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03화 (203/408)
  • 203화. 청소 (1)

    두 완영기 수사를 경계하며 위축돼있던 산들바람.

    그녀는 준혁이 떠나가자 청명을 닦달하고 있었다.

    “받아.”

    산들바람이 입속에서 공간대로 보이는 물건을 꺼내자 청명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오조화채야. 돌아가면 이걸로 캇닢 만들어줘.”

    “...캇닢 말입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연단사가 아닌데….”

    “너 큰둥…. 최 수사 다음으로 이거잖아.”

    산들바람이 엄지척하자 청명이 쓰게 웃었다.

    귀여운 꼬마 영수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자신은 그저 잡일꾼에 불과했다.

    물론 수많은 마선문 수사들을 말 한마디로 부릴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 뒷배로 준혁이 있기 때문이지 절대 스스로의 능력은 아니었다.

    “그러니깐 밑에 애들 시키면 되지. 그 나씨 꼬마 계집한테 만들라고 해.”

    산들바람의 입에서 꼬마 계집이란 말이 나오자 청명은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을 흘리다 공간대를 받아들며 몸을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최 수사한테 네 칭찬 많이 해줄게.”

    “......”

    산들바람은 청명이 당연히 부탁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기에, 수고하라는 의미로 그의 어깨를 톡톡 치고는 조각배의 선미 부분으로 이동했다.

    뒤에서 청명의 얼굴이 썩어들어가는 걸 보았다면 임무 하나를 완료했다는 듯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진 못했을 것이다.

    그때 선미 끝에 도달한 산들바람 곁으로 아르나프가 다가왔다.

    “산들 수사라고 했지? 흠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목적지까진 얼마나 남았나?”

    자연스러운 아르나프의 하대에 산들바람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거리를 말하는 거야? 시간을 말하는 거야?”

    “어…? 방금 뭐라고 했나?”

    “거리냐고 아니면 시간이냐고.”

    산들바람의 말에 아르나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산들 수사. 내가 엄연히 그대보다 선배인데,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의 예는 갖춰야지.”

    산들바람은 그렇지 않아도 이유 없이 두 사람에게 쫄았던 것을 겨우 떨쳐냈는데, 상대가 고압적으로 나오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던 버릇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너 큰둥, 아니 최 수사보다 강해?”

    “...여기서 그분 얘기가 왜 나오는 것인가? 후배와 나의 관계를 정립하자는 것인데!”

    “난 최 수사한테도 이렇게 말하는데?”

    그러니 ‘네가 뭔데 예를 갖추라 말라 하는 거야’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이 나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꼬마를 어떻게 해야 따끔하게 혼을 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아르나프가 입을 열려는 찰나.

    “그러고 보니 너, 최 수사를 죽이려고 했던 그놈의 제자잖아? 그럼 너는 인…. 그거 뭐였지? 그거?”

    “인질이란 말을 쓰려나 본데, 그럴 땐 공범이란 말을 쓰면 됩니다.”

    조각배 중심에서 비행 법기를 조종하고 있던 아마르곤이 첨언해주자, 산들바람이 옳다구나 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 공범! 넌 공범이잖아? 내가 왜 나쁜 놈한테 예를 갖춰? 안 그래?”

    “......”

    순간 주위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아니라면 이처럼 막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것.

    그것도 손꼽히는 고위 수사에게.

    하지만 아르나프의 반응은 전혀 예상외였다.

    “허허, 산들 수사, 어찌 그리 험악한 말을 하십니까? 저 역시 그자에게 붙잡혀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공범이라니요?”

    “어?”

    “산들 수사는 제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수행을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그 좁고 더운 사막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제가 오죽했으면 원영응결식이란 걸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겠습니까?”

    말을 하던 아르나프의 눈이 처연해지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자, 이번엔 산들바람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이런 종류의 인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어? 어. 미, 미안…. 많이 힘들었겠네….”

    “아닙니다. 저만 힘들었겠습니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아! 그러고 보니”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던 아르나프가 공간대에서 자기병을 꺼내 산들바람에게 건넸다.

    “제 수하 중 한 놈이 개발한 건데, 좋아할지 모르겠군.”

    아르나프의 말투가 또다시 변했지만, 산들바람은 달콤한 냄새에 눈이 돌아가 자기병 속 물건을 꺼내 들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만탁’이라는 것이네. 한번 먹어보시게나.”

    오색빛깔을 띠며 달콤한 향기가 흐르는 단약의 유혹에 산들바람은 참지 못하고 그것을 날름 집어삼켰다.

    “아! 너무 맛있어!”

    “만탁이 무엇입니까?”

    한쪽에선 청명이 사쿠라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사탕.”

    “......”

    ‘만탁’을 계기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친해졌다고 여기는 건 산들바람뿐이었고, 아르나프는 준혁의 수하와 척지게 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지만….

    “그런데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군.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은 거지?”

    산들바람은 달콤한 만탁을 입속에서 굴리며 아마르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빨리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텐데. 이 속도로는 칠팔일 걸릴 거야.”

    “빨리 갈 방법은?”

    “빨리 가면 빨리 가는 거지. 천천히 가니깐 천천히 가는 거고.”

    발로 바닥을 톡톡 치며 말하는 산들바람을 보며 아르나프는 무언갈 깨닫고, 아마르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수사, 혹, 이 법기가 낼 수 있는 속도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아르나프는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지만, 아마르곤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내 능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한계라니? 수사의 수행이….”

    아르나프는 깜짝 놀란 얼굴로 아마르곤이 서 있던 비행 법기의 중앙으로 다가왔다.

    “혹, 제가 조종해봐도 되겠습니까?”

    아르나프가 정중히 묻자, 잠시 고민하던 아마르곤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안될 건 없지요. 다만…. 법기를 발동시키진 마시길 바랍니다.”

    “발동이라니요? 이미 비행 중이지 않습니까?”

    “조종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잠시 후, 아마르곤이 서 있던 자리로 이동해 온 아르나프는 법기에 영기를 흘려보내며 조각배의 성능을 파악했다.

    “설마…. 이건?”

    그리고는 지금까지 타고 날아온 비행 법기가 사실은 방어 법기라는 걸 깨달았다.

    “이게 무슨…. 이런 종류의 법기도 있단 말입니까?”

    아르나프의 놀란 얼굴에 아마르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최 수사도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니 함부로 발동하시면 안 됩니다. 수사께서 궁금해하시길래 잠깐 경험해 보…. 수사!! 당장 멈추세요!”

    준혁이 건네준 비행 법기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던 아마르곤은 갑작스러운 영기 파동에 급하게 손을 뻗었다.

    설마 자신의 충고를 무시하고 아르나프가 법기를 발동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화악-

    그 순간, 10여 미터 정도 되던 조각배가 푸른빛에 휩싸이며 말도 안 되는 영기 파동을 퍼트렸고,

    쿠웅-

    아르나프를 비롯한 전원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자신들이 타고 있던 조각배가 어느새 100여 미터는 넘을 듯한 거대한 전함으로 변해 있었던 것.

    거대한 전함은 마치 하나의 벽처럼 웅장했는데, 검고 회색의 선이 층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엄청난 위압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함선의 선체 위로는 푸른 보호막이 선명한 모습으로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이게…. 무슨….”

    아르나프는 정말 놀라서 탄식을 터트렸고,

    “큰일이구나….”

    아마르곤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

    “하하, 그래서 그걸 끌고 오느라 그리되신 겁니까? 요란하게 나타났다 싶더니 수사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군요?”

    오랜만에 크게 소리 내 웃는 준혁의 모습에 아마르곤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분하고 조용하던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그는 눈에 핏발이 서 있고 전신에서 정제되지 않은 기세를 흘리는 중이었다.

    정제된 표현을 썼지만, 굳이 다른 말로 하자면 거지꼴.

    “수사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걸 움직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

    “물론입니다. 저 역시 쉽지 않으니.”

    준혁이 아마르곤에게 건네주었던 비행 법기. 그건 용천무가 남긴 3가지 물건 중 하나인 ‘전함’이었다,

    전함은 말 그대로 전투용 비행 법기였는데 연형기에 오른 준혁의 능력으로도 완벽하게 구동할 수 없는 물건 중 하나였다.

    용천무의 날개가 수행 부족으로 힘겹게 사용하는 것이라면 전함은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구동을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영기가 필요해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억지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아마르곤처럼 낭패를 면하기는 어려운 법기였다.

    그럼에도 준혁이 그것을 아마르곤에게 건넨 건 이유가 있었다.

    비행 법기로는 그 효율이 너무나 떨어졌지만, 방어 법기로는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가 없었던 것.

    눈꽃 비경엔 아직 연형기 마족이 존재했고, 만에 하나 자신이 유적에서 나오지 못하는 동안 일행이 그를 조우할까 하는 걱정에서 만일에 대비한 것이었다.

    계면의 압박으로 심처에서 나오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0년도 더 전의 상황.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싫었던 준혁은 그것에 대비해 법기를 건넨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끌고 오신 게 용합니다.”

    “모두가 고생했지요.”

    “우선은 쉬십시오. ”

    그나마 아마르곤은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었지만, 아르나프는 이미 영력이 바닥나 쓰러진 지 오래, 원영기 수사들도 한 손 보태다 보니 정상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결단기라 법기를 움직이는 데 제외된 청명만이 정상이었다

    ***

    거대한 전함에 놀란 영수족들을 돌려보내고, 아마르곤을 포함한 일행 전원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준혁은 홀로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은 흑오족 수사가 남기고 간 주작 유적에 대한 실마리.

    원래대로라면 아홉 영수족에게 정보가 남아 있어야 했지만, 오래전 전쟁의 여파 때문인지 유적에 대한 정보는 일절 찾을 수 없었기에, 준혁은 흑오족 수사에게 유적에 관한 질문을 했었다.

    고민하던 그가 내린 결론은 역추적.

    유적이 수련의 장소임과 동시에 봉인지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준혁의 정보를 들은 흑오족 수사는 주작의 봉인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역추적해 유적의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출구만 찾아낸다면 입구를 계산하는 게 불가능은 아니라는 말도.

    “흠.”

    하지만 그 일을 하기 전 선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연형기 마족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의 수행을 짐작할 수 없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초기라면 상대할 자신이 있었고, 중기라면 살아남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연형기 마족이 후기 수행을 가진 자라면 필패를 넘어 필사가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상대가 계면의 압박을 받을 테니, 수행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아!”

    생각에 빠져 있던 준혁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공간대에서 조각배 모양의 법기를 꺼냈다.

    조금 전 일행이 겨우 움직여 가지고 온 용천무의 전함.

    “그래! 내가 왜 이걸 생각하지 않았단 말인가.”

    반나절 정도에 불과했지만, 두 완영기 수사가 용천무의 전함을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그 말인즉 제자리에서 방어 법기로의 기능만 사용한다면 짧은 시간이나마 가진 힘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

    거기다 자신까지 합세하면 연형기 후기의 공격이라도 충분히 막아설 수 있었다.

    그리고 공격을 안전하게 막아낼 수만 있다면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 연형기 마족으로부터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몇 가지 준비만 하면 되겠군.”

    거기에 더해 충분한 양의 영석만 준비해 둔다면 진법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을 터.

    준혁의 머릿속엔 연형기 마족을 상대할 방법이 그림 그리듯 그려지고 있었다.

    “바람꽃 수사, 잠시 얘길 나눌 수 있겠습니까?”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준혁이 거처 밖을 향해 목소리를 흘려보내자, 기다렸다는 듯 바람꽃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신가요?”

    준혁은 자신의 의도를 숨긴 채 입을 열었다.

    “제 수하들이 회복하는 대로 마족의 거주지에 잡혀있는 자들을 구출해 드리겠습니다. 아홉 수장들에게 일러주시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