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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62화 (162/408)

162화. 다시 찾은 눈꽃 비경 (2)

바람처럼 동굴을 빠져나와 부락의 초입으로 이동한 산들바람.

그녀는 자신의 족인들에게 포위당하듯 둘러싸인 하얀 호랑이를 보고는 번개처럼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큰둥아!”

와락-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준혁으로 인해 신기함 반, 반가움 반에 몰려들었던 여우들은 족장의 등장에 뻘쭘하게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큼, 흠.”

“족장. 족인들도 보는데 크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준혁에게 파묻히듯 안겨 있던 산들바람은 이제는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냄새를 찾아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만족한 듯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이 냄새…. 진짜 큰둥이 맞구나.”

준혁은 격하게 반겨주는 산들바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다가 족장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녀를 살짝 떼어놓았다.

“오랜만입니다. 수사. 이렇게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던 거야? 언니랑 내가 안 찾은 곳이 없어.”

“멀리 도망쳤었습니다. 그땐 나를 위해…. 고마웠습니다.”

“내가 미안했어. 그러면 안 됐었는데.”

삼청조와 계약해도 목숨에 아무 지장이 없었기에 그녀들이 했던 행동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랬기에 준혁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족장은 무슨 말입니까? 바람꽃은 어쩌고?”

준혁이 알기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족장은 결단기 수사 하나가 따로 역임하고 있었고, 바람꽃과 산들바람은 대장로라 불렸다.

만약 족장의 자리가 비어 누군가 대신하고 있는 것일지라도, 현명한 바람꽃이 그 자리를 맡아야 했지,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산들바람은 어울리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적호족에 몰래 잠입해 정보라도 얻었을 테지만, 동생의 안위가 급했기에 준비도 없이 바로 모습을 드러내 아는 것이 없던 준혁은 어리둥절해했다.

바람꽃이란 말에 산들바람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의 뒤로 적호족의 다른 족인들의 얼굴에도 수심이 깃들었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준혁을 불렀다.

“대장!!”

“대장님!”

면면을 살펴보니 시체수거반을 운영할 때 자신이 데리고 있었던 여우들.

그들이 준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일을 팽개친 채 달려와 준 것이었다.

준혁 역시 반가움에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얼굴이 수척해진 산들바람에게 눈짓으로 이동할 것을 권했다.

아무래도 바람꽃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나눠야 할 것 같았지만, 분위기상 수많은 족인들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닌 듯싶었기에.

준혁의 신호를 알아차린 산들바람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준혁의 털을 한 움큼 쥔 채로 몸을 돌렸다.

“가자 큰둥아. 내 처소로 이동해서 얘길 나누자.”

그 순간, 몸을 돌리는 산들바람의 반대편 손에 쥐어진 삼청조 조각상이 준혁의 눈에 들어왔다.

***

처소에 들어서자 산들바람은 청호의 안부를 물었다.

“흰둥이는 어디 가고 큰둥이 너뿐이야? 그때 이후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야? 내가 외경까지 안 가본 곳이 없는데.”

그녀는 준혁이 영수라 알고 있었기에, 비경 밖으로 나갔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전에 제가 마을 호수에서 나온 걸 알지 않습니까? 그곳이 유적과 연결돼 있는데. 그곳에 숨어 수련했습니다.”

준혁이 적당한 핑계를 대자, 산들바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쩐지~’하며 납득했다. 그러다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고 보니…. 큰둥이 너…. 수행이.”

준혁은 미약하게 흘려보내던 기운을 강하게 방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아 선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됐지요. 전부 산들바람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은 무슨…. 해준 것도 없는데….”

“목숨을 걸고 저를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도 없지 않겠습니까?”

준혁이 옛 추억에 잠긴 듯 따사로운 미소를 짓자, 산들바람이 부끄러운 듯 몸을 꼬았다.

“그게 뭐. 큰일이라고…. 그리고 말 편하게 해. 같은 원영기 수사잖아.”

여전한 산들바람의 태도에 피식 웃은 준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꺼냈다.

“그래. 그럼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 새 조각상은 어디서 난 거야?”

산들바람은 깜박하고 있었다는 듯, 화들짝 놀라더니 준혁에게 삼청조의 분신체를 내밀었다.

“맞다! 이걸 인족에게서 찾았어. 그때 삼청조가 갑자기 사라져버렸지만…. 언니는 혹시 네가 몰래 계약해서 데려간 게 아니냐고 의심했었거든. 그래서 혹시나 그것들이 네 행방을 알까 해서 가둬뒀지.”

삼청조의 일부분인 분신체를 건네받은 준혁이 삼청조 본체를 꺼내자, 둘은 스르륵 하나로 뭉쳤다.

산들바람이 놀라는 눈빛을 하고 있자, 준혁은 사실을 말해줄까 고민하다가 혹시 모를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어. 예전에 잃어버렸거든.”

“역시! 언니 말이 맞았구나! 큰둥이 네가 계약을 한 거였어!”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주며 재빨리 본론을 꺼냈다.

“가둬 뒀다는 인족들…. 내가 한번 볼 수 있을까?”

“응? 왜? 인족에 관심 있어?”

“어떤 경로로 내 삼청조를 구했는지 알아봐야지.”

“아!”

준혁의 부탁에 산들바람은 흔쾌히 허락하며 앞장섰다.

“그럼 지금 가자. 내일이면 그것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거든.”

제물이란 단어에 준혁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지만, 순식간에 신색을 회복했다.

“제물? 어떤?”

“얘기하자면 긴데…. 그게 말이야.”

준혁은 감옥으로 사용하는 산맥의 초입으로 이동하며 산들바람에게서 현 사태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비경 밖으로 나가길 염원했던 영수족.

총 아홉 부족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경쟁하며 서로를 배척했지만, 비경을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만은 모두가 같았다.

그리고 그중 사안족은 그 어떤 부족보다 절실하게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며 힘의 균형을 무너트릴 정도로 성장한 사안족은 결국 강제로라도 비경을 벗어나려 계획했다.

그리고 그 계획의 핵심은 오래전부터 아홉 종족에게 내려오던 열쇠였다.

-아홉 종족이 하나 된다면 문이 열린다.

전설처럼 구전으로 전해오던 내용을 바탕으로 아홉 종족이 가지고 있던 똑같이 생긴 법기가 문을 여는 열쇠일 거라고 판단한 사안족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열쇠를 모으게 된다.

“그 법기는 생긴 건 평범한데…. 수련을 도와주는 기능이 있어서 각 부족에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거든.”

법기의 모양과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들은 준혁은 그것이 자신의 공간대 속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법기와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총 네 개.

쌍칼처럼 생긴 두 개가 한 쌍인 법기라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각각이 하나의 온전한 신물인 네 개의 법기였던 것.

‘한 쌍은 차경수에게서 얻었고…. 나머지는 전 울릉도주였던가?’

준혁이 옛 기억을 회상하고 있을 때, 산들바람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사안족은 결국 다섯 개밖에 모으지 못했어. 네 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거든.”

‘역시! 내가 가진 게 그 열쇠가 맞구나.’

결국 남은 네 개의 열쇠를 찾지 못한 사안족은 그렇게 문을 여는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평생을 연구하며 보낸 시간이 거짓은 아니라는 듯, 남은 네 개의 열쇠를 대체할 대체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결국 문을 열어버리고야 만다.

“그 뒤론…. 내경이 마기에 잠식되고…. 그곳에서 나온 마족들과 전쟁이 시작됐어.”

그 와중에 사안족의 원영기 후기 수사를 비롯한 각 부족의 대표급 수사들이 실종되거나 죽어버렸고, 바람꽃 역시 소식이 묘연하다는 것.

부족의 최고수를 비롯한 수많은 수사가 무참히 죽어 나가자, 아홉 부족은 내경에서 도망가 중경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론 아홉 부족이 똘똘 뭉쳐 내경에서 중경으로 이어지는 곳에 거대 결계를 만들고 방비하며 겨우 버텨가는 처지였다.

하지만 결계를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이 소비됐기에 영석은 물론이고 급기야 외경에서 사냥 중인 인족들까지 잡아다가 영기를 뽑아내 결계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마저도 완벽하지 못해, 수많은 마족이 결계를 넘어오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마기가 퍼져나가는 걸 막은 게 이 정도야…. 결계를 만들지 않았다면 우린 이미 전멸했을지도 몰라.”

설명을 끝낸 산들바람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다 내경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망할 뱀 눈깔 놈들! 이게 다 그놈들 때문이야!”

‘설명으로만 듣자면 마계로 이어진 문은 아니다. 이곳에 영수족이 있던 것처럼, 그곳에 소수의 마족이 살고 있었던 것뿐. 그럼 마경인 건가?’

준혁이 산들바람의 얘기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동굴로 들어선 둘은 푸른 막으로 싸인 감옥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옥 안, 한쪽에 모여 앉아있는 세 여인을 보고는 방금까지 했던 생각은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나연아, 이화야,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사쿠라 수사….’

준혁은 사쿠라에게 삼청조를 준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결계에 영기를 보내는 제물로 사용한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하나의 영석처럼 이용된다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기한이 길어지면 영근에도 영향이 가기에 후유증도 심했다.

하나뿐인 동생과 제자.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쿠라까지.

준혁은 눈앞의 세 여인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준혁이 말없이 감옥 안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자, 산들바람이 흥! 하고 소리를 내었다.

“혹시나 큰둥이 너와 연관된 인족들인가 해서 가만히 뒀었는데, 이젠 본때를 보여줄 거야. 훔친 물건이었으니 그동안 대답을 제대로 못 했지!”

씩씩거리는 산들바람의 목소리에 세 여인이 고개를 돌리자, 준혁은 손짓으로 산들바람의 입을 막았다.

“산들, 내가 저들을 심문 좀 해봤으면 하는데.”

“물론이지 마음대로 해. 어차피 살아만 있으면 제물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산들바람의 태도에 준혁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동굴 바깥 방향을 향해 손짓했다.

“내가 비술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잠시 혼자 있을 수 있을까? 우리 백호족의 비전이라….”

준혁의 부탁에 산들바람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굴 밖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멈칫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어디 안 갈 거지?”

“걱정 마.”

“그럼 끝나고 아까 내가 머물던 곳으로 와.”

말을 마치고 후다닥 사라진 산들바람의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잠시 후, 기감으로 주변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준혁은 감옥 안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세 여인 중 사쿠라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쿠라 수사. 수고 많았소.

준혁의 전음에 눈앞의 하얀 호랑이를 보고 ‘그분이 키우던 청호라는 영수와 닮았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던 사쿠라는 흠칫 놀라 잠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진정됐는지 전음이 준혁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설마…. 최 수사예요?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소. 그대 덕분에 나연이와 이화 모두 안전할 수 있었으니, 내 어찌 감사하다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 정말 감사하오.

-아니에요. 저에게도 제자 같은 아이들인걸요. 오히려 이렇게 붙잡힌 게 죄송해요.

-이곳에 모인 원영기 영수가 몇인지 알거늘…. 그대가 혼자였다면 이리 잡혔겠소?

-그건….

사쿠라가 말없이 감옥 밖 호랑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 최나연이 무언가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언니? 지금 저 영수와 대화하는 거예요? 청호와 닮은 저….”

그 순간, 준혁에게서 영력을 뻗어 나오더니 최나연의 입을 막아버렸다.

기감으로 주변을 파악했다고는 하나, 혹시 모를 감시가 있을 수도 있는 법.

준혁은 만에 하나를 생각해 천이화의 입까지 막아버리고는 사쿠라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늘 밤 탈출하십시오. 세 사람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게 조처를 해줄 테니. 저 아이들에겐 사실을 알려주지 말고.

혹시나 영수족 부락에 오빠 혼자 남았다며 최나연이 돌발 행동을 할 수도 있었기에 준혁은 사쿠라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아 그리고. 도천과 사유리도 함께 있었다고 알고 있소이다. 그들의 행방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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