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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45화 (145/408)
  • < 145화. 울릉도 봉쇄 (2) >

    탑에 귀속되며 얻게 된 용천무의 힘.

    심장에 뭉쳐있던 기운이 전부 빠져나가면서 준혁의 수행은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숨만 쉬어도 영기를 조종할 수 있을 거 같던 화신기에서 연형기 후기로 떨어진 지는 오래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몸속 영력이 흩어지고 있는 중.

    준혁은 어떻게라도 힘을 부여잡거나, 자신이 이용해 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한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갖은 방법을 떠올려보다 선택한 것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는 힘을 강제로 배출해 지목족 혈맥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유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가질 수도 없다면, 수하들에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부르셨어요?”

    모든 이들이 자리를 비운 후, 사쿠라는 준혁의 부름에 조용히 성인봉 정상을 찾았다.

    “잠시 기다리시오.”

    사쿠라에게 기다릴 것을 명한 준혁은 거처 밖으로 나가 사방으로 진법 깃발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몸속에서 빠져나가고 있던 용천무의 기운을 강제로 움직여 혈맥의 힘을 자극했다.

    잠시 후, 성인봉뿐만 아니라 주위 산맥에까지 혈맥의 힘이 번져나가자, 가짜 영역이라도 만들 듯 진법으로 주변을 감쌌다.

    동시에 하얀색 원반 하나를 꺼내 발동시키자 진법 주위로 황금색 기둥이 솟아나며 진법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황금색 기둥은 대라멸진이 발동된 모습.

    오래전 프랑스 수사 자비에가 유적 입구의 결계를 약화, 보호하기 위해 대라멸진을 이용한 것을 참고하여 준혁도 대라멸진 원반을 이용한 것이었다.

    ‘지금!’

    대라멸진이 발동되며 혈맥의 힘의 경계가 되었던 진법이 단단하게 보호되는 것이 보이자 준혁은 몸속의 힘을 강제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단번에 해야 한다!’

    대라멸진과 진법을 이용하긴 했지만,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기운을 붙잡기에는 역부족. 준혁은 탑에 귀속되어있는 동안 파악한 방법을 이용해, 성인봉의 진법을 용각족의 탑처럼 만들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대라멸진과 진법, 혈맥의 힘, 그리고 준혁의 기운. 그 모든 게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단숨에 완벽하게 이뤄져야만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수결을 맺어 몸 곳곳을 짚고는 수인을 맺고 마지막에 합장으로 끝맺음했다.

    “합!!”

    쿠우웅-

    잠시 후 거대한 영기 파동이 파도처럼 준혁을 중심으로 밀려나더니, 일정 거리에서 무언가에 부딪치고는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후우···. 된 건가?”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기운이 주변 일대를 잠식한 걸 확인한 준혁은 대라멸진이 만들어낸 황금 기둥을 보이지 않게 만든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최 수사의 끝은 어딘가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런 효과를 끌어낸 거죠?”

    거처엔 두 눈이 동그래진 사쿠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준혁이 일을 마친 후부터 일대에 수련 증진 효과가 시작되었으니, 준혁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사쿠라는 그 효과가 극대화 됐던 것.

    “별것 아니오. 어차피 오랜 시간 유지하지도 못할 것. 우연히 얻은 힘에 불과하니 괘념치 마시오.”

    사쿠라의 질문을 대충 얼버무려버린 준혁은 공간대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 사쿠라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무언지 아시겠소?”

    준혁이 두 손가락으로 잡은 단약에선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거네요. 제 선물이라도 되나요?”

    사쿠라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빼쭉 내밀었다.

    “그렇소. 청명을 결단기에 올려주긴 했으나, 오래도록 나를 믿고 도와준 그대에겐 해준 게 없었지. 하여 선물을 준비했소.”

    준혁이 진짜 선물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쿠라의 표정이 환해졌다.

    단약이 어떤 효과를 가진 것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있던 사내의 입에서 선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가슴이 설렜던 것.

    양 볼이 살짝 발그레해진 사쿠라가 어쩔 줄을 몰라 하자, 준혁은 단약을 공간대에 다시 넣으며 무심히 말했다.

    “그럼 시작합시다.”

    “네? 무엇을요?”

    잠시 뜸을 들이다, 입가를 살짝 올린 준혁이 말했다.

    “원영기에 오를 준비를.”

    +++

    명보, 명배 형제는 연기기 후기가 된 후, 울릉도에서 마선문이라는 문파가 창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입문한 사람 중 하나였다.

    오늘도 잡무를 마치고 온 명보는 집구석에서 대자로 뻗어있는 동생 명배를 보며 혀를 찼다.

    “너는 무슨 애가 체력이 그리 약해? 강체공이라도 익혀야 되는 거 아냐?”

    형의 목소리에 명배가 오뚜기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마. 어제부터 갑자기 사람들을 섬에서 내보면서 할 일이 수십 배는 늘어난 거 같아.”

    “그건 그렇지. 내가 일하고 있는 연단각도 무슨 준비를 하는 건지, 각주님까지 나오셔서 지시를 내리시더라.”

    “도대체 무슨 일일까?”

    두 형제는 대화를 나누며 섬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때 전음부 한 장이 날아와 대문에 설치된 진법을 그대로 통과하며 명보에게로 날아왔다.

    “헉. 깜짝이야. 어? 이건 긴급부 인데?”

    본청에서 임무 분배와 소식을 담당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긴급부.

    명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부적을 발동시켰다.

    -금일 자정을 기점으로 성인봉을 중심으로 1킬로 권역에 마선문도들의 수련 속도를 올려줄···. 도주께서 직접···.

    전음부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명보 명배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뜻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오늘부터 성인봉 주위에서 공법수련을 하면 수련 속도가 몇 배나 올라간단 말이야?”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그리고 3년 치 임금을 미리 빌려줄 테니 수련자원이 필요한 사람은 본청으로 와서 가불해 가라고.”

    잠시 후, 두 눈이 번쩍 뜨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집 밖으로 나가더니 본청이 위치한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급 비행법기가 있었지만, 아직 수행이 부족해 온전하게 다루지 못하는 상태.

    두 발로 뛰어가는 게 더 빠른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섬 곳곳에서 연출되기 시작했다.

    +++

    3달 후.

    성인봉에서 떨어진 망향봉 정상.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청호를 두 다리 위에 올려놓은 채 눈을 감고 수련을 하던 최나연이 두 눈을 번쩍 뜨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콰르릉-

    울릉도 상공엔 어느새 오색 영기구름이 모여들고 있었고, 피부가 움찔움찔 할 정도의 영기파동을 퍼트리고 있었다.

    “도대체 몇 번째야? 이걸로 결단기에 오른 사람이 다섯 명이나 늘어난 건가?”

    섬이 봉쇄된 지 3달 동안 주기적으로 나타난 영기구름을 보며 최나연은 혀를 차고 말았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기에 준혁이 원영기에 오른 수사란 말을 들었을 때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었고, 자신과 매일 붙어 다니는 사쿠라가 결단기 후기라고 했을 때도 별 감응이 없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도계의 지식이 쌓이고 수련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이젠 결단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결단기 수사가 벌써 다섯 명이나 새롭게 탄생한 것.

    이미 주위에선 마선문이 세계 최강이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기에 이젠 얼마나 더 세력을 넓혀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최나연은 새삼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있는 준혁이 대단하다 느껴지면서 한편으론 뿌듯한 마음이 샘솟았다.

    그때 최나연의 말을 지적하며 천이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야.”

    “언니. 언제 오셨어요? 그런데 뭐가 아니에요?”

    최나연의 물음에 긴장 가득한 얼굴로 하늘을 주시하던 천이화가 입을 열었다.

    “결단기가 아니라고. 지금까지와 규모가 달라. 저건 분명 원영기에 오르는 거야.”

    원영기란 말에 최나연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원영기라고요?! 그럼 사쿠라 언니가?!”

    천이화는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아마도.”

    3달 전 사쿠라가 원영기에 오를 준비를 하면서 사쿠라 처소와 준혁의 처소를 오가며 지내던 두 사람은 거처를 먼 곳으로 옮겨야 했다.

    약하디약한 두 사람은 사쿠라가 원영기에 오르며 생겨날 영기 폭풍을 이겨낼 수 없으리란 것이 그 이유.

    어느새 두 사람의 눈엔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그때 최나연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실패할 수도 있다면서요? 만약 그럼 어쩌죠?”

    천이화는 그런 최나연을 보며 씨익 웃음 지었다.

    “스승님이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분은 우리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추신 분이란 말야.”

    애초에 두 사람은 사쿠라가 원영기를 준비하기 위해 준혁의 거처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준혁이 명혼단을 이용해 사쿠라를 원영기에 오르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상태였다.

    +++

    성인봉 정상, 준혁의 거처.

    모든 기운을 갈무리한 사쿠라는 자신의 단(丹) 안에 생겨난 귀여운 아이를 느끼며 두 눈을 천천히 떴다.

    “수고했소. 아니 이제 같은 원영기 수사이니 존대를 해야겠습니다. 사쿠라 수사.”

    눈을 뜨자마자 듣게 된 준혁의 목소리에 사쿠라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선엔 수많은 감정을 담은 채 준혁의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이 모든 게 최 수사께서 해주신 건데요···. 그리고 원영기에 오르니 확실히 알겠어요. 당신은 나와 같은 수준이 아니란 것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준혁에게선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거대한 산을 마주한 것처럼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수행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나 분명 준혁이 평범한 원영기 수사는 아닐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최 수사께선 진정 원영기이신가요?”

    사쿠라가 질문을 하긴 했지만, 꼭 답을 들어야겠다는 어투는 아니었기에 준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완영기란 사실을 말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필요 이상의 정보를 발설할 생각도 없었다. 그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물론입니다. 다만 제가 특수한 공법을 익혀 그렇게 느껴지실 겁니다. 특히 그대가 익힌 화신목영의 숙련도 때문에 더욱 그럴 테지요.”

    사쿠라는 준혁의 대답에 살짝 웃어 보이더니 부끄러운 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그리고 예전처럼 해주세요.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멀게 느껴져요.”

    수백 년을 살아온 사쿠라가 소녀처럼 두 볼을 붉히자, 준혁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그대가 원영기에 오른 기념으로 선배로서 선물을 줘야 할 터.”

    금세 말투를 바꾼 준혁은 한 손으로 공간대를 살짝 스치더니 세 개의 법기를 꺼내 내밀었다.

    “고서에서만 보아왔던 명혼단 만으로 충분해요. 이런 것까지 받을 순 없어요.”

    준혁이 내민 법기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사쿠라가 두 손을 저었다.

    하지만 준혁의 공간대 안엔 비슷한 수준의 법기가 300여 개.

    “정말 별것 아니니 그냥 받으시오. 어차피 여인들이 쓸만한 물건들이니 말이오.”

    몇 번 거절하던 사쿠라는 결국 준혁에게서 법기를 받고는 얼굴에 홍조가 올라왔다.

    준혁이 내민 법기 세 개.

    그 외형은 귀걸이 한 쌍과 반지하나. 그리고 손바닥만 한 옥피리였다.

    +++

    사쿠라가 원영기에 오른 수행을 다지기 위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자, 준혁은 조금 전 상황에 쓴웃음을 지었다.

    선물용 법기를 고를 때 여인에게 어울릴만한 것을 고르느라 귀걸이와 반지를 선택한 것이지 거기에 다른 뜻은 없었다.

    하지만 사쿠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법기를 받은 후 몸을 베베 꼬다가 준혁의 축객령에 물러간 상태였다.

    “괜한 선물을 했나.”

    오래전부터 사쿠라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신경이 조금 쓰였다.

    피식-

    그러다 한번 웃음 짓고는 상념을 날려버렸다.

    여러 가지 힘을 중첩해 지목족 혈맥의 힘을 발동시킨 후 준혁의 수행은 완영기 초기로 돌아온 상태였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멀었기에, 애정 놀음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목표는 선계에 올라가는 일.

    누군가와 같이 올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이곳에 생긴다면 마음이 흐트러질까 염려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모든 일을 포기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상념을 날려버린 준혁은 명혼단 한 알과 왕의 정수가 담긴 용천무의 비늘을 꺼내 들었다.

    이제 사쿠라를 원영기에 올리겠다는 목표도 이룬 상태이니, 당분간은 용각족의 탑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부을 작정이었다.

    “이것들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 연형기에 오르겠지?”

    어쩌면 연형기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갈지도 몰랐다.

    그만큼 용천무가 남긴 왕의 정수는 그 끝을 가늠키 어려운 힘이었으니까.

    그때 거처밖에 설치해둔 진법에 전음부 한 장이 걸려들며 신호를 보냈다.

    준혁이 무슨 일인가 싶어 손을 젓자, 전음부 한 장이 날아와 화르륵 타며 목소리를 뱉어냈다.

    -주군. 황천문의 문주와 황가의 가주들을 잡아 왔습니다.

    섬 내에서 유일하게 수련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던 두 사람.

    청명과 도천.

    그중 도천이 중국 내 문제를 직접 가지고 돌아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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