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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68화 (168/408)

168화. 전마족 (1)

“월광지력!!”

이브람은 자신의 하체가 얼어가는 것보다 그런 반응을 끌어낸 기운에 경악했다.

성광지력, 태양지력과 함께 가장 다루기 어려운 힘 중 하나라는 월광지력.

지금껏 사용한 자들은 부지기수로 많았지만, 기운 자체를 복속시켜 자신의 의지 아래 둔 자는 단 한 번도 없다는 힘 중 하나.

이브람 역시 성광지력으로 다른 이들을 치료하고는 있지만, 법기의 힘을 빌리지 못했다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누구냐! 정체를 드러내!”

겨우 하계로 의심되는 이곳에 월광지력을 다루는 자가 있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자신들, 전마족의 전투원들을 봉인시킨 그자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봉인에서 풀려난 건 아닌가 싶었다.

그때 어디선가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오더니 공동의 입구 쪽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기척과 존재감이 사라진다 싶은 순간, 이브람은 상대가 어느새 자신의 등 뒤로 이동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마족의 전영술이군.”

전영술(戰影術).

환영술에 속하는 술법으로 전투에 특화된 환영을 만들어내는 걸 뜻했다.

마족 고유의 술법이라 알려져 있었지만, 인수 공통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전영술 자체가 마기를 이용하는 것이라, 마기를 이용한 공법을 익히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브람의 등 뒤에 나타난 준혁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영력을 발출했다.

팡-

준혁의 영력에 이브람의 환영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이브람의 환영은 한 등급 이상 차이 나는 준혁의 영력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내더니 황급히 몸을 틀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 모습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발을 가볍게 굴렀다.

방심한 듯 보이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

“어딜.”

준혁의 발끝이 바닥을 짚자, 바닥에서 영기파동이 일며 작은 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마족의 환영이 원안에 들어온 순간.

휘리릭-

바닥에서 옅은 분홍색 꽃잎이 회오리처럼 일어나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마족의 환영은 꽃잎 회오리에 갇히자 전신으로 흑색 아지랑이를 피워내며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쉬이익-

공중에 휘날리는 꽃잎들을 쳐내며 흑색 기운이 가득한 주먹이 지근거리에서 날아왔지만, 준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움직여 회피했다.

그리고 환영이 또 한 번 기운을 방출하려는 순간. 원통형의 공간 안 시야를 가득 메운 꽃잎이 환영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어느새 환영은 틈 하나 없이 꽃잎에 파묻혀 버렸다.

이내 흑색 기운이 점점 줄어들더니 천천히 움직임이 멈췄고, 잠시 후엔 동상처럼 완전히 정지했다.

“말도 안 돼…. 이런 식으로 행동을….”

“전영술은 잘 구경했으니. 이제 당신 머릿속도 구경해 봅시다.”

환영의 행동이 완전히 멈추자, 이브람의 발밑으로 진법이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감촉이 그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이브람은 창백한 얼굴로 겁에 질려가고 있었다.

***

이브람의 정신이 구속되자, 꽃잎으로 잡아두었던 환영이 푸석하며 사라졌다.

준혁은 손을 살짝 저어 꽃잎들을 회수해 흡수하고는 이브람의 미간에 대고 있던 손가락을 떼어냈다.

하지만 정신부의 효과를 내는 진법을 발동하기 전,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 수결을 맺었다.

“종족 특성인가, 아니면 미리 준비를 한 것인가.”

이브람의 머릿속은 금제 비슷한 것이 펼쳐져 있었고, 그것이 정신술로부터 의식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크게 어려움이 있진 않았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이틀 후.

진법을 이용해 치료 비슷한 과정을 거친 준혁은 이브람을 보호하고 있던 금제를 전부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곧장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브람.

원영기 마족의 이름은 이브람이었고, 육구(六九) 공격대의 일원으로 구지대륙을 침공한 마족의 공격대대원이었다.

“이곳에 봉인된 게 주작이었다니.”

구지대륙의 사신 중 천봉족의 수장인 주작을 저지하기 위해 행동하던 육구 공격대.

그들은 일(一) 공격대부터 팔팔(八八) 공격대까지 있었고, 각각이 특수한 임무를 띤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육구 공격대가 맡은 건, 최전방에서 주작이 펼쳐놓은 보호 결계에 피해를 주는 일.

하지만 임무 도중 알 수 없는 힘에 휩쓸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에서 깨어났다는 것이었다.

깨어나 보니 극소수의 고위 수사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정신이 붕괴 직전까지 간 상태였고, 이브람은 그런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별 행동을 하는 중이었다.

준혁은 이브람이 차고 있던 공간대 팔찌를 회수하고 그의 품에 있던 네모난 법기도 수거했다.

“성광지력을 담을 수 있는 법기….”

성광지력에는 정화의 힘이 있었다.

동료들과 수하들의 정신을 붕괴시킨 원인이 주작의 힘 때문이란 걸 알아낸 이브람은 성광지력에 내포된 정화의 힘으로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브람은 구지대륙의 침공 이유라든지, 마족 내의 자세한 사정 등 봉인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을 알진 못했다.

그들 종족은 영수족보다 더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움직였고, 일정 자리에 오르기 전까진, 무조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하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잡다한 지식은 얻지 못했음에도 더 중요한 것들은 알 수 있었다.

첫째, 갑자기 생겨난 통로가 매우 불안정하다.

둘째, 마족들은 봉인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과 어떤 물건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셋째, 마족들이 더 이상 영수족을 공격하지 않은 건, 영수족이 중경으로 넘어가 만든 결계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넷째, 마족은 포획한 영수들로부터 각종 정보를 취득했다. 그중 주작이 봉인지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자신들만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에 환호했다.

다섯째, 영수족에게서 얻은 열쇠만 처리한다면 두 번 다시 주작은 풀려나지 못한다.

여섯째, 봉인되기 전 주작이 만든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족장에게서 받은 물건을 이용한다면 봉인된 주작의 힘을 ‘문’ 너머에서 가져다 쓸 수 있다.

준혁은 전신이 언 채 멍한 눈을 하고 있는 이브람을 바라보다 월광지력을 움직였다.

그 순간, 이브람의 몸에 생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생겨나더니 이브람의 단(丹)이 위치한 곳을 향해 폭사 되었다.

푸욱-

얼음송곳은 단숨에 이브람의 원영을 꿰뚫어 버렸고,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

이브람을 통해 각종 사실을 알게 된 준혁은 봉인지에 갇힌 존재가 사신인지 아닌지 알아만 보겠다는 계획을 변경했다.

순간 준혁의 눈동자에 회색빛이 감도는 듯하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자의 말대로라면 이번에 열린 문은 주작이 잠든 봉인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아홉 종족이 가지고 있던 열쇠가 어떤 식으로 발현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원래는 주작의 봉인지로 통로가 생겼어야 했던 것이 방향이 틀어져 마족들이 봉인되어있던 곳과 연결된 것.

정보를 바탕으로 예측을 해보자면, 마족들의 봉인지와 연결된 문이 닫히는 순간, 주작에게 갈 방법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

그 사실을 알게 된 준혁은 알 수 없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통로가 닫히기 전에 봉인지에 숨겨둔 열쇠를 회수해야 한다.’

바람꽃을 구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최우선은 주작을 깨울 수 있는 열쇠를 회수하는 것.

그리고 열쇠를 회수하다 보면 당연히 바람꽃을 구할 수 있을 테니, 산들바람과의 약속도 지킬 수 있을 터였다.

마족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숨어드는 것이 위험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선계로 향하는 길이 막히는 걸 지켜보기보다는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

준혁은 이브람의 공간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전부 펼쳐놓고, 그중 공법이 적힌 옥간을 집어 들었다.

‘이걸 익힌다면….’

강제로 기운을 내뿜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준혁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 말인즉, 마족의 공법만 익힌다면, 외형적으로 조금 이상해 보일지라도 마족인 척 연기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현재 고위 수사를 제외한 대부분 마족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조심만 한다면 무리 없이 마족들을 속여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시간을 더 두고 천천히 움직여야 하나.’

순간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통로가 수백 년 동안 유지될 수도,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닫힐 수도 있었기에 고개를 털어 걱정을 날려버렸다.

“그래. 모든 일엔 때라는 게 있는 법.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주작의 힘은 영원히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선계로 올라가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계면의 압박을 이겨낼 술법도 구할 수 없고…. 백호와의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되겠지. 움직여야 한다.”

결심을 굳힌 준혁은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 대며 이브람이 남긴 마족의 공법을 머릿속에 주입했다.

그렇게 준혁은 공법을 익히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고, 신비경엔 고요만이 찾아왔다.

얼마나 급했는지 평소였다면 공법을 익히기 전 주변에 보호 진법을 펼쳤을 테지만, 이번엔 그것마저 생략해 버렸다.

아니, 그런 걸 따지지도 않을 만큼 공법을 빨리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

사흘 후.

공법서에 적힌 마족의 공법을 익힌 준혁은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어 마른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탁기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게 되다니.”

공법을 익히기 시작한 준혁은 공법을 운용하기 위해 마기를 흡수하려 했었다.

예전이라면 마기 자체를 찾을 수가 없을 터였지만, 지금은 비경 전체에 마기가 만연하게 퍼진 상태.

숨 한번 크게 들이쉰다면 바로 공법 운용이 가능했다.

마기를 직접 흡수한다면 마화(魔化)라는 부작용을 겪을 순 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을 따질 때가 아닌 상황.

마화로 인한 부작용은 나중에 천천히 해소하면 되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마기를 흡수하기 전, 그동안 혈단법을 이용해 기운을 흡수하면서 쌓였던 탁기가 공법에 반응해 버렸다.

탁기는 자신이 마기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공법에 녹아들었다.

심지어 마기가 없다면 절대 익힐 수 없다는 전영술까지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이제는 탁기를 억지로라도 모아야 하겠어.’

더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탁기를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랬기에 혈단법을 익힌 초반에 탁기를 이용해 혈피갑을 만들 때를 제외하고는 지금껏 정혈로 꽁꽁 싸맨 후 몸속에서 다른 해를 입히지 못하게 막아놓았었다.

하지만 전영술처럼 순수한 마기만을 필요로 하는 술법을 사용하고 나면, 탁기는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조금씩 소비되어 사라졌다.

이 상황에 준혁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동안 자신의 주 공법인 혈단법의 유일한 약점으로 남아있었던 탁기.

그것이 해결된다는 건 너무나 기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탁기가 전부 사라지면 마족 공법을 운용할 수가 없었기에, 이제부턴 단약으로 최대한 탁기가 생기지 않게 안전하게 수련하던 걸 멈추고, 법기에서 직접 영기를 흡수하거나 영수를 잡으러 다녀야 할 판이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탁기가 마기처럼 반응하는지 이유를 찾으려던 준혁은 결국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리고는 당장이라도 마족의 거주지로 달려가려던 계획을 멈추고는 공간대에서 상급 법기를 꺼내 들었다.

‘우선 탁기를 더 쌓아야 한다. 지금 가진 양은 너무 적어.’

한쪽에 놓인 이브람의 시체를 이용해 혈정단을 만들어 먹으면 탁기가 훨씬 많이 생길 걸 알았지만, 이제 방법이 생긴 이상 굳이 위험하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마족의 시체로 만든 혈정단을 통해 탁기를 흡수하면 마기까지 동시에 흡수할 테니, 그건 사양이었다.

계획을 굳힌 준혁은 좌정한 자세 그대로 공간대에서 꺼낸 법기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수결을 맺자, 원영이 한 손에는 상급 법기를, 다른 손에는 식검을 쥔 채 긴장한 얼굴로 몸에서 빠져나왔다.

준혁은 원영이 나타나자 혈단법을 운용했고, 몸 주위로 금빛 실이 뻗어나가며 기이한 문양과 함께 진법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원영은 긴장한 표정을 한 채 무언가 불만스러운 듯 준혁을 쏘아보았다.

그러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누가 보아도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을 했다.

‘??’

원영의 생소한 태도에 준혁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다 원영의 상태를 파악하려 손끝을 움직이려는 그때.

부스럭-

신비경의 통로 끝 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기감을 통해 전해졌다.

그 기운은 이브람과 마찬가지로 진한 마기를 품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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