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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38화 (138/408)
  • < 138화. 용각족 (2) >

    남궁명은 한 층을 통과할 때마다 일정량의 공부석과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공부석, 그러니까 공간석은 석상을 처리하고 나면 석상이 자리했던 곳에 일정량 존재했던 것.

    그 말인즉 4층 정리를 끝낸 후 5층을 향해 움직이려던 준혁은 왕가홍에게서 받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양의 공간석을 챙겼단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준혁의 수중엔 손톱만큼의 공간석도 남아있질 않았다.

    이이잉-

    4층 정리를 끝낸 후 전부 수거한 공간석을 공천령에 가져가자, 공천령은 걸신들린 거지처럼 순식간에 그것들을 흡수해버렸다.

    팔목에 차고 있던 옥팔찌는 공간석을 주입할 때마다 더욱 강한 옥빛을 발산했고, 동시에 내부의 넓이가 넓어지는 중이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도 공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저장공간을 가지고 있던 공천령은 이제 하나의 소규모 신비경이라 불러도 될 정도.

    “언제쯤이면 이들에 대해 완벽히 파악할 수 있을까.”

    준혁은 그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귀원패의 부재를 떠올리며 아쉬움을 삼켰다.

    잠시 후 탑 내부 한쪽에 조그마한 금빛 진법으로 이루어진 전송진이 생겨났고, 위층으로 올라가라며 준혁에게 손짓했다.

    준혁은 주위를 한번 빙 둘러보고는 자신이 놓친 것이 없나 재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

    “이건!”

    5층엔 석상이 아닌 단상이 준혁을 반겨주었다.

    탑의 벽면을 따라 빙 둘러 석상이 있던 자리엔 반구 형태의 반투명한 보호막이 자리하고 있었고, 보호막 안엔 각양각색의 주먹만 한 법기들이 놓여있었던 것.

    “그자가 거짓을 말하는 거라 생각했거늘.”

    남궁명이 남긴 정보엔 각층을 돌파할 때마다 보물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기에, 그동안 준혁은 왕가홍이 내용을 부풀린 것이라 생각했다.

    최대한 얻을게 많은 것처럼 보여야 자신이 유적에 들어올 테니, 거짓 정보를 꾸민 것이라고.

    하지만 남궁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석상을 처리하며, 그에 비례해 엄청난 양의 공간석을 얻은 준혁으로선 거짓 정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법기류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5층에 올라와 보니 남궁명은 1층을 반복해 돌며, 탑이 외부인에게 보여주는 가짜들을 마주했고, 진짜 보물들을 얻을 기회가 자신에게 왔음을 인지했다.

    준혁은 내심 기대하며 반투명한 반구 안에 놓인 법기류를 살폈다.

    법기류의 개수는 총 10개였는데, 하나같이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중 단번에 준혁의 눈길을 끈 것은 주먹만 한 크기의 배 모형.

    “비행 법기인가?”

    반투명한 보호구에 기감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보이는 모습만으론 비행법기가 틀림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가진 순수한 영력을 이용해 비효율적으로 이동해 왔던 준혁은 고민 없이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반투명한 반구가 사라지며 배 모형이 준혁의 손으로 끌려 들어왔고, 동시에 나머지 아홉 개의 법기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흠, 이런 식이군.”

    애초에 겨우 5층에서 10여 개의 보물을 전부 줄 리 없다고 생각했던 준혁은 피식 웃고는 손안에든 배 모형에 영기를 주입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배의 기능을 확인하다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며 공간대에 물건을 집어넣었다.

    +++

    쇄애액-

    콰직-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쏘아져 온 공격에 얼음 장벽이 터져나가자, 준혁은 곧장 귀원패를 발동시키며 방어에 나섰다.

    “귀원패!”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준혁의 등 뒤로 반투명한 육각 타일이 무수히 생겨나며 거북이 등껍질처럼 후면 전체를 가렸다.

    퍼퍽-

    그리고 귀원패가 발동되며 상대의 공격이 무산된 순간, 준혁의 손에 들려있던 부채에서 거력이 쏟아져 나가 용각족 두 명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쾅-

    잠시 후 무방비 상태의 두 용각족의 목을 얼려서 부러뜨린 준혁은 마지막 남은 한 명마저 처리하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슬슬 한계인가.”

    어느새 8층에 도달한 준혁은 사방에 반파되어있는 용각족의 흔적을 살피다 공간대에서 알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갈 곳을 찾아 움직이던 기운들이 알로 몰려들었다.

    쩍-

    그 순간. 알에 실금이 생겼다.

    하지만 기대감이 가득한 준혁을 만족시켜주기 싫다는 듯, 실금이 생긴 알은 더 많은 반응을 보여주진 않았다.

    “흠.”

    손에든 알을 내려다보며 준혁은 침음을 흘렸다.

    8층에 있던 석상들은 하나같이 원영기 후기에 가까웠다.

    그런 석상들 수십 마리를 상대하다 보니 이미 기력과 체력도 밑바닥.

    만약 석상들이 일정 수를 지키며 덤벼들지 않고, 모조리 한꺼번에 덤볐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쳤을 준혁이었다.

    현재 준혁의 고민은 알을 깨우기 위해 한 층만 더 올라가느냐, 아니면 탑을 내려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상에서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명혼단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

    “그래, 한 층만 더 오르자.”

    결국 알을 깨워보기로 결심한 준혁은 석상들이 서 있던 자리에 놓인 공간석을 전부 챙기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9층으로 올라가기 전, 최상의 컨디션을 찾아야 했으므로.

    +++

    9층.

    8층을 정리하고 간이 전송진을 이용해 9층에 오른 준혁의 얼굴엔 당황이 스치다 사라졌다.

    “여긴···.”

    지금껏 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던 다른 층들과 달리 9층은 넓은 초원.

    무릎까지 자라난 까끌까끌한 풀들이 있지도 않은 바람에 흔들리며 준혁을 반겨 주었다.

    쾅!

    그때 허공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피를 증명하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자는 지금껏 보았던 용각족과 달리 덩치가 두 배가량 컸다. 거기다 말까지 하자, 준혁은 혹시나 ‘살아있나?’ 하는 마음에 기감을 쏘아 보냈다가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갑자기 나타난 상대 역시 이지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

    말을 마친 상대는 준혁이 자신을 살펴보는 게 기분 나쁘다는 듯,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한 채, 곧장 땅을 박차더니 준혁에게 날아들었다.

    ‘완영기 초기다. 다행히 이번 관문부터는 하나씩 상대하는 건가? 그렇다면.’

    준혁은 잔영을 남기며 쇄도하는 상대를 피해 허공으로 치솟으며, 공간대에서 족자 하나를 꺼내 앞으로 던졌다.

    즉시 수결을 맺자. 족자가 부르르 떨더니, 그 안에서 흉악하게 생긴 백호 한 마리가 튀어나오며 사자후를 질렀다.

    “크아아앙!”

    동시에 준혁도 혈맥의 힘을 발동시켰다.

    “크아앙!”

    상대는 백호 울음소리와 준혁의 혈맥의 힘이 중첩된 영향으로 살짝 비틀거리며 땅에 착지하더니, 고개를 들어 허공에 떠 있는 준혁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번쩍하며 준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강체공을 바탕으로 근접전을 선호하는 용각족, 그런 용각족의 완영기 수사의 몸놀림은 준혁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슈악!

    거의 적마도를 이용한 순간이동처럼 빠른 속도로 준혁의 등 뒤로 치솟아 오른 상대가 솟아오르던 힘 그대로 발을 올려 찼다.

    콰앙!

    상대의 공격은 속도만큼은 압도적이었으나, 디버프의 영향인지 이미 준비하고 기다리던 귀원패와 월광지력을 뭉친 얼음덩어리를 뚫진 못했다.

    준혁은 상대의 빠름에 혀를 내두르며 또 다른 족자를 꺼내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족자에서 나무줄기가 뻗어 나오더니 연꽃 모양의 꽃잎을 만들어내며 주변을 완벽하게 에워쌌다.

    곧이어 뻗어나간 줄기에서 작은 줄기들이 자라나며 상대의 발목을 순식간에 감쌌다.

    “크아악!”

    발이 묶이자, 기동력을 잃어버린 상대는 괴성과 함께 주먹을 내지르며 요동쳤다.

    그 순간 준혁의 머리 위로 거울 하나가 떠올랐고, 그 위로는 하얀 원반이 자리를 잡았다.

    인지경으로 영력을 증폭시키며, 동시에 만월강하진으로 월광지력을 강하게 만든 준혁은 상대가 구속을 풀고 도망가기 전에 서둘러 공격에 나섰다.

    촤르륵-

    수십 자루의 분광소가 나타나며 달빛을 반사하듯 하얗게 빛났고, 동시에 준혁의 발아래서 금빛 실이 생겨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에게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주변 기온이 급하강하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준혁의 손짓에 따라 월광지력을 품은 분광소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쇄도하더니 상대방의 전신을 스치며 시선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분광소에 월광지력을 담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 기운이 용각족의 강인한 피부를 뚫기에는 역부족.

    분광소가 주위를 어지럽히는 사이, 준혁은 적마도를 이용해 소리 없이 상대의 등 뒤로 이동했고, 상대방이 알아차리고 반응하려는 순간 심장과 단전에 달의 정기를 쑤셔 박아버렸다.

    그 순간 발아래 똬리를 틀고 있던 금빛 실이 위로 솟구치며 상대의 몸을 꼬치 꿰듯이 뚫어버렸다.

    그러자 상대방의 피부위로 알 수 없는 문양이 생겨났고, 그 효과에 힘입어 월광지력이 순식간에 상대를 얼려버렸다.

    "아직."

    준혁은 상대방이 얼려있긴 하지만, 아직 처치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경거망동하지 않고 곧바로 대라멸진 원반을 꺼내 발동시켰다.

    쿠웅-

    동시에 3품 화목단 세 알을 삼키고는 혈단법을 이용해 몸의 정혈을 터트린 후, 식검을 인지경과 공명시켰다.

    완영기에 올랐다고는 하나, 대라멸진을 발동시키는 일은 쉬이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주위로 대라멸진을 이루는 기둥들이 나타나자, 준혁은 손가락으로 얼음 속 상대의 이마를 짚으며 작게 읊조렸다.

    “대.”

    하늘에서 문자가 떨어져 내리며 대라멸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

    상대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먼지처럼 부서지며 사라지자, 준혁은 창백해진 안색을 뒤로한 채 두 원반을 챙기고 냉기를 회수했다.

    “진짜 완영기를 만난다면 이런 방법으론 절대 이기지 못하겠지.”

    상대방을 처리하긴 했지만, 준혁은 내심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수행이 올라갈수록 자신이 가진 공격수단이 수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이번에 용각족 완영기를 처리한 것은 상대방이 특수하게 만들어진 존재였기 때문이지, 만약 원영을 보유한 진짜 완영기였다면, 절대 쉽게 승리할 수 없었단 걸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순수한 전투 능력만 따진다면 용각족은 목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에 대해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어느새 허공엔 희끄무레한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고, 준혁은 공간대에서 알을 꺼내 손 위에 올렸다.

    그러자 희끄무레한 기운은 기다렸다는 듯 알 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쩌 적-

    준혁의 예상대로 9층의 기운까지 흡수한 알은 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뀨륙”

    그리고 갈라진 알의 틈 사이로, 손바닥만 한 도마뱀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마뱀은 알에서 나와 준혁의 눈을 응시하더니 무언가에 이끌리듯 팔목을 타고 이동해 어깨를 지나 준혁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청호와 똑같이 심장 앞에 자리를 잡더니 몸을 웅크리고는 눈을 감았다.

    안에서 무엇이 나오든 곧바로 종속의 인부터 걸려고 했던 준혁은 두 마리의 도마뱀이 어미 품에 안긴 새처럼 새근새근 잠든 걸 보고는 조심스럽게 영력을 흘려보내 상태를 파악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두 영물(?)은 온몸이 영기로 꽉꽉 차 있는 상태.

    아마도 알에서 부화하기만 했지 완전히 생명체로서 각성을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한참동안 품속의 도마뱀들을 살피던 준혁은 빈 알껍데기를 공간대에 담고는 주변을 수색했다.

    하지만 다른 층들과 달리 공간석이 없자, 아쉬운 표정으로 10층으로 예상되는 간이 전송진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자리에 털썩 앉고는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알이 부화했으니 이제 탑에서 나가려고 마음먹었지만, 다른 층들과 달리 9층엔 외부로 나갈 출구가 없고, 오직 전송진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10층에 어떤 관문이 기다릴지는 모르지만, 다시 도전해볼 수밖에.

    +++

    10층.

    탑을 만든 자가 5의 배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지, 10층은 5층과 마찬가지로 법기류를 선택할 수 있는 보상의 층이었다.

    5층에서 기대 이상의 비행법기를 얻은 준혁으로서는 기대감이 충만할 상황이었다.

    다만 기쁜 마음을 표출하지 못하고 잔뜩 긴장한 준혁의 모습은 한가지 이유 때문.

    준혁의 맞은편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고지식한 얼굴로 긴 수염을 매만지고 있는 사내.

    “크흐흐, 드디어 나를 대신할 놈이 나타났구나”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바라보는 마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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