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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70화 (170/408)
  • 170화. 전마족 (3)

    두 명의 완영기 수사가 눈앞에 버티고 있었지만, 준혁은 여전히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해 보실까?”

    “그대에겐 알 자격이 없다. 대장을 만나야겠으니 안내해.”

    준혁은 오히려 전보다 더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상대방 역시 그 정도 허세엔 기죽지 않는지, 여전히 히죽거리기만 했다.

    “여기서 나가면 도망가시려고 말입니까?”

    “장난은 그만두지. 화나려고 하니까.”

    껄렁하게 말하던 마족 수사는 준혁의 말에 배를 부여잡았다.

    “흐흘, 하하하, 정말 시건방이 하늘에 닿는군요? 동급 수사 두 명을 앞에 두고도 그리 차분하다니?”

    준혁이 바로 말을 잇지 않고 침묵하자, 사내는 신이 나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왜? 화를 내 보시지요? 아니면 이곳이 무너질까 봐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 겁니까?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곳 징벌의 방은 우리 수준으론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을 테니.”

    “징벌의 방?”

    “또한 그 누구도 이곳에서 생긴 일을 알 수 없습니다. 대장이라 하실지라도요. 흐흘. 그래서 수사를 이곳에 모신 겁니다. 혹시나 그 머리를 열어봤는데…. 진짜 고위 신분이라도 가진 자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흔적도 없이 치워버리려고.”

    사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실력을 행사하려는 것인지, 곰 같은 사내의 전신에서 진한 마기가 퍼져나갔다.

    동시에 준혁을 향해 비웃음을 흘리던 사내는 뒤로 천천히 물러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수행이 떨어지는 저는 빠져있겠습니다.”

    곰 같은 자는 완영기 후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기운을 내뿜자 토굴 전체가 은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준혁의 몸이 빛살처럼 움직이며 냉기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것, 보기 싫은 마족 놈들을 깡그리 죽여버리는 게 더 편하겠지.’

    슈아악-

    준혁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곰 같은 사내의 전면으로 순간이동 해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주변의 기온이 하강하며 상대의 전면에 서리가 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적들과는 달리, 이번엔 준혁보다 수행이 높은 완영기 중기 끝자락의 수사.

    그는 양팔을 교차해 주먹을 막아내더니 두 팔을 뿌리쳐 손에 낀 얼음들을 떨쳐냈다.

    그리고는 양팔을 빠르게 교차하자,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곰 같은 사내보다 두 배쯤 커다란 환영이 나타났다.

    환영이 몸을 일으키자 머리끝이 토굴의 천장과 맞닿으려 했다.

    그 순간, 토굴이 확장되며 수십 배 넓어졌고, 그냥 흙바닥, 흙벽이었던 토굴 전체가 매끈한 돌벽이라도 된 것처럼 기이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토굴 전체가 거대한 유리병 안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떠십니까? 이것이 바로 징벌의 방의 진짜 모습! 천영보급 보물로 만들어진 거대한 보호구 안입니다!”

    ‘천영보?’

    자랑하듯 소리치는 가벼운 사내를 무시한 채 준혁은 자신의 공격을 막은 곰 같은 사내에게서 수십 미터 떨어지며 인지경을 불러냈다.

    머리 위에 떠오른 인지경이 체내 영력을 폭발시켜주자, 귀원패로 온몸에 육각 타일을 만들어 낸 후, 식검과 분광소를 연속으로 쏘아 보냈다.

    탕-

    곰 같은 사내를 일도양단할 듯 날아가던 식검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고, 분광소는 여러 자루로 분화한 채 곰 사내의 시야를 어지럽히듯 주변을 날아다녔다.

    “흐음….”

    준혁은 마치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아 침울해하는 것처럼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공격을 음미하듯 양손을 까딱거리던 곰 같은 사내가 땅을 박차 쏘아져 나가며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 행동을 따라 하듯 거대한 환영이 맹렬하게 달려들며 주먹을 내리쳤다.

    쿠앙-

    하지만 곰 같은 사내의 환영이 주먹으로 준혁을 강타하기 직전, 준혁은 파앗하며 사라져 환영의 등 뒤에 나타났다.

    그 순간, 준혁의 발끝에서 금빛 실이 퍼져나가며 환영을 감쌌고, 이브람을 상대했을 때처럼 꽃잎들이 나타나 환영을 뒤덮어 버렸다.

    이번엔 힘을 아끼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진행되었다.

    오오옹-

    그렇지만 이브람을 상대할 때처럼 쉽게 환영을 무력화시킬 순 없었다.

    하다

    어디선가 기이한 공명음이 들리더니 환영은 푸석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곰 같은 사내가 준혁과 거리를 벌리자 그제야 그의 등 뒤로 다시 나타나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역시 전영술이 전투기술 중에서 최고급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있었구나.’

    수행이 낮은 원영기완 다르게 완영기 수사가 사용하는 전영술은 그 질이 달랐다.

    구속 기능이 있는 금빛 실과 그걸 보조하는 목족의 공능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 버렸다.

    “실망입니다. 그것이 다입니까? 목족의 힘을 사용하길래 조금 놀라나 했더니, 그 수준이 형편없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져 구경 중이던 또 다른 완영기 수사의 말이 뇌리에 박히듯 전해져왔다.

    그 순간 준혁의 눈동자에 옅은 회색 기운이 스쳐 지나가더니,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준혁은 그를 살짝 노려보다가 이를 악물고는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공간대에서 뼈가 앙상한 푸른 날개가 나와 준혁의 등 뒤로 날아가 안착했다.

    ‘감히 버러지 같은 마족 따위가 나를 모욕해!’

    준혁은 스스로가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영력을 등 뒤의 날개로 쏟아부었다.

    푸른 날개는 용천무가 남긴 세 가지 물건 중 그의 본명기.

    아직 연화를 시키지 못했기에 거부반응이 일어났으나, 준혁은 신경 쓰지 않고 강제로 법기를 발동시켰다.

    우우웅-

    그러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날개가 활짝 펴지며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고, 날개 표면에 푸른 장막이 뒤덮더니 어디선가 청아한 기운이 흐르는 듯 기분 좋은 냄새가 주변을 흔들었다.

    그리고 준혁이 날개를 발동시킨 순간.

    콰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준혁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뭐야! 어딜 간 거야!”

    곰 같은 사내가 준혁을 찾기 위해 주변을 훑는 동안, 경박스러운 사내는 손바닥을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 기이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사내 앞으로 네모난 벽돌 같은 것이 나타났는데, 사내는 그것을 움켜잡더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사내가 손에 든 것은 징벌의 방을 만들어낸 법기.

    벽돌 모양의 법기를 잡고 씨름하던 사내는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더니 곰 같은 사내를 향해 소릴 질렀다.

    “아직 안이야! 네 앞!!”

    그 순간 곰 같은 사내의 전면의 공간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하얀 냉기에 감싸인 손이 불쑥 튀어나와 사내의 배꼽 아랫부분을 파고들었다.

    푸욱-

    곰 같은 사내는 자신의 배가 뚫리자,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처럼 양손을 자신 앞에 나타난 손을 향해 내리쳤다.

    동시에 전영술로 만들어진 환영도 강렬한 기파를 쏘아내며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공격이 닿기도 전, 공간이 갈라지며 나타난 손 주위로 육각 타일들이 겹겹이 나타났다.

    퍽퍽-퍼억-

    곰 같은 사내는 손을 떨쳐내기 위해 온 힘을 모아 내리쳤지만, 육각 타일을 뚫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때에 사내의 배 속에서 금빛 실들이 주변으로 뻗어 나오더니 소규모 진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파앗-

    그러자 그것에 반응하듯 사내의 등 뒤에 나타났던 환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곰 같은 사내의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히더니 잠시 후엔 썩은 동태처럼 변해버렸다.

    사내가 순식간에 무력화되자, 그 앞 공간의 갈라짐이 커지더니 팔뿐만 아니라 온전한 준혁의 전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곰 같은 사내의 배 속에 손을 집어넣은 채 모습을 드러낸 준혁은 매우 지쳐 보였다.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있었고, 숨결마다 영기가 묻어나왔다.

    마치 사용해선 안 되는 힘을 사용한 것처럼 그 반작용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준혁이 동료의 배를 뚫어버리는 순간부터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내를 움직이게 했다.

    “감히!!”

    누가 보아도 준혁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사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렸다.

    ***

    준혁이 곰 같은 사내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무력화시킨 상태라고는 하나,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 단(丹)이 위치한 곳에 손을 쑤셔 넣고,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원영을 구속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저 술법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두 번 사용하긴 힘들 것이다!’

    경박스러운 사내, 나빌은 그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듬직한 동료가 너무나 쉽게 무력화되자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처음엔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징벌의 방을 빠져나가 대장을 불러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타 부대원의 상태를 보니 그자 역시 정상은 아닌 상태.

    마치 영력이 메말라 버린 것처럼 헉헉대는 걸 보면 무리한 술법으로 반서를 받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빌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준혁은 용천무가 남긴 법기의 힘을 무리하게 운용해 기습을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법기에 담긴 힘으로 상대방의 강인한 피부마저 무시하고 뚫어버렸기에 겉으로 보면 이미 승리를 점했다고 판단할 만한 상태.

    하지만 완영기에 이른 원영은 손쉽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원영을 잡아챈 순간 그것을 깨달은 준혁은 혈단법의 묘리를 이용해 금빛 실로 원영을 꽁꽁 싸매버렸다.

    하지만 그것까지가 한계, 만약 용천무의 법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원영을 소멸시킬 수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상 유지만 하는 것이 한계였다.

    상대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고심하며 멀리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도약한 나빌은 어느새 기다란 장창을 소환해내 준혁을 향해 찌르고 있었다.

    쇄애액-

    장창은 전영술을 펼쳤을 때처럼 흑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거력은 징벌의 방을 두 쪽 내버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준혁은 눈앞까지 다가온 상대방의 공격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살짝 비웃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빌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이미 기호지세. 상대방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취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버렸다.

    그리고 그 판단은 나빌을 한쪽 벽에 처박히게 했다.

    콰아앙!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발생하며 옆면을 강타당한 나빌은 어느새 준혁의 앞에 나타나 그를 보호하고 있는 자를 보게 되었다.

    “분신체?”

    그자는 상대방과 동일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마기가 흐르지 않는다는 것만 달랐다.

    “말도 안 된다. 완영기급 분신체라니.”

    보란 듯이 기운을 무식하게 흘려대는 분신체는 그 뒤에 서 있는 본체와 같은 수행. 나빌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떨었다.

    삼경이나 삼선의 경지에 오른 고위 수사가 완영기급 분신체를 만들어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완영기 초기인 자가 같은 완영기 초기 수행의 분신체를 만들어 내다니?

    나빌은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완영기 수행을 풀풀 날리는 분신체와 그 뒤에서 동료의 배를 뚫고 서 있는 본체를 보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이미 공격 의사는 사라진 뒤였다.

    “설마…. 선배님이십니까?”

    나빌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스스로 믿을 수 없는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연형기 이상의 수사라면 계면의 압박으로 저렇게 활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계의 어떤 술법은 수행을 강제로 낮춰 계면의 압박을 피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상대에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애초에 마족은 종족 특성상 수행을 강제로 낮추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

    준혁이 아무 말 없이 살기를 보내고, 그 앞에 선 분신체가 움직이려 하자, 나빌은 재차 물음을 던졌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신분을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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