지력의 기운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간을 이동해 상대를 베어내려 했던 적마도는 어느새 칼날이 상대방의 손에 잡힌 상태였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요.”

상대가 손쉽게 상황을 반전시켰지만, 준혁은 괜찮다는 듯 웃어주었다.

애초에 월광지력으로 상대를 잡아두고 적마도로 시선을 빼앗았을 뿐, 진짜 공격은 그다음이었다.

준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 룬다람의 등 뒤에서 준혁과 똑같이 생긴 분광소가 나타나며 공격을 감행했다.

퍼억-

“어딜!”

다만 준혁의 노림수는 먹혀들어 가질 않았다.

분광소의 공격은 너무 쉽게 상대에게 봉쇄당해 버렸다.

잠시 후, 분광소를 막아낸 룬다람이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팔을 휘둘러 원형을 그리더니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전영이 나타나더니 어마어마하게 크기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허공의 영기 뭉침이 겹겹이 쌓여가며 미칠듯한 뇌전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그의 몸에 닿는 순간 솜사탕처럼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상대의 전영에 담긴 무시무시한 저력에 준혁은 다시 한번 연형기와 완영기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이 만월강하진을 이용해 월광지력을 강화하고 인지경을 통해 영기를 충당한다 해도 그 차이를 메우기는 불가능하단 걸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순간.

스르륵-

눈에 보이지 않던 무영기가 걷어지며 준혁의 수행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연형기?!”

룬다람은 준혁의 수행을 확인하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하다 재차 비웃음을 날렸다.

그 웃음의 의미는, ‘그래 봐야 초기에 불과하군’이었다.

“제대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준혁은 연형기 수행을 드러냄과 동시에 날개를 꺼내 들었고, 계면의 압박으로 인한 뇌전을 가볍게 막으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상대의 표정이 급변했다.

“용각족의 후인이었구나!”

상대는 용천무의 날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용천무의 날개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던 마족은 무언가를 느낀 듯 왼쪽 허공을 노려보았고, 그의 눈짓에 전영이 험상궂게 변하며 텅 빈 허공을 강타했다.

파앙-

영기가 터져나가자 그곳에서 준혁이 나타나더니 다시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완영기에서 연형기로 수행이 올라간 분광소가 빛살처럼 변하며 마족의 후면을 파고들었다.

“그 녀석들이 괜히 당한 게 아니었구나! 본체와 동급인 분신이라니!”

룬다람이 놀라는 사이.

“당신도 다를 건 없을 겁니다!”

준혁은 분광소의 반대편에 나타나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래 봐야! 분신은 분신! ”

양쪽에서 기습을 가하는 준혁의 수법에 룬다람의 전영은 분광소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룬다람 본인은 준혁을 향해 진득한 마기를 쏘아 보냈다.

상대의 마기가 닿는 것은 전부 녹여버린다는 걸 파악한 준혁은 직접 상대하지 않고 전영으로 맞섰다.

콰앙-

그 결과 양쪽에서 충격으로 인한 파동이 터져나가 준혁은 귀원패로 몸을 보호하며 물러났고, 분광소는 두 개의 법기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

스르륵-

충돌과 함께 아주 찰나의 소강상태에 이르자, 네 번째 떨어지던 뇌전을 막아선 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지도 못한 게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구나.’

스무 번까지 막아낼 수 있던 계면의 압박이 분광소와 동시에 힘을 사용하자, 그 압력이 더 거세졌던 것.

이대로라면 열댓 번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명백히 본인의 계산 착오였다.

한편. 두 명의 연형기를 상대하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한 룬다람은 자신의 이마에 자라있던 뿔을 뽑아 들더니 그것을 전영의 몸속에 쑤셔 박았다.

“날파리 같은 놈, 단번에 쳐 죽여 주마!”

그러자 그의 전영이 원래보다 더욱더 부풀어 올라, 어느새 거인처럼 변해버렸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10여 미터는 될 것 같은 크기. 미세하게 표출되는 기운조차 지금껏 본 적 없던 어마무시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력을 증명하듯 엄청난 강도의 뇌전이 연속으로 룬다람에게 떨어져 내렸다.

번쩍- 콰쾅-

‘반응을 보인다!’

그 모습에 계면의 압박과 자신의 능력을 저울질하던 준혁은 상대의 상태가 전과는 다름을 파악했다.

뿔을 이용해 전영을 강화하자, 뇌전의 공격을 완벽히 상쇄시키지 못하고 몸을 움찔거린 것.

“죽어라!!”

그 순간 룬다람이 준혁을 가리키자, 전영이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마치 태산이 움직이듯 기운을 듬뿍 실은 전영의 주먹이 휘둘러지자,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파동과 함께 주변에 압력이 쏟아졌다.

동시에 전영의 거무튀튀한 주먹은 정확히 준혁을 압살하려는 듯 수직 낙하했다.

그 모습에 준혁은 때가 됐음을 느꼈다.

더는 상대의 힘을 간헐적으로 소비시키지 않고, 방어에 전념해 계면의 압박을 가속할 때가 말이다.

“지금입니다!”

직후, 준혁의 신호에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꽃잎이 흩날리더니 사람의 형태를 갖췄고, 이내 아마르곤으로 변했다.

목족의 술법으로 준혁 곁으로 단번에 이동해 온 아마르곤은 입속에서 주먹만 한 조각배를 꺼내 발동시켰다.

쿠우웅-

그 순간 조그맣던 조각배가 푸른빛에 휩싸이며 거대한 전함으로 변해 전면을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땅속에 숨어있던 아르나프가 전함 위로 올라탔고 아마르곤과 동시에 뒷일은 걱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영기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우웅-

다만 준혁은 힘을 보태지 않고, 기회를 노렸다.

“용각족의 전함까지! 흥! 이깟 법기 따위!”

전함이 소환되는 걸 보고 흠칫 놀란 룬다람은 놀란 마음을 숨기고 싶은지 더욱더 기세를 올리며 수인을 변경했다.

그러자 거대한 망치처럼 떨어져 내리던 전영의 크기가 한 번 더 부풀었고, 푸른 보호막에 싸인 전함을 강타했다.

콰아앙-

이십여 미터로 크기를 부풀린 전영의 공격과 그걸 막아선 전함의 푸른 보호막.

모든 걸 녹여버릴 것 같던 룬다람의 기운까지 더해졌지만, 전영의 공격은 전함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물론 전혀 소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커어억!”

전함에 충격이 전해지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아마르곤과 달리 아르나프는 내부가 진탕하는 충격에 내상을 입고 만 것.

준혁은 재빨리 1품 화목단을 꺼내 날려 보내고는 정면을 주시했다.

“몇 번 더 버텨야 합니다.”

예상외로 강력한 상대의 공격에 준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끈적거리는 마기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강력하단 말인가. 마치 영기를 녹여버리는 것 같지 않은가.’

순수한 영기를 녹인다는 게 말이 안 되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그러했다.

잠시 후, 충격을 어느 정도 흘려버린 룬다람이 연달아 공격을 시도했고, 어느 순간부터 푸른 보호막이 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함선의 한계가 아닌, 두 완영기 수사의 영력이 빠르게 한계에 도달하고 만 것.

그때 준혁이 흑오족 수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수사! 지금입니다!

***

준혁의 신호에 여태껏 거리를 재가며 은밀히 움직이던 흑오족 수사들이 몸통만 한 깃털을 꺼내 원거리에서 룬다람의 사방을 점하고 진법을 발동시켰다.

그 순간 룬다람 주위 백여 미터가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더니 그 중심으로 엄청난 영기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준혁이 흑오족 수사를 시켜 준비한 진법.

그건 영기를 응축시키는 술법으로, 보통 수련에 많이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가성비가 낮아 자주 사용되는 방법은 아니었다.

다만 계면의 압박을 받는 상대에게는 기막힌 수로 적용되었다.

번쩍- 콰콰쾅!

진법이 발동되며 룬다람에게 영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에 비례해 계면의 압박이 강해지기 시작한 것.

“이것들이 숨어있던 걸 모를 줄 알았더냐!”

‘알고도 보잘것없다 여겨 무시했겠지.’

노호성을 터트리는 룬다람을 살피던 준혁은 상대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몇 번의 공격이 더 가해진 후, 때가 됐다고 여긴 순간 적마도를 이용해 상대의 등 뒤로 이동했다.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준혁이 나타남과 동시에 룬다람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공격의 방향을 급하게 선회했다.

하지만 준혁은 상대의 초조함을 꿰뚫은 지 오래.

어느새 준혁의 머리 위로 두 개의 족자가 떠올라 각각 흉포한 백호와 점잖은 백호를 뱉어냈고,

크아앙-

두 마리 백호의 사자후로 인해 주변 영기가 물결치자, 준혁은 자신의 전영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막아섰다.

이미 보라색 전영의 피부 위론 검은빛의 반투명한 육각 타일이 비늘처럼 돋아나 있었다.

콰앙!

거대한 룬다람의 주먹을 준혁의 전영이 떠받들 듯 막아낸 사이.

휘리릭-

금빛 실이 요동치며 회오리치듯 거대한 전영의 주먹을 휘감았고, 그것을 시작으로 상대 전영의 전신이 금빛 실로 뒤덮여갔다.

동시에 수결을 맺은 준혁이 양손을 합장하자 극한의 한기가 금빛 실과 동조를 이루며 룬다람을 얼려버렸다.

쩌저정-

번쩍- 콰쾅-

수십 차례 계면의 압박을 몸으로 받아내며 약해져 있던 룬다람은 결국 디버프가 걸림과 동시에 월광지력에 침식당해 전신의 생체반응이 멈춰버렸다.

그리고 생체반응이 멈춘 찰나의 순간.

스걱-

어느새 분광소와 분리된 채 회수되었던 식검이 붉은 광검으로 변해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툭-

모든 게 멈춰버린 듯 적막이 맴돌았고, 룬다람이 만든 전영은 먼지처럼 형체를 잃고 사라졌다.

하지만 준혁은 승리를 거머쥔 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어딜!”

푸확-

그 순간, 목이 잘린 채 얼어있던 룬다람의 몸이 터져나가더니, 그 안에서 검은 원영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준혁이 손가락을 교차하자, 사방으로 퍼져있던 금빛 실이 모여들며 원영이 도망가지 못하게 주변을 꼼꼼히 둘러싸 버렸다.

그리고 금빛 실에 원영이 주춤하는 사이,

촤르륵-

준혁의 손끝에서 검은 사슬이 나타나 검은 원영을 파고들며 구속해 버렸다.

“이렇게 써먹게 될 줄 몰랐군요.”

원영을 감싼 검은 사슬.

그건 현무 일족의 꼬마가 자신의 수행을 낮추기 위해 스스로를 속박시켰던 현무진식의 구속 술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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