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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73화 (173/408)

173화. 만통방 (1)

열쇠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열쇠를 얻고 난 후 다른 일들은 관심사에서 멀어졌고, 오로지 주작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린 것.

그걸 깨닫자 준혁은 다른 문제들 역시 쉽게 생각할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얼마 전부터 생긴 이유 모를 마족에 대한 분노.

물론 마족은 타 종족을 침략해 종족을 번영시키는 버러지 같은 집단이었기에 혐오감이 들 수는 있었으나, 간혹가다 이유 모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마 전 이상했던 원영의 태도 역시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고민을 이어가기도 전, 준혁은 산들바람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야만 했다.

“저, 정말 인족이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산들바람을 보며,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는 영수족 부락으로 돌아오며 유지하고 있던 백호의 모습을 풀어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게 내 본 모습이야.”

산들바람은 두 눈을 껌뻑이며 준혁을 바라보다가 바람꽃에게 시선을 옮겼다.

바람꽃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제야 천천히 다가가더니 준혁의 얼굴을 매만졌다.

준혁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두 자매가 눈치채지 못하게 영력을 움직였다.

바람꽃이야 종속의 인 때문에 걱정은 없었으나, 만에 하나 산들바람이 돌발행동을 하면 제압하기 위해서.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준혁이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 산들바람에게서 튀어나왔다.

“괜찮아. 그래도 할래.”

“산들아….”

걱정 가득한 바람꽃이 동생의 이름을 불렀지만, 산들바람은 남쪽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어. 넌 이곳이 아니라 밖에 있었던 거구나? 또 떠날 거지? 그럼 나도 데려가. 큰둥이 너랑 함께 있을래.”

그녀의 발언에 준혁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 바람꽃이 차분한 음성으로 준혁을 불렀다.

“최 수사. 부탁해요. 내게 걸린 종속의 인을 당장 푼다는 게 무리인 걸 알아요. 그렇다면 산들이와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요.”

바람꽃의 말대로 종속의 인을 간단하게 해제할 순 없었기에, 준혁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준혁은 산들바람을 향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함께하자.”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가지던 의문에 대해선 신경을 꺼버린 준혁은 앞으로 진행할 일에 대해서만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순간 준혁의 눈동자에 회색 기운이 스치다 사라졌지만, 본인은 물론 두 자매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산들바람에게까지 종속의 인을 건 준혁은 곧장 회복에 전념했다.

용천무가 전해준 세 가지 법기 중, 화령관이라는 수련 도구를 제외하곤 준혁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던 물건들.

울부짖는 날개라는 이름이 붙은 법기를 사용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1분도 되지 않을 짧은 시간을 사용했음에도 원영기 시절 목족의 봉인지를 강제로 뚫고 들어갔을 때만큼의 충격이 몸속에 남아있었다.

준혁은 화목단을 쉴 새 없이 복용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몸을 회복한 준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람꽃과 대면한 것이었다.

그녀를 통해 아홉 종족의 열쇠를 이용하는 방법에 관해 들은 준혁은 당장 주작을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지금이라도 봉인지가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마족의 봉인지 때문인가?’

바람꽃이 말하길, 아홉 종족의 열쇠는 특수한 비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반응이 나타나면 특수한 장소로 인도하게 되고, 그곳에서 열쇠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준혁의 공간대 안엔 아홉 자루의 열쇠가 고이 보관돼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던 준혁은 이미 봉인지로 향하는 문이 열려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주작의 봉인지가 아닌 이상한 곳으로 연결되긴 했고, 문을 열 당시 열쇠가 겨우 5자루에 불과하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열쇠의 힘을 사용해 통로가 생겨난 건 사실이었으니까.

“흠. 그럼 마족의 봉인지를 없애야 하나….”

하지만 없앨 방법도, 없앨 가능성이 있는지조차 몰랐기에 준혁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방법을 강구해도 되지만, 이상하리만큼 당장 주작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감싸고 있었다.

“호왕족처럼 옛 지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바람꽃과의 대면 후, 자신에게 가장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황웅족의 수사와 결계에 관한 지식이 가장 많은 흑오족의 수사를 연달아 만나본 준혁은 달리 방법이 없음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어딘가엔 모든 지식이 담겨있는 책이 있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런 것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수사의 궁금증을 풀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때 별 뜻 없이 가볍게 내뱉은 흑오족 수사의 말에 준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통방!!’

왕웅이 목족에게 잡힌 후, 연형기에 오르기 전까진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물건.

준혁은 만통방을 떠올리다, 지금 상태로 목족의 여왕을 상대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았다.

‘분광소를 이용한다 해도. 그녀에겐 안 되겠지.’

게다가 이미 한번 도망친 전력이 있었기에, 다시 대면한다면 상대는 더 계획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준혁의 표정은 조금 전처럼 고민에 휩싸여 있지 않았다.

마치 해결책을 찾은 것처럼 두 눈엔 기대감이 잔뜩 어려있었다.

***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하늘 아래, 양 볼을 부풀린 채 못마땅한 기운이 역력한 소녀가 움막 앞에서 소릴 지르고 있었다.

“큰둥아! 언제까지 안에만 있을 거야! 다 회복했으면 밖으로 좀 나와!”

움막 앞에서 소릴 지르던 소녀, 산들바람은 며칠 전 준혁이 몇몇 족장들을 만났다는 걸 알았다.

회복을 마치고 나면 자신을 가장 먼저 찾을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은 행동에 심술이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

결국 참지 못한 산들바람은 움막에 펼쳐진 보호진을 강제로 열기 위해 입김을 불며 영력을 방출했다.

“후우~. 어라?”

하지만 움막에 펼쳐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보호진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재빨리 움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움막 중심에 둥둥 떠 있는 부적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기심에 부적을 발동시키자 거기엔 준혁의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금방 다녀올게.

“나빠! 가려면 나를 데려가야지!”

그러기 위해 종속의 인까지 맺었는걸. 이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부적이 짧은 말을 남기고 홀라당 타버리자, 산들바람의 얼굴엔 근심이 드리워졌다.

어느새 시선은 남쪽 어딘가를 향해있었다.

“설마…. 이대로 영원히 떠나는 건 아닐 테지?”

산들바람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준혁과 가느다랗게 이어진 끈을 자극했다.

한편, 산들바람이 부적을 발동시킨 그 시간.

준혁은 이미 중경을 지나, 외경 끝자락에 있는 비경 입구에 도착한 상태였다.

눈꽃 비경을 빠져나온 후엔 한국에는 들르지도 않고 곧장 버뮤다 삼각비경으로 향했다.

“다들 안전하게 돌아갔을 테니 굳이 들를 필욘 없겠지.”

이미 마음은 만통방을 얻어 마족의 봉인지를 해제한 후, 주작을 만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통방에 해답이 있는지, 주작을 만나는 것이 안전한지 고민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계획이 목족의 여왕에게 제대로 먹혀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았다.

‘안 되면 도망치지 뭐’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할 뿐.

그저 길이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결과를 보고 싶다는 단순한 목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였다.

스스로가 조금은 이상하다고 여기려 하다가도, 선계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 다른 생각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

버뮤다 삼각비경의 북동쪽 끝.

무작위로 전송된 준혁은 주변을 확인해 위치를 가늠하고는 곧장 비행 법기를 꺼내 북쪽 끝으로 날아갔다.

북쪽 끝에 도착한 그는 목족인들이 지하에 숨겨두었던 외부로 빠져나가는 전송진을 활성화했다.

“이 정도 준비면 되겠지.”

목족의 여왕을 설득하는 일에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도망로를 설정한 준혁은 아마르곤과 연결돼있는 끈을 자극했다.

잠시 후, 종속의 인으로 연결돼있던 끈을 통해 그의 존재가 느껴지자, 비경의 중심을 향해 움직였다.

한편, 목족의 중심지, 자신의 거처에서 수련 삼매경에 빠져있던 아마르곤 역시 준혁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몸의 상태를 확인해본 그는 심장 한켠에 연결돼있던 끈에 정신을 집중했다.

준혁이 비경을 떠난 뒤 미약하게 남아있던 느낌이 한층 강화된 것처럼 심장에 자리한 기운이 두근대며 신호를 보내왔다.

“설마…. 그가 이곳으로 돌아온 것인가?”

그럴 리 없다고 여겼지만, 종속의 인으로 연결된 감각이 말하는 건 달랐다.

잠시 후, 아마르곤의 몸이 수많은 꽃잎 조각으로 나뉘며 허물어졌고, 눈 깜짝할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삼각 비경의 중심에 있는 목족의 대지로 향하던 준혁은 대지의 경계선에 다다랐을 때쯤 반가운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영을 정화하는 과정을 통해 교감을 나눠, 어떤 의미로는 청호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그.

“아마르곤.”

목족의 이동 비술로 준혁 앞에 나타난 아마르곤은 찰나지간 미소를 띠는 듯하다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수사.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이 경계 안으로 들어선 순간…. 눈이 없더라도 그녀가 알아차릴 겁니다.”

눈이란 다른 목족 수사를 통해 바깥을 감시하는 그녀의 능력을 말했다.

아마르곤과 달리 준혁은 얼굴 가득 반가움을 담은 채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부터 나누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잘 지내셨습니까? 아마르곤 수사.”

“…저 역시 반가우나. 그녀가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전히 덤덤한 자세를 유지하는 아마르곤을 보며 준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가느다랗게 찢어진 눈을 한 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는, 그렇지만 목소리엔 정중함이 담겨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함께 생사를 넘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수사,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혹 오래전 이곳에서 잡았던 다른 인족 수사…. 왕웅이라는 수사는 살아있습니까?”

준혁의 질문에 아마르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뿐 아니라 두 명의 원영기 수사 모두 살아있습니다.”

‘두 명?’

러시아의 세르게이와 미국의 리차드, 거기에 더해 최근에 왕웅을 구하러 갔다는 남궁명까지. 모두 살아있다면 총 세 명이 생존해 있어야 했다.

“세르게이, 리차드, 남궁명. 원영기 인족은 이 세 명 아닙니까?”

“살아있는 자는 왕웅, 리차드, 남궁명입니다. 호하의 딸을 죽이려고 했던 자는 이미 호하의 손에 죽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준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왕웅을 비롯한 다른 이들을 살려두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때 준혁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아마르곤이 말을 이었다.

“그자들뿐만 아니라 수사가 도망간 뒤 이곳에 나타난 수많은 인족들도 전부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예전보다 삼각비경에서 복귀하지 못하는 수사의 수가 많아졌다는 얘긴 들었었다. 그 이유가 목족의 분노 때문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던 사실.

준혁은 혹시나 삼각비경에 출입하지 말라고 자신이 경고하면 역효과가 날까 봐 사람들을 말리진 않았지만 내심 안타까운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전부 살아있다니?

“어째서입니까?”

짧은 물음이었음에도 아마르곤은 그 뜻을 파악했다.

“수사 때문입니다.”

“저 말입니까?”

“수사가 동족들을 구하러 올 가능성이 있었기에, 인족들을 전부 인질 삼아 잡아두고 있었던 겁니다.”

순간 준혁이 말이 없어지자, 아마르곤이 타이르듯 말하며 시선을 멀리 두었다.

“그러니 돌아가십시오. 그녀가 알아차린다면…. 그대는 봉인지에 통로를 만들 때까지 영원히 이곳에 머물러야 할 테니. 아니, 그 후에도 계속 말입니다.”

이미 준혁이 다 털어먹고 나온 봉인지에 대한 여왕의 욕심.

그것이 보물에 대한 욕심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향하고픈 마음임을 알고 있던 준혁은 아마르곤의 말에 씨익 웃어 보였다.

여왕이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면, 자신이 생각한 계획이 먹혀들어 갈 확률은 더욱 올라갈 테니.

“그녀를 만나야겠습니다.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준혁의 말에 아마르곤의 가늘던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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