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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28화 (128/408)
  • < 128화. 가르침 (1) >

    분지에 마련된 마선문의 본청 앞.

    그곳엔 거대하다는 표현에 걸맞은 단(壇)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 주위로는 서 있을 틈도 없이 빼곡하게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자들은 분지를 두르고 있는 산의 나무 위에 올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뙤약볕을 만들어가던 그때.

    “시작한다!!”

    누군가의 외침이 신호가 된 듯, 모든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하늘 한쪽에서 빛무리를 머금은 누군가가 날아들며 단 위로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응결식을 시작하겠다!”

    빛을 머금은 사내, 준혁은 목소리에 영기를 실어 멀리까지 퍼트린 후 허공으로 몇 걸음을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됨을 느끼고는 전신의 영력을 개방했다.

    “크아아아앙!!”

    그 순간 벼락같은 사자후가 영기파동과 함께 분지 전체를 뒤흔들었다.

    원영기 수사의 고명한 술법을 기대하고 있던 수사들. 그들 중 축기기 수사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결단기 수사들은 얼굴이 핼쑥해지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잠시 후 사자후로 사람들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준혁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앙-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거대한 냉기가 폭발하더니 주변을 뒤엎었고, 잠시 후엔 분지 전체에 서리가 내려앉으며 사람들이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

    원영 응결식이란, 원영기에 오른 수사가 만천하에 자신의 수행을 알리며 자신의 가르침을 퍼트리는 행위.

    고대의 서책에서 발견된, 선계의 진선식(眞仙式)을 모방해 인도의 원영기 수사인 아르나프가 처음 시작한 일이었다.

    원래의 진선식은 자신이 진선에 오르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전파하는데 의의를 두는 것이었지만, 아르나프의 잘못된 해석으로 수행을 과시하며 자신을 알리는 행사가 돼버린 것.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이미 지구식으로 해석돼버렸기에 준혁은 어쩔 수 없이 관행을 따르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원영기 수준의 능력을 과시한 준혁이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오더니 단 위에 우뚝 섰다.

    모든 이들이 하늘을 찢어버릴 것 같은 영기파동과 분지 전체의 온도를 내려버린 냉기에 전율하는 사이.

    진짜 실력이 있는 몇몇은 몸을 부르르 떨며 준혁을 주시했다.

    분지에 있는 사람 중, 연기기급 수사들만 아무 충격도 없이 멀뚱한 표정으로 주위를 관람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영기를 조종하는 준혁의 수행이 일반적인 원영기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쿵-

    준혁이 단 위에서 발돋움하자, 다시 한번 영기파동이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모두를 괴롭히던 냉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

    잠시 후 준혁이 단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자, 본격적인 원영응결식이 시작되었다.

    응결식이 시작되자, 눈도장이라도 찍겠다는 듯 수사들이 앞다투어 단 앞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 단 앞에 모인 자들은 결국 수행의 순서대로 한 명씩 단 위로 걸어 올라갔다.

    “선도의 길에 올라서신 걸 축하드립니다.”

    처음으로 단 위에 올라간 이는 준혁에게 인사를 올린 후 가지고 온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중국 산서에서 온 류근이라 하옵니다.”

    “오느라 수고했네. 편히 쉬다 가면 좋겠군.”

    준혁의 덕담에 류근은 겸손하게 질문했다.

    “앞선 길을 걷는 선배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 수행이 50년 동안 정체되어 있습니다. 혹 이것을 돌파한 방법이 있을는지요.”

    류근은 결단기 후기 수사. 그것도 후기 끝자락에 이른 수사였다.

    그가 준혁에게 묻는 수행 돌파란 원영기에 이르는 방법을 묻는 것과 다름없었다.

    준혁은 류근의 질문에 피식 웃더니, 손을 뻗어 그가 가져온 상자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기감으로 상자를 살피고는 상자 안을 확인했다.

    변질된 원영 응결식에는 한가지 규칙이 존재했는데, 응결식을 치르는 자는 후배의 어떤 질문에라도 답변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단, 그 질문의 무게에 따른 대가를 준비하는 것이 후배가 할 일이었다.

    “저희 가문의 가보로 내려오던 법보 낙수반(落水槃)이라 합니다. 부족하다고 여기시면 물러나겠습니다.”

    준혁은 낙수반에 영기를 불어넣어 보고는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낙수반은 방어 법보로 나중에 동생에게 주면 좋을 것 같은 무구였다.

    낙수반을 공간대에 넣은 준혁이 말했다.

    “류근 수사는 화기를 다루는 공법을 익히고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한눈에 알아보시다니 역시···.”

    “오행이 화기에 치우쳐져 몸의 균형이 깨진 상태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응결의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

    준혁이 단번에 상태를 꿰뚫어 보자, 류근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렸다.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면 어찌해야 할지도 알려주시겠습니까?!”

    준혁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척했다.

    “흐음···. 화기를 누를 수 있는 강체공을 익히면 될 것이네.”

    “강체공 말입니까?”

    류근은 화기를 누른다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강체공이란 말에는 의구심을 표했다.

    “무릇 심기체의 균형은 바른 몸에서 나오는 것. 오행 역시 다를 것 없네. 자네의 육체가 나약하니 오행이 틀어짐을 막지 못한 것이지. 그걸 바로잡기 위해선 몸을 단련함이 우선되어야 함세.”

    준혁의 설명이 끝나자, 류근의 표정은 똥 씹은 듯 구겨졌다.

    결단기 후기에 오른지도 수십 년이 흘렀고,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언제 화기를 누를 공능을 가진 강체공을 찾고, 그것을 일정 수준 이상 익힌단 말인가.

    준혁이 말한 방법은 결국 이룰 수 없는 수단이었다.

    그때 준혁이 류근의 표정을 읽고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가장 먼저 이곳에 오른 걸 보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겠지. 후배의 성의가 부족하긴 하지만, 오늘은 조금 선심을 쓰도록 하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준혁의 손끝에서 하얀 실이 빠져나오더니 류근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에 류근은 준혁이 쏘아 보내는 기운을 그냥 몸으로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피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가르침을 내리는 중이라 하나, 정체불명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

    류근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눈앞까지 다가온 기운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자 하얀 실이 류근의 명치로 파고들었다.

    ‘이건!!’

    류근은 하얀 실이 가진 냉기와 냉기가 이동하는 경로를 빠짐없이 기억했다가, 잠시 후 기운이 증발해 버리자 준혁을 향해 크게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잘 해결하길 바라네.”

    준혁이 류근에게 행사한 일?

    그건 냉기를 직접적으로 몸 안으로 침투시켜 화기가 일정 시간 동안 힘을 쓰지 못하게 내리누름과 동시에 광신체령투선공의 기본 묘리를 몸에 심어준 것이었다.

    물론 월광지력도 없고, 기초 중의 기초에 불과한 영기 순환법에 불과했지만, 류근이 똑똑한 자라면 수많은 공법 중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준혁이 힌트를 주었다는 걸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래도 판단력이 나쁘진 않군, 조금이라도 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면 기운을 회수하려 했더니.’

    +++

    류근이 단에서 내려간 후, 연이어 결단기 수사들이 선물을 바치며 준혁에게 질문을 했다.

    대부분은 류근과 마찬가지로 수행에 관한 질문이었지만, 몇몇은 전혀 엉뚱한 걸 묻기도 했다.

    “선배님! 혹 처소에 일 잘하는 시종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제 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미색도 뛰어난데다 수행도 부족하지 않아 시종으로는 그만인 아이가···.”

    “선배님께서는 성혼하셨습니까? 아직 이시라면···. 현모양처라는 수식이 걸맞은 결단기 초기의 여수사를 알고 있사온데···. 한번 만나실 의향이···.”

    그렇게 원영 응결식은 쉬지 않고 이어졌고, 어느덧 나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준혁에겐 한없이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겐 금과옥조가 될법한 말들이었기에 응결식의 열기는 가라앉질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조만간 성취가 있을걸세.”

    “감사합니다. 선배님!”

    또 한 명의 수사가 크게 허리를 숙인 후 단에서 내려갔다.

    ‘예상보다 더 많구나···. 하긴. 원영기 수사에게 가르침을 받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

    수도계가 활성화된 지 얼마 안 됐기에, 고위 수사의 수가 너무 적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대가를 받고 가르침을 내리는 이런 기이한 풍습이 만들어진 건지도 몰랐다.

    그때, 상념에 빠져들던 준혁을 일깨울만한 기운이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그것은 붉은 혜성처럼 빛나고 있었는데, 불같은 열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누가 감히! 응결식에서 비행을!”

    “저런 무례한 자를 보았나!”

    허공에 붉은 궤적을 그리며 나타난 이는 어느새 준혁과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서더니 손가락으로 준혁을 가리켰다.

    “당신이 원영기에 오른 최준혁이란 자인가?”

    준혁은 상대의 수행을 단번에 파악하고는 제이엘이 말해준 이를 떠올렸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인가?’

    준혁이 비경으로 사라진 후, 지구에 새롭게 나타난 2명의 원영기.

    그중 한 명은 중국의 남궁명 이라는 자였고, 다른 한 명이 이탈리아의 안토니오였다.

    앞에 떠 있는 자는 누가 보아도 서양사람의 모습이었기에, 준혁은 그가 안토니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의 정답을 알려주듯 몇몇 수사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원영기 안토니오다!”

    “이탈리아의 원영기 수사!”

    안토니오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기분이 좋은 듯, 분지 내 사람들을 쓰윽 훑더니 준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응결식에서는 수행 확인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걸 알 테지?”

    수행 확인이란 응결식에 오르는 자가 진짜 원영기 수사인지 확인하는 작업으로 이의를 제기한 수사가 대결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물론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사항일 뿐,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 없는 절차였다.

    당연하게도 원영기에 든 자는 굳이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천지 현상을 불러와 수행을 올리는 걸 보였을 테니 그런 과정이 필요가 없었던 것.

    거기에 더해 절대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존재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준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물론입니다. 허면 수사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수행 확인을 요구할 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걸?”

    준혁의 말에 갈색 머리를 질끈 동여맨 안토니오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받았다.

    “당연하지. 그럼 내 요구를 받아줄 텐가?”

    준혁은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위로 가실까요?”

    준혁은 혹시나 대결로 인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 여겼지만, 안토니오의 의견은 달랐다.

    “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행이 드러나는 게 겁나나?”

    “......”

    준혁이 어처구니가 없어 대답하지 못하자, 안토니오가 말을 이었다.

    “죠제프에게 들으니 네놈이 다니엘을 죽였다지?”

    ‘죠제프? 유럽연합?’

    단 한 번 마주쳤을 뿐이었지만, 제이엘의 거처로 찾아왔던 삐쭉 머리의 살기 가득한 눈을 한 남자를 기억했다.

    “수행 확인이 아니라 복수를 하러 오셨습니까?”

    준혁의 질문에 안토니오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아무튼 가짜 수행이라면 오늘 크게 곤욕을 치러야 될 거야.”

    가짜일 리가 없음에도 가짜를 논한다는 건, 그걸 핑계로 일을 벌이겠다는 의도.

    준혁은 싸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서 원하신다면, 저 역시 준비가 되었습니다. 수행 확인을 해보시지요.”

    “그래! 확인해보지! 맘 단단히 먹어야 할 테야!”

    말을 마친 안토니오 뒤로 붉은 화살 세 개가 떠올랐다.

    안토니오는 허공에 원진을 그리더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다 준혁의 심장을 겨누었다.

    “하늘을 삼키는 화조여! 발화하라!”

    안토니오 입에서 주문과도 같은 말이 흘러나오자, 그의 주위에 떠 있던 화살이 원진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는 원진을 통과하자 거대한 붉은 새로 변하며 준혁에게 날아들었다.

    세 마리로 화한 붉은 새는 한 마리 한 마리가 엄청난 열기를 품고 있었는데. 멀리 떨어진 응결식에 참여한 자들이 방어 법기를 꺼내 몸을 보호해야 할 수준이었다.

    쉬에에엑-

    붉은 새 세 마리가 날아오는 걸 보며 준혁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자, 안토니오는 의기양양해 하며 소리쳤다.

    “겁먹었다고 봐줄 것 같으냐!”

    그때, 가만히 생각에 빠져있던 준혁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는 손을 살짝 젓자 화염으로 이루어진 세 마리 새가 퍼엉 하며 터져 나가며 붉은 화살로 변해버렸다.

    그 모습에 안토니오가 두 눈을 부릅뜨며 당황했고, 그 순간 준혁의 모습이 번쩍하며 사라져 버렸다.

    안토니오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으며 서둘러 방어 술법을 펼쳤다.

    푸욱-

    하지만 술법이 완성되기도 전, 어느새 앞에 나타난 준혁의 손이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동시에 가슴에서 시작해 온몸이 경직되며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정-

    단 한 수만에 안토니오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준혁은 가슴에서 손을 빼며 곧바로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확인해보니 어떻습니까? 응결식을 치를 자격이 된다 여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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