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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79화 (179/408)
  • 179화. 수련 시작 (1)

    조용하던 울릉도 성인봉에 낯선 기척이 내려섰다.

    기척을 낸 사내는 자신의 존재를 감출 생각이 없는지, 강렬한 영기파동을 퍼트렸고,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성인봉 정상에 마련된 준혁의 거처를 무단 점거하고 있던 세 여인은 영기파동에 소스라치게 놀라 거처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준혁을 보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최 수사!”

    “오빠!”

    “스승님!”

    최나연이 거침없이 달려들어 준혁의 품에 안기자, 사쿠라는 부럽다는 눈빛을 보냈고, 천이화는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어디 보자. 그동안 수련을…. 벌써 금단을 맺었구나! 장하다. 장해.”

    최나연은 어느새 결단기에 발을 내밀고 있었다.

    준혁이 4품, 5품 화목단을 아낌없이 제공했다고는 하나, 동생이 벌써 결단기에 올랐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준혁처럼 혈단법과 식검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단약 및 영기를 흡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최나연의 수행 속도는 단연 손꼽히는 수준.

    물론 반영근을 고칠 때 사용한 구색초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빠른 건 빠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준혁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쿠라 수사. 감사하오.”

    “아니에요. 나연이가 노력했는걸요.”

    “맞아! 눈꽃 비경에서 나온 후에 나 엄청 노력했다고!”

    준혁은 동생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 준 후, 사쿠라에게 다가갔다.

    “수사의 수행이 전혀 늘지 않은 걸 보니…. 그동안 어찌했는지 알만하오. 조만간 내가 도움을 주겠소.”

    “도움이라니요. 나연이는 저에게도 동생 같은 아이라 수련을 조금 도운 것뿐입니다. 실로 제가 한 건 크게 없어요.”

    사쿠라의 겸양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굳이 말로 하지 않고 나중에 행동으로 갚으면 될 일.

    옆에서 있던 천이화도 결단기 초기였는데, 칭찬해 달라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이화 너도 벌써 결단기에 올랐구나. 잘했다.”

    천이화의 수행은 최나연보다 높았었다.

    그렇다고 현재에 와서 최나연과 같은 수행이 되었다고 쉬이볼 게 아니었다.

    천이화의 수행 증가 속도 역시 정상적이지는 않은 것.

    그녀도 화목단을 밥 먹듯이 먹고, 사쿠라에게 개인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준혁은 다시 한번 사쿠라를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시선을 봉우리 밖으로 향했다.

    잠시 후, 수많은 이들이 허겁지겁 솟아오르며, 준혁을 발견하고는 반무릎 자세를 하며 예를 갖췄다.

    “어르신!! 드디어 오셨습니다요!”

    “도주를 뵙습니다!”

    가장 선두의 청명을 비롯해 화영, 나설헌, 비각주, 가심악, 도율 등 나름 울릉도에서 기침 좀 했다는 이들 전부였다.

    “섬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니, 예전보다 마선문도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구나. 다들 고생이 많았다.”

    50년 만에 나타난 준혁의 칭찬에 몇몇은 과분한 칭찬이란 듯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의기양양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준혁은 반무릎 자세로 대기 중인 이들을 한 명씩 살펴보며 떠나기 전과 비교해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늠했다.

    그러다 이상함을 느끼고는 청명을 불렀다.

    “청명. 도천이 보이지 않는군?”

    “무위각주는 일본 비경에서 돌아온 후 무위각 일을 부각주 두 명에게 일임하고는 폐관에 들어갔습니다요.”

    “폐관?”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되었다.”

    도천의 성격을 아는 준혁은 어찌 된 일인지 뻔히 예상이 갔다. 아마 주군에게 구함 당한 일에 자신의 실력에 회의를 느낀 것일 터.

    맡은 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그의 성격에 무위각주로서의 임무를 뒷전으로 할 만큼 충격을 받은 듯하니, 최소한 원영기에 오르기 전까지는 절대 거처 밖으로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사쿠라 수사의 제자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군?”

    남제자와 여제자 중 사유리라는 자가 보이질 않았다. 그녀 역시 도천과 같이 구함을 받았기에 혹시나 폐관에 들어갔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준혁의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사유리 수사 역시 폐관에 들어갔사온데….”

    “문제라도 있느냐?”

    준혁은 청명이 말꼬리를 흐리자 사쿠라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문제라기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폐관에 들어갔습니다요.”

    “함께? 설마 수련 반려가 됐다는 말이더냐?”

    수련 반려는 두 수도자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법을 익힐 경우, 함께 수련하며 수행 속도를 올리는 행위, 그런 행위를 함께하는 자들을 뜻했다.

    사내끼리 혹은 여인끼리 수련 반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녀 한 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고, 많은 이들이 수련 반려를 고를 때 미래를 함께할 이들로 고르는 경향도 있었다.

    즉, 혼인하거나, 혼인할 상대로서.

    “그렇습니다요. 일본 비경에서 돌아온 후…. 유독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에 준혁은 그만하라고 손짓하고는 주제를 돌렸다.

    굳이 남의 연애사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읊게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때, 처음 보는 축기기 초기 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준혁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신 도무위라 하옵니다! 아버지를 따라 도주를 주군으로 모시고자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180㎝ 정도의 훤칠한 키에 다부진 어깨, 눈매는 강인했지만,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남성이라 불릴 만한 미남자의 행동에 준혁이 의문을 가지며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청명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르신, 이 아이가 무위각주와 사유리 수사의 아들이옵니다요. 현재 무위각주의 3대대 부대장을 맡고 있습니다요.”

    자세히 보니 눈매가 도천과 똑같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올해로 스물일곱이옵니다!”

    ‘스물일곱이라고? 허….’

    도무위의 나이를 듣는 순간 준혁은 삼각비경 안에서 보냈던 시간을 실감했다.

    지금껏 술법이나 공법 등 여러 가지 수련을 병행했던 것과 달리, 오직 명혼단 흡수에만 신경을 쓴 채, 그것도 오롯이 혼자만의 세상으로 침잠해들었기에 시간이 흘러간 것을 체감하지 못한 것.

    사실대로 말하자면, 시간이 지나는 것도 잊은 채 수련에만 매달리다, 명혼단 24알을 흡수했을 때, 백호의 의식 조각이 소멸했고, 그로 인해 수련을 멈추고 돌아온 것이었다.

    돌아올 때도, 비경 입구를 지키던 목족 수사들이 모두 떠난 뒤였기에 ‘알아서 갔군.’하는 생각만 했지, 딱히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지도 못했다.

    기감을 열어두었기에, 바깥이 변하는 걸 느꼈다고는 하나, 이제야 그 긴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도천과 사유리 사이에서 애가 생기고…. 그 아이가 벌써….”

    자신이 보낸 50년을 떠올리며 세월의 무상함을 깨달은 준혁은 시선을 돌려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동생을 보고는 또 한 번 탄식했다.

    ‘그러고 보니…. 나연이도….’

    영기와 공법의 영향으로 20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마냥 애처럼 보았는데, 일반인으로 치자면 할머니나 다름없는 나이.

    ‘허허, 수백 수천 년을 살아간다 해서 늙지 않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왜 항상 제자리에 있다 생각했단 말인가?’

    그 순간 준혁은 무언가가 뇌리로 번쩍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말로만 듣던 깨달음의 순간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모두 물러가거라. 생각해야 할 게 있으니.”

    언제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를 순간이었기에, 준혁은 사쿠라와 청명을 비롯한 전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거처로 들어와 진법을 보강하는 것도 생략한 채 자리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

    ‘지금껏 중도를 지키는 것이 바름이라 여겼다. 부동심이 수도자로서 가장 우선되는 자질이라 생각했다. 내가 변하지 않아야 자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바로 설 수 있으니.’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나이를 먹고, 피와 살이 변하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행위까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거늘, 어찌 영원불멸할 것처럼, 마치 나 자신이 바위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단 말인가.’

    ‘아니, 바위, 쇠,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간다. 오로지 단 하나 영기보존의 법칙에 따른 영기만이 세상에 균등하게 불변한 채 존재할 뿐.’

    ‘정말 그럴까? 영기보존의 법칙이 불변할까? 그럼 어찌 수도자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인가?’

    ‘애초에 영기보존의 법칙을 위배하고 생명체로서 가져야 할 영기의 양을 뛰어넘고자 강제로 영기를 축적하는 행위를 거듭하는 것이 수도자이거늘!’

    ‘결국 과도한 영기가 모이면 그것을 원래로 돌려놓기 위해 계면의 압박까지 생겨나…. 아!! 결국 시련과 성장은 서로를 받쳐주고 있었구나!’

    ‘그래! 계면의 압박은 영기보존의 법칙에 따라 극도로 응축된 영기를 흩어버리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만약 세상이 정한 경계를 넘었기에, 세상 밖으로 내보내려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명상에 빠져들던 준혁은 자기도 모르게 호왕족의 연형기 수사가 술법으로 연형기에서 완영기로 수행을 낮추던 걸 떠올렸다.

    시간과 변화라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생각을 거듭하던 준혁은 그녀의 변화를 천천히 상기하다가 무언가 충격에 빠진 것처럼 한마디 뱉고는 멍하니 허공 한 점을 바라보았다.

    “그랬구나! 그녀가 계면을 속이고 수행을 낮춘 건 술법 따위가 아니었어! 스스로를 속여 계면의 시선을 피한 것이었다니!!”

    그 순간, 준혁의 주위로 영기가 뭉치기 시작했다.

    지직-지지직-

    그것들은 연형기 수사가 계면의 압박을 받을 때 뇌전을 쏘아대던 것들처럼 뭉치기 시작했는데, 영기의 질이 소름 돋을 정도로 짙었다.

    평소 수행을 올릴 때 나타나는 영기구름보다 수 배 높은 영기 질을 보유했고, 준혁이 만났던 연형기 수사들을 공격했던 영기 뭉침과도 궤를 달리했다.

    하지만 준혁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멍한 눈을 할 뿐이었다.

    그러자 지지직거리는 영기 뭉침 주위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또 다른 힘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신비한 힘이 간섭하자 영기 뭉침이 뭉텅이씩 사라져 간다는 것.

    마치 한껏 신이 난 손님을 경비원들이 가게 밖으로 조용히 끌고 가는 것처럼, 계면 밖으로 쫓아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준혁의 몸 주위는 영기가 없는 텅 빈 공간처럼 변해버렸다.

    “아!!”

    그 순간, 멍한 눈을 하고 있던 준혁이 탄성을 내지르며 정신을 차리자, 준혁을 감싸고 있던 무영기(無靈氣) 상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평범한 거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생각을 거듭하며 돈오(頓悟)의 과정을 겪던 준혁은 깨달음의 상태에서 깨기 직전 자신과 주변에 일어났던 일들을 느꼈기에, 기쁨과 동시에 허탈함을 느꼈다.

    기쁨은 호왕족의 연형기 수사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계면의 압박을 이겨낼 방법의 실마리를 알아냈기에 느끼는 것이었고,

    허탈함은 이대로 돈오 상태가 계속됐다면 어쩌면 단숨에 완영기 후기에 올라 벽을 깰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완영기 초기에 머물고 있었던 준혁은 스물네 알의 명혼단을 흡수해 혼을 강화하며 의도치 않게 완영기 중기에 오르는 쾌거까지 이루게 되었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혼이 강화되며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백호 의식조각과 밀고 당기는 겨루기가 계속됐고, 그 와중에 의식이 강화되며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

    그로 인해 그동안 화목단을 비롯한 각종 법기의 영기와 기운들이 체화되며 완영기 초기의 벽을 깨고 중기에 오른 것이었다.

    이번에 중기의 벽까지 깨 버렸으면, 영기밀도가 월등히 높은 선계에서조차 볼 수 없는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깨달음의 순간이 찰나처럼 지나갔다고는 하나,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이걸 계기로 삼아, 계면을 속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명혼단으로 운 좋게 올라온 수행까지 다져야 했다.

    준혁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거처 밖으로 나가 전음부를 날려 보냈다.

    잠시 후 청명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요?”

    “청명, 명을 내리겠다.”

    “하명하시옵서소.”

    “예전과 같이 다시 한번 섬을 봉쇄하고 수련 증진 진법을 발동할 것이다. 이번엔 마선문도뿐만 아니라 수련을 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거든 전부 받아들이거라.”

    “전부 말입니까요?”

    “단 마선문도가 아닌 자들은 섬 외곽에만 머물게 해라.”

    청명은 준혁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요.”

    “기한은 삼 일. 그 후 섬을 닫을 테니 비각주에게 일러 모든 곳에 알리도록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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