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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77화 (177/408)

177화. 도주 (1)

공천귀가 만들어낸 흰 빛무리에 휩싸인 준혁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이 가시자 만통방을 발동시켰던 감옥 안으로 의식이 돌아왔음을 느꼈다.

하지만 곧바로 법기 사용을 끝냈다는 티를 내진 않았다.

만통방에서 쫓겨난 준혁은 그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뇌기도 전,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안전을.

‘여왕이 순순히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전 행동을 보자면 절대 그냥 보내줄 리는 없지.’

백호의 의지가 간섭할 땐, 위험이 위험인지도 모른 채 이곳에 왔다고는 하나, 이젠 제정신이 돌아왔으니 안전을 고려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여왕이 감옥까지 직접 따라왔다는 것은 이곳에서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무언가 간섭을 할 거란 뜻.

그리고 그 간섭은 선계로의 통로를 만드는 것을 강제할 어떤 수단이 틀림없었다.

‘그 수단이 평화롭고 안전한 방법일 리는 없지.’

금제를 통해 조종하려 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로 행동에 제약을 가할 것이 분명한 일.

준혁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공천귀의 힘에 밀려나며 귀원패가 전해준 얘기를 떠올렸다.

‘그래, 그걸 이용해보자. 충격이 적진 않겠지.’

잠시 후, 아마르곤이 여왕의 행동을 저지하자, 준혁은 법기 사용을 끝낸 것처럼 눈을 뜨며 은밀하게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척 침묵하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이 후끈해지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 준혁은 여왕에게 말을 걸며 만통방을 그녀에게 건넸다.

“수사께서도 한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준혁의 행동에 그렇지 않아도 만통방이라는 것에 관심이 가 있던 여왕은 냉큼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만통방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이미 왕웅이라는 인족놈이 사용하는 것은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기에 그 안에 위험이 도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모습.

여왕이 인족들의 법기 따위에는, 특히나 원영기 따위가 사용하는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지금껏 왕웅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그녀의 차지가 됐을 물건이었다.

여왕은 조금 전까지 준혁이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감은 채 무언가 집중하는 모습을 했고, 만통방은 그녀 앞에 떠올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통방을 발동하는 사이, 영기들이 뭉치며 이상 반응을 일으키려 했고, 어디선가 꽃잎들이 날리며 영기가 뭉치는 것을 흩어버렸다.

그때 준혁의 노림수가 먹혀들어 갔다.

콰아앙-

여왕 앞에 떠올라 발동되고 있던 만통방이 터지며 거대한 충격파를 퍼트렸고, 동시에 만통방 주위의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며 주위에 있던 모든 걸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만통방에 접속해 있던 그녀는 피인지 녹색 액체인지 모를 무언가를 한 바가지 뱉어내더니, 악독한 눈으로 준혁을 노려보았다.

몸 곳곳이 터져나가 있었는데, 평범한 공격이 아닌, 공간의 찢어짐으로 인해 처참한 모습.

“스퀘타!!”

갑작스러운 사태에 평소 차분하던 아마르곤이 깜짝 놀라며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준혁을 향해 소리쳤다.

“수사!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하지만 여왕이 만통방의 소멸에 충격을 받는 사이 준혁은 이미 땅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져 버린 후였다.

***

토율서를 이용해 땅속 깊숙이 이동한 준혁은 곧장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종속의 인으로 연결된 끈을 통해 아마르곤의 감정이 미약하게 느껴졌지만, 동요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동안 여왕의 태도를 보면, 먼저 손을 쓰지 않고 기다리다간 영영 탈출할 순간을 놓칠 수도 있는 법.

물론 예상과 다르게 그녀와 대화를 통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 작은 가능성을 믿고 목숨을 걸 생각은 없었다.

‘믿고 있었을 텐데, 이럴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 주십시오. 아마르곤 수사.’

준혁은 마음 한편의 울림을 느끼고는, 영력을 움직여 종속의 인으로 인한 공유를 잠시간 끊어버렸다.

그때 땅속을 이동하던 준혁을 향해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찔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줄기?’

그것은 목족의 대지 전반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 중 일부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 것.

준혁은 목족의 괴이한 능력에 혀를 내두르며 재빨리 수결을 맺었다.

그 순간 식검과 분광소가 양손에 나타났고 발끝으로는 수많은 꽃잎이 생겨나 땅속을 유영하듯 흩어지며 사라졌다.

***

“아마르곤! 이런데도 인족 따위를 믿으라는 것이야?!”

목족의 여왕, 스퀘타는 암울한 표정을 하는 자신의 오랜 친구를 나무라고는 벽에 꼬치처럼 꾀어있는 인족들을 쳐다보았다.

준혁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만통방의 소멸로 인해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리 큰 손해를 입은 건 아니었다.

폭발로 인한 외상은 심했지만, 의식손상은 심하지 않았다.

혹시나 준혁이 도움을 주겠다고 만통방에 재접속할 것을 염려한 공천귀가 조치를 해놨고, 그로 인해 스퀘타는 만통방에 완전한 접속이 아닌, 의식이 겨우 닿은 정도에서 멈춰버리고 만 것.

쉽게 말하자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거리다가 폭발의 여파에 충격을 받은 정도였다.

“감히! 인족놈 따위가! 절대 가만두지 않아.”

처음 준혁이 나타났을 땐 그를 다른 인족들과 마찬가지로 적유목에 연결해 봉인지에 길을 만드는 방법을 뽑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다 선계로 가는 방안에 대해 듣고 난 후 계획을 변경했다.

선계로 가기 위해선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할 테니, 정신적인 금제를 가해 약속을 이행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다만 그녀는 선계에 갈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최준혁이라는 인족놈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금제를 가한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선계에 이를 때까지뿐이었고, 그 후엔 자유를 줄 생각.

아니, 자유뿐 아니라 그때부턴 종족의 손님으로 대접해 원하는 바가 있다면 물심양면 적극적으로 도울 의지까지 있었다.

그런데 감히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폭탄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건네?

스퀘타는 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준혁의 흔적을 탐색했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비소가 떠올랐다.

“겨우 대지 아래 숨어든 거였어? 이곳이 우리의 땅이란 걸 망각했나 보군. 멍청한 놈”

“스퀘타, 진정해. 그를 잡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그를 다치게 하는 건 안 돼.”

스퀘타의 쌍심지가 올라갔다.

“정신 차려! 네가 그놈을 걱정하는 건 네 마음이 아니라 종속의 인 때문이야!”

“걱정이 아니야. 그자가 잘못되면 우린 영원히 이곳에 갇혀 살아야 하는데, 그걸 원해?”

“흥! 다 방법이 있지,”

“설마….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 셈이야?”

“그래. 적유목의 수액을 사용해 그놈을 내 꼭두각시로 만들어야겠어.”

말을 마친 스퀘타는 걱정 가득한 아마르곤을 무시한 채 눈을 감고 땅속으로 기운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난처한 표정을 하며 눈을 떴다.

“말도 안 돼…. 땅속에서 사라지더니 거주지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야.”

도망간 준혁의 흔적을 찾아 공격을 시도하던 스퀘타는 그의 흔적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놀라운 건, 사라졌던 준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이 바로 목족의 거주지라는 점.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닌 수십 곳에서 동시에 기운이 느껴졌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던 스퀘타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이를 아득거렸다.

“그래,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다 확인하면 그만이지. 너는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파스스-

결의를 다진 스퀘타의 몸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녀가 준혁을 잡기 위해 사라진 후, 아마르곤만이 고뇌에 찬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땅속 나무줄기의 공격을 피하고자 준혁이 사용한 방법은 예전에 목족의 대지를 방문했을 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곳곳에 뿌려둔 자신의 기운을 발동시키는 것이었다.

화신목영의 술법으로 곳곳에 기운을 뿌려두었기에, 동시에 그것들을 격발시켜 목족의 여왕이 자신의 진짜 흔적을 찾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하지만 그 의도는 생각보다 쉽게 간파당하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준혁이 여러 곳에 숨겨두었던 기운을 격발했듯이, 스퀘타도 자신의 몸을 분화시켜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타나 확인 작업을 시작한 것.

어느새 적유목 인근에 나타난 준혁은 전신에서 기운을 강하게 내뿜으며 상공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말없이 고요한 눈을 가진 그는 평소의 준혁과 조금 다른 듯 보였지만, 뿜어내는 기운만큼은 온전한 완영기 상태였다.

다만 보란 듯이 강제로 기운을 내뿜는 그의 모습은 조금 낯설어 보이긴 했다.

잠시 후, 준혁이 뿌려두었던 기운들을 모조리 확인한 스퀘타는 비웃음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나타났다.

“겨우 이 정도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감히!”

그리고는 준혁의 이동 속도를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더니, 어느새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던 준혁 앞에 나타났다.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스퀘타를 보고 준혁이 멈춰 서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대치가 이루어졌다.

“도망칠 수 있다고 여긴 건가?”

“......”

“어디 한 번 더 발버둥 쳐 보시지? 재롱은 충분히 봐줄 테니까 말이야. 물론 재롱이 끝난 뒤엔 내 꼭두각시가 되어야 할 테지만.”

“......”

“왜 말이 없지? 설마 겁먹었나?”

스퀘타는 눈앞에 떠 있는 준혁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고 여겼다. 엄청난 기세를 내뿜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졌던 것.

그때, 침묵을 지키던 준혁의 몸이 스르륵 사라지더니 스퀘타의 등 뒤에서 거력이 쏟아졌다.

스퀘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가뿐하게 피해 내고는 한 손으로 준혁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의 손!”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나무줄기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길게 자라난 나무줄기는 양쪽으로 분화했고, 그것이 자라나 다시 양 갈래로 갈라졌다.

몇 번의 변화를 거듭한 후, 수백 개로 늘어난 나무줄기는 어느새 거대한 손처럼 변해 준혁을 감싸 버렸다.

“하하! 어디 한번 발버둥 쳐 보시지?”

스퀘타는 마치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얼마 가질 못했다.

번쩍- 콰콰쾅!

어느새 상공 한쪽에 엄청난 양의 영기가 뭉치며 뇌전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스퀘타는 서둘러 양손을 휘저어 사각형 방패 같은 나뭇조각을 소환해내 뇌전을 막아섰다.

퍼석-

“젠장!”

사격형 방패는 겨우 뇌전을 두 번 막아내더니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스퀘타는 악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을 흘리다가 서둘러 손을 지휘하듯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로부터 영기파동이 퍼져나가며 준혁을 감싸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마치 춤을 추듯 현란하게 움직였다.

푹- 쑥-

준혁을 감싼 나뭇가지는 마치 벼락이 치듯 자라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는데, 그 공격이 얼마나 빠른지, 눈으로는 쫓아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준혁도 완영기에 오른 수사.

아무리 빠르다고는 해도 쉽게 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준혁이 나뭇가지에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도 마치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공격을 피해 내자, 오히려 공격하는 스퀘타의 표정이 암담하게 변해갔다.

‘힘을 더 쓰다간 다음 압박을 버텨내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도. 젠장, 저놈이 목족의 술법까지 사용할 줄 생각지도 못했어.’

준혁은 흐릿하게 변하다가 순간이동을 하듯 빠르게 움직여 스퀘타가 만든 술법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고, 치명상을 입을 상황이 오면 꽃잎으로 변해 모든 공격을 무로 돌려버렸다.

스퀘타가 만든 ‘하늘의 손’이라는 술법은 구속과 동시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술법이었지만, 진짜 기능은 따로 있었다.

바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힌 순간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기능.

하지만 준혁이 화신목영의 술법으로 모든 공격을 무산시켜 버리자, 진짜 기능은 발동도 못 한 채, 계면의 압박으로 인해 스퀘타 본인만 손해를 입는 중이었다.

또 한 번 뇌전을 힘겹게 막아낸 스퀘타는 쓰게 웃음 지으며 수인을 맺어 준혁을 향해 손짓했다.

“최대한 다치지 않게 잡아가려 했더니, 어쩔 수 없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네놈이 쉽게 잡혔으면 나도 이렇게까진 할 생각이 없었어.”

그 순간,

준혁을 감싸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푸른 기운을 내뿜으며 서로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그러자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것 같은 푸른 구가 만들어졌고, 준혁은 그 중심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무언가를 대비하는 듯 수결을 맺었다.

그리고는 술법의 규모에 맞게 하늘에서 엄청난 뇌전이 만들어져 스퀘타에게 떨어져 내린 순간.

콰과쾅!

슈악-

준혁을 감쌌던 나무줄기들이 미세한 틈도 없이 자라나더니 푸른 구 안을 가득 메워버렸고, 동시에 괴이한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우우웅-

화악-

파동이 가시자, 준혁을 감싸고 있던 나뭇가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준혁은 혼자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다만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준혁의 심장과 단전이 자리한 부위에 스퀘타의 손으로 짐작되는 것이 각각 박혀 있다는 것.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스퀘타는 초췌한 얼굴로 씨익 웃음 지었다.

“어때? 이건 누구도 피할 수 없지.”

말을 하는 스퀘타는 양쪽 팔이 사라진 상태.

준혁의 단전과 심장을 뚫고 있는 것은 스퀘타가 만들어낸 환영이나 비술 같은 것이 아닌, 진짜 그녀의 손이었다.

하지만 준혁을 잡았다는 쾌감에 웃음 짓던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양손에 치명상을 입은 준혁.

그런 준혁의 몸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며 사라졌고, 잠시 후 스퀘타의 양손엔 거무튀튀한 중식도 하나와 푸른빛을 띠는 단검 하나가 잡혀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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