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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82화 (182/408)

182화. 제이콥, 올리비아 (1)

-올리비아, 우선 저 말이 진짠지 확인을 해봐야겠어. 따로 움직이자.

준혁의 시선에 제이콥은 법기의 능력으로 완벽하게 가려져 있던 몸을 혼자서 드러냈다.

동시에 양손을 펼쳤다가 접기를 빠르게 반복하더니, 기이한 주문을 읊었다.

제이콥의 행동을 보며 영기의 흐름을 읽고는 무얼 하는지 파악한 준혁은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이미 대방음진으로 주위를 막아놓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절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흥! 아주 여유가 넘치는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나 보자!”

제이콥이 주문을 끝내자 금지를 빙 둘러 쇠막대 같은 것이 솟아오르더니 반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대방음진과 비슷한 계열로 밖으로 기(氣)와 충격파가 새어 나가지 않게 막는 술법의 일종.

준혁이 주위를 차단했다는 걸 믿지 못하고 외부 인물들의 참여를 막는 것과 동시에 준혁의 도망을 사전 차단한 것.

그때 준혁의 등 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말발굽처럼 생긴 쇠고랑 네 개가 나타나더니 준혁의 손과 발을 향해 쇄도했다.

준혁은 확인해야 할 게 있기에 상대방이 본 실력을 발휘하길 기다리는 중이었으나, 그렇다고 구속당해줄 생각은 없었기에 곧바로 자리를 이탈했다.

파앗-

쇠고랑이 준혁이 서 있던 자리를 스친 순간, 준혁은 이미 멀찌감치 떨어진 후였고, 어느새 적마도를 소환해 등 뒤에 띄운 채 여유롭다는 듯 말했다.

“정말 제 말을 안 믿으신 겁니까? 한 분이 모습을 드러낸 사이, 다른 분이 몰래 공격하면 모를 거라 생각했습니까? 이거 참….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군요.”

차가운 얼굴로 준혁이 손을 저었다.

그 순간 손끝 바로 앞 공간이 갈라지며 단검이 튀어나왔고, 단검은 수십 자루로 늘어나더니 제이콥과 조금 떨어진,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쏘아져 나갔다.

슈아악-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노란 방어막이 생겨나며 단검들을 튕겨냈고, 동시에 올리비아가 모습을 드러내며 미친개처럼 입술을 뒤집었다.

“제이콥! 시간을 끌면 안 돼! 정말 우리를 간파하고 있던 거였어!”

뒷말이 이어지지 않아도 그다음 대사는 충분히 예상이 갈 만한 것.

전음을 엿들을 정도라면 소문보다 더 강자일지도 몰랐기에 올리비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 제이콥은 준혁을 향해 양손을 지휘하듯 흔들었다.

제이콥의 손짓에 허공에 사이드(Scythe)라고 불리는 대낫이 나타나더니 혼자서 휑휑 돌기 시작했다.

“오호, 풍겸(風鎌)입니까? 보기 드문 법기로군요.”

제이콥이 꺼내든 대낫에서 강력한 바람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며 준혁을 강타했다.

하지만 백호 혈맥으로 풍둔술의 묘리를 깨우친 준혁에겐 산들바람과 마찬가지.

준혁은 대낫에서 시작해 폭풍처럼 다가오는 회오리바람을 가볍게 통과하더니 적당히 강약을 조절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쉬이익-

준혁이 자신의 장기인 회오리 공격을 너무 쉽게 통과해버리자, 제이콥은 화들짝 놀라며 카이트쉴드를 꺼내 전면으로 내던지며 양손을 합장했다.

쿠아앙-

그 순간, 카이트쉴드가 열 배가량 커지며 전면을 통째로 막아버렸고, 준혁의 주먹과 부딪쳤다.

쩌저정-

주먹과 부딪친 카이트쉴드의 보호막 위로 서리와 함께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방어 법기에 영력이 끊기자, 제이콥은 급하게 올리비아가 서 있던 곳으로 피신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준혁이 법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부딪쳐온 게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것.

그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었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경멸과 무시였다.

“올리비아!”

올리비아 역시 준혁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주먹과 방패의 충격파가 퍼져나가는 사이, 허공에 몸을 띄우며 기이한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준혁은 재차 공격을 감행하려다가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흠….”

‘시작하려는 건가?’

제이엘에게 듣기로, 제이콥 부부가 꺼려진 이유는 특이한 합공 때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합공을 시작하면 한 명은 수행이 떨어지고, 나머지 한 명의 수행은 급상승하는데, 그 위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원영기 후기인 자신도 그 둘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준혁에게 위험인물들이라고 재차 설명하며 섬에 받아주지 말라고 했지만, 준혁은 오히려 그녀의 설명 때문에 두 사람을 꼭 받아야겠다고 여겼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내가 아는 공법과 너무 비슷해.’

강원도에 입산하기 전 만났던 남녀 수사.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식인을 통해 수행을 올리는 공법.

바로 식혈만복의 공능과 너무나 유사했다.

잠시 후, 준혁이 두 사람의 행태를 지켜보며 생각에 빠진 동안, 제이콥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목을 좌우로 꺾으며 한 걸음씩 성큼성큼 움직였다.

“보아하니깐 우리가 뭘 할지 궁금했던 거 같은데?”

두 사람이 도둑질을 하러 왔다고는 하나, 바보는 아니었다.

준혁이 공격을 멈추고 마치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라’ 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건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너 같은 놈들을 많이 봐왔지.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들. 그래서 우리가 뭘 하든 상관없으니 재롱을 피워보란 듯 지켜보는 놈들 말이야.”

한 걸음 내딛는 사이 제이콥의 수행은 급격하게 올라 원영기 중기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런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큭.”

준혁이 말없이 제이콥의 변화를 살피는 사이, 제이콥은 중기를 뚫고 후기에 가까운 영력을 풍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실제 수행이 원영기 후기에 올랐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준혁이 인지경을 이용해 끊임없이 영기를 주입받아 상위 수행급의 능력을 갖추는 것과 비슷한 것.

제이콥이 걸음을 멈춘 후 실실거리기만 하고 말을 멈추자, 준혁은 상대방이 의도하는 대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이콥은 기다렸다는 듯, 양 입가가 찢어져라 웃으며 대답했다.

“다 우리 먹이가 됐지. 크큭. 안 그래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두 눈이 충혈되고 온몸이 바짝 말라 있었다. 마치 영기를 전부 흡수당한 미라처럼.

“그래. 한 놈도 빠짐없이 전부 먹어 치웠지. 우릴 무시하는 연놈들을 전부 다.”

풀썩-

제이콥의 말에 대답해주던 올리비아는 제이콥에게 모든 걸 빼앗겨 버린 것처럼 힘없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 모습에 준혁의 눈빛이 반짝였다.

“당신들이 익힌 공법, 혹 식혈만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준혁은 확신을 가지고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엔 의문만이 가득했다.

“식혈…. 뭐? 무슨 소리지? 비슷한 공법이라도 알고 있나 보지? 크큭.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리가 익힌 건 네놈 따위가 상상할 수준의 것이 아닌….”

파앗-

말을 하던 제이콥의 몸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직후, 준혁의 뒤에서 ‘데~’라는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시뻘건 무언가가 양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쇄애액-

준혁에게 파고드는 건 제이콥의 양손. 피부가 붉게 변해있었고 영기가 유형화되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는데, 그 모습은 마치 달궈진 인두처럼 보였다.

“죽어라!”

탁-

하지만 준혁의 등을 단번에 쑤셔버릴 것 같던, 달궈진 인두처럼 보이던 제이콥의 양손은 무언가에 단단히 붙잡혀 멈춰지고 말았다.

제이콥은 찰나의 순간 준혁의 눈과 자신의 양손을 번갈아 보고는, 자신의 공격이 준혁의 양손에 붙잡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마치 얼음 호수처럼 차분하고 고요한 준혁의 눈에서 아무런 감흥이 없음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딸꾹-

수백 년을 수도자로 살며 언제 딸꾹질을 해보았겠는가?

제이콥은 ‘지금 내가 겪는 일이 꿈인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당황한 상태였다.

원영기 후기 수행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의 공격을, 그것도 공법을 극상으로 운용하고 최고의 절기를 펼친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손으로 막아내다니.

게다가 잡힌 팔을 뿌리치고 벗어나려 해도 영력이 움직이질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

“마마마, 말도 안 돼!”

피가 들끓어 올라 용암 온도와 비슷한 자신의 양손이 차갑게 식으며 얼어붙어 가고 있는 것.

아니, 이미 팔뚝까지 얼어붙었고, 어깨를 넘어 상체에 천천히 서리가 끼는 중이었다.

제이콥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존대를 하고 말았다.

“다, 당신은 저, 정녕 원영기가 맞으십니까?”

준혁은 친절한 사람이었기에, 제이콥의 질문에 답변해주었다.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당신들이 약속을 어기고 금지에 들어왔다는 게 중요하지. 아! 저를 공격한 것도 말입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도 원해서 이런 것은 아닙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단 말입니다.”

간절한 제이콥의 말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지요.”

잠시 후, 준혁의 발끝에서 금빛 실이 뿜어져 나오더니 얼어가던 제이콥의 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제이콥이 금빛 실에 묶이자 준혁은 수결을 맺으며 그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그게 무엇인지 파악한 제이콥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수사!! 잘못했습니다!! 무엇이든 대답할 테니 제발!!”

하지만 그의 사정에도 준혁은 손을 멈추지 않았고, 준혁의 손가락 끝이 이마를 콕 찍은 순간, 제이콥의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버렸다.

제이콥을 무력화시킨 준혁은 곧장 그의 머릿속을 확인하지 않고, 쓰러져 있던 올리비아에게 다가갔다.

제이콥이 당한 걸 느꼈는지 그녀는 두 눈이 충혈된 상태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이성을 잃은 개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준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왔다.

이미 이들이 익힌 공법을 식혈만복으로 의심하고 있던 준혁은 남자가 제압당하고 나면 여인이 돌변할 걸 알았기에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손을 저어 그녀를 제압했다.

털썩-

올리비아를 제압한 준혁은 그녀도 금빛 실로 감싼 후 제이콥 곁으로 옮겼다.

그런 후에 제이콥과 올리비아의 머릿속을 번갈아 가며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전에 공간대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당연하게도 준혁이 가장 먼저 확인한 건 그들이 익힌 공법.

그들이 축기기에 들며 우연히 익힌 공법은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름이 없음에도 준혁은 그것이 식혈만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의 공간대에서 공법서를 얻은 후엔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식혈만복이 식인을 통해 수행을 올리고, 그걸 이용해 혈피갑이라는 능력을 사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제이콥에게서 얻은 공법서에는 식인을 통해 올린 수행을 폭발시켜 효율을 올리는 방법과 그것을 다스리는 고급 과정, 그리고 혈피갑의 여러 용도가 적혀있었다.

즉, 식혈만복이 식인 공법의 기본서라면, 이들에게 얻은 공법은 심화편인 것.

“아…. 부작용이 심하구나.”

공법서의 내용을 파악한 후, 두 사람의 머릿속을 확인한 준혁은 제이콥의 변명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실제 그들에겐 사정이 존재했다.

식혈만복의 심화편을 이용해 수행을 올리면, 수행이 올라간 만큼 더 많은 식인을 해야 했던 것.

연기기에 한두 명을 먹어 치워 수행을 올릴 수 있다면, 축기기에는 서너 명을, 결단기에는 수십 명을 먹어야 했고, 원영기엔 그 단위가 백을 넘어갔다.

만약 수행이 올라가는 것과 비례해 식인의 양을 늘리지 않는다면. 수행이 증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몸이 괴사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게다가 아무나 무작위로 먹어 치워서도 안 되고, 수행에 걸맞은 양의 영기를 보유한 자만 먹어야 했다.

엄청난 수행증가 속도와 타인에게 영기를 양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심했던 것.

그들은 계속해서 늘어가는 식인의 양에 부담을 느끼던 차에 준혁이 펼친 수행증진 효과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걸 이용한다면 제물을 직접 키울 수 있으니,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어찌 인간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그들이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부작용이 있음을 알고 시작했으니, 뿌린 대로 거둔 것뿐이었다.

“아무리 친자식이 아니라지만…. 어찌 사람이….”

게다가 두 사람은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대거 모은 후, 단약으로 빠르게 성장시킨 다음, 자신들의 식사 거리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하아…. 단순히 징치하는 것으론 피해자들에게 미안해지겠구나….”

두 사람의 머릿속을 탈탈 털어내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엿본 준혁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입 안이 썼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일본 쪽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래. 그냥 죽이는 건 사치지. 평생 고통받으며 죗값을 치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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