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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46화 (146/408)
  • < 146화. 울릉도 봉쇄 (3) >

    도천이 처음 보는 수사들을 대동한 채 거처로 들어오자, 준혁은 토율서를 회수하고는 그들 면면을 살폈다.

    중국의 황실을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황천문.

    그들의 의지가 중국의 의지였기에, 눈앞에 시립 해 있는 황천문의 문주와 황천문에 속해있는 황가의 가주들이 중국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도천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자, 뒤에 조용히 따르던 사람들은 움찔하더니 엉거주춤하다 허리를 깊게 숙였다.

    “선도를 걷고 있는 선배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부족하나마 황천문을 대표하고 있는 주동화 라고 합니다.”

    “왕가룽 이라 합니다.”

    “남궁천 이라 합니다.”

    주동화가 입을 열자 그 뒤를 따라 다섯 명의 인물들이 줄줄이 자신을 소개했다.

    준혁은 그런 그들을 대충 살펴보며 무관심한 모습으로 도천에게 물었다.

    “보상을 받아오랬더니, 이들을 전부 끌고 왔구나.”

    “예! 설명드리겠습니다.”

    준혁의 물음에 도천은 명령을 하달받은 후 중국으로 건너가 생긴 일들을 하나씩 나열했다.

    다람쥐 모양의 흙 석상을 건네받아 곧장 중국 시안으로 향한 도천.

    그는 명령받은 장소에 도착해 준혁이 시키는 대로 토율서를 이용했다. 그 후, 땅속에 매립되어 있던 수사들을 전부 꺼내 황천문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기절한 채 제압당한 수십 명의 결단기 수사를 보며 준혁에 대한 경외감이 한층 더 깊어진 건 설명에서 생략했다.

    인질들이 영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 후 황천문으로 향한 도천은 짜증 나는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황천문에서는 보상을 해주기는커녕, 황천문을 이루고 있는 황가의 가주들이 모여 매일같이 책임 전가를 하며 고성만 높여가기 시작한 것.

    그 모습에 도천은 응결식에서 준혁을 습격했던 유럽의 가문들을 예로 들며, 어느 한 명이 대표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준혁을 죽이려고 한 일에 연관된 모든 가문이 동시 책임을 지라고 했다.

    결국 전원이 묶이지만 않았지, 죄인처럼 울릉도로 오게 되었다.

    다만 빠르게 울릉도로 복귀했지만, 방해하지 말라는 준혁의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도천은 기회를 보며 기다리다가, 원영 응결로 보이는 현상이 사라진 후 사쿠라가 모습을 드러내자, 곧장 준혁의 처소를 찾은 것이었다.

    도천의 설명을 듣고 난 준혁은 황천문의 문주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 분명히 왕가홍에게 명혼단을 주기로 약속했거늘, 무엇이 그리 탐나 나를 죽이려고 한 거지?”

    서슬 퍼런 준혁의 말과 동시에 주변의 기온이 급강하하더니, 주동화를 포함한 전원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직후, 무형의 기운이 여섯 명을 옥죄며 죽음의 공포를 선사했다.

    잠시 후 준혁이 힘을 살짝 풀자, 주동화가 급하게 두 손을 저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듯 눈빛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건 저희 황천문이 아닌 왕가홍 개인이, 아니 왕가홍과 여기 왕가의 가주인 왕가룽이 벌인 일입니다!”

    “주 문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처음에 일을 지시한 건 문주 아닙니까?! 그러다 저기 최 수···. 최 도주께서 유적 안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것 같다며 지원을 끊지 않았습니까?!”

    “뭐요!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명혼단을 구할 방법이 있으니 일을 맡겨달라고 한 건 왕가홍 아닙니까?! 그게 최 선배님을 죽이려고 한일이었으면 애초에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동화의 말에 왕가룽이 반박하고 나서면서 두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인신 공격부터 시작해 과거의 잘못까지 하나씩 꺼내 들었다.

    “당신이 비파문의 여문주와 몰래 만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게 황천문을 대표한다는 사람이 할 짓입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입니다!”

    “그게 여기서 왜 나옵니까!! 그리고 몰래 만나다니요?! 난 당당하게 만났습니다!”

    치정에 얽힌 일까지 거론하며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준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도천을 보니 이미 경험한 일인 듯,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오며 화를 참는 것으로 보였다.

    “그만. 그런 식으로 어리숙하게 보이려 한다 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 적당히 하지.”

    한겨울의 물속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두 사람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입을 닫았다.

    설마 자신들의 의도가 뻔하게 드러날 줄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

    준혁의 말에 도천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을 하다가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중국에 있었을 때도 이런 식으로 계속 말꼬리를 물며 책임 전가를 하기에 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준혁에게 잡아 왔던 것이었다.

    준혁은 좌중이 조용해지자 지금껏 조용히 있던 남궁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천이 잡아 온 인물 중 수행이 가장 높았기에 처음엔 황천문의 문주일 거라 생각했던 자.

    “그대는 아무 말도 없군.”

    준혁의 말에 덤덤한 눈빛으로 준혁을 마주 보던 남궁천이 대답했다.

    “명이 형님의 빈자리를 채워줄 방법이 있다며 왕가홍이 찾아와, 가문의 무사들과 영석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코 그 일이 도주를 이용하려던 계획임은 몰랐습니다.”

    남궁천은 중국의 새로운 원영기인 남궁명의 동생.

    “몰랐으니 책임이 없다?”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선처를 바랄 뿐입니다.”

    남궁천이 진심을 담아 깊게 고개를 숙이자, 당황하고 있던 주동화와 왕가룽 뿐만 아니라 나머지 가주들도 고개를 숙이더니 한참 동안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턱을 매만지다가 입술을 비죽였다.

    “알겠네. 선처해주지. 그럼 자네들은 무얼 줄 테지?”

    +++

    “백두산 일대에 한국과 분쟁 중인 영토를 전부 할양하겠습니다.”

    회심의 한 수를 준비했다는 듯한 표정의 황천문주의 제안.

    준혁이 ‘너 지금 뭐 하냐?’ 하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나를 습격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왜 국가 일을 논하지?”

    “예? 그, 그것이.”

    황천문과 중국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던 주동화는 준혁의 반문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

    준혁이 한국인이지만, 한국의 이익엔 관심이 없단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황천문주를 포함한 전원이 합죽이가 되자, 준혁이 전음부 한 장을 꺼내 날렸다.

    잠시 후. 청명이 거처 안으로 들어와 옥간 하나를 건네고는 다시 사라졌다.

    준혁은 청명이 건네준 옥간을 살피더니, 그것을 황천문주에게 던져주었다.

    “거기에 적힌 수량의 다섯 배를 한 달 안에 준비하라. 그렇다면 너희들을 전부 용서해주지.”

    준혁의 말에 황급히 옥간을 끌어당겨 이마에 가져간 주동화는 입을 떡 벌리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 선배님···. 이 양을 어찌 한 달 만에···.”

    준혁이 청명에게 받은 옥간. 그 안엔 마선문도들이 공적인 일을 수행하며 10년간 지급받을 단약의 총량이 적혀있었다.

    말이 10년이지, 연단각이 쉬지 않고 제작하고 청룡가에서 상납하는 것과 약학원에서 꾸준히 사들이는 것까지 합한 양.

    거기다 준혁이 만들어 배포한 4품 이하의 화목단의 양까지 추정하여 들어있었기에 하나의 문파에서 사용하는 양이라 하기엔 엄청난 수량이었다.

    물론 중국의 땅덩어리와 수사의 수를 생각하면 엄청난 부담이 있는 양은 아니었다.

    다만 한 달이라는 기간이 문제.

    준혁은 지목족 혈맥의 힘을 강화한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효과를 보고 싶었기에 황천문 측에서 아슬아슬하게 조달할 수 있는 양을 예상해 요구했다.

    “못하겠나?”

    “아, 아닙니다. 하지만 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반년 안에 마련하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반년이란 단어가 나오자 피식 웃은 준혁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모습에 주동화가 급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당장 만들어 오겠습니다!!”

    결국 준혁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주동화는 보상에 관한 협상이 끝나자, 준혁에게 거듭 감사를 표해야 했다.

    애초에 수십 명의 결단기 수사와 문파의 존속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을 겨우 단약으로 해결한다는 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

    잠시 후 준혁에게 인사를 올린 황천문주가 거처 밖으로 물러나려 하자, 그 뒤를 따라 다섯 가주 역시 몸을 돌리려 했다.

    그때 준혁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럼 황천문주는 돌아가고, 나머지 가주들도 보상에 관한 얘길 나눠볼까?”

    준혁의 말에 안색이 변한 왕가룽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도, 도주! 조, 조금 전에 저희를 용서해 주신다고···.”

    왕가룽의 말을 끊으며 준혁이 말했다.

    “물론 그렇게 말했지. 황천문주에게 말이야. 설마 황천문도들을 용서해준다는 말을 그렇게 들었나?”

    +++

    결국 다섯 가문은 황천문과 동일한 보상을 준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무위각 대원들에게 이끌려 섬 밖으로 추방되었다.

    한편 무위각주 도천은 준혁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자세로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무검문의 문주로서 준혁에게 도전했을 때, 단 한 수만에 패해 마선문에 입문했었다. 그 후로 아주 조금씩 그를 향한 충성심이 쌓여가고 있던 중.

    응결식에서 수십 개의 단검을 부려 결단기 수사들을 도륙하는 모습을 보며, 준혁처럼 되기를 꿈꿨고, 그를 향한 충성심은 한층 깊어졌다.

    그러던 충성심이 이번에 중국을 다녀오며 또 한 번 폭발하게 되었다.

    그런 충성심을 꾹꾹 눌러 담아, 도천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군, 한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천이 말을 이었다.

    “저들에게 요구한 것을 들어보니, 이번에 얻을 보상을 문도들에게 전부 나눠주실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결단기에 필요한 단약도 있었지만, 축기기 연기기가 먹는 단약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스스로 수행을 멈추시면서까지 수하들을 위해 진법을 만들어주시고, 다른 문파와 달리 모든 이들에게 공과에 맞춰 공평한 보상을 지급해주신 일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주군께서 더 높은 곳으로 가시는 게 저희를 위한 일일 겁니다.”

    돌려 말했지만, 수하들 챙기는 것은 적당히 하고 당신 수행이나 올리라는 말.

    도천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기에 준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 말이 맞다. 다만 저들에게 받아내 봐야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은 없다. 오히려 내 손발이 되어줄 너희들이 발전하는 게 더 큰 도움이 되지.”

    도천은 준혁의 말을 오해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원영기급 단약을 구하는 게 어렵다고는 하나, 황천문 소속 연단사들이면 매해 소량이나마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주군의 수행에 도움이 될 보패나 법보를 요구하셔도 될 일입니다.”

    ‘이미 공간대가 터질 것 같구나.’

    도천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에 준혁은 기분이 좋아져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래. 다음부턴 참고하도록 하마. 헌데 오히려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묻다니요. 그저 하명하시면 됩니다.”

    “지금 도(島)내에 너희 무위각을 제외하곤 전부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쉽지 않느냐?”

    용천무의 힘으로 인해 혈맥의 힘이 몇 배나 강화된 상황.

    벌써 결단기에 오른 이들만 여럿이었고, 도천과 마찬가지로 결단기 중기였던 자들 중 후기에 올라온 이들도 있었다.

    준혁의 물음에 도천은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주군께서 필요하신 일에 쓰이는 게 신하 된 도리.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선 시대 때 왕을 모시던 신하처럼 고지식한 도천을 보며 준혁이 혀를 찼다.

    “너는 그럴 수 있지만, 네 아래 수하들도 그러겠느냐?”

    무위각 대원들 대부분은 도천이 마선문에 들어오기 전 함께했던 무검문의 문도들.

    그때부터 쌓아왔던 믿음과 신의가 두터웠기에 불만이 터져 나올 일은 없었다.

    다만 마선문에 들어온 후 충원된 다른 이들도 그들과 똑같지는 않을 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도천은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이미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새로 충원된 무위각 대원뿐 아니라, 무검문에서부터 함께했던 수하들까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도천 역시 흔들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준혁이 사라지기 전 수행 증진 효과가 올라가며 단약의 효율까지 뻥튀기되는 걸 경험했었기에, 준혁이 사라진 후 효과가 사라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급받은 단약들을 먹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놓았었다.

    언젠가 준혁이 돌아와 수행증진 진법이 다시 가동되면, 그때 한꺼번에 사용하기 위해서.

    지금 수행이 급상승한 자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미리 수행증진 효과를 경험했기에 단약을 모아두었던 이들이란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수도자에게 있어 수행이란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 지금의 기회가 욕심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

    마음 한편으론 당장이라도 거처로 날아가 단약을 입안에 쑤셔 넣고 공법수련에만 매진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준혁에게 충성하기로 맹세했기에 그 어떤 것보다 명령이 우선이었다.

    불만을 가진 수하들은 나중에 자신이 챙겨주면 될 일.

    그것이 그가 존경했던 자신의 아버지이자, 전 무검문의 문주에게 배운 삶의 태도였다.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도천을 보며 준혁은 손을 가볍게 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거울 하나가 나타나 도천의 품으로 날아갔다.

    도천이 날아오던 거울을 잡아채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입을열려하자, 준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것은 인지경이라고 한다.”

    “이것이 인지경이란 말씀이십니까?!”

    평소 표정 변화 없이 과묵하던 도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자세한 설명은 없어도 되겠군. 수행이 쌓이는 속도를 세 배가량 올려줄 터이니 당분간은 청명이 하는 일을 도우며 그것의 도움을 받거라.”

    “주, 주군.”

    경악과 감격을 넘어서 말을 잇지 못하는 도천을 보며 준혁이 기분 좋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 진법이 오래가지는 못할 터, 후일 무위각에 속한 이들은 따로 보상을 내려주도록 하겠다.”

    “아닙니다. 주군.”

    “그리고 도천. 너는 사쿠라를 따라 두 번째 원영기 수사가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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