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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34화 (134/408)

< 134화. 거래 (1) >

천이화를 제자로 받아들인 후, 몇 주간, 그녀의 체질에 적합한 저급 화목단을 만든 준혁은 그녀를 사쿠라에게 맡기고는 다시 한번 칩거에 들어갔다.

이번엔 수련 목적이 아닌, 울릉도에 지목족 혈맥의 힘을 적용하려는 것.

하지만  준혁의 능력으로는 성인봉 하나를 겨우 혈맥의 영향 아래 두는 게 한계였다.

처음엔 성인봉 거처에 힘을 집중하고, 울릉도 전역엔 아주 옅게 힘을 퍼트리려 계획했지만, 능력 부족이었다.

성인봉에 펼친 것도 진법의 보조를 받아야 했기에 엄청난 양의 영석을 계속해서 소비해야 했고, 준혁이 자리를 비우면 천천히 기운이 흐릿해지면서 결국 효과가 사라져버렸다.

그 기간이 한 달 정도였기에, 결코 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영역을 만들지 않으면 제대로 사용하기 힘들겠구나.”

사람들은 성인봉에 펼쳐진 수련 증진 효과로 경악할 테지만, 준혁이 목표로 했던 능력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기목청은 거대한 지목족의 거주지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그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때 거처밖에서 전음부가 날아들며 청명의 방문을 알렸다.

잠시 후 준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청명이 비각주와 함께 거처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불필요한 예를 갖추려 하기 전에 준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 있느냐?”

청명은 인사를 하려다, 움찔하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조금 늦어지긴 했으나, 습격자들의 시신을 반환하는 일이 순조롭게 끝나, 그에 대한 보상이 따로 도착했습니다. 그때 거둔 공간대도 그대로 있는데···. 어찌할까요? 함께 위로 올리면 되겠습니까요?”

청명에 말에 준혁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응결식 당시 수많은 수사들이 보고 있었기에, 처리한 수사들에게서 일일이 공간대를 수거하지 않았었다.

그것들을 준혁의 전리품이라 여겨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 같았다.

“영석은 진법을 발동시키는 데 필요하니 옆 창고로 옮기고, 나머지는 네가 분류를 끝낸 후, 필요하다 싶은 것만 나에게 보내거라.”

준혁의 명령에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요. 헌데, 어르신. 지금 섬 안에 수사들이 매일같이 저를 괴롭힙니다요. 하나같이 천은소(天恩所)의 상층부에 가기 위해선 어찌해야 하느냐고 저를 닦달하는데···. 후유···.”

“천은소? 그것이 무엇이냐?”

준혁은 들어본 적 없는 장소라 고개를 갸웃했다.

“성인봉의 거처를 뜻합니다요. 그곳에 사는 건 하늘의 은혜와 다름없다며 그리들 부릅니다요.”

청명이 죽상을 하며 말하자, 준혁이 비각주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천은소라... 그래. 마침 비각주도 있으니 말해두겠다. 앞으로 두 사람은 3년간 마선문과 섬의 발전에 기여한 공과를 수치화해 120위까지 순위를 매기거라.”

“120위라 하심은···.”

성인봉 거처의 가장 상층부에 뚫린 거처 4곳을 제외하면 나머지 거처의 총합이 120곳이었다.

“그 순위에 따라 3년마다 거처를 배정할 테니 두 사람은 사심 없이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이야.”

준혁의 말에 비각주가 입을 열었다.

“축기기와 연기기도 말입니까?”

“물론. 공과에 수행은 필요 없다. 단, 모든 혜택은 마선문에 입문한 자에게만 돌아갈 것이니, 계약 형식으로 발을 담그고 있는 자들에겐 확실히 전하도록 하거라.”

준혁이 정확한 지침을 정해주자, 청명은 홀가분한 얼굴로 몸을 숙였다.

청명의 볼일이 끝났다고 여긴 것인지 비각주 오명한은 품속에서 옥간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알아보라 하신 것들입니다.”

준혁은 별말 없이 두 옥간을 받아 내용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준혁의 치하에 비각주 역시 청명처럼 몸을 숙이고는, 잠시 후 두 사람은 거처 밖으로 발을 옮겼다.

+++

비각주가 전해준 옥간 하나엔 백두산 인근의 최근 정황들이 들어있었고, 다른 하나엔 영천수를 보유한 일본의 세력들과 위치가 적혀있었다.

두 사람이 나간 후, 옥간 속 내용을 자세히 살핀 준혁은 곧장 거처를 벗어나 허공을 갈랐다.

고민 없이 일본 도쿄 외곽에 도착한 준혁은 가장 농도가 짙은 영천수를 보유한 대금당의 본당으로 향했다.

원계획은 미력천문(美曆天門)이라는 곳을 찾아가려 했으나, 비각주가 전해준 소식에 계획을 바꾼 것.

잠시 후 여러 겹의 진법으로 둘러싸인 5층 목탑 앞에 도착한 준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한국에서 온 최준혁이다. 대금당 당주와 나눌 얘기가 있으니 길을 열어라.”

무거운 영력이 담긴 목소리가 퍼져나가자, 건물을 감싼 진법이 미묘하게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는 결단기 중기 수행을 지닌 여인 한 명과 결단기 초기의 인물 세 명이 건물에서 나와 준혁 앞으로 날아왔다.

여인은 준혁 앞에 당도하기가 무섭게 허리를 숙였다.

“하늘 같은 선배님을 뵙니다. 어쩐 일로 누추한 저희 대금당을 찾아주셨는지요.”

응결식에서 준혁을 본 적 있던 대금당의 당주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 본 적이 있군.”

“예. 소인이 부족하지만 대금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여인의 말에 준혁이 본론을 꺼냈다.

“영천수를 사려고 왔다. 수원지를 통째로 살 테니 원하는 가격을 불러보시게.”

“가장 농도가 짙은 영천수를 찾는다 들었습니다. 저희가 보유한 것들은 온천에서나 사용하는 것뿐···. 실망하게 해드릴까 염려되옵니다. 미력천문에 가시면 일본 최고품질의 영천수가 있사옵니다···.”

그러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

당주의 말에 준혁이 입가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다.

“대금당에 소속된 야마기 수사의 개인 소유의 영천수가 심천수로 불린다고 하더군.”

심천수란 말에 당주가 깜짝 놀라 준혁을 직시하다가 빠르게 시선을 거뒀다.

“그, 그것이···. 그건 저희 대금당의 소유가 아닌···.”

“걱정 말게, 내가 후배의 물건을 강탈하기라도 하겠나? 야마기 수사가 충분히 만족할만한 거래를 할 터이니 안내만 해주면 되네.”

준혁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인 당주는 결국 곁에 있던 수하에게 귓속말을 전하고는 후지산 방향을 향해 손으로 안내하듯 행동을 취하며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주는 허공을 박차 둔광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후지산 중턱을 향해 날아갔다.

+++

잠시 후. 준혁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옹골지게 생긴 사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사쿠라에게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사내는 일본의 삼대 수사 중 하나이자, 준혁이 사용하고 있는 상급 공간대를 만든 연기사. 야마기였다.

“대장인을 보게 되니 반갑습니다. 자리에 없을 때가 많다더니, 운이 좋습니다.”

준혁이 말에 야마기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선배님, 말씀 편히 부탁드립니다.”

“수행을 떠나 장인의 길을 걷고 있거늘, 어찌 함부로 하대를 하겠습니까?”

“부탁드리옵니다.”

거듭된 야마기의 부탁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공간대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겠네. 그러니 고개 좀 들게나. 자네가 만든 공간대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어.”

“오래전 사쿠라에게 준 물건이군요. 선배님께서 만족하신다니 제가 영광입니다.”

공간대 칭찬으로 말문을 튼 준혁은 야마기와 법기 제작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한참 후에야 본론을 꺼냈다.

“혹 내가 왜 왔는지 아는가?”

야마기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농도 짙은 영천수를 찾는다 들었을 때부터, 혹시나 찾아오실까 생각했습니다.”

야마기가 방문 목적에 대해 예상하자,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얘기가 쉽겠군. 자네가 소유한 심천수라 불리는 영천수 수원을 나에게 팔게나. 자네가 만족할만한 대가를 지불하겠네.”

야마기는 고민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선배님께서 필요하시다면 그냥 가져가셔도 됩니다. 대가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말은 그렇지만 본심까지 그렇지는 않을 터.

준혁은 피식 웃고는 공간대에서 부서진 법기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지목족 봉인지, 하늘정원에서 가져온 물건.

“그럼 영천수는 그냥 받는 거로 하고, 이건 선물로 주겠네.”

선물이란 말에 야마기가 관심 없는 척 눈길을 주다가 화들짝 놀라며 물건을 받아 갔다.

“이, 이것은!”

“선계의 삼경 이상의 강자들이 사용했던 법기일세. 망가지긴 했으나, 재료 본연의 기운은 그대로이고, 그 안에 새겨진 회로 역시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더군. 아마 연구해본다면 크게 얻는 것이 있을걸세.”

법기에 영력을 불어넣어 확인해본 야마기는 아까와는 달리 진심이 담긴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인 준혁이 별것 아니란 듯 말했다.

“그럼 영천수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나?”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 참, 비슷한 물건들이 제법 많이 있으니, 혹 더 필요하다면 울릉도로 찾아오시게나.”

+++

잠시 후 준혁은 지름 3m도 되지 않은 작은 연못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크기는 초라해 보였지만, 기감으로 영천수를 살펴본 준혁은 그 깊이에 놀라는 중이었다.

보통 영천수란 수원지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있는 게 대부분. 하지만 야마기가 소유한 영천수는 옆이 아닌 아래로 수십 미터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특이하군, 설마 수원의 모양이 질을 결정하나?’

“선배님, 헌데 어찌 가져가실 생각이신지···.”

수원이란 특정 매개체가 아닌 물을 자연적으로 생성해 내는 일정 지반을 일컬었다.

하지만 특정 부위의 지반을 채집해 간다고 해서 동일한 효능의 영천수가 만들어질 리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곳곳에서 영천수 도둑이 판을 쳤을 터.

가벼운 미소와 함께 준혁이 손을 저었다.

“물러나 있게.”

그리고 야마기와 대금당의 당주가 뒤로 물러나자 준혁은 한 손에 월광지력을 뭉치며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 쩌저정-

준혁의 손이 바닥에 닿자, 충격음과 동시에 주먹을 중심으로 주위 수십 미터가 얼어붙었다.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을 파고들며 미약하게 들려왔고, 잠시 후에 준혁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는

쾅!

강하게 발돋움하자, 영천수 전체를 감싼 거대한 대지가 얼어붙은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부웅-

살짝 떠오르던 대지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다시 떨어져 내리려던 순간. 준혁이 수결을 맺으며 영기파동을 퍼트리자 거대한 대지는 구름이라도 된 것처럼 둥둥 떠 버렸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설마 지반 전체를 통째로 뜯어갈지 몰랐기에 야마기와 당주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천수는 직경 3m에 깊이로는 수십 미터.

하지만 준혁이 얼려서 뜯어낸 땅은 영천수를 감싼 대지 전체였기에, 그 크기가 영천수의 대여섯 배는 될듯했다.

준혁은 놀라는 두 사람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살짝 떠오른 대지를 손으로 받쳐 드는 시늉을 하며 야마기에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네, 선배님. 후일 꼭 찾아뵙겠습니다.”

야마기의 인사를 뒤로한 채 울릉도로 돌아가려 허공으로 몸을 띄우던 준혁은 갑자기 멈칫하더니 자신의 손목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야마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깜박할뻔했군. 야마기 수사. 혹시 공간석이라고 들어보았나?”

팔목에 문신으로 남아 있는 공천령을 발동시킬 수 있는 물건.

오래전부터 상급 공간대에 공간석이 쓰인 건 아닐까 의심했던 준혁.

준혁의 질문에 야마기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봅니다.”

“그런가? 상급 공간대의 재료로 사용한 줄 알았더니.”

실망한 듯한 준혁의 목소리에 야마기가 두 눈을 껌뻑거리다 말을 이었다.

“혹시 공부석(空浮石)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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