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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81화 (181/408)
  • 181화. 수련 시작 (3)

    울릉도 봉쇄 하루 전.

    섬 북쪽에 위치한 나리분지.

    마선문 본청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대략 10여 미터가 넘는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제단 위엔 작은 단상, 단상 위엔 절구통처럼 생긴 법기가 놓여 있었다.

    단상 위에 놓인 법기는 나한 각주가 생전에 쓰던 물건으로, 나설헌이 보관하고 있던, 연단에 관련해선 유명한 보물이었다.

    급하게 준비한 추모식치고는 제단 주위로 화려한 간이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수많은 인파가 분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청명이 고생 좀 했겠군.”

    준혁은 장례식과 추모식을 겸한 행사 준비를 지켜보며 분지 곳곳에 자리한 인물들을 천천히 살피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과 함께 아름다운 여인이 준혁 옆에 내려앉았다.

    “최 수사, 그들은 정말 소문이 좋지 않아요.”

    캐나다 부부 수사를 섬에 받아들였다는 소문에 대한 사쿠라의 첫마디였다.

    “그 얘기라면 걱정할 필요 없소.”

    “수하들뿐 아니라 친인척들까지 제물로 사용했다는 소문이 돈 적도 있어요. 이곳에 방문한 것도 그저 수행을 올리기 위해서만은 아닐 거예요.”

    제이엘만큼이나 께름직해 하는 사쿠라를 보며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 동조해주었다.

    “염려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소.”

    살짝 웃음 짓는 준혁의 모습에 사쿠라가 눈초리를 가늘게 떴다.

    “다른 생각이 있으시군요?”

    “그들이 수행을 올린 방법이 소문대로인지 어떤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제이엘 수사에게 들은 내용 중 확인해봐야 할 게 있어서 말이오.”

    “그렇다면 더는 거론하지 않을게요.”

    사쿠라는 준혁에게 계획이 있는 것 같자, 바로 발을 뺐다. 하지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준혁 옆자리에 자리한 것을 기회 삼아 그동안 쌓인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그 법기는 정말 신기했어요. 토둔술을 사용하게 해….”

    하지만 그녀의 수다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잠시 후, 추모식이 시작되자 청명이 제단 위에 올라가 나한 각주의 삶의 여정에 대해 자세히 읊기 시작했고, 그걸 지켜보던 준혁이 가볍게 날아 제단으로 향해 버렸기 때문.

    휘리릭-

    “잠시도 틈을 주지 않네.”

    준혁이 사라지고 사쿠라의 볼멘소리만이 주위를 떠다녔다.

    ***

    준혁이 제단 위에 내려서자 청명은 말없이 제단 아래로 내려갔다. 동시에 분지를 메우고 있던 수사들이 하나같이 소리쳤다.

    “도주를 뵈옵니다!!”

    분지가 흔들릴 정도로 하나 된 목소리가 주변을 강타하자, 준혁은 한 손을 들어 대기를 안정시키며 말문을 열었다.

    “나한 수사가 귀천한 지 오래되었기에, 그가 사용하던 본명 법보로 의식을 대신한다.”

    추모식이 진행되는 와중 준혁이 난입한 것은 귀천식이라 불리는 제(祭)를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귀천식이란 영혼이 먼저 떠나간 수도자의 몸을 하늘로 돌려보냄으로써, 그 사람이 다음 생에도 온전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길 기원하는 의식.

    다만 나한은 죽은 지 오래되어 시신이 없었기에,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법보를 대신 귀천식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자, 준혁은 절구통처럼 생긴 법기를 허공에 띄우고는 영기를 주입했다.

    그 순간, 절구통 법기가 수십 배 커지며 강렬한 영기파동이 주변으로 뿜어져 나왔다.

    “나한 수사, 다음 생이 있을지는 모르나, 가능하다면 다음 생도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바라겠소.”

    부르르-

    준혁의 입에서 안타까움이 깃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묵념하듯 고개를 숙였다.

    연단각 소속원들이 모여 있던 곳에선 훌쩍이는 소리도 났고, 그들 중 선두에 서 있던 나설헌은 준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결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준혁이 발동시킨, 수십 배로 커진 절구통 법기가 상단에서부터 먼지처럼 부서지며 흩어지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완전히 바스러져 영기를 내뿜는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을 때, 가루가 돼버린 법기의 잔해는 바람을 타고 회오리치듯 상공으로 치솟아 올라갔고, 하늘 끝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더니 빛을 번쩍이며 사라져버렸다.

    “그는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다. 내세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한마음으로 그의 안녕을 기원한다면, 그 기원이 그에게 닿을 테지. 청명!”

    “예! 어르신!”

    조용히 덕담을 말하던 준혁이 큰 소리로 부르자, 제단 아래서 대기 중이던 청명이 단번에 준혁 앞으로 날아와 부복했다.

    “앞으로 귀천식은 문주가 주관하여 진행토록 하거라. 수행에 상관없이 그들의 가족, 친우 모두가 납득할 만큼 성대하게 열어, 마선문의 일원으로서 살았음을 후회하지 않도록.”

    “명 받들겠습니다요!”

    “감사드립니다! 도주!”

    준혁의 명에 청명뿐 아니라 수많은 마선문도들이 예를 표했다.

    보통 귀천식은 결단기급 수사들, 어느 정도 고(高) 수행을 지녀 세상에 발자취를 남긴 이들을 위해 진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귀천식을 마선문에 입문한 모든 이들을 위해 열어준다니?

    사람들의 사기가 한껏 고무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귀천식을 하면 몸과 영혼이 다시 하나가 되어 내세에 온전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하니, 싫어할 사람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청명에게 명을 내린 준혁이 자리를 떠나고, 사람들은 제단 인근의 간이 건물에 모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거처로 돌아갔다.

    이후, 자정이 넘어 수행 증진 효과를 가진 진법이 발동되며 섬이 봉쇄되자, 거짓말처럼 분지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았다.

    동시에 곳곳에서 탄식과 환호가 이어졌다.

    준혁이 행방불명 됐었던 50년, 그 기간 동안 주어진 임무를 착실히 이행하며 공적을 쌓은 자들은 좋은 자리를 할당받아 웃음꽃이 피었고,

    반대로 꼼수를 부리며 최대한 자기 이익을 챙기려 몸을 사리던 자들은 문파에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기에, 성인봉에서 떨어진 곳에 배치되었다.

    그렇게 맘에 들든 들지 않든, 모두가 수련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할 때.

    준혁은 지유목을 이용해 화목단 제조에 들어갔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1품 화목단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충고하듯 되뇐 준혁은 공간대에서 연단에 필요한 물품들을 꺼내 단약 제조를 시작했다.

    공간대에서 나온 거대한 솥에 지유목이 토막 나 들어가자, 준혁의 손끝에서 시작된 불길이 솥을 달구었다.

    치이익-

    달구어진 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조종하듯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며 자연스럽게 불의 기운을 흡수하였고, 어느새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연단이 시작되자 그리 넓지 않은 준혁의 거처 안은 열기에 휩싸였다.

    그 모습에 준혁은 무심하게 손을 휘저었고, 온도가 급상승하던 거처는 한겨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어느새 준혁의 거처뿐 아니라, 섬 전체가 쥐 죽은 듯 조용히 침잠해 들어갔고, 움직이는 사람은 영근이 없는 일반인이 유일했다.

    ***

    섬이 봉쇄되고 수련의 축제가 시작된 지도 석 달.

    제이콥이 좀이 쑤신 듯 몸을 뒤척거리자, 옆에서 공법을 운용 중이던 올리비아가 눈을 떴다.

    “왜? 이제 시작하게?”

    올리비아의 질문에 제이콥이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이 진법의 효과가 좋아도 우리 공법만큼은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 생각해둔 건 있고?”

    “말해 뭐 해? 당연히 금지부터 살펴야지.”

    금지라는 단어에 두 사람은 눈을 맞추며 동시에 웃음 지었다.

    두 사람은 울릉도에 자리를 잡을 때부터, 준혁과 조금 떨어진 봉우리 중턱에 거처를 마련했다.

    소문에 의하면 울릉도 도주는 원영기 중에서도 등급 외 강자.

    실력에 자신이 있던 두 사람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놈은 자기가 우릴 찾아낸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럴 테지. 후훗, 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고는 생각도 못 할걸.”

    제이엘이 등장한 후, 최준혁이 퍼트린 영기파동에 모습을 드러냈던 두 사람은 사실 자의에 의해 은신을 푼 것이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최준혁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게 목적.

    마음먹고 진심으로 은신술을 쓴다면,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거라 장담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수행 속도를 올려주는 방법만 빨리 알아내고, 적당한 핑계를 대고 돌아가자.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그자를 죽이는 게 낫지 않아? 만약 이 수행증진 효과가 진법이나 술법이 아니라, 어떤 보물의 능력이고, 그걸 그자가 가지고 있다면 빼앗아야 할 것 아니야.”

    “그러면 죽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되도록 삼가야 해. 그놈 한 놈이면 상관없지만, 제이엘과 리암, 거기다 사쿠라까지…. 우리가 아무리 능력을 상승시켜도 전부 상대하는 건 무리니까.”

    제이콥의 신호에 올리비아가 법기를 꺼내 들자, 두 사람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인식되는지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거처를 빠져나갔다.

    수련 증진 효과를 만끽하기 위해 성인봉 중심으로 빼곡하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밀하게 이동했다.

    잠시 후, 다른 곳과 달리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은 봉우리에 도착한 둘은 공간대에서 진법 해제용 법기를 꺼내, 진법 깃발과 함께 설치했다.

    “잘돼야 할 텐데.”

    “걱정 마, 이 보패가 지금껏 뚫지 못한 결계가 없어. 이번에도. 봐! 내 말 맞지?”

    화악-

    두 사람이 보패라고 부르던 진법 해제용 법기가 발동되자, 준혁이 설치해둔 보호 진법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두 사람 눈앞에 영기를 뿜어대는 기이한 나무숲과 함께 영천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무언가 있다!”

    영천수 한쪽에 또 다른 결계가 무언가를 보호하고 있단 걸 알아차린 제이콥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바로 그곳으로 날아갔다.

    영천수 한쪽에 설치된 결계는 숲을 보호하던 결계보다 한층 더 상급 결계.

    누가 보아도 보물을 보관하고 있음이 분명했기에 제이콥과 올리비아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결계를 제거하기 위해 보패를 다시 한번 발동시켰다.

    우우웅-

    하지만 결계를 온전히 제거하기도 전.

    따끔거리는 기파에 흥분이 차갑게 식은 제이콥과 올리비아는 보패 발동을 멈추고 장내에 나타난 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제가 분명 말씀드렸지요? 금지엔 가까이 가지 말라고. 보호진마저 해제한 걸 보니 그저 우연한 방문은 아니겠습니다.”

    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나타나 조곤조곤한 어조로 말하는 준혁을 보며 올리비아는 제이콥에게 전음을 보냈다.

    -언제 나타난 거지? 기운을 막는 진법도 설치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나야 모르지. 이 안에 우리가 느끼지 못한 표식이 있었나?

    금지를 감싸고 있던 결계를 해제할 때, 기운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걸 막는 진법을 설치했던 두 사람은 의문에 휩싸였다.

    아무리 기감이 발달해도, 법기로 몸과 기운을 완벽하게 감춘 두 사람의 행동을 알아차렸다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우리를 알아본 걸까?

    -절대 불가능해. 진법이 해제되어 있으니 지레짐작하는 것이겠지. 저기 시선을 봐. 저놈은 우릴 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 소형 결계만 주시하고 있잖아.

    아니나 다를까 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이 해제하려고 했던 결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지? 처리해?

    -일을 벌이는 순간 다른 놈들도 들이닥칠걸? 오늘은 그냥 물러가자.

    -그건 안 돼! 이미 누군가 금지를 침범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앞으론 이곳을 철통처럼 지킬 거라고!

    -그렇다고 조용히 처리하기엔 저놈에 대한 소문이 너무….

    하지만 소형 결계를 바라보고 있던 준혁이 시선을 돌리자 두 사람은 의견대립을 멈추고 얼어붙고 말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변 수사들의 수련에 방해될까 봐 이미 대방음진을 펼쳐두었으니까요. 다른 수사들이 끼어들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이콥!! 설마 저자가 우리의 전음을 엿들은 거야?!

    -말도 안 돼! 그건 하위 수사들을 상대할 때나 통하는 거지! 같은 원영기끼리 어떻게!

    “같은 원영기라 하더라도 급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느새 준혁의 시선은 정확히 제이콥의 눈을 향해 있었다.

    준혁의 말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 전음을 엿듣는 것뿐 아니라. 우릴 볼 수 있는 겁니까?”

    준혁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그렇게 대놓고 서 있으시면서 못 볼 거라 생각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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