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90화 (190/408)

190화. 성장 (3)

월광지력에 직격당한 꼬마는 머리끝부터 빠르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몸 절반이 얼음으로 뒤덮이기 전, 모래성이 무너지듯 스르륵 가루처럼 변하며 사라졌다.

잠시 후, 조금 떨어진 곳의 바닥이 들썩거리며 안색이 창백해진 꼬마가 솟아올랐다.

“이건 무슨 힘이지? 원영에까지 영향을 주는 한기라니.”

꼬마가 여유로운 척 입술을 비죽이자, 준혁은 한눈에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고는 적마도를 사용해 이동했다.

상대는 분명 자신보다 수행이 높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전투력이 높진 않았다.

신체 능력만 보자면 분명 완영기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껏 동급 수사와는 싸워본 적이 없어 보일 정도로 허술했던 것.

“견문을 넓히셔야겠습니다. 월광지력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난 준혁이 가까이에서 기운을 쏘아내자, 꼬마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땅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솟아오르더니 뭔가 불만인 듯 코를 찡그렸다.

그 모습에 준혁은 괴리감을 느껴야만 했다.

상대의 둔술은 수준급이라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둔술을 제외한 다른 술법은 경지가 낮았고, 영기를 다루는 것도 미숙했다. 심지어 몸에 맞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익힌 느낌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원영기에 오른 수사가 축기기 수준의 술법을 사용하는 느낌?

‘나를 기만하려는 건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준혁은 고민하며 상대를 유심히 살폈다.

대치가 이어지길 잠시.

준혁이 곧바로 다가오지 않자, 꼬마는 양손을 합장하고는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꼬마 주위 기운이 요동치더니 황톳빛으로 빛났고, 잠시 후에 거대한 황색 기둥으로 변했다.

준혁은 그것이 일종의 결계를 다루는 술법임을 알아챘다. 지금까지완 달리 꽤 수준 높은 술법.

다만 기둥이 온전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고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걸 보면, 온전하지 않은 술법을 강제로 발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얼 준비하는지는 모르나, 그리 시간이 걸린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지 않겠습니까?”

준혁이 상대를 떠볼 마음에 입을 열었지만, 꼬마는 술식을 완성하는 데 급급한지 아무 대꾸도 하질 않았다.

그 모습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공간대에서 뼈가 앙상한 푸른 날개를 꺼내 영기를 불어넣었다.

‘단숨에 끝내야겠구나.’

상대가 비록 이상하리만큼 술력이 떨어지고, 전투에 무지한 건 맞았지만, 그래도 신체 자체는 완영기 후기 이상.

아무래도 찝찝함을 벗어던질 수 없었던 준혁은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용천무의 법기를 이용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상대가 술식을 완성했는지, 준혁을 향해 보란 듯이 소리치며 손가락질을 했다.

“유일하게 남은 현무진식(玄武鎭式), 받아봐라!”

꼬마의 입에서 현무진식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거대해진 황토색 기둥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준혁을 덮쳐왔다.

“설마….”

넘어지던 기둥은 점차 모습이 변해 갔고, 45도 이상 기울어졌을 땐, 거대한 거북이로 변한 후였다.

거북이는 하얀 털이 달린 기다란 다리와 뱀처럼 긴 목을 한 모습이었는데, 준혁은 단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현무?”

사신 중 하나인 현무와 외관이 똑같은 술법의 환영.

백호, 주작과 달리 아무런 정보도 없던 현무라 준혁은 잠시 놀란 얼굴을 하다가, 반색하며 몸을 움직였다.

거북이 환영은 입을 벌려 황색 모래를 쏘아 보내다가, 준혁이 허공을 가르며 사라져 버리자, 기다란 목을 더욱더 길게 뻗었다.

“숨어봐야 소용없습니다! 현무진안(玄武眞眼)!”

꼬마가 입김을 내 불며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자, 거북이 환영의 머리 위로 수박만 한 눈이 나타났다.

그 순간, 울부짖는 날개의 능력으로 공간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준혁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이게!”

준혁은 어느새 꼬마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던 상태.

푸욱-

준혁의 왼손은 꼬마가 만들어놓은 보호막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듯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고, 나머지 손은 단이 위치한 배꼽 아래를 쑤시고 있었다.

***

정적-

거북이 환영이 소환되며 무너질 듯 위태롭던 대전은 어느새 적막감에 사로잡혔다.

에이나르손이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죽은 것에 이어, 그가 선배라고 부르던 수사 역시 몸이 관통당하며 당해버린 것.

한쪽에서 뽀각- 거리는 소리를 내는 식아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춘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주변이 무거워졌다.

그 순간, 지금껏 한 발 빼고 몸을 사리고 있던 여인이 둔광을 일으키며 대전의 입구로 날아갔다.

에이나르손이 당한 순간 이미 대전을 막고 있던 진법들의 효력이 사라졌기에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할 것은 없었다.

그녀가 움직이자 아차 싶었는지, 나머지 수사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준혁은 그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강도질을 하려 모의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일이 벌어지기 전. 준혁은 초팔을 소환해간 에이나르손만 손봐줄 생각이었다.

다만 이젠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무상번이나 화목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나 준혁이 이곳에서 에이나르손을 죽였다는 사실 따위가 퍼져나가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법기를 먹는 법기.

식아라는 존재는 분명 그런 식으로 소문이 퍼질 것이 분명했기에, 귀찮은 일이 생기도록 방치할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거기다 이대로 둔다면 준혁이 완영기 수사라는 소문도 퍼지게 되는 것.

그것으로 말미암아 큰 문제가 생길 리는 없었지만, 귀찮아질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건, 초팔만 구해 돌아가면 연형기에 이를 때까지 수련에만 집중하려 했던 준혁에겐 매우 성가신 일이었다.

쇄애액-

준혁의 시선이 결단기 수사들이 빠져나간 대전 입구를 향하자, 눈앞 공간이 갈라지며 분광소가 쏘아져 나갔다.

분광소를 쏘아 보낸 준혁은 왼손에 붙잡고 있던 꼬마의 심장을 강하게 움켜잡으며 입을 열었다.

“수사. 당신은 현무 일족입니까?”

준혁은 가장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상대에게서 흘러나온 대답은 답변이 아닌 의문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완영기 중기인데 공간을…. 게다가 내 몸을 보호하던 현무초벽(玄武礁壁)을 이리 쉽게 무력화시키다니…. 몸만 성했어도….”

꼬마는 어딘가 억울해 보였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당신은 현무 일족입니까?”

준혁이 재차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혼잣말을 이었다.

“역시 선조께서 남기신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인족을 조심하라 그렇게 말씀하셨거늘….”

“수사. 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겠다면 제가 직접 알아낼 테니 그리 알….”

그 순간. 준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 꼬마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그 현상은 영력으로 몸을 팽창시켜 신체를 폭탄으로 사용하는 영수들의 수법.

상대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깨달은 준혁은 단숨에 왼손으로 월광지력을 쏟아부으며 심장을 얼려버렸고, 오른손으론 감싸고 있던 상대의 단(丹)을 깨버리며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원영을 낚아챘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까!”

쩌저정-

준혁의 반응이 빨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술법들과 마찬가지로 꼬마의 술법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상대는 도주에 성공하지 못하고, 몸을 폭발시키지도 못하고는 힘없이 꼬꾸라졌다.

그리고 꼬꾸라지던 동작 그대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전신이 얼다가,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수십 조각으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잠시 후.

“이것 때문이었나?”

쉬이익-

수십 자루로 증식한 분광소가 네 개의 공간대만을 회수해 돌아오는 사이, 준혁은 손에 축 늘어진 거북이 모양의 원영을 관찰하고 있었다.

현무 일족으로 의심되는 꼬마를 상대하면서 가지고 있던 의문들.

그 의문이 원영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어느 정도는 사라지고 있었다.

거북이 원영은 현무 환영과 비슷한 생김새였는데, 검은 쇠사슬에 칭칭 감긴 모습이었다.

쇠사슬엔 깨알보다 작은 문양이 새겨져 있어, 술법으로 만들어낸 결계의 일종임을 알 수 있었다.

쇠사슬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대방이 완영기 후기 이상급인 수행과 비교해 너무나 떨어지는 능력을 발휘하던 것과 연관이 없진 않을 터였다.

“연구를 해봐야겠군.”

한참 동안 원영을 살피던 준혁은 마족의 원영을 봉인했던 것처럼 혈단법의 금빛 실로 원영을 감싸고는 월광지력으로 재차 봉인했다.

그리고는 에이나르손의 공간대마저 회수해 나머지 것들과 함께 자신의 공간대에 집어넣었다.

“욕심이 불러온 화이니 나를 탓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어? 끝났어?”

영수대에서 빠져나온 산들바람의 첫마디.

그녀는 준혁이 질 거라고는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았는지 영수대에서 나오자마자 캇닢을 꺼내 우물거리며 말했다.

“근데 음, 냠. 큰둥아 정말 완영기야?”

처음엔 꽤 놀란 것 같더니, 이젠 그러려니 하는 반응.

산들바람을 지나쳐 식아 근처로 이동한 준혁은 시선은 식아에게서 떼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래. 너도 느끼고 있지 않았어?”

말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종속의 인으로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마 바람꽃은 그걸 알아차렸기에 종속의 인을 맺은 후 준혁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였을 터.

산들바람 역시 다르진 않았는지, 준혁의 질문에 고갤 끄덕였다.

“언니랑 나랑은 다르게 무언가 우월하다는 느낌은 받았었는데…. 그게 그래서였구나.”

우월이란 단어에 피식 웃던 준혁은 순간 두 눈이 확장되었다.

순간적으로 오감이 확대되며 초감각이 나타난 것.

대전 안에 흐르던 피 냄새와 산들바람의 향기, 거기다 진법의 흔적이 남긴 영기 파동, 깨진 바닥으로 모습을 드러낸 벌레들.

심지어는 대전 안과 바깥의 미묘한 영기 흐름의 차이까지 느껴져 순간 당황하게 되었다.

‘설마…. 이게 초팔의 능력?’

준혁이 의문을 가지며 귀원패와 옥패로 만든 보호막을 제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식검으로 변한 식아가 몸을 파고들며 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변했다!’

초팔의 능력이라는 8가지 초감각이 몸에 생겨난 것뿐 아니라, 식검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잘린 검처럼 뭉툭한 중식도처럼 생긴 거무튀튀한 식검.

그런 식검의 검신이 3㎝가량 길어져 있었다.

또한 식검 자체가 풍기는 기운 역시 예전보다 무거워져 있었는데, 눈을 감고 그것을 파악한 준혁은 식검뿐만 아니라 다른 마선들의 기운 역시 덩달아 강해져 있음을 느꼈다.

정확히는, 힘의 총량이 늘어났다기보다는 원래 사용했어야 할 힘을 되찾은 느낌.

‘겨우 하나를 흡수했을 뿐인데….’

새삼 식검이 대단한 법기임을 깨달은 준혁은 앞으로의 일을 예상하며 조용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준혁이 명상을 시작했다는 걸 눈치챈 산들바람 역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더니, 자리를 깔고 앉아 본격적으로 캇닢을 꺼내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준혁은 그녀와 함께 하늘을 갈라 울릉도가 위치한 방향으로 사라졌다.

***

울릉도로 돌아온 준혁은 산들바람에게 보란 듯이 청명을 불러 오조화채로 만든 캇닢을 구해오라 명을 내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수련성취에 따라 캇닢을 제공하겠다고 은근한 협박을 건넸다.

“나빠! 언니가 그랬어! 마음을 물건으로 움직이는 건 나쁘다고!”

“싫으면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누가 싫다고 했어?! 씩!”

산들바람은 쿵 소리가 나게 바닥을 발로 차고는 콧김을 뿜으며 준혁의 거처로 들어갔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준혁은 청명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날 찾지 말거라.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 전하고.”

“예, 어르신.”

말을 마친 준혁은 거처로 발을 옮겼다.

이제 연형기에 오를 때까지 긴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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