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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76화 (176/408)
  • 176화. 만통방 (4)

    ‘백팔마선경?’

    만통방이라는 법기를 발동했는데 뜬금없이 백팔마선경이라니?

    “백팔마선경이라니요? 그자는 선계에 있는 마선이 아닙니까?”

    모든 마선과 연결되어 있다던 마선. 괴조와 더불어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들었던 자 중 하나였다.

    “공자는 마선경의 능력에 대해 들었겠지요? 공자가 사용한 법기를 인족들이 뭐라 부르는지는 모르나, 그 물건은 마선경이 수많은 하계에 뿌려놓은 물건입니다.”

    “설마….”

    “하계에 닿지 않는 자신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해놓은 조치란 말입니다.”

    준혁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공천귀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가 이렇게 대면할 수 있는 것도 마선경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식아와 온전히 동화하지 못한 공자가 우릴 끄집어낼 순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멀리 떨어진 귀원패에게 시선을 돌린 준혁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만통방의 검색 기능은 마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나?’

    준혁의 추측이 맞았다.

    사용자가 영력을 사용해 만통방을 발동시키면, 마선경의 능력 일부를 가져다 사용할 수 있게 제작되어 있던 것.

    다만 마선경 개인의 지식이 아닌, 세상 곳곳에 흩어진 마선들이 알아냈었던 옛 지식을 조합하는 방식이었기에 검색 내용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영력이 과소비된 것이었다.

    준혁은 혀를 내두르다 조금 전 공천귀가 말한 내용을 상기하고는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식아와 완벽한 동화를 이루면 이 법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대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공천귀를 보며 준혁은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지만, 준혁에겐 천금 같은 기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전부 다 풀어낼 기회였다.

    게다가 만통방의 검색 기능을 발동시키기 위한 영력이나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귀원패의 경고.

    여러 마선과 계약한 준혁이 백팔마선경이나 괴조에게 걸리면 인생이 피곤해질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공천귀가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했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일 터.

    준혁은 그 위험도와 자신의 존재가 만통방을 통해 마선경에게 알려졌는지를 알아야 했다.

    “조금 전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제 정체가 백팔마선경에게 알려진 것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말을 하려 했소.”

    공천귀는 적색 공간 한쪽을 빠르게 훑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은 아니나, 곧 알게 될 것이오. 하지만 당장 이곳에서 도망친다 해도 이미 기록이 남은 이상…. 그대는 마선경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나와 분광소뿐 아니라 수많은 마선들이 이곳에 모여있는 걸 알게 될 테니….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그가….”

    ‘그’가 백팔마선경을 뜻하지 않는다는 건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서열상으로도 공천귀와 분광소가 백팔마선경보다 앞서있었으니 공포를 느끼는 듯한 표정을 할 리는 없는 것.

    아마 백팔마선경을 수하로 부리고 있다는 천신라라는, 마선 중 최강자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은근한 협박조에 준혁 역시 덩달아 긴장했다. 하지만 옆에서 비웃듯 웃고 있는 분광소의 표정을 보면 해결책이 있어 보였다.

    “무언가 방법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알려주시겠습니까?”

    준혁이 눈치껏 상황을 파악한 듯 보이자, 공천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을 보는 선생처럼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침착한 모습이 보기 좋구려. 조금 더 경각심을 일깨워주려 했더니 말입니다. 그 늙은 호랑이의 술수에서 벗어나니 금세 예전처럼 돌아왔구려.”

    겸손함을 표현하듯 준혁이 고개를 살짝 숙이는 사이, 공천귀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선경은 걱정할 필요가 없소이다. 그건 내가 처리할 테니.”

    “처리하긴, 그걸 처리라고 하나? 내가 알기론 희생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공천귀의 말이 끝나기도 전, 분광소가 이죽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 모습에 공천귀가 레이저가 나갈 것 같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다시 온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만 그대를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소이다.”

    “말씀하십시오.”

    “오래전 그대가 했던 맹세를 기억하시오?”

    준혁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공천귀에게서 하얀 기운이 흘러들어왔고, 아주 오래전 자신이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수도계가 비정하다고는 하지만. 고작 욕심 따위로 인간성을 버리진 말자.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정도(正道)를 걷는다.

    그 순간, 준혁은 오래전 식혈만복 공법을 처음 얻었을 때가 떠올랐다.

    비정한 수도계의 현실을 느끼며 바른 마음을 가질 것을 다짐했던 때.

    그때, 자신이 내뱉은 말에 팔목에 있던 공천령의 문신이 빛을 발했던 것도 기억해냈다.

    “설마! 그때 제 얘기를 듣고 반응을 보여주신 겁니까?”

    “그렇소이다. 공자의 진심이 느껴져 감동하고 말았지. 모든 이들이 입으로는 협을 말하고 또 정을 논하지만, 그 누가 진심으로 그것을 지키려고 하겠소이까? 내 오랜 세월 살아오며 한 치의 거짓된, 삿된 마음이 섞이지 않은 그런 진심은 처음이었소이다. 그리고 공자는 그 맹세를 잘 지켜주었고 말이오.”

    공천귀의 말에 분광소는 ‘다 부질없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혁이 그런 분광소의 말을 한 귀로 넘겨버리자, 공천귀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그 마음 변하지 않았소?”

    준혁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앞으로…. 벌써!!”

    포근한 미소로 말을 이으려던 공천귀는 두 눈을 부릅뜨며 텅 빈 적색 공간 한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합장을 했다.

    그 순간 공천귀의 손바닥 사이에서 흰 빛이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준혁과 마선들 전부를 감쌀 만한 거대한 구 형태의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준혁마저 덩달아 영력을 끌어올리자, 공천귀가 자신의 이마를 툭 치더니 흰색 구슬 하나를 손에 담아 준혁에게 건넸다.

    “이놈이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이야! 이걸 받으시게.”

    준혁이 구슬을 건네받자, 구슬은 손바닥을 통해 스며들 듯 준혁의 몸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준혁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보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공천귀가 긴박하게 말을 이었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마선경이 이곳 상황을 눈치채고 접속을 시도하고 있소, 당장 내보낼 테니 그댄 내게 말한 그 마음가짐을 잊지 마시오. 그리고 이곳에 용천무의 유적이 있는 걸 보면 고대 신악(神惡)이라 불리는 천혈(天血)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일. 그것을 꼭 찾도록 하시오. 그렇다면 그대가 바라는 일들이 한층 더 수월해질 테니!”

    ‘신악? 천혈? 내보낸다니? 만통방과의 연결을 끊겠단 말인가?’

    “잠시만, 잠시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쳤다.

    공천귀에게 몇 마디 듣긴 했지만, 자신의 궁금증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

    하지만 다급한 공천귀와 인상을 쓰고 있는 분광소, 덩달아 안색이 나빠진 마선들을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짐작하고는 나머지 말들은 삼키고 말았다.

    물어도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 공천귀는….

    그 순간, 귀원패로부터 전음이 들려왔고.

    화아아악-

    주위를 감싸고 있던 구 형태의 보호막이 폭발하며 몸을 통째로 녹여버릴 것 같은 영기파동과 함께 거대한 흰 빛무리가 주변을 잠식했다.

    준혁은 정신이 바스러질 것 같은 순간 속에서, 공천귀가 마지막 유언처럼 남기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계로 가게 된다면 내가 봉인 당한 장소를 찾아내게! 천신라를 보위하던 내 역할은 그의 창고지….

    콰르릉-

    목소리가 끝나기 전, 준혁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과 함께 적색 공간에서 사라졌다.

    ***

    적색 공간.

    그 안에 존재했던 모든 이들이 흰 빛무리에 휩싸여 사라진 후, 혼자 남은 공천귀는 재차 합장하며 몸 주위로 흰 빛덩이를 띄웠다.

    흰 빛덩이 주위로는 적색 공간을 잡아먹듯 공간의 일그러짐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는데, 그 안에 담긴 거력은 인세에서 찾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해 보였다.

    마치 공간 자체를 터트려 버릴 것처럼.

    잠시 후 적색 공간의 천장으로 생각되는 곳에 붉은 원진이 나타났고, 원진은 형태를 갖춤과 동시에 옆으로 길게 늘어졌다.

    그 순간, 늘어지던 원진 가운데에서 새빨간 눈동자가 나타나 주위를 쓰윽 훑었다.

    눈동자는 적색 공간에 홀로 남아있던 공천귀를 보더니 놀란 듯 몇 번이나 껌뻑거리다가 흥분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공천귀….”

    “백팔마선경.”

    “누가 하계에서 접속했나 했더니…. 그대였군. 그동안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이상하다고 여겼거늘, 설마 하계에 내려가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공간을 울리듯 웅웅거리며 퍼져나가는 목소리에 공천귀가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쉬고 싶었네. 앞으로도 쉴 생각이니 나를 찾지 말게.”

    “그럼 왜 나에게 접속한 거지?”

    “실수네.”

    공천귀의 대답에 눈동자가 가늘게 변했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공천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주변 기운을 감지하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쉬고 싶은 건 자유지만, 그분의 물건들은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것 아닌가? 네가 보관하고 있던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알지 않나?”

    눈동자의 질문에 공천귀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비웃음을 흘렸다.

    “만나서 반가웠네. 다음에 보세나.”

    “잠깐!!”

    “잠깐은 무슨. 지금 내 안에 표식을 남기려고 하지 않았나? 뜻대로 둘 순 없지.”

    공천귀의 말에 적색 공간 곳곳에서 지렁이처럼 움직이던 것들이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투두둑-

    파바방-

    그것들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폭발하듯 터져나갔는데, 터질 때마다 천장에 떠 있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그분은 봬야 하지 않겠나!! 그분께서 너를 얼마나 아끼셨는데!”

    “아꼈다라…. 그래. 아끼셨지. 내가 아닌, 창고의 역할로서 나를.”

    공천귀가 허탈하게 웃으며 시선을 들자, 그에 따라 공천귀의 주위를 배회하던 빛덩이들이 부피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안 돼! 멈춰!! 그분께서 가만히 있으실 것 같은가!!”

    “허허, 가만히 있으라고 이러는 것 아닌가. 이 법기가 소멸하면 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겠지.”

    그 순간 부피를 키워가던 빚덩이들이 폭발했고, 적색 공간이 하얗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잠시 후 빛덩이의 폭발에 적색 공간은 점멸하듯 무너져갔다.

    그 안에서 공천귀는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 천장의 눈동자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쓰게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잘 있게. 오랜 친구여.”

    콰앙!!

    인사가 끝난 순간, 적색 공간이 허물어지며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

    어두컴컴한 토굴 안.

    한쪽엔 세 명의 인족 수사가 나무줄기에 꿰뚫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엔 준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고 서 있었는데, 준혁 앞엔 백과사전처럼 생긴 법기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영기파동을 퍼트리는 중이었다.

    준혁의 옆엔 아마르곤이 말없이 서 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엔 목족의 여왕이 쉬지 않고 손을 휘젓고 있었다.

    “흠….”

    법기를 잠깐 발동해 본다고 했던 준혁이 꽤 오랫동안 미동도 없이 있자, 여왕은 자신 주위에 뭉쳐 드는 영기를 빠르게 해소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준혁에게 향해있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겠는지, 꽃잎 한 장을 준혁에게 날려 보냈다.

    하지만 여왕이 날린 꽃잎이 준혁에게 닿기 전,

    파앙-

    아마르곤이 영력을 쏘아 보내 꽃잎을 소멸시켜버렸다.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 모르니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떠십니까?”

    아마르곤의 행동에 여왕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없이 그를 째려보았다.

    마치 ‘네가 인족 편을 들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하는 것처럼.

    그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준혁이 눈을 부릅떴다.

    눈을 뜬 준혁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도는 법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움찔하더니 여왕에게 시선을 옮겼다.

    준혁은 여왕과 시선이 마주치자 입가를 끌어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이 법기를 통해 확인해보니 그 하얀 호랑이가 한 말이 사실인 것 같더군요. 진실로 선계에 닿을 수 있을 듯합니다. 무리 없이 하계로 통로를 만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

    어느새 준혁은 만통방을 잡아채 여왕에게 내밀고 있었다.

    “수사께서도 한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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