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86화 (186/408)
  • 186화. 초팔(超八) (3)

    백두 비경에서 만난 마선의 말에 의하면, 초팔은 107번째 마선이며, 그 능력은 계약자의 8가지 초감각을 올려준다는 것.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듯, 사회자인 유룡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법기로 말씀드리자면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에이나르손 수사가 의뢰를 맡겨주신 물건으로, 체화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기감이 예민해지고 영기에 민감해진다고 합니다. 다만 딱히 시연을 보여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유룡에 말에 1층 관람석 한곳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이나르손 수사가 다른 이들보다 기감이 뛰어나다는 건 익히 들었소이다! 그렇다고 그 법기가 그 역할을 했다는 걸 어찌 믿는단 말입니까? 만약 설명과 다르다면 어쩔 꺼요?”

    의문 섞인 목소리에 유룡은 가슴을 활짝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곳 경매장의 역사가 200년은 넘었다는 걸 아십니까? 당연히 보증….”

    “내가 보증한다!”

    유룡이 말을 이어가는 사이, 3층 VIP석 한곳에서 눈가가 푹 팬 사내가 단상 앞으로 뛰어내렸다.

    “에이나르손이다!”

    “저자가 원영기에 근접했다는 그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자, 사내는 단추처럼 생긴 법기를 옮겨 받아 번쩍 들었다.

    “급한 사정이 있어 이 물건을 처리하는 것뿐. 만약 내 수행이 지금에 이르는 데 무엇이 가장 주요했는가 묻는다면! 나는 두말없이 이것이라 말할 것이다! 내 명예를 걸고!”

    에이나르손의 말에 관람석이 들썩였다.

    한편, 초팔의 계약자로 의심되는 사내가 경매에 난입해 목소리를 키우는 사이, 준혁은 그의 손바닥 위에 놓인 법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계약자가 살아있는데 다른 이에게 넘긴다고? 사기를 칠 생각이었군.’

    지금껏 확인해 본 적은 없었지만, 다른 마선들 역시 계약자의 부름에 소환되는 형식이라면, 에이나르손이란 자가 하려는 짓이 무엇일지 불 보듯 뻔했다.

    “아무리 급하다 해도, 그런 식으로 영석을 수급하려 하다니.”

    “응? 무슨 말이야?”

    “아니다. 캇닢이나 먹어.”

    준혁은 입을 오물쪼물하는 산들바람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생각을 이어갔다.

    정말 소환을 통해 법기를 회수하는 거라면, 경매로 물건을 얻는다고 해도 돈만 날리는 일.

    하지만 그럼에도 경매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뭘 할지 알고 있다, 그러니 경매 따윈 필요 없고 내가 가져가겠다!’라고 강탈해 갈 수는 없는 노릇.

    잠시 후 에이나르손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경매는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불이 붙기 시작했다.

    지구에 몇 없는 원영기를 제외한다면 최고 수행을 지닌 에이나르손.

    그런 자가 직접 보증했으니, 물건의 가치는 종전보다 월등하게 오른 상황이었다.

    “6900개!”

    “나는 8000개다!”

    “구천!”

    결단기 후기에 오르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화근이 되어 경매가는 일반적인 상급 법기를 넘어 법보나 보패 수준으로 오르고 있었다.

    “만천!”

    경매가가 일만 개를 넘자, 사람들은 눈치를 보더니 대거 입찰을 포기했다.

    하지만 어디에나 갑부는 있는 법.

    “만이천!”

    “만삼천!”

    “흥! 따라와 보시지요! 만칠천!”

    “그 정도도 못 할 줄 알았나?! 이만!”

    이만 개가 넘어가자 세 명을 제외하곤 전부 입을 다물었다.

    그 후로도 가격은 쉬지 않고 올랐고, 3만 개가 넘어서야 한 명이 더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두 명만이 번갈아 가며 가격을 올렸다.

    “삼만육천오백!”

    “삼만육천칠백!”

    “이익! 적당히 하시오! 지불할 능력은 돼서 따라오시는 거요?! 삼만칠천!”

    “겨우 이 정도로 지불할 능력을 논할 정도면 당신이나 포기하시지요? 삼만칠천백!”

    “이자가! 삼만팔천!”

    “삼만 팔천백!”

    한 명이 가격을 천 단위로 올리면 다른 이가 백 단위로 올리면서 야금야금 입찰가를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혁은 더 이상 귀찮게 따라붙을 사람이 없다 판단하고는 조용하게, 하지만 목소리에 영기를 담아 은은하게 입을 열었다.

    “오만.”

    ***

    준혁의 제시가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만이면 보패급 법기를 두 개는 살 수 있는 가격.

    애초에 일반적인 결단기 수사들이 가질 수 있는 양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격을 경쟁하듯 올려대던 두 명 중 한 명이 버럭 소릴 질렀다.

    “지불할 능력은 되시는 겁니까?! 우선 낙찰받고 나중에 생각하자는 마음가짐이라면 지금이라도 취소하시지요! 간혹 그런 실수를 하는 자들이 있으니 봐 드리겠습니다!”

    준혁이 아무 말 없자, 소릴 지른 사내는 유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룡 수사! 후일 다시 경매를 진행하는 일이 없도록 수사가 확인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어떤 물건이든 낙찰이 정해지면 그 물건은 그 자리에서 재경매에 부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누군가 장난 혹은, 고의로 입찰가를 높여 경매를 방해했다 해도, 재경매를 하게 되면 열기가 사그라들어 경매가가 하락할 수 있었고, 그 일로 물품 의뢰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

    아니면 계속된 방해로 경매 진행 자체를 난장판으로 만들 수도 있었기에, 문제가 생긴 경매 물품은 완전히 누락시킨 후, 다음 경매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진행 과정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번 물품은 3년 후에나 다시 경매에 나타나거나, 아니면 다른 지역 경매장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단상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유룡은 할 수 없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수사. 어디에서 오신 분인지는 모르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금을 낼 수 있는지 확인 절차를 거쳐도 되겠습니까?”

    유룡이 고개를 숙이며 시선만 쏘아 보내자, 준혁은 쓰게 웃으며 공간대를 뒤적거렸다.

    사실 준혁은 영석이 없었다.

    수행증진진법을 발동하느라 80년간 울릉도에 비축됐던 영석을 전부 사용해 버린 것.

    그전의 것들은 공천귀가 사라지며 함께 증발해버렸기에 준혁은 영석으로만 치자면 빈털터리였다.

    이곳에 오기 전, 청명이 마선문 운용을 위해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다가 주었던 1만 개가 전부였고, 그중 6천 개는 캇닢을 사는 데 사용해버린 후였다.

    잠시 후, 준혁의 손짓에 따라, 자기병 세 병이 허공을 날아 유룡의 손에 떨어졌다.

    “수사? 이것이 무슨 의미신지?”

    “역시 영석도 없이! 가격을 높인 것이구나!”

    시비를 걸어왔던 수사가 소릴 지르자, 준혁은 가볍게 손을 저어 그자의 입을 막아버린 후 별것 아니란 듯 입을 열었다.

    “읍읍.”

    “화목단이다.”

    “화목단!!”

    여기저기 웅성거림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수도계를 달구고 있는 울릉도.

    그곳에서 선택받은 자들만이 도주로부터 부여받을 수 있다는 영단.

    사쿠라, 도천, 리암 등 울릉도에서 원영기에 오른 자들은 전부 화목단으로 수행을 올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다만 화목단이란 이름은 같아도, 영단의 상태에 따라 수행이 상승하는 진폭도 다르다는 소문이 퍼진 지 오래였기에, 사람들은 다음에 이어질 대화에 귀를 쫑긋거렸다.

    “원영기 수사의 수행을 올려줄 물건이니, 확인해 보도록. 그것을 대금으로 치르도록 하지.”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룡은 어딘가를 향해 손짓했고, 잠시 후 도인처럼 수염을 기른 세 명이 단상으로 올라와 자기병에서 단약을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오오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룡을 포함한 네 명은 상고시대의 보물이라도 본 것처럼 감탄을 내뱉었다.

    “정말 이것을 대, 대금으로 치르신단 말입니까?”

    수도자에게 단약이란 목숨처럼 귀한 것.

    특히 결단기 중기 이상에게 효과 있는 단약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보니, 단약의 상태를 확인한 네 명은 눈이 돌아갔다.

    “자꾸 두말하게 하는군. 그래 얼마를 쳐줄 테지?”

    준혁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유룡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나머지 세 명의 도인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병당 영석 만오천 개를 드리겠습니다!”

    세 병이면 사만오천 개.

    준혁은 유룡의 말에 피식 웃더니 손을 가볍게 저었다.

    그 순간, 사람들 손에 쥐어진 자기병이 뿅 하고 사라지더니 준혁이 있던 VIP석까지 날아가 버렸다.

    “나름 이름있는 곳이라 해서 믿고 방문했거늘, 도둑놈들 천지였군. 되었다. 없던 일로 치지.”

    준혁이 어깃장을 놓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화목단의 재료인 지유목은 유한했고, 성장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느렸다.

    아무리 준혁에게 3품 화목단이 큰 도움이 안 된다고는 하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헐값에 넘길 생각은 없었다.

    단호한 준혁의 목소리에 자기병을 놓친 유룡이 허탈한 표정으로 급하게 말했다.

    “수사! 제가 말한 건 최저 가격입니다! 수사께서 원하는 가격이 있으면 절충을 하려고 한 것이지요! 오해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빠른 태세 전환에 준혁이 콧바람을 불었다.

    “그래? 내가 오해를 했나 보군. 허나 나는 가격흥정을 할 생각이 없다. 다음번엔 신중하게 말하도록.”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사! 병당 2만 개에 사겠습니다! 저에게 파시지요!”

    “저는! 이만오백 개에 사겠습니다!”

    에이나르손의 법기가 수행증진에 도움이 된다 했지만, 정확한 효과는 기감이 발달하는 것.

    확실히 효과가 증명된 물건과는 그 가치가 달랐다.

    다만 이번엔 가난한 수사들도 덤벼들었다.

    “수사! 저는 가진 재산이 없습니다! 하지만 화목단 한 알이면 막힌 수행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생 수사의 은혜를 잊지 않을 테니 저에게 한 알만 팔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 알에 영석 1500개를 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단약을 자기병에 담을 땐 12개를 한 병으로 인정했다.

    그 말인즉 대충 병당 가격을 2만 개 정도로 보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제야 ‘한 알씩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다른 수사들을 일깨웠는지,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수사 저는 한 알당 1600개를 지급하겠소이다!”

    “저는 1610개를!”

    “전 1630개를 드리오리다!”

    결국 시간이 지나자, 화목단 한 알의 가치가 영석 2천 개에 근접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말은 자기병 하나에 영석 2만 4천 개라는 뜻.

    수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던 준혁이 유룡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경매를 주관하는 측은 얼마를 부를 테지? 딱 한 번뿐이니 신중하게 말하게.”

    결단기 후기에 올라 구색초로 만든 단약을 먹는다고 해도 원영기에 오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아니 애초에 결단기 후기까지 오르는 것조차 힘든 것.

    그런 상황에서 원영기급이 먹는 단약, 그것도 단 한 번도 시장에 풀린 적이 없는 물건이 경매장에 등장한 사건.

    만약 경매를 주관하는 자들이 화목단을 복용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경매를 열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면, 그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했다.

    준혁은 그것까지 계산하고 화목단을 거래할 생각이었다.

    “어서 말해보게. 생각이 없다면 다른 경매장을 찾아가 볼 테니.”

    사형선고 같은 준혁의 말에 유룡은 결국 입을 열었다.

    “저흰. 병당 영석…. 사….”

    유룡은 준혁이 자리한 VIP석을 눈치껏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사…. 사만오천에 매입하겠습니다!”

    가격을 들은 준혁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자기병 세 개를 날려 보냈다.

    ‘이름값을 많이 얹어 주었군.’

    동시에 인계 절차 없이 초팔을 끌어와 버렸다.

    “그럼 이건 내 것이겠지? 나머지 대금은 우선 가지고 있게. 다음 경매에도 참여해야 할 테니.”

    원래는 마선 법기만 낙찰받으면 떠나려고 했던 준혁.

    지갑이 넉넉해지자, 의자에 엉덩이를 깊숙이 묻었다.

    옆에선 산들바람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 캇닢 몇 개만 더 사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