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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59화 (159/408)
  • < 159화. 이글대는포효 (2) >

    인족들의 세상으로 떠나기 전까진 제사장의 거처를 사용하기로 한 준혁은 축제를 뒤로한 채 고서보관소로 향했다.

    고서보관소 인근에 도착해서야 자신의 뒤를 아무 말 없이 따르던 청호에게로 고갤 돌렸다.

    “청호야.”

    “예. 주···. 형님.”

    호칭이 어색한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청호를 보고는 피식 웃은 준혁은 시선을 멀리 축제가 벌어지는 제단 방향으로 향하며 말을 이었다.

    “저곳에서 어울리고 싶으냐?”

    “... 그것이.”

    “그리해도 된다. 처음 만난 족인들이니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다만 내 처지를 이해해주려무나. 혹 나를 떠나고 싶으냐?”

    봉인구역에서 나온 준혁은 기감으로 이글대는포효를 찾으며 호왕족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청호를 예의주시했다.

    눈을 뜨자마자 준혁에게 종속의 인이 걸린 채 인간의 영수가 돼버린 대영수족의 후예.

    심상으로 이어진 끈 때문에 준혁에게 이끌림을 느끼긴 하지만, 그것이 생물학적인 이끌림인지 술법으로 인한 이끌림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비해 같은 모습을 한 호왕족, 거기다 자신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호감이 가득한 여인들을 가까이하고 있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건 당연한 일.

    준혁은 그런 청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자신이 청호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같은 부류의 족인들과 함께하고 싶을까? 아니면 술법으로 강제로 종속이 맺어진 주인을 따르고 싶을까?

    물론 청호가 자신에게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해도 당장 자유를 줄 순 없었다.

    종속의 인이 지우개로 지우면 지워지는 흔적 같은 것도 아니고, 혼에 새겨진 약속이었기 때문.

    거기다 준혁은 백호를 만나고 온 뒤 계획한 일이 있었기에 청호에게 자유를 줄 순 없었다.

    “청호야. 네가 원한다면 자유를 주겠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선계로 가는 문을 열고 난 뒤엔 그리해줄 수 있다.”

    계획한 일이 끝난 후엔 원한다면 놓아줄 생각은 있었다.

    준혁의 말에 청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에요! 전 주, 형님과 함께하고 싶은걸요. 다만···.”

    “다만?”

    “제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어요. 저는···. 다르니까···. 배우는 게 다르잖아요···.”

    혹시 누군가 몰래 엿들을 수도 있기에 준혁이나 청호나 말을 조심했다.

    그렇다고 청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수는 없는 법.

    ‘하긴, 인족의 술법이 도움이 된다 해도···. 종족 본연의 방법과는 차이가 크겠지.’

    백호 유적에서 발견한 것들을 전부 주었다고 한들, 충족될 리는 없었다.

    준혁은 잠시 고민에 빠진 얼굴로 청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나와 네 수행 차이가 심해 어차피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바.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도록 하거라.”

    “정말 그래도 될까요?”

    “대신 나연이와 있을 때처럼 수련을 게을리하고 허송세월할 것이라면 나와 함께 가는 게 낫다. 스스로 수행을 올릴 수 있겠느냐?”

    백두 비경이 준혁의 소유이기도 하며, 앞으로 호왕족과 연계를 이끌기 위해 잦은 방문이 있을 예정이었기에 청호를 머물게 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려면 청호도 자신만큼 강해져야 하는 법.

    준혁의 눈빛을 받은 청호는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럼. 내 주기적으로 너에게 맞는 화목단을 보내주겠다. 대신 아니다 싶을 땐 언제든 불러들일 테니 각오 단단히 하거라.”

    “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어둑한 구석이 남아있던 청호의 표정이 환하게 변하자, 준혁은 방긋 웃어주며 청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영력을 움직이며 종속의 인을 강화했다.

    그 순간 뇌리로 무언가 관통당한다는 느낌에 청호가 화들짝 놀라자, 준혁이 전음으로 진정시켰다.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너 혼자 남는다면 다른 이들이 어찌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네 머릿속을 보호하는 금제를 펼쳐둘 것이다. 가만히 받아들이거라.

    백호에겐 통하지 않을 테지만, 매혹하는구름까지는 방비가 가능할 수법.

    종속의 인을 이용한 금제로 청호의 머릿속을 보호한 준혁은 잠시 후 손을 휘익 젓고는 몸을 돌려 고서보관소로 향했다.

    “축제장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 널 보내주지 않으면 날 물기라도 하겠더구나. 당분간은 마음껏 놀거라.”

    +++

    “녀석. 아주 신이 나서 달려가는구나.”

    고서보관소에 들어선 준혁은 기감으로 청호의 행적을 파악하고는 쓰게 웃음 지었다.

    그동안 들인 노력에 비해 청호의 발전은 느린 편이었다. 준혁은 그 이유를 고심했고, 청호에겐 발전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자신처럼 선계로 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도천처럼 무력으로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심지어 청명처럼 오래 살고 싶다고 바라는 유형도 아니었다.

    그저 준혁의 영수로 시키는 일을 하고 먹는걸 좋아할 뿐 시간이 지나고 수행이 자연스레 오르길 기다리는 태평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유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준혁은 결론 내렸다.

    경쟁할 자도 없고 성장할 이유도 없으니 굳이 수행을 올리려 노력하지도 않는 것.

    청호가 여 호랑이들에게 둘러싸여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며 준혁은 혹시 그들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청호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혹시 모를 위험 요소가 있음에도 청호를 호왕족의 마을에 남겨두려는 이유였다.

    “청호야. 네가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한 번 더 점검한 준혁은 입김을 내뱉어 옥돌 하나를 가져와 이마에 댔다.

    그리고는 옥돌에 담긴 오래된 호왕족의 정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언제쯤 마선과 계약한 호랑이, 이글대는포효를 만나러 가는 게 좋을지 시기를 가늠했다.

    +++

    거대한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서쪽으로 가다 보면 칼처럼 납작한 대나무 숲이 나타났다.

    호왕족은 이곳을 칼날 숲이라 불렀는데, 실제로 대나무는 주위에 영기 파동이 생겨날시, 영기 파동을 흡수해 단면이 칼처럼 날카롭게 변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대나무 숲 한쪽엔 아담한 공터가 있었고, 그곳엔 아무 무늬도 없는 하얀 털 호랑이 한 마리가 털을 곤두세우며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신기한 건 호랑이가 땅을 밟을 때마다 바닥에 불꽃이 일어났고, 그가 앞발을 휘두를 땐 거대한 화염이 공격의 궤도를 따라 생성됐다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연달아 바닥을 밟은 후 허공에서 회전해 자세를 잡은 호랑이가 바닥에 착지하자, 마치 영기파동이 일 듯, 호랑이 주변에 화염 고리가 만들어져 사방으로 퍼졌다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후우···. 아직 화둔술은 무리인가 봐.”

    호랑이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와 호랑이 말에 화답했다.

    -그러니 내가 말했지? 수행을 올리는 것이 먼저라고? 이제 막 결단기에 올랐다고는 해도 둔술은 무리야. 내 힘과 넌 상성이 좋지 못하니까 그걸 상쇄할 만큼의 영력이 더 필요하다구.

    어느새 호랑이의 등 뒤로 새빨간 날개를 가진 새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호랑이를 야단치듯 두 날개를 펄럭거렸다.

    “나라고 그걸 몰라? 하지만 방법이 없는걸. 수도 자원은 정해진 양 외에는 얻을 길이 없다고. 그렇다고 결계 밖으로 나가 사냥하는 것도 금지고 말이야.”

    호랑이가 한숨을 푸욱 내쉬자, 새 환영은 점차 선명하게 모습을 갖추더니,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용암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용암? 그게 뭔데?”

    -대지가 품지 못한 화염의 기운이 응축된 녹아버린 땅.

    “땅이 녹았다고? 얼마나 뜨거우면 땅이 녹아?”

    -휴우···. 아니야. 보기 전엔 설명해도 모를 거야. 토율서만 있었다면 용암을 찾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어느새 완전한 모습을 갖춘 새는 땅을 자유자재로 오가던 이를 떠올리다가 멋쩍은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호랑이의 머리를 간지럽혔다.

    -어쩔 수 없지. 아쉬워한다고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닐 테니까. 수련하자 수련! 그놈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면서! 수련만이 답이야!

    새가 조잘거리는 소리에 하얀 털의 호랑이, 이글대는포효는 자신에게 줄무늬가 없는 것을 보며 마치 호왕족이 아닌 잡종 취급을 하던 이를 떠올리며 수련 의지를 다졌다.

    “그래! 수련해야지! 꼭 당한 만큼 갚아주고 말···!!”

    수련 의지를 내뿜던 이글대는포효는 말을 하다 말고 멈칫하고는 얼어버렸다.

    아무도 없을 거로 생각했던 공터 한쪽에 누군가가 나타나 있었던 것.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멀리서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던 종족의 손님.

    호왕족의 뿌리이자 호족 중 최강이라는 종족.

    바로 백호족의 전사.

    “여, 여긴 어떻게!”

    이글대는포효가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하자, 준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그게 무슨···.”

    어느새 이글대는포효의 어깨에 앉아있던 새는 모습을 감춰버린 후였기에, 준혁은 마선기가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용암을 찾는 것 말이다. 토율서.”

    대답하며 토율서를 소환하자, 준혁 앞으로 흙으로 빚은 다람쥐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이글대는포효의 어깨 위로 새의 환영이 나타나며 소리쳤다.

    “율서의 계약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토율서의 능력으로 네 계약자를 도와주겠다. 그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넌 몇 번째 마선이지?”

    +++

    준혁은 이글대는포효를 마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붉은 날개의 새를.

    “법명 적매. 태어난 순서는 여든 두 번째. 봉인되었다가 처음 만난 게 여기 호족 아이다?”

    준혁의 말에 두 날개를 퍼덕거린 적매는 자신의 계약자는 신경 쓰지도 않는지 오롯이 준혁에게만 집중했다.

    “그래. 네가 원하는 건 알려줬으니, 내 물음에도 답해줘야지? 넌 도대체 뭐야? 율서의 계약자라 하기엔···.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게다가 왜 나를 보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지?”

    지금까지 만난 마선 들처럼 적매의 반응도 비슷했기에 준혁은 쓰게 웃음 지었다.

    그나마 수행이 올라가며 원하는 마선의 기운만 흘릴 수 있었기에 수많은 마선과 계약했다며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는···. 완전히 봉인에서 풀려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모습을 드러내진 못해. 하지만 이걸 보면 알겠지?”

    말을 마친 준혁이 후우~ 하고 입바람을 불자, 공터 주위의 땅이 꿀렁거리더니 흙으로 빚은 호랑이 수십 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땅에서 미끄러지듯 준혁 주위로 다가오더니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땅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적매는 신음을 흘리다가 준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계약자란 건 알겠어. 그럼 정말 내 계약자를 도와줄 거야?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이글대는포효가 ‘이건 무슨 상황이야?’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 아니 준혁과 새 한 마리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둘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잠시 후 적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 준혁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선계, 그리고 마선들에 대해 아는 정보를 알려주면 된다.”

    적매의 화둔술이라는 능력이 탐나긴 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무엇보다 정보가 중요한 시기.

    만에 하나라도 이글대는포효로부터 적매를 강제로 빼앗아 온다면, 결국 식검에게 잡아먹히는 하나의 마선이 될 뿐이었기에 준혁은 최대한 적매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좋은 관계를 맺을 생각이었다.

    다양한 능력을 갖춘 법기는 차고 넘쳤으니, 당분간은 정보통으로서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몇 마디 나눠본 결과, 직설적이고 호탕해 보이는 적매의 성격에 만족한 상태였다.

    “선계라고 해봤자 내가 활동한 곳은 구지대륙뿐이야. 그리고 마선···. 들의 이름이야 알지만. 가까웠던 이들을 제외하곤 아는 게 별로 없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 그렇다면 거래하자. 이 녀석이 화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용암이 위치한 곳을 찾아줘. 그럼 내가 아는 바를 전부 알려줄게.”

    적매가 거래에 응하자 준혁은 앞발로 땅을 쿵 찍었고, 그 신호에 맞춰 토율서가 땅으로 뛰어들며 모습을 감추었다.

    “네가 원하는 건 용암이 흐르며 근처에 머물 수 있게 일정 공간이 비어있는 곳이겠지?”

    “척하면 척인데? 맞아. 그리고···. 이 녀석이 운신에 제약이 있는 편이라···.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부탁해.”

    적매가 이글대는포효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자,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 대답했다.

    그리고는 적매에게 첫 질문을 했다.

    “그럼 토율서가 용암을 찾을 때까지 대화를 나눠볼까? 마선 중 마지막에 태어난 자. 그자의 이름과 특징에 대해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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