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53화 (153/408)

< 153화. 백호 (1) >

눈앞에 드리운 거대한 존재감.

준혁은 무언가를 해보려 해도 영력 자체가 미동도 없었기에 이를 악다물 뿐이었다.

다행이라면 사신 백호로 의심되는 거대한 호랑이는 준혁을 해할 생각은 없는지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건 착각.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준혁의 몸을 옥죄기 시작했다.

“커억.”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말거라. 내가 알아보면 되니.”

백호는 잔인한 미소를 짓더니 준혁을 향해 커다란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영력은 움직이지 않아도 피 자체는 더욱 원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준혁은 혈단법으로 정혈을 터트리며 동시에 혈맥의 힘을 발산했다.

“크아아아앙!!”

준혁에게서 파동이 퍼져나가자 백호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내밀던 앞발로 푸른 빛을 쏘아 보냈다.

“소리 지르지 말거라. 네 몸속에 혈맥의 힘이 섞여 있단 건 진즉에 알고 있었으니.”

준혁 역시 눈앞의 백호에게 혈맥의 힘이 통하지 않을걸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보다 수행이 높은 자에겐 통하지 않았고, 하물며 가장 순수한 혈맥의 힘을 가진자가 눈앞의 상대일 테니까.

다만 자신이 혈맥의 힘을 보유하고 있으니 알아달라고 무언의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그때 백호의 앞발에서 뻗어 나온 푸른빛이 준혁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해할 생각은 아니다. 기감 같은 것인가?’

준혁은 심장으로 스며든 푸른빛이 아무런 고통도, 특별한 이상도 일으키지 않자,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썼고, 유형화된 기감과 비슷하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준혁이 그걸 깨닫고 있을 때.

백호는 놀란 얼굴을 하더니 푸른빛을 회수하고는 준혁을 응시했다.

“심영근?. 거기다가 이 기운은···.”

백호는 진중한 눈을 하더니 입김을 후우 불어 준혁을 감싸버렸다.

잠시 후 준혁은 몸속에서 무언가가 쑤욱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느꼈고,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식검을 보게 되었다.

백호는 강제로 식검을 불러낸 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식검을 쳐다보다가 흐읍~ 하며 숨을 들이켜더니 식검을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우물우물-

그리고는 무언가를 음미하듯 한참 동안 씹어대다가 오묘한 표정을 짓고는 퉤 하고 식검을 뱉어냈다.

식검이 힘을 잃은 듯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자, 시선을 들어 무언가를 추억하듯 읊조렸다.

“모든 걸 다시 되돌린다고 하시더니···. 이런 의미였구나.”

+++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식검을 보며 준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몸 안, 그것도 단(丹) 안에 원영이 삼켜버린 물건.

체화시켜 수사 본인과 하나 된 법보를 강제로 끄집어내다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도대체 수행이 어찌 되길래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전에 스스로를 봉인했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의문이 있어도 풀지 못할 입장이었기에 준혁은 다음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때 몸을 구속하던 것들이 풀려나며 동시에 영력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혁은 생각도 필요 없이 귀원패로 몸을 두르며 적마도를 소환했고, 도천에게 빌려주었던 인지경까지 불러왔다.

동시에 공간대에서 괴뢰 인형을 꺼내며 각각 양손에 분광소와 식검을 쥐었다.

갑자기 영력이 돌아온 지금 상황이 눈앞 백호의 노림수라 할지라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는 법.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준혁이 전투 준비를 마치며 식검과 분광소를 공명시키려는 순간.

백호가 피식 웃더니. 몸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오거라. 그분의 후인이여.”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따위 조잡한 마선들 따위 집어넣고.”

+++

백호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자, 붉은 공간이 사라지며 넓은 초원이 나타났고, 초원 위에 지어진 초가집으로 이동했다.

백호는 초가집 가까이 걸어가다가 흐릿하게 변함과 동시에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며 대청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마선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준혁은 사람으로 변한 백호 앞에 서서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앉거라. 죽이려고 했다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 오히려 이곳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내가 보호하는 중이니까.”

보호라는 말에 준혁은 깜짝 놀란 표정을 하다 조심스럽게 마루에 걸터앉았다.

백호는 준혁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초원 너머를 응시했다.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더군.”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준혁이 의문을 표하려는 찰나. 백호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무엇을 말입니까?”

준혁은 경계심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백호가 말했던 심영근이란 말과 그분의 후인이란 말이 신경 쓰여 입을 열었다.

자신이 있는지도 몰랐던 심영근을 가지고 있단 건 삼청조를 흡수할 때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

하물며, 그분의 후인이라니?

준혁은 백호의 후예인 척 사기를 치려고 했기에 백호 입에서 나온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분이 설마 백호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은 아닐 테니까.

‘설마 용각족을 말하는가? 아니면 지목족?’

자신이 흡수한 기운 중에 적호족이나 설토족의 기운은 너무 미약한 것이라, 백호족의 기운보다 강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기목청의 혈맥의 힘을 온전히 흡수했기에, 그의 후인이라는 말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명혼단을 흡수하며 혼이 강화되었기에, 그 과정에서 용각족으로서의 무언가가 덧씌워 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해보니 그럴 리 없다고 판단됐다.

눈앞의 백호는 준혁이 인족임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백호가 아무 말 없이 피식피식 웃고 있자, 준혁이 다시 물었다.

“제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려주실 수 없으십니까?”

준혁이 재차 입을 열자, 백호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무엇이냐?”

“최준혁이라 합니다.”

백호족처럼 이상한 이름을 만들어볼까 하다가 거짓 없이 대답했다.

백호는 준혁의 이름을 몇 번 되뇌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 멀리 초원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 그 아이는 이름이 무엇이냐.”

준혁은 백호가 지칭하는 것이 무언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식아라고 합니다.”

“식아라···.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로고.”

백호는 식아의 이름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준혁에게 물었다.

“헌데 왜 그렇게 내버려 두는 거지?”

“무슨 말씀이신지···.”

“그 아이는 마선을 잡아먹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거늘 어찌 다른 마선들을 포획해 놓고도 그 아이에게 먹이지 않느냔 말이다.”

‘먹이지 않는다고?’

백호의 말에 준혁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새겨졌다.

감히 짐작하지 못할 수행을 지닌 상대였기에 식검이 가진 공능을 단번에 파악하는 건 이해가 됐다.

하지만 포획이란 단어와 먹이지 않았다는 표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잡아먹혔기에 내가 힘을 쓸 수 있는 것 아니었던가?’

“가르침을 내려주신다면 평생 은혜로 알겠습니다.”

준혁은 어쩌면 이번이 그동안 신비에 싸여있던 마선들에 대해 알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쯧쯧.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보구나. 어찌 그분의 후인이···. 하긴. 그러니 아직 그것조차 각성하지 못한 것이겠지.”

준혁은 ‘그분’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마선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백호의 입이 열렸다.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네가 가지고 있는 마선들은 근원만 사로잡힌 상태일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테지.”

“...”

“근원뿐 아니라 마선기를 먹어 치우게 만든다면···. 그 아이가 진짜 힘을 찾게 될 것이야.”

하지만 기대했던 내용과 달리 백호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댔다.

결국 준혁은 조심스럽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근원뿐 아닌 마선기까지 먹어 치우게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늘 처음 본 내가 어찌 알겠느냐?”

“...”

백호의 말에 준혁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자신도 식검의 가능성은 보았지만, 그 가능성을 실현할 방법은 모른단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백호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다만, 모든 일은 순리에 따라야 하는 법.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면 될 것이다.”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고? 점진적?’

그 순간 어떤 생각이 준혁의 뇌리를 강타했다.

점진적이란 말과 귀원패가 오래전에 했던 설명.

-우리는 태어난 순서로 가진 힘이 정해지는데···.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천신라(天神羅)와 마지막에 태어난 식아(食兒)는 수천만 배가 넘는 힘의 격차가 있을 정돕니다.

‘아! 설마!’

백팔마선경이라는 마선은 모든 마선들이 태어난 순서에 따라 그 이름, 존재를 알 수 있다고 했었다.

순서라는 말이 마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표시해주는 알림판 같았다.

준혁이 생각에 빠지자, 백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영 멍청이는 아닌가 보군.”

+++

순서와 점진적이란 말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은 준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초가집 끝으로 이동해 초원을 바라보고 있던 백호 곁으로 걸어갔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자. 백호는 별일 아니란 듯 입을 열었다.

“네놈이 여기로 찾아온 건 내 힘을 얻기 위해서겠지?”

갑작스러운 백호의 말에 준혁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진실을 말했다.

“그렇습니다. 허나. 이렇게 의식까지 살아있는 상태로 봉인되어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 욕심내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저뿐 아니라 온전한 백호족의 혈통을 이은 제 동료를 위함이기도 했으니···. 너무 노여워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동료란 말에 백호의 눈이 길게 늘어졌다.

마치 어디서 거짓말을 하냐는 듯이.

“동료? 네 종이 아니고?”

‘아! 심장에 새겨진 종속의 인까지 들여다보았구나!’

설마 그런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지도 못한 준혁은 황급히 말을 꺼냈다.

“서로 의지하기 위해 술법의 힘을 빌렸을 뿐! 절대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껏 제 식구처럼 살피며.”

“그만. 알고 있으니 그만 말해도 된다.”

‘알고 있다고?’

준혁이 백호의 말뜻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키자, 백호가 피식 웃고는 한 손을 가볍게 저었다.

“어지럽다. 이거나 받거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호의 손끝에서 하얀 털 뭉치 같은 것 두 개가 둥실 떠올라 준혁에게로 날아왔다.

하나는 어른 머리만 했고, 나머지 하나는 주먹만 한 크기였다.

“이건···.”

하얀 털 뭉치는 감히 짐작하기 힘든 거력이 담겨있었는데, 백호 혈맥을 이은 준혁은 그 안에 담긴 힘이 혈맥의 힘이란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이 청혈을 통해 흡수한 혈맥의 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직 내 힘을 가져갈 준비도 안 돼 있거늘 욕심내기는. 우선 이것부터 소화시키거라.”

백호에게서 털 뭉치를 받아든 준혁은 기감으로 그것을 살피고는 당장 흡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눈앞 상대의 수행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안전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무거운 시선을 받으며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준혁은 입김을 내뱉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후, 두 개의 털 뭉치 중 작은 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흐음.”

입속에 들어간 털 뭉치는 솜사탕이라도 된 것처럼 스르륵 녹아 사라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저 내 우려였나? 정말 내 혈맥의 힘을 강화해주려는 것이었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털 뭉치의 기운은 심장으로 흘러 들어간 후 온몸을 휘몰아치더니 마지막으로 원영에게 닿았다.

원영은 기분 좋은 음식이라도 먹은 듯 털 뭉치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단(丹)안에 있던 원영이 무언가에 놀란 듯 화들짝 일어나더니, 준혁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수리 위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입을 크게 벌리자.

우우웅-

준혁이 백호 혈맥의 힘을 사용했을 때처럼 상대방을 주눅 들게 만드는 영기 파동이 공간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 힘은 원래의 힘보다 수배는 강해져 있었다.

원영은 힘을 내뱉고 난 후, 마치 트림을 하듯 몸을 움찔거리더니, 만족한 표정을 하고는 다시 단(丹)안으로 들어가려 움직였다.

‘!!’

그때 준혁은 원영의 몸 상태가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는 재빨리 원영을 손바닥 위로 불러온 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볼 수 있었다.

조막만 한 원영의 등에 새겨져 있던 백호 문신.

그것이 더욱 진해지고 흉포한 모습으로 바뀌어있다는 것을.

더 중요한 것은, 등 전체에 그려져 있던 백호 문신이 오른쪽 어깨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것.

마치 등을 사 등분 해 한자리만 차지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이게 왜···.”

준혁이 의문을 가지려는 찰나, 백호가 별일 아니란 듯 입을 열었다.

“선계에 가고 싶다고 했지? 그렇다면 나머지 사신의 힘도 전부 찾아내거라. 조금 전 내가 전해준 힘의 크기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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