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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74화 (174/408)

174화. 만통방 (2)

반대에도 불구하고 준혁이 거듭 부탁하자, 아마르곤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등을 돌렸다.

“따라오십시오. 혹 내가 신호를 보낸다면 정말 위험한 것이니…. 바로 탈출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사.”

딱딱한 말속에서 따뜻함을 느낀 준혁은 한층 더 긴장하는 아마르곤과는 달리 흐뭇해하고 있었다.

모든 게 막연하게 잘될 거라는 감이 가득했다.

예전 같았다면 혹시 모를 일에 대비를 잔뜩 해놓고도 경계를 했을 터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행하는 일은 꼭 이뤄져야 하니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여겨졌다.

그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 채 준혁은 목족의 대지 안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경계를 넘어 안쪽으로 가자, 호하를 비롯한 두 명의 원영기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두 명의 원영기 수사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는 사이, 호하가 준혁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씩씩거렸다.

“너!! 너 이 자식!”

호하는 지난번의 수모를 갚기라도 하겠다는 듯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준혁에게 이르기 전 아마르곤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이자는 손님의 자격으로 온 것입니다.”

“손님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족 따위에게 어찌 그런 표현을 쓴단 말입니까?”

“수사가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화악-

순간 아마르곤의 몸에서 강렬한 기파가 쏟아져 나오더니, 호하를 비롯한 두 명의 원영기 수사를 멀찍이 밀어버렸다.

“내 앞을 막으려거든 그에 맞는 수행을 갖추시길 바랍니다.”

호하는 푸른 기운에 밀려나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엉거주춤했다.

그사이, 아마르곤은 준혁에게 눈짓하더니 다시 중심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준혁은 그런 아마르곤의 뒤를 말없이 따르며 호하 따위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눈길 한번 주질 않았다.

그 모습에 호하는 붉어진 얼굴로 이를 아득거릴 뿐이었다.

***

비경의 중심에 위치한 목족의 대지.

태초의 밀림처럼 각종 나무와 잎, 넝쿨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숲 위를 한참 동안 날아가자 오래전 보았던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표면에 적갈색 돌기가 기이하게 자라나 있는 거대한 나무.

‘적유목이라고 했던가?’

준혁은 적유목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을 경계하며 아마르곤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길도 보이지 않는 넝쿨 아래를 통과해 깊숙이 들어가자, 예전에 한 번 온 적이 있던 여왕의 거처, 정확히는 여왕이 계면의 압박을 피해 숨어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올 줄 알았지.”

여왕은 준혁을 보고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친절하게 한쪽을 가리켰다.

여왕이 가리킨 곳은 텅 빈 곳이었는데, 눈 깜작할 사이에 나무줄기가 자라나 의자와 탁자를 만들었다.

“앉지? 우리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여왕이 의자에 앉으며 권유하자, 준혁은 아무렇지 않게 맞은편에 털썩하고 궁둥이를 붙였다.

자리에 앉은 준혁은 여왕이 입을 열기 전, 먼저 말을 꺼냈다.

“봉인지를 통해 선계로 향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십니까?”

준혁의 질문에 여왕이 빙그레 웃었다.

‘잘 알면서 뭘 물어?’라는 눈빛.

여왕이 더 말해보라는 듯 말없이 가만히 웃고 있자 준혁이 말을 이었다.

“하늘정원과 황금궁전을 다녀온 아마르곤 수사에게 무얼 들었는지 모르나, 제가 지목족의 생존자인 ‘천균’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크게 호응하진 않지만, 미세하기 움찔거리는 모습. 여왕의 관심이 여실히 드러났다.

준혁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자신이 ‘구름이 낳은 땅’이라 불리는 곳에서 천균을 만나 들었던 얘기를 바탕으로 얘길 풀어냈다.

잠시 후 모든 얘기가 끝나자, 여왕은 분노한 듯 눈을 부릅뜬 채 준혁을 노려보았다.

“네 말은 어떤 방법을 써도 선계에 갈 수 없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지목족의 수장인 기목청 수사 정도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상. 이미 공간의 틈으로 밀려난 봉인지를 다시 선계로 이을 방법은 없습니다.”

으득-

무언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준혁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불가능한 것이지요. 계면의 압박은 물론이고, 선계와 비교해 영기가 옅은 이곳에선 절대 삼선의 경지에 도달할 순 없을 테니까요.”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한 채, 여왕이 입을 뗐다.

“그럼…. 너는 왜 돌아온 거지?”

본론이 나오는 듯 보이자, 준혁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말입니다. 굳이 봉인지를 통해 선계로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모든 이를 이동시키는 게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여왕의 눈을 직시하다, 때가 되었다고 느낀 준혁은 공간대에서 옥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확실하게 선계로 갈 방법이 있는데…. 굳이 봉인지에 집착할 필욘 없지요.”

그리고는 눈앞에 옥간을 띄운 채 수결을 맺었다.

옥간에 환영술의 묘리를 담은 준혁은 그것을 이마에 가져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한참 후에야 이마에서 옥간을 떼어내고는 그것을 여왕에게 내밀었다.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안에 담긴 제 기억을 읽어보십시오.”

훼엑-

여왕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궁금증을 참지 못한 것인지, 준혁이 건넨 정체불명의 옥간을 잡아채 곧바로 이마에 댔다.

잠시 후.

“아아….”

작은 탄성을 뱉어낸 여왕은 옥간을 이마에서 떼고는 준혁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게 사실이란 말이냐?”

“물론입니다. 제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왜 왔겠습니까? 저 역시 선계로 가고 싶은 마음은 같습니다.”

준혁이 여왕에게 준 옥간.

그 안엔 백호와의 대화를 비롯한 구지대륙의 정보들이 담겨있었다.

“그럼 나를 찾아온 이유는 뭐지? 네가 준 정보에 따르자면 사신이라는 존재들을 찾아야 선계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는데…. 설마 이곳에 사신 중 한 명이 잠들어 있다고 여기는 건가? 나에게 그곳을 찾아달라고?”

준혁이 건넨 기억들은 단편적인 것들이었고, 주작과 마족에 관한 것들이 배제돼 있었다.

준혁은 여왕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설명을 이었다.

“물론 그것도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청룡과 현무가 어디에 봉인되어있는지 찾질 못했으니, 이곳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하지만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어서 말해보라는 듯 여왕이 눈을 빛냈다.

“이곳에 잡힌 인족 중 왕웅이란 자가 있습니다. 그자가 가진 법기 하나가 사신 중 하나인 주작을 만나는 데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왕웅?”

생각지도 못한 답변인지, 여왕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아마르곤을 바라보았다.

아마르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달싹이자, 그제야 그게 누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놈은 내주지. 하지만 그전에.”

여왕은 잠시 뜸을 들이며 준혁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네가 사신의 힘을 모아 선계로 가는 문을 연다고 쳐도, 우리에게 도움을 줄 리는 없지 않나? 너를 어떻게 믿지?”

“제가 건넨 기억을 제대로 보신 것이 맞습니까? 제가 선계로 올라간 뒤엔 천제단을 이용해 이곳으로 정식 통로를 만들 겁니다. 그때가 되면, 일정 조건만 갖추면 누구든 선계로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 백호란 놈의 말대로 통로가 생긴다면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린 천제단이 위치한 곳으로 갈 수가 없는데 애초에 그게 무슨 소용이지?”

여왕의 의문에 준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고민 없이 즉시 답했다.

“무얼 걱정하십니까? 여기 아마르곤 수사가 있지 않습니까? 저와 종속이 맺어진 그는 저와 함께 선계로 갈 수 있고, 후일 천제단을 통해 내려와 이곳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가 이곳에 천제단을 설치하면 될 일입니다.”

“아….”

‘물론 천제단을 만들 재료가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백호에게 들은 설명은 없지만, 하나의 계면에 통로를 만든다는 게 그저 법기 하나 제작할 때처럼 간단할 리가 없었다.

어쩌면 평생 가도 재료를 모으지 못할 만큼 고난도의 여정이 기다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져봐야 무얼 한단 말인가?

여왕의 처지에선 선계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로인 것과 미약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큰 것일 텐데.

“네가 아마르곤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지?”

“수사. 아마르곤 수사가 저와 종속의 인으로 이어져 있다고는 하나, 저보다 수행이 높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십니까? 몇 가지 제약을 제외하곤 그는 제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그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음….”

준혁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계면의 압박을 벗어나 선계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자, 마음이 초조해지고 작은 실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한참 동안 말없이 심사숙고하던 여왕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가자. 널 믿진 못하지만. 내 오랜 친구는 믿을 수 있으니까.”

말을 마친 여왕의 몸이 파앗- 하며 사라졌고, 그 자리엔 꽃잎 몇 장만이 흩날렸다.

***

여왕에게서 허락이 떨어지자 준혁은 아마르곤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이동했다.

이동한 곳은 여왕의 거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그곳엔 이미 여왕이 도착해 있었다.

여왕 앞엔 세 명의 수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벽에서 자라난 줄기에 명치 부분이 꿰뚫린 채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세 명 다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모두 다 활력이 가득하고 오히려 생명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런 준혁의 의문에 답해주듯 아마르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자들이 봉인지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게 적유목으로부터 기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수 배는 빠르게 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요.

-부작용은 없습니까?

-......

엄청난 효능을 가진 방법에 준혁이 의문을 품자, 아마르곤은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해 주었다.

그때 수사들이 인기척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중 준혁을 본 적이 있던 왕웅과 리처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최 수사! 살아 있….”

놀라서 외치던 왕웅은 준혁의 옆에 서 있던 여왕과 아마르곤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준혁은 여왕에게 눈짓으로 허락을 받고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사이 허공에서 기운이 뭉치며 고장 난 화면처럼 지지직거리자 여왕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바깥처럼 그녀를 향해 뇌전이 치진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영기가 뭉쳐졌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거주지 안도 안전하진 않나 보구나.’

계면의 압박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저리 나는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은 준혁은 왕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왕웅 수사. 여기 목족의 여왕께서 그대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준혁의 말에 왕웅을 비롯한 다른 수사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대신 그전에 제가 만통방을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여, 여기 있습니다! 가져가십시오!”

왕웅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몰라도, 준혁이 만통방 때문에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걸 눈치챘다.

만통방이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고는 하나 목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법.

즉시 공간대에서 백과사전처럼 생긴 두꺼운 책을 꺼낸 왕웅은 그것을 준혁에게 건넸다.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짧은 주술을 알려준 왕웅이 설명을 이었다.

“영력을 담아 주술을 외운 후, 법기를 발동하면 적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이동됩니다. 아 물론 진짜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의식이 움직이는 거지요. 그 후에 궁금한 것을 머릿속에 강하게 떠올리면 그에 관한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호.”

“다만 정보에 따라 그 시일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어떨 땐 중간에 영력 부족으로 만통방과의 연결이 강제로 끊기기도 합니다.”

“설마 원영기에 오른 왕웅 수사도 말입니까?”

겨우 법기를 발동하는데 영력이 부족하다니. 준혁은 만통방이 용천무의 법기 같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그러는 경우가 많진 않습니다.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우선 간단한 걸 검색하는 데는 딱히 시간을 소비하진 않을 겁니다.”

왕웅의 권유에 준혁은 아마르곤에게 시선을 주었다.

준혁의 시선에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아마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수사, 괜찮겠지요?”

마지막으로 한쪽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날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휙휙 젓고 있는 여왕에게 묻자,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발끝으로 꽃잎 몇 장을 쏘아 보낸 뒤 남모르게 발아래로 토율서를 소환했다.

잠시 후, 왕웅과 아마르곤 등, 주위 수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주술을 외웠다.

화악-

동시에 만통방을 발동시키자,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준혁을 뒤덮었다.

***

위아래 좌우를 살펴보아도 보이는 건 오로지 적색 공간.

왕웅의 말대로 텅 빈 허공에 떠 있듯 적색 공간에서 눈을 뜬 준혁은 이곳이 백호를 만났던 곳처럼 영역으로 만들어진 심상 세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다만 만통방과 연결된 준혁은 왕웅이 말한 바와 너무나 다른 현상에 잠시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적색 공간에서 검색할 것을 떠올리면 된다고 했던 왕웅의 말.

‘아무것도 없다더니….’

그의 말과 달리 준혁의 눈앞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몇은 준혁도 이미 만난 적이 있던 자들.

그때 눈이 마주치자 무리 중 적발에 적미를 한 사내가 이를 비죽이며 순식간에 준혁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너 이 새끼! 드디어 이렇게 보는구나!”

어느새 다가온 적발의 사내가 멱살을 움켜잡자, 준혁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저, 적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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