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00화 (200/408)

200화. 현무 유적 (2)

“틈이 없군.”

3층으로 의심되는 곳을 발견했지만, 그 어떤 진법이나 결계가 느껴지진 않았다.

무언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

아마, 1층에서 진묘수 동상의 보법을 배워야만 2층으로 가는 돌계단이 나타났던 것처럼 특정 조건이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연형기임에도 그 조건을 찾을 수조차 없다면 그건 둘 중 하나였다.

진짜 현무 일족에게만 반응하든지, 아니면 연형기를 넘어야 하든지.

하지만 준혁에겐 특정 조건을 무시할 방법이 있었기에, 조바심이 없었다.

“찾을 수 없다면 무시하면 그만이지.”

잠시 후 식검과 분광소 그리고 적마도와 괴뢰 인형을 공명시키자,

화악-

준혁과 쌍둥이처럼 닮은 분신체가 만들어졌고, 흐릿하게 변하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후 분신체를 통해 3층의 위험을 확인한 준혁은 괴뢰 인형을 제외한 마선을 재소환한 뒤, 귀원패로 몸을 보호하며 적마도와 식검을 공명시켜 벽을 넘었다.

파앗-

***

“으음”

결계를 강제로 넘으며 전해지는 압박에 준혁은 신음을 흘리다 몸을 빠르게 회복했다.

그리고는 분광소를 통해 보았던 3층 내부를 천천히 살폈다.

3층은 10여 평 정도 되는 좁은 공간이었는데, 중앙에 홀로 불타고 있는 하얀 빛을 제외하곤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얀 빛은 횃불처럼 생겼고,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게 마치 ‘영혼에 외형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흠.”

준혁은 그것에서 느껴지는 힘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기운을 뻗었다.

그러다 또 한 번 침음을 삼키고는 잠시 뒤엔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으며 기운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누가 있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불청객에게 자격이 있나 보시는 겁니까?”

그 순간.

화아악-

십여 평의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며 감각의 계수를 빼앗아가 버렸다.

동시에 준혁은 자신이 개미보다 작은 미세한 존재가 돼버린 듯한 느낌을 느끼고는 빠르게 수결을 맺으며 기합을 질렀다.

“갈!!”

파앙-

그러자 무한히 확장되며 준혁의 존재감을 한없이 작게 만들었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어느새 준혁 앞으로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노인이 나타나 있었다.

“제법이구나. 자격은 되는 것 같지만…. 왜 이리 찜찜한지 모르겠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노인.

그는 오랜 세월 현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일족의 후인이 봉인지에 갇힌 자신에게 닿을 수 있게 안내자 역할로 남아있는 잔혼이었다.

“넌 정말 우리 일족이 맞느냐?”

갑작스러운 현무의 등장에 준혁은 전혀 당황하질 않았다.

‘잔혼으로 만들어진 의식체.’

이미 백호의 의식 조각을 소멸시켜 본 적이 있었기에, 상대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했다.

위험할지 아닐지, 도망가야 할지 말지를 말이다.

결론은 이곳이 백호의 의식 안처럼 완전무결한 공간이 아닌, 조금 강력한 결계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곳이기에 상대를 겁낼 필요가 없다 여겼다.

만약 잘못될 것 같으면 그때 적마도를 이용해 도망가면 그만 아니겠는가?

“물론입니다. 제가 후인이 아니면 누굴 후예라 부르겠습니까?”

준혁은 태연하게 웃어 보이며, 전신으로 현무 혈맥의 힘을 방출했다.

노인은 준혁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로 진한 혈맥이라면…. 맞겠지.”

준혁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3층에 올라오자, 의문과 함께 의혹을 지우지 못한 노인은 준혁에게서 흘러나오는 진한 혈맥의 힘에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계단을 통하지 않고 이곳에 어찌 도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당한 자격을 지녔으니 말하겠다.”

어느새 노인의 안광은 푸른색으로 빛나고 전신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염원을 이룰 자를 기다리던 현무. 잔혼에 불과하지만, 그대를 나에게 인도할 안내자이며 그대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존재! 후인은 나에게 천배(天拜)를 올리거라.”

3층의 안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잔혼을 직접 남겨놓았다면 그 중요도는 2층의 공법이나 단약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

준혁은 눈앞의 존재가 유적의 진짜 안배임을 알아채고는 무릎과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친 후 노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는 영력으로 하늘을 두드리며 절을 올렸다. 천배란 천기(天氣)와 소통한 후 경의를 담아 올리는 최고의 인사.

“일족의 후예 최준혁. 현무를 뵙습니다.”

준혁이 몸을 숙이자 영력이 파도치며 그의 기운을 증폭시켰고, 동시에 하늘을 내리누를 것 같은 기운이 사방을 압도했다.

그 모습에 노인은 아리송한 눈빛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이것으로 마지막 수련을 시작하겠다.”

노인의 입에서 마지막이란 말이 나옴과 동시에 그의 몸이 하얀빛으로 폭사하며 거대하게 부풀었다.

그리고는 찰나지간에 거대한 거북이로 변했다.

사신, 특히 현무 일족의 천배가 어떤 형식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고서를 통해 천배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보았기에 준혁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늘을 울려 인사를 올렸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현무의 잔혼이 납득하는 듯 넘어가자 옳은 판단을 했음을 느낀 준혁은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준혁의 손끝에서 시작한 육각 타일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뒤덮었고, 동시에 발끝에서 작은 연꽃이 피어나더니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거대 거북이로 변한 노인의 몸이 땅으로 푹 꺼져 사라졌다.

“이곳은 나를 만나러 올 후인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놓은 장소. 내 힘은 혼력을 바탕으로 한 의지력! 그러니 내 공격에 영력이 아닌 의지로 맞서, 그대를 단련하라!”

친절한 시험관처럼 노인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혼력과 의지력이란 말에 준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혼력이 무엇인가? 영혼의 크기임과 동시에 혼의 강도를 뜻했다.

수행이 높을수록 의식이 강해지고, 의식이 강할수록 혼력이 올라갔다. 그리고 혼력은 의지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결국 노인의 말은 준혁의 영혼을 단련시켜주겠다는 뜻.

준혁이 쓴웃음은 지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미 그는 명혼단으로 인해 수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현무 잔혼의 안배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긴 것.

쿠릉-

잠시 후, 땅이 울리는가 싶더니 준혁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흰 빛무리가 솟아올랐다.

빛무리는 순식간에 바다거북의 모습으로 변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폭풍 같은 회오리를 동반한 채 준혁을 짓이길 듯 달려들었다.

“의지력은 그대의 의지로 세상에 간섭하는 힘! 오롯이 의지 하나만으로 세상을 움직여 변화를 주….”

노인의 말이 이어지는 사이, 맹렬하게 달려드는 네 마리 거북이를 보며 준혁은 허공을 가볍게 쥐었다.

그러자 영기가 뭉치듯 거북이들이 제자리에 멈춰 섰고, 준혁 발밑에서 회전하고 있던 연꽃이 파바방 소리를 내며 흩어지자, 거북이들은 그 힘에 맞서다가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허? 이 정도라니. 제법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자신의 한 수를 후인이 너무도 쉽게 무력화시키자 노인은 당황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십여 평의 공간이 다시 한번 한없이 넓어졌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울 듯한 거대 거북이 형상이 나타나더니 준혁을 향해 앞발을 들어 올렸다.

영기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위력이 내포돼 있었다.

‘대단하구나. 영력이 없이 의지만으로 이 정도로 세상에 영향을 주다니.’

이번에 나타난 거북은 정확히 현무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들어 올린 다리에 수실처럼 달린 흰털이 마치 촉수라도 되는 것처럼 준혁을 응시하며 꿈틀거렸다.

그것들을 보며 준혁은 아주 잠시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내 의지력은 영혼의 강도에 비해 한없이 부족했구나.’

준혁은 영력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의지만으로 이 정도의 힘을 사용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법.

“가라!”

노인의 공격에 준혁은 수결을 맺은 후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 앞에서 수 미터에 이르는 육각 타일이 만들어졌고, 그 위로 새하얀 한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쾅!

그 순간, 거북이의 앞발과 육각 방패가 부딪쳤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파동을 퍼트렸다.

파앙-

“좋구나! 그럼 이번엔!”

준혁이 또 한 번 쉽게 공격을 무산시키자, 거북이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잠시간 준혁을 응시하던 거북이는 시선을 유지한 채 입을 벌렸고.

크아악-

직후, 허공 곳곳에서 거북이 얼굴을 한 뱀들이 나타나 준혁을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뱀 하나하나가 연형기 수사를 압도할 만한 기운을 품고 있었는데, 서너 마리에서 시작한 그것들은 순식간에 수백 마리로 늘어났다.

하지만 준혁은 그것들이 의지로 만들어낸 것들일 뿐 실제로 그 정도의 힘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굉장히 매섭습니다! 후인을 골로 보내시려는 겁니까? 합!”

“하하하, 긴장조차 보이질 않거늘 엄살은!”

만약 실제로 영력이 포함된 공격이었다면 당장 적마도로 도망쳤을 테지만, 의지만으로 만들어낸 공격은 준혁의 의지로 상쇄되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었기에 준혁은 토율서를 소환함과 동시에 겉핥기식으로 깨달은 현무진식을 발동하며 동시에 현무 혈맥의 힘으로 거대한 흙의 벽을 만들었다.

쿠르르릉-

준혁의 손끝을 따라 한없이 커지던 흙벽은 솟아오름과 동시에 거대한 파도로 변해 뱀들을 덮쳤다.

콰르르릉-

준혁이 만든 흙의 파도가 뱀들을 압사해 버렸다.

***

수차례의 공방이 이어지던 순간.

“허허허,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이었구나….”

노인의 허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인이여, 이 수련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네.”

확장되던 공간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며 동시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련은 끝난 것입니까?”

“그대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돼 있네. 내 도움 없이 내 본체를 찾아왔어도 무리가 없었겠어.”

노인이 공격을 멈추었지만, 준혁은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보이지 않게 월광지력을 준비했다.

하지만 노인은 진심으로 모든 걸 끝낼 생각이었는지, 준혁을 향해 살포시 웃어 보이더니 퍼엉 하고 터져나갔다.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터. 이제 나를 찾아오게.”

그 순간 흰 빛무리로 터져나간 노인은 처음의 하얀 빛덩이로 변하더니 준혁에게 흘러왔다.

그리고는 마치 안개가 가라앉듯 서서히 준혁의 전신으로 흡수되며 사라져 버렸다.

“이런 것이었군.”

현무 잔혼을 흡수한 준혁은 그가 남긴 안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혼력을 강화해 스스로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할 수 있게 하려는 조치였다.

봉인지 안, 자신의 강대한 의식 세계로 후인이 방문했을 때, 후인의 정신이 붕괴되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안전장치였다.

또한 현무진식을 포함한 다양한 술법과 혈맥의 힘을 운용하는 방법까지 담겨있었다.

하지만 안배임과 동시에 족쇄이기도 했다.

“역시 사신들은 전부 후인을 수족처럼 부리려고 하는군.”

잔혼의 힘 안엔 백호의 잔혼처럼 상대의 의지를 무의식중에 조종하려는 무언가가 내포돼 있었다.

물론 백호처럼 악의적인 의도가 아닌, 후인이 자신을 최대한 빨리 찾아오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다만 준혁에겐 백호나 현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종족의 가장 큰 어른이자, 수장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수족의 생태이자 삶.

인간인 준혁에겐 기분 나쁜 시도,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잠시 후, 현무 잔혼이 남긴 기운과 그 안에 내포된 것, 그리고 봉인지와 관련된 것까지 천천히 음미한 준혁은 모든 배움이 마무리되자 수결을 맺어 자신의 이마와 심장, 그리고 단전을 콕 하고 찍었다.

그 순간, 내부에 잠복하듯 숨어 있던 현무의 의지가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소멸하여 버렸다.

“후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구나.”

연형기에 오르며 하계에선 더는 발전하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그 예상이 틀렸다.

그리고 소멸하는 현무의 의식 조각을 느끼며 준혁은 시선을 멀리 두었다.

“그럼 백호 그자도 이런 걸 준비해뒀겠구나, 시침을 뚝 떼고 언급조차 안 하다니.”

아마 봉인지에 방문한 준혁의 정신이 붕괴하지 않으니, 잔혼의 힘을 소비하는 게 아까웠으리라.

“아깝게 그냥 둘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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