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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93화 (193/408)
  • 193화. 연형기 (1)

    대한민국의 울릉도라는 작은 섬.

    그곳에서 시작된 영기 뭉침 현상은 빠르게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반경 300킬로가 넘게 커진 영기 구름은 근처의 가장 가까운 내륙인 대한민국의 영토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영기 구름의 영향력에 들어간 지역은 영기 소용돌이로 인해 가전기기가 전부 멈추었고, 심지어 사람들이 이유 없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일반인들부터 구해라! 심장에 영기를 불어넣어 몸을 안정시켜!”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고, 수사들이 뛰어다녔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세력에 연락을 취해! 모든 비용은 마선문에서 지급할 테니 수사들을 움직여 사람들을 살리라고!”

    청명의 명령에 마선문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뭉친 영기 구름은 그 기세를 키워갔다.

    보통 수사들이 결단기, 원영기에 이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중압감이 모두의 심장을 철렁거리게 했다.

    평소 영기 구름이 뭉치는 중심지만 벗어나면 안전했던 것과는 다르게 구름이 퍼진 세력권 전체가 불안정한 영기의 흐름으로 요동쳤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륙의 모든 수사가 겁에 질린 채 건물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고,

    “동쪽인가? 가까이 가서 확인을! 으악!”

    몇몇은 멀리 보기 위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 비행 능력을 잃고 바닥에 꼬꾸라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곳은 울릉도와 가까운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는데, 섬 동남쪽에 위치한 일본에서도 거대한 기류에 모든 수사들이 공포에 떨었고, 북쪽으로는 러시아 일부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다.

    그런 와중.

    속초 앞 해변가에 모여든 수사들.

    사쿠라를 비롯한 원영기 수사들은 하늘을 잠식해가는 영기 구름을 보며 얼굴에 공포가 드리우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물러나니 버틸 만하군요.”

    “연기기 이하 수사들은 그래도 위험합니다. 청명 문주! 보호 진법을 설치하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발동했습니다. 그나저나 어르신께선 이번엔 성공하시겠습니까?”

    “모를 일이지요.”

    청명을 닦달하던 리암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후 동쪽으로 시선을 옮겨버렸다.

    “정녕 이것이 사람이 일으킨 일이란 말입니까?”

    누군가의 힘없는 목소리에 나머지 인원들도 공감한다는 듯 이를 꽉 깨물었다.

    사실 선계에서 연형기에 드는 자들과 비교한다면 준혁의 연형기 도전은 조금 요란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주된 원인은 명혼단 때문.

    명혼단 절반을 먹고 난 후, 혼의 강함이 삼경에 이른 수사들에 근접한 준혁.

    그런 그였기에 그것에 걸맞게 영기 현상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도주께서 연형에 성공하신다면…. 이제 모든 수사는 그분 앞에 몸을 숙여야 하겠습니다.”

    “물론이지요. 이제 그분의 행보가 법이 되는 것입니다.”

    수사들은 점점 강해져 가는 영기 구름을 보며 심장 언저리가 싸늘해져 가는 기분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이런 이적을 행한 자가 자신들이 모시는 사람이란 것에 뿌듯해했다.

    막말로 원영기만 보유한 세력들은 준혁이 불합리한 명령 혹은 부탁을 할지라도 절대 그것을 거역하거나 항명할 수는 없을 테니까.

    “오!! 시작합니다!”

    그때 영기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던 도율이 기대감에 소리치자, 모든 이들이 대화를 멈추고 태풍이라도 치는 것 같은 바다 너머를 주시했다.

    한쪽에선 최나연과 천이화가 떨리는 두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맞은편에선 해안가 나무에 기댄 산들바람이 캇닢을 꺼내 먹으며 편안한 자세로 준혁을 응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것이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듯.

    하늘을 뒤덮던 오색 영기 구름이 맹렬하게 물결치며 울릉도가 위치한 중심으로 급격하게 밀려갔다.

    콰과쾅!

    영기 구름이 움직이며 서로를 배척하듯 뇌전을 뿜어댔고, 뇌전이 뿜어졌다 싶으면 다른 구름이 그것을 흡수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기 밀도가 올라갔고, 주위는 영기 폭풍으로 몸 하나 가눌 수 없는, 말 그대로 자연이 만들어낸 초월적인 이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울릉도가 태풍의 눈이라도 되는 듯. 수백 킬로에 이르는 영기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회전하기 시작하자, 마치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 하늘에서 상서로운 빛이 떨어져 내려 울릉도를 비추었다.

    “아아…!”

    그걸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탄성을 내뱉었고, 원영기에 이른 자들 중 몇몇은 자리에 주저앉더니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준혁이 수행을 올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하나의 기연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

    모두 떠나간 울릉도, 성인봉 거처에 혼자 남은 준혁은 하늘 가득한 영기 구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지금!’

    몸속 조화가 이루어지며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고 여긴 순간, 하늘과 자신을 연결했다.

    쿠아아앙-

    그때부터 거대한 영기의 흐름과 동시에 성인봉 상공에서부터 영기 구름이 회오리치며 하강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엔 수백 킬로에 이르는 구름이 요동치며 태풍처럼 움직였다.

    잠시 후 회오리치며 하강하던 영기 구름이 머리끝에 닿자, 단(丹) 안에서 준비하고 있던 원영이 몸 밖으로 나오며 준혁과 동시에 영기를 흡수했다.

    원영은 영기를 받아들일수록 몸집이 커졌고, 이내 꼬마 아이 정도 크기까지 늘어났다.

    그 모습은 식아가 모습을 드러낼 때와 비슷한 크기였는데, 식아완 달리 너무나 깨끗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만지면 톡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동안 물밀듯이 밀려오는 영기를 만끽하던 원영은 다시 손가락만 한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더니 만족한 모습으로 단(丹)으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좌정한 준혁의 등 뒤로 백호의 환영이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그 후엔 온몸에 비늘이 칼처럼 돋아나 있는 도마뱀 형태의 환영이 어른거렸고, 그것마저 사라지고 난 뒤엔, 이마 한가운데 뿔이 자라나 있고 보라색 피부에 덩치는 산만 한, 그러나 준혁과 꼭 빼닮은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 깊은 동굴 속을 탐색하듯 진지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던 준혁이 눈썹을 꿈틀하고는 수결을 맺어 자신의 이마와 심장, 그리고 단(丹)이 위치한 단전을 짚었다.

    그러자 공간대에서 금빛 실과 월광지력에 꽁꽁 싸여있던 현무 일족 꼬마의 원영이 모습을 드러내다, 준혁의 입속으로 흡수돼 사라졌다.

    콰앙!!

    현무 일족 꼬마의 원영이 흡수돼 사라진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거력이 주변에 몰아치더니 진법으로 싸여있던 준혁의 거처를 날려버렸다.

    휘이잉-

    거처가 사라지고, 영기 폭풍이 주변을 휩쓰는 사이.

    준혁의 등 뒤로 목이 뱀처럼 긴 거대한 거북이 환영이 나타났고, 모습을 감춘 줄 알았던 보라색 피부의 사내 환영도 동시에 나타나 서로의 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거북이는 자신의 목을 뱀처럼 움직여 사내의 허리를 조였고, 사내는 이마에 자라나 있던 뿔을 뽑아 거북이의 머리에 쑤셔 박았다.

    그렇게 한 마리의 거북이와 한 사내가 무표정한 감정으로 서로를 죽일 듯 상처입히고 있는 사이, 어느새 백호 환영과 도마뱀 환영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두 환영 사이에 뛰어들어 분탕질 치며 양쪽 모두를 물어뜯었다.

    등 뒤에서 네 환영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듯 가만히 있던 준혁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수결을 맺어 다시 한번 자신의 심장과 단을 짚었고,

    그 순간 몸속으로 사라졌던 원영이 정수리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발끝으로 금빛 실을 퍼트렸다.

    금빛 실은 순식간에 준혁의 전신을 감싸 누에고치처럼 변했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원영은 날카로운 눈으로 양손을 합장했다 넓게 펼쳤고, 어느새 손에 쥐어진 식검 위로 붉은 광검을 소환해 내더니 환영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베어갔다.

    촤아아악-

    가장 먼저 보라색 피부, 마족과 비슷하게 생긴 사내의 환영이 두 쪽으로 갈라진 후 황금 누에고치가 돼버린 준혁에게 빨려 들어갔고, 그다음으론 거북이가 목이 잘리면서 흡수되었다.

    두 환영을 잘라낸 원영이 식검을 회수하자, 백호와 도마뱀은 자신의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스스로 녹아들 듯 누에고치로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네 환영이 완전히 흡수돼 사라진 순간.

    세상을 무너트릴 듯 격렬하게 춤추던 영기 구름이 전부 준혁에게 흡수돼 사라졌고, 어느새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영기 구름이 모두 사라지고, 폭풍이 잠잠해지자 사쿠라와 청명을 선두로 수많은 수사들이 울릉도로 모여들었다.

    “이게 무슨….”

    울릉도와 마선문을 관리하던 청명은 여기저기 반파되고 박살 난 섬 건물들과 바닥 곳곳에 잡초처럼 쓰러져있는 나무와 바위를 보며 넋을 잃었다.

    “정말 대단하긴 하구나. 수행을 올리는 행위만으로 섬이 반파되다니….”

    사람들은 새삼 준혁이 지금껏 인세에 없던 완영기를 넘어 연형기에 도달했음을 실감했다.

    이제 그 누가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있으리.

    파아앙-

    그때 섬 중앙에서 거대한 기파가 터져 나오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각자의 보호법기를 꺼내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성인봉 상공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성인봉 상공엔 거대한 사람 형상이 나타나 있었는데, 그 모습은 준혁과 똑 닮아있었다.

    환영은 마치 ‘나를 우러러보아라.’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섬과 섬 너머의 바다를 천천히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 지었다.

    그 순간 거대한 준혁의 환영 뒤로, 하얀 호랑이와 목이 긴 거북이, 그리고 온몸이 비늘로 덮인 도마뱀 형상이 비치다가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파앗-

    세 환영이 모습을 감추자 거대하게 변해 세상을 내리 살피던 준혁의 환영은 양손에 기이한 기운을 뿜는 뿔을 쥔 채로 그것들을 어루만지다가 만족한 얼굴을 하더니 한순간에 꺼지듯 사라졌다.

    “방금 느끼셨습니까!! 이 정도라니!”

    준혁의 환영이 사라지자, 도율이 호들갑을 떨며 다리를 잘게 흔들었다.

    근처에 있던 도천과 사쿠라, 리암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도율과 같은 마음인지 온몸에 소름이 돋아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었다.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예전엔 최수사가 근접할 수 없는 강자로 인식됐는데…. 이젠 감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예요.”

    사쿠라의 한숨이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옆에서 두 다리를 덜덜 떨고 있던 최나연이 궁금한 건 못 참겠는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언니. 아까 그건 뭐였어요? 원영이 만들어질 때 수사의 환영이 법기 현상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건 들었지만…. 왜 오빠는 이상한 동물 환영까지 나타난 거예요?”

    사쿠라는 최나연에게 시선을 맞춘 후, 고민에 빠진 듯 말을 아끼다가 한참이 지난 후 설명을 시작했다.

    “원영기에 이르려면 영기와 혼백을 하나로 뭉쳐 순수한 영기로 이루어진 원영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알고 있지?”

    “그럼요!”

    “환영이 나타나는 건 원영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 반응이 너무나 강렬해, 외부로 힘이 뻗쳐나가기 때문이야.”

    최나연이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사쿠라가 설명을 이었다.

    “완영기에 원영을 온전한 하나의 개체로 만들어내고 나면 그 원영을 단련하여 강화하는 게 연형기라고 하지. 아마 강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기운을 흡수한 게 외부로 드러난 게 아닐까? 사실 나도 도달해보지 못한 경지라…. 정확한 답변을 해줄 수가 없네….”

    설명을 이어가던 사쿠라가 말끝을 흐리자, 최나연은 자신이 괜한 질문을 했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설명을 보충하듯 산들바람이 끼어들었다.

    “그 말이 맞을걸? 원래 큰두…. 최수사는 백호 혈맥의 힘을 가지고 있었거든, 거북이랑 도마뱀도 잡아먹고 힘을 키웠나 보지. 근데 양손에 들고 있던 거무튀튀한 뿔은 뭐지? 뭔가 익숙하던데….”

    원래 상대방의 힘을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영수족인 산들바람은 준혁에게 일어난 현상이 그렇게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다만 준혁의 환영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있던 두 뿔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 찜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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