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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61화 (161/408)
  • 161화. 다시 찾은 눈꽃 비경 (1)

    세상이 반전되는 느낌과 함께 눈꽃 비경의 외경으로 이동된 준혁은 농밀한 영기 사이로 흐르는 검은 기운에 눈살을 찌푸렸다.

    영기가 푸르고 청량한 느낌이라면, 검은 기운은 무겁고 끈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귀기처럼 전혀 다른 성질의 기운은 아니었다. 성질만 다르지, 본질은 영기와 비슷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준혁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지만, 이곳에 오기 전 호왕족의 고서보관소에서 보았던 선계의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기운.

    “마기(魔氣)인가….”

    호흡을 크게 들이마셔 영기와 섞여 있는 기운을 음미해본 준혁은 숨을 도로 뱉어내고는 혀를 찼다.

    “어찌 비경 안에 마기가 흐른단 말인가. 이것은 마계(魔界)와 연결된 선계의 마운대륙(魔雲大陸)이 아니면 마경(魔境)에만 존재하는 기운인 것을….”

    마경은 비경과 비슷한 곳이었다.

    마계의 특정 공간이 공간의 비틀림으로 다른 곳과 이어진 장소.

    준혁은 눈꽃 비경 외경에 만연하게 퍼진 기운을 느껴보다가 삼청조와 식검을 불러냈다.

    그리고는 두 마선을 공명시키자 특별한 변화 없이 크기만 조금 커진 삼청조로 변하였다.

    “사쿠라 수사. 내 말 들립니까?”

    하지만 식검을 이용해 능력치를 온전하게 만들었음에도 삼청조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허공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준혁이 실망한 기색으로 삼청조를 식검과 분리하려 손을 저었다.

    하지만 둘을 분리하기 전. 평소에는 텅 빈 것처럼 멍하던 삼청조의 눈빛이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설마?”

    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삼청조에게 집중하며 기운을 증폭시켰다.

    그러자 삼청조의 날개가 삐걱대듯 움직이더니 한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세차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조금 후, 삼청조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느낌에 이 현상이 무엇 때문인지 눈치챈 준혁은 속도를 조절하며 삼청조의 뒤를 쫓기 위해 움직였다.

    “나머지 분신들과 하나 되려 하는 거구나!”

    세 마리로 분열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삼청조.

    그것이 식검과 공명하자, 분열체들을 찾아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로 돌아가려 움직이는 것이었다.

    ***

    삼청조의 뒤를 쫓아 외경을 가로지르던 준혁이 처음 마주친 생명체는 인족 수사도 아니었고, 영수족도 아니었다.

    사람의 외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지만, 검보라색 피부에 이마 한가운데 길쭉하게 자라 있는 뿔.

    고서에서 마족(魔族)이라 명시되어있던 종족이었다.

    준혁 앞을 가로막은 마족은 결단기 초기 수행을 가지고 있었는데, 눈동자가 몽롱한 것을 보면 정상은 아닌 듯싶었다.

    “크르르….”

    준혁은 자신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법기를 날려대는 마족의 공격을 간단히 회피했다.

    그리고는 영력을 뭉쳐 손쉽게 제압한 후, 이마를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잠시 후, 상대의 머릿속을 확인해본 준혁은 부르르 떨며 바닥에서 꿈틀대는 마족을 내버려 둔 채 자리를 벗어났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알 수가 없군.”

    그 후, 다시 삼청조 뒤를 쫓아 날아가던 준혁은 간간이 마족으로 보이는 수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머릿속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기억 속에선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외경과 중경을 가로막는 산맥 앞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고, 불필요한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그렇게 외경을 지나쳐 중경에 들어선 준혁은 영기 속에 섞여 있던 마기가 한층 진해졌다는 걸 느꼈다.

    겨우 산맥 하나를 경계로 나누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체감되는 기운이 확연히 달랐다.

    또한 어둑한 느낌이 그저 기운만으로 끝난 것이 아닌, 일정 부분 시야마저 차단하고 있었다.

    “어둠에 잠식당했다더니. 이런 뜻이었군.”

    하지만 마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삼청조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날아갔고, 준혁도 말없이 그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던 준혁은 중경에서 내경으로 이어지는 초입 부근에서 삼청조를 세워야만 했다.

    그곳엔 내경 안쪽에 있어야 할 영수족 부락이 대규모로 밀집해 있었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닌 아홉 종족 전부가.

    ***

    하늘처럼 높은 산맥을 등지고 수백 개가 넘는 움막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수많은 영수족 중 적호족이 모여 있는 부락.

    그곳의 가장 심처이자 족장이 머무는 움막에서 한창 고성이 오가는 중이었다.

    “족장이시여! 언제까지 그 인족 놈들을 방치하실 작정이십니까?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입니다! 당장 재료로 사용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눈이 가늘고 흰색 눈썹이 가득한 여우의 얼굴에 몸은 사람의 형상을 가진 적호족 수사가 몸을 수그린 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어설프게 만든 의자 위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리는 소녀가 있었다.

    “안 돼.”

    “안 된다는 말씀만 하지 마시고 이유라도 알려주십시오. 저희 사정이 여유롭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아무리 설득해도 새롭게 족장의 자리에 올라간 소녀의 마음을 움직이긴 힘들다고 생각한 부족원은 결국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내고 말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바람꽃님이 무슨 짓을 당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한데 족장께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함에도…. 어찌 인족들을 감싸고 돈단 말입니까?!”

    바람꽃이란 이름에 새롭게 족장의 자리에 오른 소녀. 산들바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감싸긴 뭘 감싸!! 나도 사정이 있다고!”

    “그러니 그 이유를 알려달란 말을 드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익…. 알았어. 내일 소집이 있기 전까지 그놈들을 어떻게 할지 알려줄게.”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그래! 알겠다고!”

    산들바람의 대답에 흰색 눈썹 적호족인이 한 번 더 확답을 듣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움막에 혼자 남은 산들바람은 한참 동안 끙끙대다가 움막을 나선 후, 산맥 초입의 동굴로 이동했다.

    동굴 앞에 도착한 후, 그곳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족인들의 인사를 받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기다란 통로에 여러 동굴이 거미줄처럼 이어진 구조였는데, 각각의 동굴 끝엔 푸른 결계가 마치 감옥처럼 다양한 수사들을 가두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안쪽으로 이동한 산들바람은 푸른 결계 너머 감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세 명의 인족 수사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도 말할 생각이 없어? 언제까지 내가 시간을 줄 거라 생각해? 계속 입을 다물겠다면…. 너희들도 다른 인족들처럼 결계를 유지하는 재료로 사용할 거야.”

    산들바람의 나근나근한 협박에 감옥 안에 갇힌 세 명의 수사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여인이 대표로 대답했다.

    “도대체 뭘 말하라는 거지? 이미 다 말해줬잖아? 차라리 정신부라도 사용해! 궁금한 게 있다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라고!”

    인족 수사가 신경질적으로 소릴 지르자, 산들바람은 입을 벌려 하얀빛으로 둘러싸인 구슬 같은 것을 꺼냈다.

    그리고 입김을 불자 하얀빛이 사라지더니 구슬이 있던 자리엔 나무를 깎아 만든 것처럼 생긴 새 조각상이 나타났다.

    “다시 물을게. 이 새의 주인. 백호족의 큰둥이. 그를 알고 있지?”

    산들바람이 꺼낸 조각상, 그건 사쿠라가 가지고 다니던 삼청조의 분신체였다.

    오랜 세월 큰둥이를 그리워하던 산들바람.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로운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의 인족 수사의 말대로 강제로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쉽게 자신의 의문이 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큰둥이와 깊은 인연이 있는 자들이라면 정신부의 부작용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 때문에 훗날 후회하게 될 수도 있는 일.

    그랬기에 산들바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부족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족 수사들을 가둬두기만 한 상태였다.

    ***

    처음 눈꽃 비경에 문제가 생겼을 당시만 하여도, 사쿠라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수사의 삶이란 언제나 고난과 시련이 함께해야 하는 법.

    거기다 결단기 중기에 오른 사유리를 함께 보냈기에 비경의 위험지역인 내경으로 가는 것만 아니면, 겨우 눈꽃 비경 외경에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얼마 뒤 무위각주 도천이 최나연을 모셔온다며 떠났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제야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바로 눈꽃 비경으로 향했다.

    눈꽃 비경에 들어온 후에야, 이상한 기운이 만연해있다는 걸 깨닫고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움직이지 않은 걸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사치일 뿐, 사쿠라는 곧바로 최나연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처음 최나연을 만났을 때 주었던 반지.

    사실 그것은 한 쌍으로 만들어진 반지였고, 법기가 서로 감응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

    사쿠라는 반지의 기운을 탐색해 외경을 지나 중경까지 한달음에 달려갔고, 어마무시한 영수족 부락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준혁의 동생의 안전이 우선이었기에 부락 안으로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

    그 결과, 최나연과 천이화를 만날 수 있었지만, 영수족들에게 둘러싸여 사로잡히고 말았다.

    만약 그녀 혼자였다면 도망치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준혁이 전해준 화신목영과 목족의 술법으로 한층 강해진 사쿠라에게 원영기 초기 중기 수사들의 감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달아나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최나연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달아날 수가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그 후, 영수들에게 붙잡혀 가진 물건을 전부 강탈당하게 되었다. 결국 영력이 구속당한 채 감옥에 갇힌 사쿠라는 최나연에게 여러 가지 사정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그녀들이 영수족에게 잡힌 건 중경 초입이었다는 것.

    쫓기는 과정 중에 도천까지 합류해 반항했지만, 결국 도천과 그의 수하, 그리고 사유리는 어딘가로 끌려갔고 두 사람만 따로 잡혀 왔다는 사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결단기급 수행을 가진 인족들은 특수한 결계로 잡혀가 제물로 쓰이는 것이었고, 최나연과 천이화는 수행이 너무 낮았기에 우선 따로 분류했다가, 급할 때 사용하려고 했었던 것이었다.

    두 사람과 함께 영력이 구속된 채 감옥에 갇히게 된 사쿠라는 그녀들의 말대로라면 자신 역시 제물로 쓰이게 될 것임을 예상했다.

    그리고 사쿠라는 제물이라는 단어에서 오래전 설토족에게 붙잡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었다.

    영수들이 특수한 돌을 이용해 인족의 영기를 빨아가는 행위.

    그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쿠라가 맞이한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제물로 끌려가기는커녕, 영수족의 족장으로 보이는 원영기 수사가 나타나 자신을 취조하기 시작한 것.

    그녀가 묻는 건 매우 황당한 질문이었다.

    삼청조라고 알고 있는 새 조각상.

    그것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 영수족 족장.

    그리고 큰둥이라는 이상한 이름.

    영수족 족장의 질문에서 그녀가 어떤 이를 찾고 있고, 그것이 삼청조의 주인이라는 것까진 빠르게 파악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상대의 말에 따르면 삼청조의 주인은 하얀 털을 가진 영수.

    그러나 준혁은 분명 인간이었다.

    혹시나 그녀가 말한 영수가 청호를 말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다 보니 어느새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면 너희들도 내일부턴 재료로 사용될 거야.”

    “도대체 큰둥이가 누굴 말하는 건데?! 내가 아는 삼청조의 주인은 우리와 같은 인족이야. 최준혁이란 이름을 가진 인족 수사라고!”

    말을 들어 먹지 않는 꼬마 소녀를 보며, 사쿠라가 소리를 꽥 질렀다.

    이미 수십 번도 더 비슷한 대화가 오갔었기에, 다음에 나올 말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를 죽이고 빼앗은 거라면…. 너희는 제물로 사용되는 게 끝은 아닐 거야.”

    사쿠라는 영수 족장의 말에 흥! 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음대로 해. 누가 겁낼 줄 알아?”

    사실 사쿠라는 영력이 구속당한 상태긴 했지만, 완벽한 구속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부터 탈출하기 위해 계속 준비하고 있었던 것.

    다만 최나연과 천이화를 데려가야 했기에, 시일이 오래 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 시기가 머지않았기에 내일부터 제물로 사용할 거라는 협박은 전혀 먹혀들어 가지 않았다.

    그때, 동굴 안쪽으로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자는 갈미라는 이름의 결단기 수사로, 오래전 준혁과도 안면이 있는 자였다.

    “산들바람! 아니, 족장! 그가 돌아왔소이다!!”

    갑작스러운 갈미의 등장에 산들바람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그라니? 누굴 말하는 거야?”

    만약 그녀라고 했다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언니, 바람꽃을 지칭하는 말이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라니?

    “우리와 함께 삼청조를 잡기 위해 그곳으로 갔던 그 말이오! 설토족과의 전쟁에서 후방을 담당했던 바로!”

    갈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산들바람의 신형이 푹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산들바람이 사라지고 그 여파로 훈풍이 동굴 안에 맴도는 사이, 갈미는 하지 못한 말을 끝맺음 할 수 있었다.

    “그! 말이오. 족장이 큰둥이라 부르던 바로 그!! 어?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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