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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85화 (185/408)
  • 185화. 초팔(超八) (2)

    경매품으로 나오는 물건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청명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마선일 확률은 매우 높은 상황.

    청명을 통해 경매일과 장소에 대해 들은 준혁은 결국 산들바람에게 외출 허락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번엔 산들바람이 그것을 거부했다.

    “싫어. 나 같이 갈래.”

    “경매에?”

    “응.”

    산들바람의 요구에 잠시 고민해본 준혁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그럼 경매가 한 달 후라니까, 그동안은 다시 수련에 집중하자.”

    “...으응.”

    한 달 후.

    누구라고 말할 순 없지만, 다른 이들이 따라붙을 걸 염려한 준혁은 산들바람만을 데리고 조용히 울릉도를 빠져나와 비행 법기를 발동했다.

    그리고는 산들바람을 태운 후 북동쪽, 모스크바가 위치한 곳을 향해 하늘을 가르며 사라졌다.

    ***

    단숨에 모스크바까지 날아온 준혁은 비행법기를 회수하고는 경매가 열리는 숄코보라는 지역을 향해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략 2킬로 정도 되는 호수를 발견할 수 있었고, 호수 끝에 지어진 허름한 집으로 다가갔다.

    허름한 집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으스스했는데, 정말 이곳에서 경매가 열리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인족들은 이상해, 왜 이런 곳에서 모이는 거야?”

    준혁도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딱히 대답해줄 말은 없었다. 넓고 쾌적한 장소가 많았고, 경매 자체가 불법이 아니었으니 굳이 이런 곳에 자리를 잡을 이유가 없었던 것.

    다만 준혁은 집 주변, 일정 거리 안에 아무런 건물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걸 보고는 무언가 예측이 갔지만, 굳이 산들바람에게 말해주진 않았다.

    잠시 후 집 앞에 도착하자, 축기기 수행을 지닌 수사가 준혁의 수행을 검사하고는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결단기 선배님이시군요. 환영합니다. 안에선 신분을 감출 수 있는 가면을 제공하니 원한다면 구매하시면 됩니다.”

    입구를 지나치자 겉과 다른 깔끔한 내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준혁은 아무 무늬도 없는 가면 두 개를 구입해 산들바람과 각각 착용하고 안내인을 따라 복도를 지나갔다.

    ‘공간 진법이 여기에도.’

    허름하고 작은 외부와 달리 내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는데, 한참을 걷고 3층으로 올라와서야 경매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준혁이 도착한 곳은 경매장의 가장 상층, 특별석이 마련된 곳으로 아마도 수행이 높은 자들을 위해 마련된 상석 같아 보였다.

    기감을 퍼트려 확인해 보자, 아니나 다를까 3층에 자리 잡은 이들은 전부 결단기 수행을 하고 있었다.

    준혁은 가볍게 바닥을 발로 두드리며 방음진을 형성한 후, 자리에 앉았고, 산들바람도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준혁 옆에 앉았다.

    오랜만에 외출하게 된, 아니 비경을 벗어난 후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하게 된 산들바람은 쉴 새 없이 조잘거렸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경매장 내부가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둑해진 경매장 한쪽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며 단상에 노랑머리에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결단기 중기 수행이었는데, 러시아 사람일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동양인이었다.

    짝짝-

    두 번의 박수 소리가 크게 울리며 경매장 내 사람들을 자극하자, 노인이 목청을 돋우며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는 이번 경매 진행을 맡게 된 중국의 유룡이라 합니다.”

    노인의 자기소개에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준혁은 그들이 하는 말을 전부 귀담아듣고는 단상 위 노인을 유심히 살폈다.

    ‘저자가 구속 법기 제작으로 유명한 그였구나.’

    세계 제일의 연기사라 하면 일본의 야마기를 손꼽았지만, 몇몇 특정 물건에 한에서는 유룡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기다리기 지루하셨을 테니, 잡설은 줄이고 바로 첫 경매 물품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짝짝-

    다시 한번 두 번의 박수 소리가 울리자, 단상 한쪽의 문을 통해, 아름다운 미녀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은 각각 1m 남짓 돼 보이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쟁반 위에는 법기로 보이는 물건 하나와 옥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옥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유룡은 그중 옥빛의 옥간을 집어 들며 소개했다.

    “첫 경매품부터 여러분의 지갑을 탈탈 털어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 첫 경매품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평생 지켜준다는 전설적인 미용 공법! 바로 소소신공(昭笑神功)입니다. 시작가는 영석 천 개부터이고, 취소는 불가하니 신중히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유룡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1500개!”

    “1600!”

    “1700!”

    유룡이 소소신공을 미용 공법이라 소개하긴 했지만, 실제론 달랐다.

    소소신공은 웃음 속에 거역할 수 없는 미혼술을 섞는 공법으로, 외모가 늙지 않는 것은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남자들이 가장 꺼리는 음공 중 하나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사용하면 그 효과가 배가돼, 스님도 바지를 벗고 달려들 정도라 했다.

    더 대단한 건 웃음에 섞인 미혼술에 당하고 난 뒤에도 자신이 술법에 당했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한다는 것.

    준혁은 자신이 들은 정보가 사실일까 생각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가격을 지켜보기만 했다.

    “4300!”

    “4500개!”

    “4600!”

    평범한 상급 법기가 영석 3,000개를 넘지 않았으니, 소소신공의 낙찰 경쟁은 이미 과열되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구경하던 산들바람이 준혁을 불렀다.

    “나 저거 가지고 싶어.”

    산들바람의 요구에 그녀의 눈을 차분히 바라보던 준혁은, 눈에 비친 감정이 장난을 치고 싶은 아이 같다는 생각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안 돼.”

    “왜?!”

    “저걸 익힌다고 아무에게나 미혼술을 걸 순 없어. 너보다 수행이 높은 사람에겐 무용지물이야.”

    준혁의 설명에 산들바람은 ‘쳇’하고 입술을 삐죽였다.

    “6300개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셋 셀 동안 없으시면 이번 물품은 6300개에 낙찰됩니다! 셋! 둘! 하나! 축하합니다. 소소신공은 6300개를 부른 수사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1, 2층을 가득 메운 수사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짐과 동시에 물건을 들고 왔던 여인이 다시 물건을 챙겨 단상에서 내려갔다.

    그러자 유룡은 다른 쟁반에 놓여 있던 법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두 번째 물품은 열두 가지 영수의 뿔과 발톱을 이용해 만든 십이각수(十二角手)입니다. 본 물품은 아는 분들이 얼마 없을 테니 시연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유룡이 손안에 든 법기에 영력을 주입하고는 허공으로 던졌다.

    스르륵-

    일반적으로 영력이 주입된 법기는 크기가 커지기 마련인데, 십이각수라 불린 법기는 반대로 조그맣게 뭉쳐 들어갔다.

    그러다 한순간, 피잉- 소리를 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나타나며 크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법이구나.’

    준혁은 법기 시연을 내려다보다,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사라졌다 나타난 것처럼 보인 법기는 사실 극도로 응축했다가, 순식간에 12개의 조각으로 변해 사방을 휩쓸다 다시 뭉친 것.

    만약 제대로 된 공격이었다면 자신이 공격당하는지도 모른 채 온몸에 12개의 구멍이 뚫려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런 법기의 효용을 알아본 게 준혁만이 아닌지,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졌다.

    “십이각수의 시작가는 영석 1500개입니다. 그럼 시….”

    “영석 오천 개!”

    시작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 5000이라는 가격이 제시되자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경매가를 부른 이의 의도는 명백한 것.

    ‘나는 이것을 가질 테니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보물에 눈 돌아간 자는 그자뿐이 아니었다.

    “6000개!”

    “6500!”

    “6700!”

    낙찰 경쟁이 기름을 부은 듯 불타오르자, 그걸 구경하던 산들바람이 준혁을 돌아봤다.

    “왜 참여 안 해? 별로야?”

    지금까지 준혁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감탄을 내뱉길래 당연히 경매에 참여할 줄 알았던 것.

    준혁은 산들바람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올라가는 경매가가 웃기다는 듯 살짝 미소 지었다.

    “놀란 건 사실이나, 그거뿐이야. 아마 속도에 중점을 두었기에 실제 공격력은 형편없을 터. 상대가 미리 방어 법기라도 꺼낸 후라면 무용지물이지. 저 정도의 가치는 없어.”

    준혁의 예상은 놀랍게도 적중했다.

    십이각수는 엄청난 속도를 지녀 일반적인 수사들은 눈으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초급 방어 법기도 뚫지 못하는 관통력을 가진 반쪽짜리 무구였던 것.

    주최 측에선 그런 것을 감쪽같이 속이고 경매품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준혁의 입장.

    강체공을 익히고, 귀원패의 효능을 몸에 지닌 준혁과 달리, 일반적인 수사들은 상시 방어 법기를 발동하지 않았다.

    그러니 시기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비장의 한 수가 되기엔 충분한 가치의 물건이었다.

    그 후로 화염을 쏘아 보내는 부채, 수사의 힘을 수 배 올려주는 장갑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경매에 올랐지만, 준혁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조용히 관람만 지속했다.

    그렇게 경매를 구경하는 사이 물품은 계속 갱신되었고,

    “나 저거!!”

    9번째 경매품이 나왔을 때 산들바람이 발을 동동 굴리며 준혁을 졸랐다.

    9번째 경매품은 캇닢이라는 영수 전용 간식이었는데, 보통 영수와의 친밀도를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다만 상급 경매장에 경매품으로 나온 만큼 평범한 간식은 아니었다.

    “이것의 진가를 알아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예! 맞습니다! 바로 이 캇닢은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오조화채(五條花菜)를 이용해 만든 물건! 영수와의 친밀도뿐 아니라 영수의 수행까지 올려주는!! 영수에겐 그 어떤 단약보다 귀하다는 보물! 바로 보물 그 자체입니다!”

    오조화채로 만든 캇닢을 바라보는 산들바람의 눈은, ‘사주지 않으면 삐뚤어질 거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룡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캇닢의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2400개!”

    “2800!”

    “삼처어언!!”

    경매장을 방문한 영수문 출신들이 한둘이 아닌 듯 보였다.

    ***

    캇닢 경매 후에도 여러 물건이 나왔지만, 준혁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언젠가부터 경매 따윈 관심도 없다는 듯 등을 돌린 채 캇닢 조각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산들바람이 오히려 더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나?’

    한 조각만 맛을 봐볼까 하던 준혁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무리 호기심이 일어도 ‘영수 전용’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던 것.

    그때 캇닢에 관한 관심을 날려버릴 만한 말이 단상 위 노인에게서 흘러나왔다.

    “자! 이제 딱 세 가지 물건이 남았습니다. 어쩌면 여기 모이신 분들 중에는 이것들만을 기다리신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그럼 시간 끌지 않고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최상품 중 하나! 바로 이것입니다!”

    어느새 유룡의 손엔 주먹만 한 크기의 법기가 놓여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망사로 만든 단추를 크게 키워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기감으로 그것을 빠르게 살핀 결과, 준혁은 오랜만에 식검이 요동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있거라.’

    다만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식검의 반응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

    지금까지 마선을 보고 반응을 보인 것이 식욕이었다면, 이번엔 강렬한 욕망을 내비치고 있었다.

    저것을 절대적으로 가져야겠다는, 가지고 말겠다는 것처럼, 준혁을 향해 구애하듯 진동하고 있었다.

    단(丹) 속에서 식검을 잡고 있던 원영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을 정도니 더 이상 말해 무얼 할까.

    준혁은 유룡 손바닥 위에 놓인 법기를 살피고는 공천귀가 전해준 정보 속 이름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초팔(超八)! 식검의 바로 위, 107번째 마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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