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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96화 (196/408)
  • 196화. 실력 (1)

    “하지만 수사께선 이미 그녀를 차단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족인들을 통해 외부의 일을 파악하고 그들을 매개체로 공간을 이동해 오는 목족의 여왕.

    아마르곤은 준혁을 만날 때 그녀와의 연결을 차단해, 그녀의 소환을 막고 있었다.

    “이건 그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제 능력으로 그녀의 눈은 가릴 수 있으나…. 그뿐이니까요.”

    목족의 거주지 중심에 있던 거대한 붉은 나무. 그들이 거주지 안에서 마음껏 이동하게 도와줄 뿐 아니라, 땅속 깊은 곳에 있어도 태양의 양분을 전해주는 나무.

    새삼 그것의 대단함을 느낀 준혁은 적유목이 눈꽃 비경의 천년수처럼 신목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때 아마르곤이 산들바람을 의식하며 그녀에게 살짝 묵례했다.

    “저분은 영수족입니까?”

    “아…. 서로 인사하지. 산들. 여긴 아마르곤이라고 해. 이쪽은 적호족의 산들바람.”

    목족을 만난다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던 산들바람은 아마르곤이 완영기 수사라는 말에 잔뜩 움츠러든 채, 미미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그 모습에 그녀를 차분히 살피던 아마르곤은 아주 잠깐의 관심을 거두고는 다시 준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제 말은 끝났으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다른 이가 우릴 보게 된다면. 좋지 않을 테….”

    “아니. 저는 수사가 필요하니 꼭 함께해야겠습니다.”

    “수사….”

    준혁에게서 느껴지는 진심에 아마르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내 설득이 여왕에게 먹혀들어 갈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생각을 구체화하기도 전.

    “그러니 그녀가 이곳에 올 수 있게 시야를 공유하십시오.”

    “예? 지금 그녀를 이곳에 불러오겠단 말이십니까?”

    아마르곤이 놀란 눈으로 되묻자,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란 듯 웃어주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혁의 눈이 어서 일을 진행해보란 듯 반짝이고 있었다.

    ***

    준혁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려 애쓰던 아마르곤은 몇 번을 더 되물은 뒤에야 준혁이 진심으로 여왕을 만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몇 번이나 우려를 내비치다가 결국 여왕과의 시야 공유를 풀어버렸다.

    그 순간.

    목족의 대지 경계 상공에서 엄청난 영기가 모여들어 뭉치기 시작했다.

    지지직-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화려한 꽃들이 연달아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 꽃들은 서로 연결되며 화관을 이루듯 둥근 고리처럼 움직였다.

    잠시 후 꽃들로 이루어진 고리 중심에서 오망성이 나타났고, 오망성 주위로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 나타났다.

    그리고 문자들이 고리를 감싸 둥글게 배열된 순간, 그곳에서 가슴이 풍만한 여인이 쑥 하고 빠져나왔다.

    여인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준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드높였다.

    “묶여라!”

    “스퀘타! 잠ㄲ...!”

    아마르곤이 끼어들기도 전, 준혁 주위 허공에 영기가 뭉치는가 싶더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녹색 줄기들이 자라나 준혁을 칭칭 감아버렸다.

    그 순간 대기가 흔들리며 허공에 갑자기 생겨난 뇌전이 여인을 향해 떨어졌다.

    번쩍-

    “흥!”

    여인은 날아오는 뇌전을 향해 손을 내저어 막아서더니, 녹색 줄기에 묶인 준혁을 스쳐보며 아마르곤을 향해 소리쳤다.

    “아마르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갑자기 시야가 차단당해 무슨 일인가 걱정했더니! 감히 저놈을 몰래 만나?! ”

    여왕의 고함에 아마르곤은 ‘이제 어쩔 건가?’ 하는 눈빛으로 줄기에 묶인 준혁을 바라보았다.

    파앙-

    그때 준혁을 구속하고 있던 녹색 줄기가 허무하게 터져나가며 소멸해버렸다.

    준혁이 너무 쉽게 구속에서 풀려나자 아마르곤이 놀란 얼굴을 하다 시선을 들었다.

    공간 이동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여왕, 스퀘타는 아마르곤보다 더 놀라 잠시 움찔하다가 윗입술을 뒤집으며 양손을 입 앞에 가져와 입김을 불었다.

    후우~

    스퀘타가 양손으로 삼각형을 만들며 입김을 내 불자,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성인 허리통만 한 줄기 수십 개가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더니 순식간에 꽈배기처럼 회오리치며 준혁을 감싸버렸다.

    “큰둥아!”

    준혁이 여왕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근처에서 연형기가 뿜어대는 기운에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겁을 먹고 있던 산들바람은 기운을 폭발시키며 준혁을 구하기 위해 급하게 땅을 박찼다.

    하지만 준혁을 감싼 녹색 줄기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

    퍽-

    어느새 다가온 스퀘타에게 정확히 가격당하며 왔던 방향 그대로 날아가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웬 원영기 영수지?”

    산들바람을 날려버린 스퀘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쌍심지를 켜며 아마르곤에게 손가락질했다.

    “아마르곤!! 네 행동은 도를 넘었어. 이건 종족을 배신하는 행동이라고! 당장 저놈과 연결된 종속의 인을 끊어내자. 내가 어떻게든 도울 테니까.”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처럼 말했던 준혁이 너무 쉽게 잡혀버리자, 혹시나 했던 아마르곤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제 얘길 들어…. 아니, 스퀘타. 우선 내 얘길 들어봐. 오랜 친우로서 부탁할게.”

    “흥! 친우라는 이름으로 회피하려고 하지 마! 넌 지금 종속의 인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거야. 종족의 염원이 걸린 일에 왕인 나 몰래 이런 만남을 가져? 게다가 이놈은 나를 죽이려고 했던 놈이라고! 기억 안 나?!”

    의식이 법기에 접속해 있는 사이, 법기를 폭파시켜 치명상을 입히려고 했던 건 사실이었기에, 아마르곤은 그것에 대해선 변명하지 않고 침묵했다.

    “왜? 맞는 말이라 대답을 못 하겠지? 잘 들어. 넌 지금 네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술법으로 무조건적인 호감이 생긴 상태야. 저 인족 놈이 너보다 수행이 떨어진다며 감언이설로 속였지만, 결국 넌 술법 때문에 저놈에게 조건 없는 신뢰가 생겨난 거라고!”

    아마르곤 역시 스퀘타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다만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신이 소멸할 위기에 처했을 때, 준혁이 목숨을 걸고 원영을 정화해 주었다는 것.

    그것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은 잠시지만 하나 된 듯한 교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서로의 감정을 밀접하게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스퀘타.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그때, 아마르곤이 스퀘타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떼려던 순간.

    지금껏 여인을 향해서만 떨어져 내리던 뇌전이 더욱 강렬해지며 준혁을 감싼 녹색 줄기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파지직- 번쩍-

    “이게 무슨….”

    그 현상에 스퀘타와 아마르곤이 동시에 준혁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파가각- 쾅!

    꽈배기처럼 꼬여있던 녹색 줄기가 산산이 부서지며 비산했다.

    ***

    파지직-

    약한 뇌전은 스퀘타에게,

    파지직- 번쩍-

    강렬한 뇌전은 준혁에게 떨어지는 그때.

    스퀘타의 구속 술법을 파쇄한 준혁은 여러 겹의 육각 타일을 만들어 뇌전을 막았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수결을 맺은 후, 그녀를 손가락으로 지긋이 가리켰다.

    “이런 식으로 운용하는 것이었군요.”

    순간, 땅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난다 싶더니,

    콰르릉-

    직경 1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나무줄기들이 물먹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 아마르곤을 피해 스퀘타에게 쇄도했다.

    “말도 안 돼!”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준혁을 보고 있던 스퀘타는 자신을 압살해버릴 것처럼 줄기가 쇄도하자, 둔광을 일으키며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미 준혁이 예상한 경로.

    스퀘타는 번개처럼 나타나 붉은 장검을 내리긋는 준혁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양손을 저었고, 간신히 장검을 쳐낼 수 있었다.

    “정말 연형기에라도 올랐단 말이냐?!”

    반탄력에 뒤로 물러난 스퀘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며 기이한 수인을 그리고는 허공을 연달아 격타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손바닥만 한 잎사귀들이 모여들어 준혁을 감싸는가 싶더니, 동시에 시퍼런 가시를 쏘아댔다.

    슈슉-

    “수사도 해낸 것을 저라고 못하겠습니까? 딱히 어렵진 않더군요.”

    준혁은 가시에 담긴 기운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는 재빨리 전영술을 사용했다.

    그러자 준혁의 등 뒤로 보라색 피부의 환영이 나타나, 커다란 양손을 휘둘러 가시를 전부 날려버렸다.

    “으음….”

    그렇게 한 명이 공격하면 한 명이 방어하고, 또 한 명이 공격하면 다른 이가 회피하는 공방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스퀘타의 안색은 새하얗게 변해 갔고, 준혁은 알게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비쳤다.

    ‘대충 파악이 되는군, 한발 올라서고 나니, 확실히 보여.’

    용천무의 법기나 분광소를 이용한다면 보다 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준혁은 천천히 시간을 들이며 상대의 수법과 수행의 한계를 면밀히 살폈다.

    계면의 압박이란 것이 모든 수사에게 동등하다고는 하나, 그것을 이겨내는 것엔 분명 상성이란 것이 존재할 터.

    준혁은 목족 여왕이 드러내고 있는 영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파급력, 그리고 그에 상응해 몰아치는 뇌전의 세기를 계산해 자신과 비교했다.

    결과는, 목족의 공법은 계면의 압박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즉 목기(木氣)를 배제하면 지금보다 더 수월하게 압박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

    준혁은 곧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목기를 전부 한곳으로 뭉쳐, 강하게 압축한 후 정혈을 이용해 감싸버렸다.

    그러자 아주 조금이지만 계면의 압박에 대한 저항력이 올라감을 느꼈다.

    수행을 올린 직후 실험했을 땐 스무 번 남짓이었지만, 이젠 두세 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아마르곤을 슬쩍 살핀 준혁은 안색이 더할 나위 없이 창백해진 여왕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고, 곧바로 수결을 맺으며 허공에 스며들 듯 사라졌다.

    파앗-

    그리고 여왕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

    쩌저정-

    그녀의 눈앞에서 나타남과 동시에 그녀를 얼려버렸다.

    ***

    스퀘타가 월광지력에 당한 후 얼음덩이가 되자, 그녀의 영력이 멈추며 뇌전도 더는 떨어지질 않았다.

    그 모습에 준혁은 무영기로 자신의 수행을 감춘 후, 땅속에 파묻힌 산들바람을 꺼내와 영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일어나.”

    화들짝-

    산들바람은 준혁의 부름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바로 전투태세를 갖추다가, 주변이 이미 정리되어있음을 깨닫고는 뻘쭘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몸을 점검하며 이상이 없나 확인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준혁은 아마르곤과 함께 얼음덩이 앞으로 다가갔다.

    “수사는 정말…. 모를 사람이군요. 예전보다 수행이 올랐다고 여기긴 했지만. 설마 연형기에 오른 것이었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준혁의 멋쩍은 웃음에 아마르곤은 얼음 속에 갇힌 여왕을 말없이 바라보다,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 때문에 살려주신 겁니까?”

    그도 준혁이 여왕을 상대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느낀 상태였다.

    “아니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그럼?”

    “수사는 선계가 어떤 곳이라고 여기십니까?”

    “흐음. 설마….”

    “저는 선계에 오른 후 약속대로 하계에 통로를 열 겁니다.”

    준혁이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하려 하자, 아마르곤이 경청하겠다는 듯 진지한 표정을 했다.

    “그럼 수행을 올린 수사들이 수월하게 선계에 다다를 수 있을 테지요. 그렇게 된다면 이곳에서 올라간 이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음….”

    “우선은 서로를 의지하며 뭉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그곳에 하나의 세력이 생기게 되는 것일 텐데…. 과연 다른 이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준혁은 선계에 오른 직후에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하계로의 통로를 열 생각이었다.

    동생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 좀 더 수행을 쌓고 원하는 바에 다다르도록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싶었기 때문.

    만약 통로를 연다면 하계의 영기 밀도는 급격히 올라갈 것이 뻔했고, 거기다 이미 길을 뚫어났으니 선계로 진입할 확률이 엄청나게 늘어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혈맥의 힘 하나 때문에 거대한 대륙 전체를 말살하려 했던 선인들이 존재하는 곳이 선계였다.

    그런 곳이라면 어디를 가든, 어느 곳에 자리를 잡든 부침이 없을 수는 없는 법.

    준혁 혼자라면 그저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세력이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크면 클수록, 덩치를 키울수록 좋은 일이었다.

    먼 과거 구지대륙의 모든 종족이 협력해 대륙 밖 침공에 맞섰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었고, 모든 것은 통로를 통해 같은 곳으로 간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긴 했다.

    “그러니 앞으로 인족과 목족은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수사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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