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01화 (201/408)
  • 201화. 다시 찾은 유적 (1)

    현무 잔혼을 완벽하게 흡수한 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4층, 혹은 다른 방이 존재하는지 면밀히 살펴본 후 2층으로 내려왔다.

    직후, 현무진식을 운용하자 백호 유적처럼 벽화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통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처럼 벽화가 만들어낸 환영을 통과해야 했지만, 준혁에겐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의 시험.

    파앗-

    간단히 벽화를 통과하자 생소한 장소로 이동됐다.

    전송으로 인한 이질감이 사라지자, 기감으로 주변을 살펴본 준혁은 이곳이 섬이란 걸 깨닫고, 상공으로 치솟아 주변을 눈에 담았다.

    “흠.”

    눈에 들어온 전경은 인도 대륙에 접해있는 섬과 해안가.

    스리랑카였다.

    “백호 유적도 그렇더니, 입구와 출구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져 있군.”

    전송된 장소를 확인한 준혁은 유적의 출입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구지대륙이 갈라지며 그렇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슬쩍 젓고는 몸을 움직여 섬으로 하강했다.

    “하긴, 그런 걸 고민할 필욘 없겠지.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니.”

    땅을 밟은 준혁이 상념을 날려버리고는 삼청조를 통해 청명을 부르자, 몇 시간 후, 청명을 비롯한 무리가 전부 날아왔다.

    “어르신!”

    “최수사!”

    그중 아르나프가 가장 먼저 준혁에게 다가왔다.

    “빨리 나오셨군요. 봉인지는 이 섬 최남단에 있습니다.”

    유적지 확인을 끝냈으니 당연히 다음은 봉인지로 향할 거라는 아르나프의 지레짐작에 준혁은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흠.”

    준혁이 고민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원래 계획대로 현무 봉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백호 유적지를 방문해 얻을 건 얻고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인지.

    그걸 결정하지 못한 것.

    리암의 소통 능력을 혈단법과 결부시켜 하나의 흡수 진법을 만들어낸 준혁은 무상번을 이용해 진법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고.

    강화한 진법을 이용해 사신들의 힘을 외부에서 흡수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명혼단으로 단련되었다고는 하나, 사신들의 의식 세계로 직접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었기에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간접적으로 그들의 힘만 빼내 올 생각이었던 것.

    다만 무상번을 이용해 진법의 효과를 증폭시키려면 자신을 보조해줄 이들이 필요했는데, 최소한 완영기에는 오른 수사가 네 명은 필요했다.

    하지만 아마르곤을 제외하곤 당장 도움을 줄 사람이 없었기에, 우선 유적을 방문해 공법 등을 얻고, 그 후엔 봉인지 상태만 확인하려는 게 준혁의 계획이었다.

    다만 현무 유적을 방문해 잔혼의 힘을 흡수하고, 아르나프라는 새로운 완영기의 도움을 받게 된 이상 준혁에겐 다른 방안이 생겨난 상태였다.

    만약 백호 유적을 포함한 나머지 유적에도 같은 안배가 되어있다면, 그걸 다 흡수한 후엔, 분광소로도 한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것.

    그 말인즉, 한 명의 수사만 더 확보한다면, 봉인지에서 힘을 빼낼 수 있는지 없는지 부딪쳐 볼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준혁의 상념을 깨듯 아르나프가 남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결정을 내리고는 고갤 저었다.

    “아니네. 우선 가봐야 할 곳이 있으니 그곳은 나중에 방문하도록 하지.”

    “그럼 저는?”

    “자네도 나와 함께 가야지. 오래 걸릴 일은 아니네.”

    그때 가만히 관망한 채 끼어들 틈만 보고 있던 사쿠라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요?! 갑자기 사라지시고는…. 너무 무심한 것 아니신가요?”

    청명을 통해 갑작스러운 소식이 들리자 정신없이 인도로 날아온 사쿠라.

    하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안부조차 묻지 않은 채, 자신의 일 처리만 하는 준혁을 보며 그녀는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온 상태였다.

    특히 그녀는 산들바람을 곁눈질했는데, 뭔가 초조함이 엿보였다.

    “그대들이 수행을 쌓는 것에 전념하길 원해서 조용히 나선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소.”

    “산들 수사는요? 저자만 함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쿠라의 눈길을 따라 산들바람에게 시선을 옮긴 준혁은 어떤 상황인지 대충 파악하고는 혀를 찼다.

    “저 녀석은 그대들과 다르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전혀 발전하지 않을 녀석이지.”

    “그건….”

    사쿠라의 수행이면 앞으로 행할 일들에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기에, 준혁은 그녀를 다시 되돌려 보내려고 했다.

    그때 준혁의 입이 열리기 전, 사쿠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앞으론 저도 함께하게 해주세요. 어디든 따라갈게요.”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주군!”

    ***

    눈꽃 비경 초입.

    조각배처럼 생긴 비행법기에 앉은 수사들이 서로를 의식하며 곁눈질하는 사이.

    준혁은 산들바람에게 일행을 이끌 것을 부탁했다.

    “이들을 이끌고 부락으로 가. 난 유적을 통과하면 바로 내경으로 전송될 테니까.”

    잠시 후 아마르곤에게 비행법기를 조종해줄 걸 부탁한 준혁은 일행을 두고 몸을 날렸다.

    파앙-

    일행과 중경 초입에서 헤어진 준혁은 오래전 청명과 찾아갔던 계곡으로 이동했다.

    청명이 대라멸진을 발동시키며 무너져버린 계곡의 안쪽까지 날아온 준혁은 토둔술을 이용해 땅속으로 파고들었고, 특정 지점에 이르자 예전처럼 흰빛에 휩싸이며 사라져 버렸다.

    한편, 준혁과 헤어진 일행은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지 못하고 점점 말이 사라지는 중이었다.

    우연인지, 아마르곤을 비롯한 사쿠라와 도천, 그리고 청명까지 전부 평소 친목을 다지거나 수다스러운 성격이 아니었던 것.

    그나마 산들바람이 장난기가 다분했지만, 그녀는 두 완영기 수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험험, 이러다 칼부림이라도 나야 통성명이라도 하겠습니다. 그려. ”

    점점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는지 결국 아르나프가 입을 열고 나섰다.

    특히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도를 벗어나는 것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아르나프라고 합니다. 한동안은 최 선배님을 따르기로 했으니 그리 알고 있으면 됩니다.”

    아르나프의 소개는 비행법기에 일정 간격으로 앉아 있는 모두에게 하는 것처럼 들렸으나, 그의 시선은 아마르곤을 향한 채였다.

    사실 그는 아마르곤의 정체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연형기에 오른 준혁을 제외하곤 자신보다 수행이 높은 자는 없을 거라 여겼는데, 그 예상이 빗나간 것.

    그런 그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아마르곤 역시 좌중을 가볍게 훑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대들이 버뮤다 삼각비경이라 부르는 곳에서 온 아마르곤이라 합니다.”

    그 순간, 산들바람을 제외한 전원이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놀라서 고갤 돌렸다.

    “설마. 목족 수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마르곤이 수행을 드러내자, 완영기 초기인 아르나프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젠장! 궁금해도 그냥 참을 것을! 수행이 읽히지 않아 이상하다 했는데 나를 한참 넘어서고 있었구나! 게다가 목족이라니!’

    제이엘을 통해 원영기 수사들이 목족에게 잡혀 노예 신세로 전락한 얘기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것이 떠올랐는지 아르나프의 목소리는 어색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 하. 그러셨군요. 어쩐지…. 남다르다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 하. 물론이지요.”

    아르나프는 괜히 분위기를 쇄신하려 했던 자신을 탓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준혁이 올 때까지 어색하게 지내는 게 나았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그뿐만이 아닌지, 나머지 인원들도 더 말이 없어지고, 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백호 유적 안으로 이동해 온 준혁은 한번 와본 곳이었기에 거침없이 움직였다.

    혹시나 수행이 낮을 때 놓친 것이 있었는지 기감을 넓게 퍼트려 확인하는 것 말고는 곧장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추억 속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거짓말을 일삼던 그는 예전과 다르게 뼈만 남은 모습으로 준혁을 반겨주었다.

    “자비에….”

    윈드라스 가문 출신 자비에는 외부로 나가는 2층 벽화 맞은편에 가부좌를 한 채 죽어있었다.

    뼈만 남은 모습에선 예전 그의 모습을 일절 찾아볼 수 없었지만, 준혁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의 법복과 그의 갈비뼈에 걸려 있는 구슬이 그가 자비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결국 나가지 못한 건가.”

    자신을 속이고 가문으로 함정을 파놓았던 그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던 준혁은 쓰게 웃으며 혀를 차고 말았다.

    만약 자비에가 자신을 속이지 않았더라면, 그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지도 몰랐다.

    준혁이 전해준 소식으로 가문이 그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고 해도, 결국 백호의 흔적이 없는 자들은 이곳에 오지 못했을 테니까.

    만약 이곳에 입장하지 못한 그들이 준혁에게 부탁했다면, 평소 그의 성격으로는 당장은 아닐지라도 자비에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모두 지나버린 얘기. 한번 지나간 일에 만약이란 없었다.

    “성불하시오.”

    준혁은 ‘자승자박이라는 말이 이토록 들어맞는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모두 자신이 자초한 일. 다음 생엔 좀 더 진실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짧게 묵념한 준혁은 손을 가볍게 휘저어 자비에의 흔적을 흙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그의 갈비뼈에 걸려 있던 구슬을 회수해 공간대에 집어넣은 후, 적마도와 식검을 꺼냈다.

    이곳 역시 3층이 존재한다는 걸 기감을 통해 파악한 후였다.

    ***

    3층은 예상대로 현무 유적과 같은 안배가 준비돼 있었다.

    다만 조금 다른 건, 석실 중앙에 떠 있는 잔혼의 불꽃에 기를 흘려보내기도 전. 이미 백호로 보이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정도.

    노인은 눈매가 서글서글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숙한 모습이었다.

    그런 친숙한 모습과는 다르게 준혁이 적마를 타고 3층으로 넘어온 순간, 번개처럼 다가와 준혁의 이마를 짚으려 했다.

    슈악-

    하지만 번개같이 움직이던 노인의 행동은 준혁의 눈길이 닿는 순간 살짝 느려졌고, 그사이 준혁 전면에 육각 타일이 만들어지며 반구 형태의 보호막으로 변했다.

    타당-

    준혁을 제압하려 하다가 보호막에 튕겨 나간 노인은 뒤로 물러나더니 의외란 듯 준혁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굉장하구나! 벌써 세상에 의지를 관철시킬 정도로 혼이 단련되어 있다니. 역시 내 피가 어디 가질 않는구나!”

    조금 전 공격은 상해를 입히기 위한 것이 아닌, 반가운 인사라도 된다는 듯 노인이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준혁이 코웃음을 치며 화답해 주었다.

    “보자마자 손부터 뻗으시다니, 예의가 없으시군요.”

    예의란 말에 노인이 말문이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뭣이? 예? 허어…. 너는 내가 누군지 짐작하지 못하는 것이냐?”

    “구지대륙을 수호하던 백호 아니십니까? 아 물론 진짜 백호가 잠들어있는 곳으로 저를 안내해줄 잔혼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어느새 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변했다.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

    “네놈. 이곳에 남겨 두었던 내 후인이 아니구나.”

    준혁은 백호 혈맥의 힘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 정도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누굴 가르치겠다고 여기 있으신 겁니까?”

    준혁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노인은 당황하는가 싶더니, 준혁의 태도에 분노했다.

    “놈!! 정말 오만방자하구나! 감히!”

    잠시 후, 분노에 찬 노인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거대한 호랑이로 변했고, 그에 맞춰 석실이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호랑이의 모습은 준혁이 만난 적 있던 백호의 모습과 털끝 하나 다르지 않았다.

    “오만방자인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백호의 의식 조각 때문에 꼭두각시로 전락할 뻔한 경험이 있던 준혁은 이번만큼은 저자세로 굽신거리는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도발에 가까운 행동을 했던 것.

    물론 봉인지에 갇힌 본체와 이곳에 남겨진 잔혼이 다르다고는 하나, 어차피 둘은 같은 존재.

    거기다 3층에 올라오자마자 손을 뻗은 백호의 행동을 보자면, 현무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전해줄 게 뻔해 보였다.

    그 뻔한 방식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리도 전혀 없었다.

    그 순간 준혁은 아주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 듯 씨익 웃더니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로 칠흑 같은 검은 기운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의 등 뒤로 보라색 피부를 가진, 본인보다 세 배 정도 큰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 마족!!”

    백호가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고 싫어하는 것, 바로 마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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