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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27화 (127/408)

< 127화. 원영 응결식 (4) >

분지에서 준혁의 호언장담이 있고 난 뒤,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청명의 수행에 관한 것이었다.

일각에선 그것을 두고 내기를 하는 자들까지 나올 정도였다.

물론 누군가 알게 된다면 크게 경을 칠 일이었기에, 내기 당사자들끼리 조용히 이루어졌다.

그중 7층으로 이루어진 비각 건물의 상층부에선 비각의 부각주 두 명이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못한다는 것에 결단기 수행을 올려주는 증가단(增加丹) 한 알을 걸지.”

“그럼 난 증가단 받고 영석 200개를 더 걸겠네. 실패한다는 데에.”

“아니 그러면 내기 성립이 안 되질 않나! 에헤이.”

부각주 두 명은 준혁이 청명을 결단기로 올리는 데 실패할 거라며, 서로 같은 곳에 배팅하려다가 결국 내기가 무마되고 말았다.

벌컥-

그때 문이 열리며 비각주 오명한이 들이닥쳤다.

“여기서 뭣들 하는 짓이냐! 감히 천지 분간하지 못하고 도주를 내기 거리로 삼아?!”

서슬 퍼런 각주의 고함에 두 사내는 바짝 얼어붙었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짧지 않은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죄! 죄송합니다! 헌데···. 각주님은 궁금하지 않으신 것입니까요? 어딜 가나 다들 이 얘기 뿐입니다.”

“쯧쯧. 한심한 놈들. 되냐 안되냐가 아니라 무조건 되어야 함을 모르느냐?”

오명한의 꾸지람에 부각주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이러고도 정보를 담당하는 비각의 부각주라니 한심하구나 한심해. 도주께서 공식 석상에 올라 처음으로 장담한 말이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분의 위상은 어찌 되겠느냐?”

“아···.”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린 그 소문이 섬을 벗어나지 않게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야만 할 것이다. 너는 그러고 싶으냐? 어릴 때는 총명하던 녀석이 어찌 시간이 지날, 이게 무슨!!”

훈계하던 오명한이 흠칫하며 문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두 명의 부각주 역시 무언가를 깨달은 듯 놀란 눈을 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문을 박차고 나가며 건물 밖으로 향했다.

잠시 후, 건물 밖을 나온 세 사람은 이미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성인봉이 위치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인봉 위.

그곳엔 거대한 영기구름이 뭉쳐 들며 오색 빛을 내뿜었고, 동시에 뇌전을 뿌리고 있었다.

“누군가 결단을 맺고 있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아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

사흘 후.

울릉도를 뒤덮던 영기구름이 사라지고 어느새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그런 하늘 아래, 청명은 준혁 앞에 바짝 엎드린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청명의 눈가가 마를 새가 없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요. 어르신을 만난 것이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입니다요.”

준혁은 가볍게 손을 저어 우는 청명을 일으켰다.

“너를 결단기로 만든 건 나지만,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만든 건 너이지 않으냐.”

준혁의 말에 청명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수행이 너무 낮았기에 정확한 건 판단하지 못했지만, 준혁이 자신을 결단기로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행한 일이 결단기가 될 정도로 가치가 있었다면, 세상엔 지금보다 결단기의 수가 수십 배는 많아야 할 것이었다.

“평생. 대인 어르신을 보필하며 살겠습니다요.”

“또 그놈의 대인 어르신.”

괴상한 호칭에 준혁이 너털웃음을 터트리자, 청명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개파식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더욱 바빠질 것이다. 앞으론 내가 일러준 대로 행하고.”

“예.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요.”

이미 개파식과 원영응결식에 관한 업무 전체를 총괄하고 있던 청명은 준혁이 지시한 여러 사항을 떠올리고는 성인봉을 벗어났다.

떠나는 청명을 보며 준혁은 며칠 간의 고생을 떠올렸다.

다른 이들은 단약으로 결단기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단약일 때를 말하는 것.

준혁은 청명에게 원영기의 수행을 올려주는 3품 화목단을 세 알 먹이고, 강제로 몸을 영기 포화 상태로 만든 후에, 완영기의 수행을 올려주는 2품 화목단 한 알을 이용해 몸을 강제 각성시켜버렸다.

애초에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건, 원영기, 완영기의 수행을 크게 늘려주는 신단이나 다름없는 단약을 축기기에게 먹일 미친놈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

아니 그런 단약이 존재한다는 것도 상상도 못 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청명의 나약한 몸으로는 단약의 기운을 절대 이겨낼 수 없는 법. 몸이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갈 것을 알았기에, 처음 청명을 문주로 내정한 다음 날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강만학에게 받은 강체공인 월하현적체공을 가르치고, 만월강하진을 이용해 달빛을 증폭시키며 월광지력까지 조금씩 흘려보내 공법 수련을 도왔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단약을 먹인 것.

그 후에도 영기 도인 능력이 떨어지는 청명을 돕기위해 자신의 정혈을 집어넣어 혈단법의 운용방식을 이용해, 강제로 단을 만들게 해버린 것이었다.

‘쉽지 않았지.’

만약 아마르곤의 원영을 정혈로 씻겨냈던 경험이 없었다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일이기도 했다.

사실 효율 면에서 보자면 3품 화목단 세 알과 2품 화목단 한 알로 청명을 결단기로 만든 건. 비효율의 끝판왕 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준혁은 단약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직 화목단의 재료가 되는 지유목은 넘쳐나는 상황이었으니. 자신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의 수명을 늘려준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준혁은 자리를 떠나 마선문의 본청이 위치한 분지로 이동했을 청명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최소한 3백 년은 더 살 테니···.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변하지 말거라.”

일도 마음도.

+++

울릉도 북쪽에 위치한 분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중앙엔 9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목탑이 세워져 있었고, 목탑의 정면엔 ‘마선문’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있었다.

목탑 앞엔 현대식으로 지어진 5층 건물이 있었는데, 그 주위론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연기기부터 축기기, 결단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수사들이 원영기 수사가 만든 문파에 관한 관심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마선문의 본청 내부.

“문주님. 개파식이 너무 조촐하게 진행된 거 아니냐는 말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진짜 개파식은 준혁이 공로를 치하하며 진행하였기에, 대외적으로 진행하는 개파식엔 많은 것이 생략돼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전부 청명이 진행한 일.

청명은 비각의 부각주 중 한 명에게 옥간 하나를 건네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개파식이 아닌 어르신의 원영 응결식입니다. 이미 소문도 충분히 났으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결단기급 손님들이 내년에 있을 응결식까지 소란 없이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주십시오.”

준혁이 보았다면 놀랄만한 변화를 보이며 청명은 위엄이 가득한 표정으로 각종 문제를 처리했다.

개파식은 말 그대로 문파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였기에 청명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에 수많은 문파가 있다지만, 그 문파의 개파식을 기억하는 인물이 누가 있겠는가?

청명은 모든 이들의 관심이 오직 준혁의 원영 응결식으로 모이길 바랐다.

그랬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전 간결하게 개파식을 끝내버리고, 울릉도를 방문한 수사들을 수행에 따라 분류하며 원영 응결식이 치러질 때까지 문제없이 지내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듣자 하니, 독도의 광산에 몰래 침입하려던 자들을 붙잡았다고요?”

“그렇습니다. 산수 출신의 축기기 수사들로 이루어진 무리였습니다.”

“무위각주에게 전하십시오. 그 의도가 명확한 도적놈들을 살려줄 필요는 없다고.”

청명의 서슬 퍼런 명령에 부각주가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타국의 수사들인데, 개파식에 참여하려다 길을 잘못 들었다 했습니다.”

“두말하지 않겠습니다. 처리하라 전하시오.”

한때 같은 업종에 종사했던 청명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변명이었다.

+++

성인봉 정상.

대방음진으로 둘러싸인 준혁의 거처엔 세 여인이 좌정한 채 공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최나연, 사쿠라. 사유리.

하나같이 어려운 과정을 겪는 것인지 공법을 운용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중이었다.

잠시 후, 사쿠라가 가장 먼저 눈을 뜨더니 얼굴 가득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매일 놀라게 되네요.”

준혁에게 목족의 비술인 화신목영을 전수받은 사쿠라와 사유리는 그 후로 계속해서 그의 처소에서 수련을 했다.

처음엔 미숙한 공법 수련에 도움을 주기 위한 준혁의 명령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평소 보다 수련 효과가 수배는 높은 것 같은데. 어떤 방법을 쓰신 거죠?”

사쿠라가 매일같이 놀란 이유는, 준혁의 처소에서 수련하면 다른 곳에서 수련할 때보다 수배나 빠르게 수행이 올라간다는 것.

분명 어떤 술법이나 단약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효과를 발휘하자 신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감탄을 거듭하던 사쿠라는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뼉을 마주쳤다.

짝-

“그래서였군요! 혹시 도주의 처소 아래 수많은 거처를 만든 것과 관련된 것인가요?”

사쿠라의 질문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가까이 있을수록 수련 효과가 높아질 것이니, 그대도 가장 상층부의 거처를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오.”

준혁의 말에 사쿠라가 기쁜 표정을 하다가 잠시 후엔 눈을 흘겼다.

“그 말은 처음엔 가장 고층을 배정하겠지만, 나중엔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공로에 따라 배정할 생각이니, 지금처럼만 해도 그 공로를 인정해 주리다.”

준혁의 시선이 최나연에게 향하자, 사쿠라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진한 웃음을 머금었다.

“헌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

“따로 불러도 될 일을 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 거죠?”

개파식이 있기 전 공식 석상에서 사쿠라를 처소로 불러들인 걸 의미했다.

누가 들어도 오해할 소지가 충분했기에 준혁의 의도가 궁금한 사쿠라였다.

“특별한 것은 아니오. 다만 나를 따르는 자들 중 그대에게만 직책을 부여하지 않았기에, 모두에게 그대의 존재를 각인시켜준 것뿐이오.”

“아···.”

가장 신임하는 자들 중 청명에겐 마선문의 문주 자리를 맡겼다. 하지만 사쿠라는 여전히 이름뿐인 부도주의 자리에 있을 뿐, 아무런 권한도 권력도 없는 것.

예전엔 울릉도에서 가장 수행이 높았기에 웃어른 행세라도 했었으나, 이젠 그것도 아니었기에 준혁은 그녀가 특별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알린 것뿐이었다.

특히 새로 들어온 결단기 수사들에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최나연과 사유리가 공법 운용을 마치고 눈을 떴다.

사유리는 한걸음에 준혁 앞으로 다가오더니 넙죽 바닥에 부복했다.

“도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일어나라.”

준혁이 손을 가볍게 젓자, 사유리가 무언가에 끌어당겨 진 듯 반동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사유리는 더는 얼굴 가리개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고운 피부를 가지게 되었다.

“아직은 기운을 억누르는 것뿐, 완벽히 다스린다고 하기 어렵다. 아마 전투상황과 같이 영력을 강하게 끌어올리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테지. 그러니 화신목영을 온전하게 익히는 데 최선을 다하거라. 그렇다면 원영기에 오르기도 수월할 테고, 그 후엔 목족의 정혈을 온전히 너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

“평생토록 은혜를 갚겠습니다.”

“사쿠라. 그대도 마찬가지야.”

“네. 명심할게요.”

두 여인이 준혁을 향해 감사함이 가득한 눈길로 예를 표하자, 최나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진 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리 오빠 멋있네.’

+++

울릉도에 수많은 수사들이 방문하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처음엔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모여들던 수사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멀리서부터 방문했고, 1년이 지나가는 시점엔 수사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이들도 대부분 울릉도를 찾아왔다.

그런 수사들을 위해 수많은 자원과 인력이 사용되었고, 마침내 모두가 기다리던 원영 응결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원영 응결식에 오는 이들이 전부 기대감과 호기심을 가진것만은 아니었다.

몇몇 환영받지 못할 자들도, 마음속 흉심을 묻은 채 울릉도의 땅을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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