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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26화 (126/408)

< 126화. 원영 응결식 (3) >

준혁의 발언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사쿠라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만큼 다른 이들의 동요도 심했다. 그동안 사쿠라가 준혁에 대한 마음을 내비치긴 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뜻을 내보인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

더군다나 사쿠라 한 명뿐이 아닌 그녀의 제자까지 처소로 부른다는 건 그동안 준혁의 행동거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발언에 사쿠라 옆에 서 있던 최나연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누가 들어도 오해할 소지가 다분한 말.

결국 최나연은 모든 이들이 모여있는 공식 석상임에도 준혁을 향해 한 소리 하려 입을 열려고 했다.

그동안 사쿠라에게 사사하며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때, 그런 그녀의 머릿속으로 전음이 파고들었다.

-가만히 있거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니.

멈칫-

갑작스러운 준혁의 전음에 최나연은 사쿠라의 눈치를 보고는 그녀 역시 전음을 전해 받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잠시 후, 조금의 웅성거림이 머물다 사라지자, 준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나한 각주.”

나한이 움찔하더니 몸을 크게 숙였다.

“예. 말씀하시지요. 도주.”

2년 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한은 결국 준혁의 아래로 들어오기로 결정을 내렸다.

문파의 대표가 아닌, 마선문 휘하에 소속되는 선택이었지만, 후일 사쿠라가 찾아와 연단에 관한 한 자유를 보장한다는 설득에 결심하게 된 것.

“이것들을 받게.”

준혁의 손에서 떠나온 옥간 여러 개가 나한의 품에 안착했다.

“그대가 전해준 연단 비법을 살펴보니 효과를 증대할 방법이 보이더군, 거기에 적힌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동안 만들었던 연단의 효능을 수배는 올릴 수 있을 터, 바른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선물로 주지.”

목족에게서 전수받은 화래증폭술을 이용해 나한이 가지고 있던 약방을 손본 준혁.

준혁의 말에 나한은 체면을 차릴 새도 없이 바로 옥간을 이마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짧은 탄성과 함께, 준혁을 향해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도주! ”

여태껏 어쩔 수 없는 형식적인 충성을 보이던 나한에게 진심이 진득하게 묻어 보였다.

짧은 시간 안에 연단의 효율을 상승시키는 일? 그건 고급 단약을 받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선물이었다.

특히나 연단사의 길을 걷는 나한에겐.

“그대를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게 그런 일반적인 단약 제조법은 아닐 터. 다른 것들도 살펴봐 줄 테니 시간이 될 때 처소로 방문하도록.”

“명심하겠나이다!”

그다음으로 준혁은 나한 옆에 서 있는 검은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미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준혁이 바라보자 미남자는 한발 크게 앞으로 나서며 반 무릎 자세와 함께 과도한 예를 표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준혁이 입을 열었다.

“무위각주. 도천.”

“하명하십시오. 주군.”

개파에 맞춰 사쿠라가 영입한 많은 무리 중 하나인 무검문(武劍門)의 문주였던 도천.

도천은 준혁 휘하에 들어오겠다면 직접 찾아온 자들 중 하나였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단 한 가지만을 요구했었다.

그 요구란 준혁과 겨뤄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단 한 수만에 무력화된 후, 준혁에게 충성맹세를 하며 무검문의 문인들을 모두 이끌고 울릉도로 찾아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고맙군.”

“아닙니다. 주군으로 모시기로 마음먹은 순간, 제 가족들 역시 주군의 사람입니다.”

도천은 무검문의 문인뿐 아니라, 그들과 관련된 일반인들까지 전부 이끌고 울릉도로 들어왔다.

비행이 자유로운 수도자들에겐 큰일이 아니었지만, 일반인들이 섬에 갇혀 산다는 건 꽤 고단한 일.

그럼에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실행한 도천을 보면 준혁에게 진심을 보이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수도자들에게 일반인이 무슨 소용 있냐고 말하는 자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수도계의 생태를 전혀 모르는 바보 같은 사고방식.

광산에서 영석을 캐는 걸 제외하고라도, 수많은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일반인이 있기에 수도자들이 수련에 힘쓸 수 있는 것이었다.

준혁은 도천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돌려 좌중 전체를 향해 말했다.

“다들 명심하거라. 수도의 길을 걷는 자들이 아무리 하늘을 뒤집을 능력을 갖췄다 한들, 그 근본이 되는 건 일반인이다. 그들이 있어야 수도자도 존재할 수 있는 법. 본 섬에서 그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은 그에 합당할 벌을 내리고 바로 추방할 것이다.”

모두가 고개를 수그리며 응답하자, 준혁은 도천을 향해 자기병 하나를 날려 보냈다.

“결단기 중기에 머무는 네 수행을 후기까지 끌어올려 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과한 예를 표하는 도천을 뒤로한 채 준혁은 또 다른 무리로 시선을 옮겼다.

2년간 사쿠라가 받아들인 자들은 꽤 많았지만, 준혁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공로에 따라 상을 내렸고, 칭찬 혹은 명을 내리며 몇 마디 덕담도 함께했다.

그리고는 화령을 비롯한 청명과 함께 잡무를 도맡았던 도적 출신들에게까지 일일이 단약을 내려, 모두의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개파식에 앞서 준혁이 뿌린 단약만 모아도 웬만한 대문파는 기둥까지 흔들릴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모두의 차례가 끝나자, 많은 이들이 가장 앞줄에 서 있던 청명에게 시선을 모았다.

아직까지 이름이 호명되지 않는 건 그 하나뿐.

그리고 그런 흐름을 느꼈다는 듯, 준혁이 청명을 조용하게 불렀다.

“청명.”

“예!”

준혁의 부름에 청명은 미리 언질이라도 받은 것처럼 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단상 아래로 다가가 좌중을 보고 꼿꼿이 허리를 세웠다.

준혁은 그런 청명의 태도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다 전면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마선문은 여기 청명이 맡을 것이다. 이 녀석의 말은 내 명과도 같은 것. 모두 잘 따라주도록.”

마선문 문주 자리를 청명에게 내린다고 했지만, 모두 크게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미 사쿠라가 은연중 준혁의 뜻을 알리기도 했거니와, 문주 자리라는 것이 최강자를 뜻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업무를 도맡아 하는 자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모두가 그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발이 빠르기로 유명한 경상북도의 비천문(飛天門).

준혁이 머무는 성인봉을 중심으로 팔방으로 뻗어있는 건물 중 하나인 비각을 맡고있는 비각주 오명한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도주! 무례한 질문인지는 알고 있으나 한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준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말하라.”

“저기 청명 수사가 이곳의 업무를 도맡아 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주 휘하 각주들이 전부 결단기 수행을 지닌바, 당장은 도주의 명을 따를 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주에게 항명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판단되옵니다.”

비단 오명한의 의견은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수많은 이들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오명한은 용기를 얻고, 준혁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당장 무위각의 부각주 휘하 세 명의 제자들마저도 청명 수사의 수행을 넘고 있습니다. 저희 비각의 부각주 전원 역시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또한 대외적으로 마선문이 일을 행사할 때를 고려한다면···. 문주 자리엔 최소한 결단기 수사가 앉아야 한다 사료됩니다.”

마선문의 정보 관련된 일을 담당하는 오명한의 말이기 때문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준혁 역시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어떤 말이라도 해서 청명이 문주 자리를 맡아야 하는 당위성을 피력할 줄 알았던 준혁이 단번에 오명한의 말에 수긍하자, 모두가 깜짝 놀라며 단상 위로 집중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준혁이 진지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좌중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동요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청명까지.

“그렇기에 나는 청명을 개파식이 있기 전까지 결단기에 오르게 만들 것이다.”

준혁의 말에 오명한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의심이란 것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알고 있었지만,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설마! 도주께선 청명 수사를 강제로 결단기에 올릴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오명한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준혁을 주시했다.

“그렇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누가 되었든 공에 따른 상을 받을 것이라고. 청명은 그 공과가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것. 나는 저 녀석을 결단기로 만들 것이다.”

+++

준혁의 발언은 파급력이 어마무시했다.

수행이란 게 무엇인가?

만약 누군가가 강제로 수행을 올려줄 수 있다면 누가 노력을 하려고 하겠는가?

수행을 올려줄 사람을 찾아가 발이라도 핥는 게 낫지.

준혁이 좌중을 경악하게 만든 후 자리를 떠나자,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평소 친분이 있는 자들끼리 모이더니 가능하냐 못하느냐로 침을 튀겨가며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도 못했고,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으니,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나한 각주. 그래도 이쪽 방면에서 그대가 가장 정통하지 않소이까? 정말 가능한 것입니까?”

비각주 오명한의 말에 나한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불가능하오. 어찌 수행을 강제로 올린단 말입니까? 연기기에서 축기기로 올리는 것이야 단약만 충분하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시일이 걸립니다. 그런데 결단기는···. 후우···. 참으로 모를 소리입니다.”

나한의 말에 또 다른 이가 말을 꺼냈다.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로 그것이 가능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꿀꺽-

모여있던 모두가 침을 삼켰다.

그 반응에 비각주가 입을 열었다.

“정말 도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선문은 한국 최고가 아닌. 세계 최강 세력이 되겠지요.”

물론 결단기가 한두 명 늘어난다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축기기 이하 수사들이 이곳으로 모이겠는가.

아니 결단기라고 할지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올 것이 틀림없었다.

그 파급력은 상상을 불허할 게 분명했다.

+++

분지의 열기가 가라앉질 않고 있었지만, 준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처로 돌아와 밤을 준비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뜨자, 사쿠라가 사유리를 대동한 채로 성인봉에 내려섰다.

두 여인이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진법이 사라지며 준혁의 거처로 향하는 통로가 나타났다.

“들어가자···.”

잠시 후 사쿠라와 사유리는 준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혁의 처소의 분위기는 몇몇 사람들이 의심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말···. 저와 이 아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아니 그전에···. 우리의 상태를 어떻게 아신 거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사쿠라를 향해 준혁이 맞은편의 의자를 가리키며 자리에 앉았다.

“비경에서 수련하는 도중 목족의 비술을 익히게 되었지. 그 후에 그대와 저 아이를 보니 알겠더군. 두 사람의 몸이 정상이 아니란 것을.”

준혁은 오래전 목족의 공법을 익히며 사쿠라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술법이 목족의 공법과 일부 일치했던 것.

그때는 그저 비슷한 류의 공법이라 생각했지만, 비경에서 나와 사쿠라를 보는 순간 그녀의 몸이 정상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정확히는 순수한 인간의 혈통이라 하기보다는 불순물이 섞인 느낌.

그리고 불순물에서 전해지는 기운은 목족의 기운과 거의 흡사했다.

“그대의 몸속에 어떤 연유로 목족의 정혈이 흘러 들어갔는지는 모르나. 그대가 그것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건 알겠더군. 그러니 쉽게 느낄 수 있었지.”

“아···.”

“본 모습을 볼 수 있겠나?”

준혁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꺼내자, 두 여인이 흠칫하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고민이 길지 않았는지, 잠시 후 사쿠라는 아름다운 모습이 일그러지며 흉측한 피부가 드러났다.

그 모습은 오래전 준혁이 혈단법을 이용해 피부에 화상 같은 상처를 만들었을 때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사쿠라 옆에 있던 사유리도 항상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가리개를 제거하자, 그녀의 징그러운 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준혁은 두 여인의 모습을 보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역시. 정혈이 제대로 연화되지 못하고 들끓고 있군. 그때 눈꽃 비경에서 천년화를 얻으려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겠지?”

준혁의 물음에 두 여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곳의 구색초는 수행을 크게 올려주기도 하지만, 엄청난 냉기를 가지고 있어서···. 정혈이 들끓는걸 막을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건 만통방에서 얻은 정보인가?”

“네···.”

준혁은 사쿠라의 말에 눈꽃 비경에서의 일을 잠시 떠올리다 목족에게 잡혀있는 왕웅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만통방이란 희대의 정보 법기를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기에 상념을 날려버렸다.

“사쿠라. 그리고 사유리.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할 것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준혁이 본론을 꺼내 들자, 두 여인이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목족의 정혈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히려 몸 안의 정혈을 이용해 목족의 비술을 익혀 수행을 올리는 것이지.”

잠시 두 여인과 눈을 마주하던 준혁이 말을 이었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다른 여인들처럼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수행은 떨어지고 말 것이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수행은 더 올라갈 테지만, 지금의 모습을 버릴 수가 없을 테지. 어떤 선택을 할 거지?”

준혁의 물음에 사쿠라는 반문으로 대답했다.

“도주께선 제가 어떤 선택을 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수도자로서 수행을 포기하기도 어렵고, 여인으로서 아름다운 피부를 포기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랬기에 사쿠라는 준혁의 마음을 물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길 원한다.”

“이런···. 끔찍한 모습···. 보기 싫지 않나요?”

화상을 입은 듯 전신 곳곳에 고름과 짓이겨진 피부를 가진 사쿠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준혁은 질문과는 전혀 다른 얘길 꺼냈다.

“원영기에 든다면, 지금처럼 술법에 의지해 외모를 바꿀 필요는 없을 터. 내가 도와주겠다. 그대가 원영기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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